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 침례교회를 제외한 한국 개신교의 절대다수는 천주교의 전통인 유아세례를 실행하고 있다. 천주교에서는 유아세례를 통해 거듭나고 성령을 받는다고 가르친다. 유아세례가 성경 어디에도 없는 비성경적 관례라는 것은 다 아는 일이다. 침례는 복음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받는 것이며(행 8:36-38, 16:33) 죄 사함이나 구원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다(벧전 3:21). 죄에 대한 의식도 없고 말도 못 알아듣는 아기가, 그것도 침례도 아닌 세례를 받는 것은 비성경적 인간의 전통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갖가지 명분을 세워 자기들이 버리지 못하는 이 비성경적 관행을 정당화하려 든다.
혹자는 유아세례가 구약의 할례와 같은 것이라는 엉뚱한 주장을 한다. 그러나 유아세례가 할례와 동일한 것이라면 유아세례는 난 지 팔일 만에 받아야 하며(그것도 남아만) 그 가엾은 아이는 구약의 모든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말이 된다. 『내가 할례 받은 모든 사람에게 다시 증거하노니 그는 온 율법을 행할 의무가 있는 자라. 율법으로 의롭게 된 너희는 누구든지 그리스도가 무용하게 되고 은혜로부터는 떨어져 나갔느니라』(갈 5:3,4). 세례는 결코 할례가 아니다. 또 어떤 이들은 유아 세례가 부모가 아이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라고 그럴 듯하게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아기에게 세례를 주어 아기를 하나님께 바치라고 명령하고 있지 않다. 그런다고 아기가 하나님께 바쳐지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도 아니다. 성경은 다만 성도 각인이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으며(롬 12:1,2) 또 부모로서 어떻게 자녀들을 양육해야 하는지를 말씀할 뿐이다. 너희 아비들아, 너희 자녀들을 성나게 하지 말고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유아세례는 초대 교회에서는 전혀 실행되지 않았으나 A.D. 3세기경에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침례(세례)로 구원받는다는 거짓 교리가 퍼져감에 따라 그 필연적인 부산물로 배교한 교회 안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 즉 오늘날의 천주교나 그리스도의 교회처럼 물 침례가 구원의 조건이라고 믿는 자들이 침례를 일찍 받을수록 더욱 좋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어 유아 세례가 생기게 된 것이다. 한편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의 무리들은 그러한 오류(유아 세례)를 받아들이거나 실행하고 있는 모든 교회와 성도의 교제를 끊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물 침례(세례)에 의한 구원과 유아세례 이 두 가지 과오는 수세기가 지남에 따라 1,2차 세계 대전을 제외한 모든 전쟁보다도 더 많은 수의 그리스도인들의 피를 흘리게 한 원인이 되었다. 주로 이 두 거짓 교리를 거부하였다는 이유로 암흑시대 기간, 특히 12,13세기 동안만 하더라도 무려 50,000,000명 이상의 그리스도인들이 순교하였던 것이다(J.M. 캐롤 저, <피 흘린 발자취>, 말씀보존학회 간).
1957년에 출간된 “루터교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중생의 씨가 유아세례를 받은 아기 안에 심겨진다. 중생은 양자가 되어 하나님의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성공회의 공동기도서를 보면 사제는 “유아세례”를 행하기 전에 다음과 같이 기도한다. “우리가 이 아기를 위해 주님께 간구하오니 주님의 이 거룩한 세례를 통해 아기를 영적으로 거듭나게 하사 죄들의 사면을 받게 하옵소서.” 이렇게 해서 영문도 모른 채 세례를 받은 아기는 깨닫고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서부터 자기가 유아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일생 동안 잘못된 확신을 갖고 살다가 죽어서 지옥에 가는 혼들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유아세례에 대한 예나 근거 구절이 성경 어디에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완고한 종교 지도자들은 유아세례에 대한 것이 복음서 안에 있다고 주장한다.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들이 자신에게 오는 것을 환영하셨고 그 아이들이 오는 것을 금한 사람들을 책망하셨으며 그 아이들을 축복하셨다는 구절(마 19:13-15)을 인용하는 것이다. <복음전파자들의 일치에 관한 주석>(Vol.II p. 390)에서 칼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분께서 그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계수되게 하기 위함이 아니던가? 그들은 성령님에 의해 새롭게 되어 구원의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만일 그들이 세례에 의해 영적 은사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었다면, 그들에게서 외적인 표적(유아세례를 말함)을 없앤다는 것은 불합리한 일이다.” 칼빈은 예수님께서 그 아이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계수되도록” 그들을 안으며 기도하셨다고 말했는데 그는 예수님께서 팔로 어린 아이들을 감싼 것과 유아세례를 결부시켜 사실상 세례 받은 사람들만이 하늘에 간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의 침례교도들은 이러한 거짓 교리를 강력히 거부하였다.
우리 시대의 한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는 다음과 같이 지나간 시대의 어떤 신학자의 글을 인용하고 있다. “침례시 먼저 믿음이 있어야만 함을 주장하는 것은 은혜를 부인하는 것이요 또한 복음을 왜곡하는 것이다. 재침례교도들이 유아세례를 거부한 것은 그들이 믿음에 의해서만 의롭게 됨을 확고히 믿었기 때문이다”(비슬리, <신약 성경의 세례> 1962, p. 345). 그러나 믿음에 의해서만 의롭게 되는 것이 성경적 교리가 아닌가?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한 유명한 독일의 개신교 신학자는 재침례교도들이 개혁자들에게 살해당한 것이 유아세례를 반대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유아세례가 아무런 가치도 없으며 효과가 없다고 말한 자들이 누구이던가? 침례교도들이 아닌가? 그들은 교회의 고백에 동의하지 않았다. 즉 그들은 유아세례에 동의하지 않았다. 개혁자들(프로테스탄트들)은 이 같은 혼동을 너무나 심각한 것으로 생각하여 그들을 처형할 것을 요구하지 않았던가?”(홀러, <복음주의 신학> 1949, p.477).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유아 세례가 주는 구원의 거짓 확신에 속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원받기를 간절히 바란다. B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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