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삼 李德三(1905 ~ 1926)】
" 상하이에서 한인 무장조직 '병인의용대'(丙寅義勇隊)에 가입해 의열 투쟁 "
5, 6월에 피는 은방울꽃을 본 적이 있는가? 그런 사람은 길을 멈추고 앉아서 넓은 이파리를 들추지 않으면 그 순백의 아름다움과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작년에 이준익 감독이 은방울꽃같은 박열(朴烈)을 드러내 보여주기 전까지 그의 존재를 알 수 없었듯이, 조소앙 선생이 지은 독립운동가들의 전기집 《유방집(遺芳集)》에도 독립의 밀알이 된 꽃다운 인물들이 숨어 있다. 그 중에 우리는 과연 몇 분의 이름과 행적을 알고 있을까? ‘유방(遺芳)’이라는 책이름처럼 그 아름다운 이름을 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3.1운동 100주년이 다가오고 있는 호국보훈의 달 6월에 참으로 부끄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내가 죽어도 반드시 뜻을 이을 사람이 있을 것이니 어찌 죽음을 두려워하랴’ 사형대에서도 당당하게 외쳤던 의병장 이은찬(李殷瓚), 평양감옥에서 교수형을 당한 뒤에 일인 의사들의 해부용으로 넘겨졌던 통한의 채응언(蔡應彦) 선생, 창덕궁 금호문에서 총독 사이토를 처단하려다 실패하여 교수형에 처해졌던 송학선(宋學先) 의사 등이 거기에 있다.
그리고 복수초(福壽草)처럼 아름다운 청년 이덕삼(李德三)이 있다. 그는 열다섯 살부터 상해임시정부의 밀령을 전하는 전체사(傳遞使)로 활약했고, 군자금을 전달하는 일을 하다 18개월의 옥고를 치루었다. 또한 병인의용대(丙寅義勇隊)에 들어가 결사항전하며 전과를 올렸고, 감옥에 갇힌 동지들을 구하려고 일경과 교전하다가 다리에 총상을 입기도 하였다. 순종황제 인산일에 일제 요인과 밀정을 암살하기 위해 잠입하다 체포되어 심문을 받던 중, 스물세 살 푸르른 나이에 상해 일본영사관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상해총영사 야다 시치타로(矢田七太郞)가 일본 외무대신에게 보고한 ‘폭탄소지 조선인에 관한 건’이라는 문서에 보면, 간수가 없는 틈에 그가 죄수복에 부속한 노끈으로 목을 매어 자살한 내용이 상세히 적혀 있다. 장례는 여운형(呂運亨), 안공근(安恭根) 등에 의해 독립운동가 장으로 치러졌으며, 상해 정안사(靜安寺) 만국공묘(萬國公墓)에 안장되었다. 이곳에 함께 묻혀 있던 임정(臨政) 요인들은 1993년에 고국으로 돌아와 현충원에 안장되었으나 아직도 그는 상해 외국인묘지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그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된 것은 1995년의 일이다. 1926년 6월 7일 새벽 2시, 그가 동지들의 이름과 독립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산화한 지 70년이 지난 뒤이다.
이 지사는 심한 고문을 받다가 스물한 살의 나이에 상하이 일본 경찰서에서 순국하고 말았다.
그가 그토록 염원했을 조국 해방이 이뤄진 지 77년, 한국과 중국이 다시 교류의 물꼬를 튼 한중수교 이후 3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이 지사는 여전히 상하이 외인 묘지에서 외롭게 잠들어 있다.
같은 상하이 만국공묘에 안장된 박은식, 신규식, 노백린, 김인전, 안태국 등 저명 독립지사의 유해가 한중 간 협의를 통해 한국 국립묘지로 봉환됐지만, 오로지 이 지사만이 홀로 상하이 땅에 남았다.
이 지사의 귀국을 막는 것은 한편으로는 분단의 장벽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당국과 국민의 무관심 또는 이 지사 유해 송환을 위한 의지의 부족이라고 기자는 생각한다.
우리 당국은 그간 여러 채널로 중국 측에 이 지사의 유해 봉환을 요청했다.
그러나 중국은 유해 연고권이 있는 자손을 데려와야 유해를 넘겨줄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우리 측 요구에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고 한다.
표면적으로는 유족을 데려오라는 것이지만, 실제 속내는 이 지사의 고향이 현재의 북한 지역이기 때문에 혹시나 생길 북한과의 마찰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유해 송환 문제에 밝은 당국자들은 귀띔한다.
북한이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 임정 계열 독립투사인 이 지사의 송환 문제에 북한이 관심을 가질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는 점에서 이는 지극히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임정 기관지인 독립신문이 1926년 9월 펴낸 신문에서 이 지사의 '열사 이덕삼의 일생'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 지사의 생애를 자세히 소개할 정도로 임정은 당시 이 지사의 순국을 안타깝게 여기며 가슴 아파했다.
이 지사의 송환 문제는 수년째 지지부진한 상태다. 이제 이 지사의 송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특별한 돌파구 마련이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