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시간
장마철이라 비가 자주 온다.
그런데 올해는 예년과는 다르다.
비가 갑자기 그리고 한곳에 집중적으로 쏟아져 내려 예측할 수 없다.
흔히들 이런 비를 게릴라성 호우라 한다.
한곳에 집중적으로 비를 쏟아부으니 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고 뜻하지 않게 고통을 안게 되는 사람이 생겨난다.
피해를 보면 고통스럽다.
우린 슬픔은 나누면 반으로 줄어들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는 얘기를 잘 알고 있다.
그냥 누구나 그런 말을 하니까 사실일 거라고 믿는다.
슬픔은 물건이 아니다.
그러니 당연히 나눌 수가 없으니 온전히 혼자 감내해야 할 부분이므로 절대로 줄어들지 않는다.
누군가의 위로를 받는다면 마음 한구석 위로가 찾아왔던 순간 비워졌을 뿐이지 그 순간이 지나면 도로 아미타불이다.
슬픔에 잠겨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른다.
그러니 위로하면 조금은 덜 슬프지 않을까 하는 어떤 믿음일 뿐이지 절대로 반으로 줄어드는 효과는 없다.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버티고 견뎌내야 할 자기 일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기쁨은 나누면 배로 될까요?
이 또한 사실은 아니다.
남이 축하한다고 내 속에 있는 기쁨이 풍선처럼 늘어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기쁨의 크기는 온전히 내 속에 존재하는 만큼이니 이 또한 믿을 것은 못 된다.
누군가 함께 기뻐해 주니 순간 상승하는 느낌은 존재하겠지만 사안에 따라 느끼는 기쁨은 오직 자신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인 만큼 늘어나고 줄어드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슬픔도 기쁨도 오직 자신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감정이니까 혼자 감내해야 하는 감정놀이일 뿐이다.
무엇이 어떻다고 하는 것은 모두 내 생각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하늘이 노란 것도 바다가 검은 것도 보는 사람의 마음이 만들어 낸 형상에 불과함을 우리는 잊고 산다.
똑같은 것을 바라보면서 사람마다 표현하는 방식이 틀리고 느낌이 다르니 획일화된 공식을 진리로 믿고 살아온 시간은 잘못된 것이다.
혼돈은 자기 생각 없이 받아들이면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믿으면 끝이니까?
누군가 비가 오는 소리가 아름답다고 말했다면 그런가 하고 믿어버리면 별로 갈등이 없는데 비로 인한 피해를 본 사람이 들었던 비 오는 소리는 아름답지 못하다고 느끼기에 혼란스러운 것이다.
우린 빗소리가 어떤 음향을 가졌는지 사실 정의된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머무는 곳에서 어떤 물체와의 마찰로 생겨나는 소리를 빗소리라 하고 평온한 마음이면 빗소리가 정겹다, 아름답다는 식으로 자의적식인 표현을 쓸 것이고, 생명을 위협 받는 곳에 있는 사람은 창대 같은 빗소리에 공포와 두려움을 느껴 절대로 그런 표현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유명한 작가의 표현에서 읽은 글귀 중에 빗소리를 듣고 아름답다고 표현되어 있어 아름다운 것이라고 온전히 믿는다면 낭패를 보고 마는 혼돈에 빠진다는 얘기다.
사실 빗소리는 없다.
그 비가 보슬비든 소낙비든 아무런 소리도 없이 그냥 구름에서 낙하는 물방울일 뿐이고 크기만 다를 뿐인데 그것이 무엇인가에 부딪혀서 내는 소리를 빗소리라고 우리가 부르니 정확하게 어떤 소리라고 정의 내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느끼니 혼돈의 시간 속에 살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나름의 방식으로 산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똥장군 지고 장에 간다는 옛말이 있듯이 생각이 군중심리에 휘둘려 같은 생각이나 행동을 하면서 그것이 진리라도 되는 듯이 도취해 버리는 혼돈 속에 빠져든다는 사실이다.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을 봐도 그렇다.
누가 뭐라고 하면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에 대한 생각은 한 번쯤 해보고 판단하여 믿어야 하는데 무조건 믿고 그것을 사실이라고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여 문제를 키우는 어리석은 사람이 너무 많다.
흔히 우리네가 보는 유튜브에 빠진 사람들은 감각이 완전히 마비된 사람이 허다하다.
정치 경제는 물론이고 사건 사고도 조작하여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조회 수에 목숨 건 인간이 만들어 낸 거짓에 속아 사실 인양 덩달아 날뛰고 있으니 얼마나 혼돈의 세상이냐는 얘기다.
생각은 다양하고 느낌도 다양하다.
그렇다면 그 생각과 느낌 중에 어떤 것을 자신의 것으로 선택하여 취할 것인가에 관한 판단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다.
혼돈 속에서 이것이 맞을까 저것이 맞을까 하고 방황하다 보면 오롯이 가져야 할 자신의 판단이 존재하지 않아 여기저기 휘둘리며 의미 없는 인생을 살게 된다.
나이가 들면 귀가 엷어져서 남의 소리에 혹한다.
그것을 잘 아는 사기꾼들이 피라미드 방식으로 판매하는 여러 가지 제품을 노인 상대로 사기를 치고 노인네들은 사기를 당해 전전긍긍하면서 지내는 것을 자주 본다.
우린 사실 쓸데없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어리석음 속에 살고 있는지 모른다.
예를 들며 전자 요를 판매하는 곳에 친구끼리 같이 갔다고 해서 자기에게 필요치 않으면 살 필요가 없는데 친구가 사니까 덩달아 사고 후회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위신이 중요한지는 잘 모르지만, 자신만의 오롯이 살아있는 정신상태가 존재하지 못하다는 판단을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그것은 누군가의 유혹에 자신의 욕심과 위신을 덧씌우면 문제가 발생하고 결국은 후회하며 전전긍긍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불행의 씨앗은 스스로가 만들고 키운다.
그런데도 늘 남이 자신을 속였다고 불평불만을 토로하는 것이 인간이다.
높은 이자를 지급하겠다. 곧 땅값이 폭등할 것이다. 하고 유혹하면 진짠지 거짓인지 생각 없이 혹시 남이 먼저 할까 봐 혹해서 달려들고 나중에 거짓임이 밝혀지면 혼자서 우거지상을 하고 고민하고 고통받으며 산다.
그 속에는 욕심 덩어리가 부추기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지 못해 발생한 일이다.
한 번만 생각해보면 세상에 통용되는 금리가 있는데 특별하게 주겠다고 한다면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데 마음속에 늘 눌러 붙어있는 욕심 덩어리가 빨리하라고 재촉하니 덥석 물고 낭패를 보는 것이다.
굳이 많이 가지려고 몸부림칠 필요가 없는데도 남보다 많이 가지고 싶어서 안달하니 사달을 만들어 냄에도 스스로 뉘우치지 않고 어떤 사람이 자신을 속여 당했다며 탓하고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해 반성은 하지 않는 게 대부분의 인생이더라는 얘기다.
땅값이 폭등할 건데 어떤 미친 인간이 다른 사람에게 빨리 사라고 난리 치겠는가?
빚을 내서라도 스스로가 취득해 이익을 취하는 것이 당연한 방식인데 천사도 아닌 인간이 그런 정확한 정보를 준다고 믿는 믿음은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요.
이 또한 욕심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사례만 얘기해도 그렇네 하고 수긍하는 분들이 많겠지만 얘기 끝나고 나면 대부분은 또 아닐 거야 하고 몸속에 눌어붙은 욕심 덩어리의 충동질에 현혹하고 마는 것이 삶이 아닌가 한다.
나쁜 사람이 많다.
그리고 좋은 사람도 많다.
선행은 잘 알려지지 않으니 잘 모르고 악행은 하루가 멀다고 매스컴에 등장하니까 무서운 세상에 산다며 두려워하겠지만 사실은 그 반대로 좋은 사람이 많아 세상이 원만하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오늘도 텃밭에서 수확한 상치, 깻잎, 고추를 가져다주고 가는 이웃이 있다.
가끔 그 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친정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무렇게 주섬주섬 뽑거나 따서 주는 것이 아니라 간결하게 파는 물건처럼 깔끔하게 다듬어 줘서 늘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세상은 이처럼 자신의 몫 일부를 나누는 아름다운 생각과 멋진 행동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으므로 남 탓하면서 지내면 안 된다.
정보라고 하는 것은 모두가 사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만들어 내는 사람이 자의적으로 생각한 것이니까 참인지 거짓인지에 대한 검토와 판단은 오롯이 자신의 몫임을 알아야 한다.
쉽게 말해 혹해서 행동하고 판단하면 안 된다.
특히 가장 위험인물이 정치하는 사람들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진정성이라곤 하나도 없다.
시간과 장소에 따라 자신의 이익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생각이 다르고 행동이 다르므로 그 사람들을 믿었다가는 낭패 보기 십상이다.
요즘 사람들은 할 일이 없어서 그런지 신념이 투철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너무 정치 지향적인 사람이 많아 걱정이다.
굳이 고래고래 소리 지르지 않아도 마음만 곧다면 올바르게 판단하여 기회가 되면 자신의 권한을 행사하면 될 텐데 군중 집회에 몰려다니며 조용히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방해하는 무례를 범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사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나쁜 인간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 집에도 가끔 어떤 노조의 집회 목소리가 들린다.
카랑카랑한 여자의 목소리가 조합원에 대하여 선동적인 구호와 주장을 하는데 왜 굳이 아파트 주민과는 상관없는 그들의 행사를 하면서 소음을 일으키고 불편하게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
우린 그들의 행사에 하나도 관심이 없다.
사업주와 그들의 문제인데 데시벨을 높여 원하지 않는 아파트 주민들의 휴식을 방해하는 잘못을 저지르면서도 전혀 미안해하지 않으니 나쁜 인간임은 틀림이 없어 보인다.
협상은 조용히 하는 것이지 선동하여 미친 듯이 날뛴다고 되는 것이 아니란 것쯤은 알 텐데도 같은 짓을 매일 시간만 되면 난리를 치니 환장할 노릇이라는 얘기다.
건전한 사고를 가졌다면 스피크 볼륨을 높여 상관없는 주민에게 피해를 주는 방식은 자제함이 옳은데도 모르고 날뛰고 있으니 몹시 나쁜 인간이 맞아 보인다.
그렇다.
그러니 혼돈 속에 우리가 산다는 얘기다.
나의 생각과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때론 막대한 피해를 준다는 사실마저도 망각한 체 행동하면서 늘 남 탓하는 세상이 얼마나 우스운 세상이냐.
이런 세상에 너도 그러니 나도 그래야지 한다면 세상은 엉망진창으로 변질되겠지만 좋은 사람들이 많으니 때론 수긍하고 참아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어제처럼 또 내일도 흘러갈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자기 생각을 올바르게 가지고 살아야 한다.
무엇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성찰을 하지 않으면 나쁜 사람들이 행하는 일에 동요하고 그것이 나쁜 짓인지도 모르고 바보처럼 똥장군 지고 장에 가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다양한 생각이 공존하는 세상이다.
똑똑한 인간만이 살아낼 수 있다고 믿으면 그것 또한, 착각이다.
우리네가 쉽게 사는 방법은 상관없는 일에 관심을 내려두고 내 속에 웅크리고 눌려 붙은 욕심 덩어리의 충동질에 호응하지 않는 자제력을 가져 자신의 방식대로 사는 지혜가 필요하다.
정답은 없다.
그러나 현답은 존재한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나와 내 이웃이 불편하지 않은 방식대로 산다면 그것은 현명한 답이다.
주어진 만큼에 감사하고 가진 만큼에 만족하는 자신의 현명한 판단이 혼돈의 세상에서 우리네가 가져야 하는 정신이 아닐까 하고 하염없이 쏟아져 내리는 장맛비를 보다 말고 떠오른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