합천 함벽루는 아름다운 황강과 뒤로는 백제와 신라의 전투가 있었던 곳으로 역사적으로나 경치로 이름난 곳이다.
그 곳에는 원래의 자리는 아닐지라도 합천군수를 지낸 이증영의 유애비가 있다.
이 유애비는 임진왜란 이전의 비로 유명하지만 글을 지은 사람이 남명조식이고
글씨를 쓴 사람이 황기로이다.
조식 선생은 유명하여 많이 알려져 있지만 고산 황기로는 초서의 대가로 알려져 있어 서예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깋 알려져 있고 역사적으로는 구미에서는널리 알려져 있지만 다른지역에서는 그리 알려지진 않은 인물로 생각된다.
그러나 옥산 이우의 장인이고 율곡이이의 사돈어른으로는 많이 알려진 인물이다.
특히 고산 황기로의 초서체는 유명하지만 해서체는 보기 드물기에 황기로 글씨가 있는 이증영 유애비는 고산의 글씨로 희귀하여 소중한 것이다.
이재까지 알려진 고산 의 글씨는 진주에 있는 조윤손의 신도비 글과 충주 이번의 신도비에만 글씨만 남아 있어 횡기로의 글씨를 연구 하는데 아주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비가 합천에 있어 필자가 여러번 갔다가 이제야 글을 써 본다,
갈때 보다 보고 오는 것이지만 유애비의 내용을 몰랐지만 남명집에서 찾아내어
아래에 펼쳐본다.
이령공 유애비 李令公 有愛碑
何人無父母乎。어느 사람인들 부모가 없겠는가?
何父母無赤子乎 어느 백성인들 자식이 없겠는가?
赤子之喪慈母也 백성이 부모의 상을 당하면
人或有收養之者。 다른사람이 거두어 주기도하고
父母之哺赤子也 부모(현령)이 백성들을 먹일때에는
愛有時而間焉。 때때로 틈이 생기게 마련이지만
獨我公之爲父母也。우리 공 만이 유독 부모같았으니
愛寧有時而間乎 백성들을 향한 마음이 틈이 있을수 있는 가
吾赤子之去慈母也。합천 백성들에게는 자비의 엄마로다.,--생략
人焉有收養之者乎。
朝不哺則飢。夕不哺則瘁。三不食則委。吾赤子其塡於溝壑乎。呼之不可。借
之不得。合百萬而爲羣。人五十而慕焉。長言之于康衢。被之以石焉。我父母者誰。李學士增榮。其人也。吾赤子者誰。陜川郡民也。爲父母者何。陜川郡守也。其來也于于。視我如傷。其去也柴柴。無石以載。我有田疇。公則稼之。我有桑麻。公則衣之。國有重徵。官自應之。民有菜色。推食肉之。興鄕約者。敦倫理也。殖周布者。舒民役也。孤犢觸乳。匪怒而敎。朱門索腴。每達空緘。今者去矣。愛莫從之。獨念去者去而來者來。來日之爲父母者。未有學養子而後來。爲赤子者。亦未有學愛親而後孝者。若此則繼有無窮父母。亦有無窮
孝思。唯以思此父母而表遺愛也已。容焉有揀父母之恩乎。
皇明嘉靖三十八年己未歲十一月日。陝川郡人立。 황명 가정38년 기미세12월일 협천군립
남명 조식 글을 짓고 고산 황기로 쓰다
첫댓글 어찌 거두어 드림을 마다하겠는가!
아침에 먹여 살리지 않으면 굶주리고, 저녁에도 먹여 살리지 않으면 지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