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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John 5 – The Pool of Bethesda(김요셉)
From time to time, an angel of the Lord came down from heaven and stirred up the waters. Whoever stepped in first after the water was stirred was healed of whatever disease they had.
So many people — the blind, the lame, and the paralyzed — waited around the pool for a chance.
One man had been an invalid for 38 years. When Jesus saw him and learned how long he had been there, he said, “Do you want to be healed?”
And the man replied, “Sir, I have no one to help me into the pool when the water is stirred.”
Jesus said, “Get up. Pick up your mat and walk.”
And immediately he was healed.
This pool was in the House of Mercy — Bethesda.
Just think: Do you have mercy in your heart?
Sometimes, from time to time, an angel still comes down.
Maybe not visibly, but in our hearts, in our worship, in our churches.
Every Sunday, maybe every day — let’s open our eyes and find the Lord.
The Lord is still stirring the waters.
He told Moses, “Go to Pharaoh and say, ‘Let my people go.’” (Exodus 3)
Why? Because God wanted to save His people from slavery.
Today too, God is seeking someone who will rise up to deliver and intercede.
Maybe that person is you.
David didn’t fight Goliath because he was the strongest — but because he believed the Lord would fight for him.
Maybe God has called you to save a person, a city, or even a country.
No one else may do it. But maybe you must.
This church is international — people from many countries.
God may use youto save your people, your country.
Amen, amen, amen.
요한복음 5장 — 베데스다 연못
때때로 주의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연못의 물을 휘저었습니다. 그때 가장 먼저 들어간 사람은 어떤 병이든지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병자들, 맹인, 절뚝발이, 중풍병자들이 그 기회를 기다렸습니다.
38년 동안 병을 앓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거기 있었는지를 아시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 사람은 말했습니다. “물이 움직일 때 나를 연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그리고 그는 곧 나았습니다.
이 연못은 ‘자비의 집’ — 베데스다에 있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당신 마음 안에 자비가 있습니까? 오늘도 때때로, 주님의 천사가 임하십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우리의 예배와 마음 속에, 교회 안에 임하십니다. 매 주일, 어쩌면 매일, 우리는 눈을 떠서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은 지금도 물을 움직이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바로에게 가서 내 백성을 보내라 하라”고 하셨습니다(출애굽기 3장). 왜냐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백성을 위해 일어설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 사람이 어쩌면 당신일 수 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운 것은 그가 강해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싸우실 것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하나님은 당신을 통해 한 사람, 한 도시, 한 나라를 구원하시려는 것일 수 있습니다. 아무도 안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당신이 해야 합니다. 이 교회는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있는 국제적인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나라, 당신의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당신을 부르실 수도 있습니다. 아멘. 아멘. 아멘.
너희는 나의 친구라 (1)
나균용 목사님
요한복음 15장 13절-15절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13절에서는 뭐라고 그랬죠? 사람이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 그러니까 친구 사이에는 목숨도 줄 수 있어야지 한다. 14절에서는 친구 사이에는 어떠해야 되겠는가.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나의 친구가 된다> 말씀하셨어요.
요한복음 14장 15절과 21절 이렇게 보면 <너희가 나의 계명을 지키면 곧 나의 친구라> 말씀하셨고 <내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의 친구다> 말씀하셨습니다. 15절 마지막 절에서는 <내가 이제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고 친구라 하였노니> 하면서 친구는 어떤 조건이 있어야 됩니까?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너희에게 다 알게 하였음이니라>라고 말씀을 하세요. 그러니까 친구 사이에는 비밀이 없어야 된다는 말이죠. 친구 사이에는 비밀이 없어야 한다.
예수님은 <너희는 나의 친구다. 너와 나 사이에는 비밀이 없다> 이렇게 가르쳐 주시는 거죠. 그러면서 15절 말씀에서는 <내가 아버지께 들은 것을 너희에게 다 알게 해준다.> 거기에서 그냥 끝나버리는 얘기가 아니죠. 그래서 우리의 기도를 주님께서 다 이루어 주시겠다고 하는 엄청난 약속을 우리에게 함께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13절에서는 친구 사이에는 목숨도 주어야 한다. 14절 친구 사이에는 말을 잘 들어줘야 된다. 15절 친구 사이에는 비밀이 없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서로 친구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입니다.
너하고 나하고 좋은 친구가 되려면 이 세 가지 중에서 어느 게 제일 먼저 와야 합니까? 너하고 나하고 좋은 친구가 되려면 제일 처음이 14절이거든요. <말을 잘 들어줘야 된다.> 혹은 조금 어려운 부탁을 했어도 거절하지 아니하고 흔쾌히 그것을 들어주려고 하고 나를 도와주려고 하고 이렇게 할 때에 우리는 이 친구가 참 좋은 사람이로구나 믿을 만한 사람이로구나 사귈 만한 사람이로구나 가까이 할 수 있는 사람이겠구나. 점점 가까운 친구가 되고 내가 저 사람에게 부탁한 걸 들어주면 그다음에는 저 사람이 나에게 부탁한 것도 내가 최선을 다해서 들어주려고 하게 되고 이것이 첫째 관계죠.
그다음 관계는 15절 아니에요. 비밀이 없어야 된다. 말을 서로 잘 들어주게 되면 그때는 숨기지 아니하고 이렇게 내 속마음을 털어놓고 친구와 상의할 수도 있고, 특별히 자기가 고민하는 문제,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뭐든지 이렇게 안 내놓고 얘기할 수 있고 그러면 또 상대방도 최선을 다해서 이것을 들어주고 해결해 주려고 애를 쓰게 되고 이렇게 하면은 두 사람의 관계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비밀이 없는 이런 아름다운 친구 관계로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다음에라야 13절이 오는 거죠. 그래야 내가 친구를 위해서 내가 이 친구를 위해서 목숨까지 바쳐도 아깝지 않겠다 이런 관계까지 나가는 건데 그러고 나서 가만히 보니까는 이 순서가 좀 잘못됐지 않았어요. 13절에 먼저 목숨을 바쳐야 된다는 말씀이 나왔거든요. 원 순서는 14절 그다음에 15절 그리고 13절이 제일 뒤로 가야 되는데. 내가 예수님을 친구 삼는 방법이 무엇인가, 그다음에는 예수님이 나를 친구 삼아주시는 방법은 또 어떻게 되는가 이 순서가 다 다르다고 하는 거예요. 사람들끼리 너와 나 사이에 친구 삼는 순서는 14절, 15절 그리고 13절은 맨 마지막에 오는 거죠.
둘째로 내가 예수님을 친구 삼으려고 하면 제일 먼저 할 것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회개를 먼저 해야 천국을 주신대요. 내가 예수님을 친구로 삼으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15절 내 속에 있는 비밀을 먼저 주님께 다 이렇게 아뢰고 주님으로부터 용서를 받는 일이 먼저 이루어져야지만 된다고 하는 거죠. 그러면 그다음에는 뭡니까? 14절 그렇게 하고 나서 주님 앞에 기도하면 주님께서 이루어 주시고 또 주님께서 나에게도 무엇을 명령하시면 나도 주님 말씀을 행하는 사람이 되고 이런 관계가 오래 된 다음에 내가 드디어 마지막에 예수님을 위해서 목숨까지도 드릴 수 있는 사람으로 더 성장하고 변화하게 된다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또 예수님이 나를 친구 삼는 방법은 어떻게 되겠는가, 이것이 또 다르죠. 예수님이 나를 친구로 삼는 방법은 나중에 내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 가지고 성경을 읽고 또는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에 대해서 알게 되니까 나는 그분을 알기도 전에 그분이 먼저 나를 위해 목숨을 주시는 분이 따라 그래서 이것이 깨달아져가지고 하나님 앞에 정말 통곡이 나오기도 하고 감격의 눈물이 쏟아지기도 하고 그래서 <나를 주님께 바칩니다. 내 생명을 주님께 드리겠습니다> 하는 이런 약속, 이런 게 나오게도 되고 이렇게 변화 받는 것이 그렇게 순서가 되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마지막 단계가 하나님께서 하늘의 비밀을 나에게 알려주시는 거죠. 그래서 이 비밀이 성경 아닙니까? 이 성경 속에 하나님의 비밀이 가득하게 들어 있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이런 관계가 된 다음에 성경을 읽게 되면 옛날에는 미처 보이지 않았던, 보지 못했던 그런 말씀들이 깨달아지는 것이고 그런 세계에 우리가 자꾸 들어가게 되는 거고, 그래서 성령을 주시고 성령의 충만함을 주셔서 신비로운 은사들을 체험하게 하시고 기도하면 응답이 오고 놀라운 하늘의 세계를 맛보게 하고 하는 이런 모든 복이 이 전부 15절 여기에 나타나는 거란 말이죠.
예수님께서 먼저 13절에서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주신 그 일이 첫째로 일어나고 둘째로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우리가 다 순종하는데 그것보다도 더 먼저 주님이 하시는 것은 우리의 기도하는 거를 먼저 다 들어주시고 그다음에 우리가 그 기도에 응답을 해 주시는 것에 감사하고 감격하고 하게 되니까 나도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이 돼야 하겠다. 아브라함이 처음 부르심 받았을 때 <너는 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내가 너에게 지시한 땅으로 가라> 명령하셨을 때에 이미 그때 벌써 아브라함이 순종하고 나섰다고 하는 것은 그전에 그만한 뭔가가 준비 단계가 다 있었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상상하고 유추해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계가 먼저 되어야지만 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많이 받고 나면 그다음에는 회개는 저절로 터져 나옵니다. 이 은혜를 안 받은 사람들은 회개라는 게 저절로 나올 수가 없어요.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받으면 그 반응으로 우리 속에서 회개가 저절로 터져 나오게 되는 거죠. 그래서 회개라고 하는 것은 나의 비밀을 하나님께 알아내는 것입니다. 내가 사람에게는 감추고 있던 비밀, 사람들에게는 말을 못하지만 하나님 앞에 가서는 솔직하게 다 다 털어놓고 회개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 신앙생활의 가장 기본이 이 회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가운데 우리가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 이상한 말씀이 하나가 있어요.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날 심판 날에 저 니느웨 백성들,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했던 그 니느웨의 백성들이 일어나서 이 세대 사람들을 심판하리라고 경고하셨어요. 그런데 이건 우리들의 상식으로도 맞지가 않는 얘기고 더더구나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말씀은 절대로 수용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선민인데 어째서 선민도 아닌 이방인인 저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서 우리 유대인들 하나님의 선민을 심판할 수가 있겠느냐,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얘기입니까? 얼마나 합당하지도 않은 얘기입니까? 이렇게 해서 이 사람들은 절대로 그 말씀을 용납할 수가 없었을 거예요.
그렇지만 예수님의 이 말씀은 회개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거기는 육신적인 혈통을 따라서 선민이냐 아니냐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죠. 구약에서는 유대인을 놓고, 이스라엘을 놓고 하나님의 선민이다 이렇게 가르쳤지만, 신약에 오면은 선민이 누가 선민입니까? 유대인이 선민이 아니고요. 예수님을 믿는 진실한 성도들 이 사람들이 참 이스라엘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나다나엘에게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참 이스라엘 진짜 선민은 누구냐, 이것은 마음에 간사한 것이 없는 사람 하나님 앞에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다음에는 성령 충만한 사람, 그래서 육신적 혈통적 유대인이 아니고 영적인 유대인, 신령한 유대인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고요. 한 걸음 더 나가서는 이사야 41장 14절 하나님께서 이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십니다.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하고 부르시죠.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렇게 불러주세요. 그러면서 <내가 너를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로 삼아줄 것이다>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예수님과 친히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내 친구라> 하신 이 약속을 우리에게 이루어 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님 잘 섬기되 예수님을 나의 친구로 모시고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면서 살아가면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어마어마한 복을 계속해서 내려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 믿음을 가지고 날마다 새롭게 승리하시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다
나균용 목사님
예레미야 2장 10절-13절
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바벨론에서 70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해서 너희로 다시 여기에 돌아오게 해 주겠다 이렇게 약속을 하십니다. 그러니까는 70년 동안은 안 된다는 거죠. 지금 이것은 유대 나라의 멸망을 예레미야가 선포하고 있는데 거기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유대 나라가 멸망을 당해 가지고 바벨론에 다 포로로 잡혀가고 이렇게 되겠지만 70년 후에 내가 너희를 다시 돌아오게 해주겠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너희에게 재앙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이것이 불행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이것이 너희에게 평안이 되고 이것이 너희의 장래에 희망을 주려고 하는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거는 오늘 본문 말씀에서 <이것은 너희에게 재앙이 아니라 이게 평안이다> 그러니까 우리 생각하고는 정반대예요. 이게 어째서 평안입니까? 뭐가 평안합니까? 다 슬퍼하고 다 분노하고 다 낙심하는데, 그런데 하나님은 이게 평안이다. 왜 이걸 평안이라고 하시는가 그리고 그다음에 뭐라고 그래요? <이것이 너희 장래에 희망을 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서 70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한 다음에 드디어 거기에서 회복시켜 주시겠다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잖아요. 그러니까는 역사를 길게 봐야지 당장 내 눈앞에 현실적인 어려움만 보고 이렇게 하면은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말씀들을 통해서 오늘 이 평안이라고 하는 말씀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생각을 해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선 우리가 인사할 때도 저 유대인들은 샬롬, 샬롬 이렇게 인사를 합니다. 꼭 두 번씩 한다고 그래요. 그래서 샬롬이라는 말은 평강 평강이라는 말인데 평안할지어다 평안할지어다 우리 말로는 그렇게 번역을 하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다음에 벌벌 떨고 있는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민수기 6장에 제사장들의 축복 해주는 그 기도를 보면 처음에 그렇게 나오죠.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우리에게 들어서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호와는 그의 얼굴 빛을 우리에게 비추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제사장의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제사장은 두 손을 들고 이렇게 축복하면 그다음에 약속하시기를 <내가 그 축복한 것을 이루어 준다> 하고 약속하셨어요.
오늘 본문에서도 보면 이것이 지금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나라가 망한다는 얘기예요. 그래서 예레미야 9장은 예레미야의 그 눈물의 기도가 거기에 있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이게 물통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돼서 밤새 자꾸 내가 내 나라를 위해서 울고 싶다. 예레미야가 이런 말씀을 받고도 왜 그런 소리를 할까. 근데 나라를 위한 이 안타까운 마음에 그는 이렇게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라가 망한다는데 이것보다 더 큰 비극이 어디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이 평강이라고 하는 거는 의인에게만 있는 거예요. 평강이라고 하는 거는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만 있는 거예요. 내가 세상적으로는 아무리 의인이라고 할지라도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이 평강이 있을 수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참된 평강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아무에게나 평강이 주어지는 게 아니고 의인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다.
예수님도 평강을 말씀하셨어요.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끼치노니 곧 내가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그러니까 어떻게 하라고요?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이게 요한복음 14장 27절 말씀입니다. 이렇게 평강을 우리에게 내려주셨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제자들이 얼마나 두려워서 떨고 있었겠습니까?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하는 소문을 들었어도 그것도 믿지 못하는 소리고 저 사람들이 얼마나 이게 정신이 혼미해졌으면 죽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그런 거 믿고 그런 소리를 가르치겠느냐 오히려 더 걱정하죠. 저 사람들 뭔가 정신이 좀 이상해졌다 해가면서 그러니까는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만 해도 슬픈 일인데 저 사람들 정신까지도 혼미해지고 이상하게 변했으니까 얼마나 더 큰 슬픔이겠어요. 이러한 속에 있는데 예수님이 나타나셔 가지고 첫마디가 그거죠.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평강 주님이 주시는 평강 이거 얼마나 감사한 거예요.
사도 바울도 똑같이 말합니다. 빌립보서 4장 4절 말씀 보면 <내가 너희에게 다시 말하노니 항상 기뻐하라> 기뻐하라라고 말씀하시죠.아니 자기는 지금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감옥 바깥에 있는 빌립보의 성도들에게 감사하라고 그래요. 기뻐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어떤 불행한 일이 생겼어도 절대로 낙심하지 말고 불평하지 말고 원망하지 말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자꾸 감사하고 기뻐하는 사람이 되자. 또 우리가 너무나도 잘하는 말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그다음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바울이 평안하고 뭐 행복하게 이 세상에 물질을 다 풍성하게 누리고 살면서 근심 걱정이 없이 어려운 일 하나도 없이 이렇게 살면서 한 소리가 아닙니다. 바울은 이 데살로니가전서 후서 그다음에 디모데전서 후서 디모데후서가 제일 마지막 책이라고 얘기를 하죠. 그러니까 나이가 많아지는 그때 데살로니가전서,후서는 초기 서신이라고도 해요. 바울이 제일 처음 쓴 거다. 그러니까 아직은 좀 젊었을 때 그래도 쓴 책이라는 얘기겠죠. 그렇긴 한데, 바울은 젊었을 때나 늙었을 때나 항상 하는 말씀이 많은 고난을 당했어요. 젊어서는 고난을 더 많이 당했겠죠. 이렇게 고난을 당하면서도 항상 기뻐해라 말씀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다고 책망하신 말씀들이 있죠. 마태복음에만 다섯 번이나 나타나는데, 첫째가 염려하는 걸 가지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 마실까, 무엇 입을까 염려하지 마라 하고 책망하셨어요. 둘째는 무서워하지 마.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죠. 믿음이란 뭐냐 무서워하지 않는 거다.무슨 일을 만나도 무서워하지 않는 거다. 셋째는 의심하지 않는 것. 넷째 깨닫지 못하는 것은 믿음 없는 거야. 하나님 말씀을 깨닫는 것. 다섯째는 능력으로 병을 고쳐내는 것. 이것이 믿음이라.
자 그러면 마지막으로 이것이 누구에게나 다 이렇게 되겠는가 하는 겁니다. 문제는 누구에게나 이게 희망이 됩니까? 누구에게나 평안이 됩니까? 안 돼요. 예수님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도 평강이 없어요. 근데 어떻게 평강하라고 그래요? 그건 그냥 성경에 써 있는 거고 실제로는 그렇지가 못하죠. 뭐 그렇게 할 겁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에 있는 말씀은 그 비결을 우리에게 보여주잖아요. 뭐라고 했습니까? 12절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오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오 나를 만나리라> 그러니까 어디까지 가야 된다는 거예요. 우리가 부르짖어서 하나님께 내 기도가 응답받는 지경에 나아가야 되고 한 걸음 더 나가서 우리가 주님을 찾고 찾고 또 찾아서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에 나아가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고난 이건 슬픈 일이고 낙심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을 빌어주십니다. 주님이 <있을지어다> 하면 있는 거예요. 내 병에 귀신에게 <귀신아 떠나가라> 명령하시면 떠나가는 거고 <이 질병아 물러가라> 하면 질병은 쫓겨나는 거고 마찬가지로 <평강이 있어라> 명령하시면 평강이 내 마음에 찾아와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거예요. 마음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는 이 근심 걱정,염려,두려움 이런 것들이 내 마음속에 들어올 수가 없는 거예요. 평강역이 딱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어떤 놈이 들어오겠습니까? 이 평강이 어디서 오느냐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죽어도 다시 살아난다. 너희가 죽였지만 다시 살아나셨다. 이것이 부활의 영광입니다.
이것도 고난의 지금 속에 들어가는 거죠. 그러나 우리에게는 부활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 우리 모든 사람에게 승리를 주시고 소망을 주십니다. 절대로 낙심하지 마라. 그래서 그 증거로 뭘 보내주셨느냐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셨다. 그러므로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자기의 생각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부활의 생명을 가지고 역사해 나가는 사람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 속에 이 놀라운 은혜가 충만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너희는 나의 친구라 (2)
나균용 목사님
요한복음 15장 13절-15절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오늘 요한복음 15장 13절, 14절, 15절 말씀을 보면 친구 사이에는 이러이러한 일이 반드시 이루어져야지만 된다 하는 거를 설명하죠. 그런데 13절에서는 사람이 친구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 그래서 예수님과 우리가 친구가 되려면 목숨도 줄 수 있는 관계가 돼야 한다. 둘째는 14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나의 친구다. 말을 잘 들어줘야 된다. 셋째는 15절 내가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고 친구라 하였다. 왜 그렇게 하셨다고 그랬어요? <내가 아버지께 들은 것을 너희에게 다 알게 해줬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니까 친구 사이에는 비밀이 없어야 한다 하는 거죠. 그래서 친구 사이에는 이 세 가지 목숨도 주어야 된다. 말을 잘 들어줘야 된다. 그리고 비밀이 없어야 된다 이렇게 하는데, 이것이 우리 인간 상식으로 볼 때는 예수님과 우리가 친구 되는 데 있어서 순서가 잘못되지 않았느냐 하는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나를 친구 삼으시는 이 놀랍고 큰 사랑의 역사 가운데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예수님과 우리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느냐 할 때에 이 말씀이 예수님과 우리가 서로 친구가 되는 이 관계가 우리는 그냥 사람과 사람 사이에 친구 되는 관계로만 생각을 하니까, 그런데 주님과 우리가 친구가 되는 관계는 이게 조금 달라진다 하는 것을 말씀했어요. 사람끼리 친구를 삼으려면 첫째가 14절입니다. 말을 잘 들어줘야 돼요.그러면 좋은 친구가 됩니다. 그다음에는 비밀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돼요. 아무에게도 심지어 부모에게도 말할 수 없고 내 아내나 남편이나 자식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이런 비밀한 일들도 친구에게는 가서 다 털어놓고 상담을 받을 수 있고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이것이 친구 관계 아닙니까? 그래서 이 세상에서 너와 내가 서로 사귀고 친구 되는 거는 14절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그다음에 15절 마지막으로 정말 좋은 친구가 되면 그때는 13절로 가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좋은 친구라면 이 친구를 위해서는 내 목숨도 버릴 수가 있다. 이제 이런 단계에 나아가는 거죠. 그러면은 예수님이 그다음 단계는 예수님이 나를 친구 삼아주시는 방법이 뭐냐, 주님이 나를 친구 삼으시는 방법은 첫째가 뭐냐 23절이에요. 그래서 이 성경 순서대로가 오히려 예수님이 나를 친구로 삼아주시는 방법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3절 먼저 목숨을 주셨어요. 그래서 우리가 나중에 예수님을 믿고 깨달아진 게 가장 크게 깨달아지는 것이 주님을 위해서 나를 위해 주님이 나를 위해서 목숨을 주셨다. 이 사랑에 감격하여 주님을 섬기면서 사는 생활이 바로 우리의 신앙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아름다운 역사가 이렇게 일어나야지만 한다. 우리가 예수님 믿으면서 제일 먼저 깨달음입니다. 이 깨달음이 와야 하겠다. 그래서 그다음에 이 깨달음을 가지게 되면은 그다음부터는 내가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예수님은 나에게 순종하라는 말씀을 먼저 하시는 것이 아니라 <너희는 나에게 기도해라 나에게 무엇이든지 구해라. 그리하면 내가 먼저 다 너희에게 이루어 준다> 그래서 예수님은 먼저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그다음에는 우리 기도를 다 다 들으시고 응답하시고 우리 소원을 이루어 주시고 심지어는 내가 소원하지 않은 것까지도 먼저 다 이루어 주셔서 주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나타내 주신다. 이게 둘째 단계예요. 그리고 셋째 단계, 주님과의 관계가 깊어지게 되면 그다음에는 하늘의 비밀을 우리에게 주시더라 하는 거죠. 그래서 하늘의 비밀이 많이 있는데 바울 서신에는 이 비밀이라고 하는 말이 많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비밀이라는 말을 딱 한 번밖에 안 쓰셨어요.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지만 너희에게는 허락되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모든 것이 비밀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비밀이라는 단어는 한 번 나왔지만, 예수님의 말씀 하나하나가 저 전부 비밀이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고 이 비밀의 말씀을 깊이 공부하는 사람이 돼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은 우리에게 비밀을 주신 게 마지막 단계 정말 주님과 내가 좋은 친구와의 관계가 되면 주님께서는 나에게 이 비밀의 말씀, 하늘나라의 비밀, 앞으로 이루어지게 될 역사상에 나타나 있는 모든 감추어진 비밀 이런 것들을 전부 가르쳐 주시는 거죠.
사도 바울은 비밀이라는 단어를 헬라말로는 21번 썼는데 우리 말로는 이제 번역을 하다 보니까 대명사로 된 거까지도 이렇게 번역하니까 22번 또는 23번 정도 이렇게 나타납니다. 그런데 바울이 말하는 거에는 그 말씀 속에는 모든 게 다 비밀이에요. 그래서 결혼에도 비밀이 있고, 믿음에도 비밀이 있고 그렇잖아요.
복음의 비밀이라는 말도 나오고 그리스도의 비밀을 전하라고 말씀하기도 하고 경건의 비밀이 있다고도 말씀하시고 그러니까는 단어 하나하나에도 그냥 건성으로 넘어갈 것이 아니고 다 깊은 뜻이 들어 있다. 이건 비밀은 아무에게나 주시는 게 아니고 예수님과의 관계가 아주 가까운 친구 관계가 되면 하늘나라의 비밀을 이렇게 주신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결론적으로는 하나님의 비밀이 있는데 그 하나님의 비밀은 바로 그리스도다. 그래서 인류 최대의 비밀이 바로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의 비밀을 안다든지 다른 나라의 비밀을 캐낸다든지 물론 이것도 대단한 일이긴 하지만 그러나 하늘나라의 비밀을 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복인지를 깨닫고요. 이런 비밀은 아무에게나 주시는 것이 아니고 정말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부어주시고 깨닫게 해 주시는 특별한 은혜라고 하는 것을 알아야지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 하나님의 비밀의 사람들이 돼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면 우리 잘 아는 예레미야 33장 3절처럼 <너희는 내게 부르리라 그러면 내가 너희에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너희에게 보여주리라> 약속을 하셨는데 이렇게 우리를 비밀의 사람으로 만드십니다.
예수님은 다른 말로 바꿔 말하셔서 너희는 나의 친구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거죠. 그래서 우리를 친구 삼으시고 하늘나라의 비밀을 내려주시다. 그러면 이번에는 반대로 우리가 예수님을 친구 삼는 순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것이 중요하죠. 이 순서는 거꾸로 갑니다. 15절이 제일 먼저 해야 되는 거고 그다음에 14절 그다음에 13절 이렇게 나갑니다. 15절은 뭡니까? 비밀이잖아요. 비밀, 사람들마다 다 비밀이 있어요. 비밀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나를 만나시려면 어떤 역사를 먼저 요구하시느냐 너 나에게 와서 너희의 비밀을 말해라 말씀하세요. 계명부터 주셔서 이것을 행해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게 아니고 그것을 행하라고 하면 우리는 행하지 못해요.
구약에 우리가 보통 4천 년이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구약의 아브라함 이후 한 2천년 동안 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겠느라고 애를 쓰며 살았지만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오신 거잖아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있는 힘을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찾아오셨어요. 구약 시대보다는 예수님의 설명이 훨씬 더 어려운데도 그러나 신약에 와서 예수님이 율법을 아주 쉽게, 안 지켜도 천국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다. 이러는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면서 우리를 속입니다. 여기에 속아 넘어가면 큰일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신 뜻은 계명들을 지켜라. 그리하면 너희가 네가 영생에 들어가리라> 부자 청년에게 말씀하셨던 이 말씀 그대로 하나님 말씀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5절에도 <너희가 나의 계명을 지키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약속하시죠.
21절에도 똑같은 말씀이에요. 이렇게 순서를 뒤집어 <너희가 나의 계명을 지키면 나의 지키는 자라야 나의 친구가 나의 이제 친구가 된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지킨다고 하는 게 얼마나 귀한 겁니까? 오늘 본문에 있는 요한복음 15장 7절에도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어진다> 하고 약속을 하셨어요. 그러니까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 속에 충만해 예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가득하게 있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이런 사람의 기도를 다 들어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득하게 채워야 됩니다. 말씀을 채울 뿐 아니라 말씀의 깊은 의미를 깨닫고 그 속에 있는 비밀을 알아서 하나님 앞에 우리가 고백하고 주님을 섬기는 이런 사람들이 다 되어야지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예수님을 친구로 삼는 첫 단계에는 내가 무엇을 행해야 되는 거 하나도 없어요.우리는 선을 행할 수 있는 힘도 없고,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 나갈 수 있는 힘도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에요. 먼저 뭘 해야 되느냐 주님 앞에 죄를 고백해야 된다 이거죠. 내 속에 있는 비밀이라고 하는 것은 곧 나의 죄입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이거는 꺼내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이런 비밀들이 사람마다 다 있는데 이 비밀의 본질은 뭐냐 결국은 죄 아닙니까? 하나님의 이 비밀의 본질은 사람의 비밀의 본질은 죄 이렇게 서로 상극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비밀을 주신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의를 주신다고 하는 말이죠. 하나님의 지혜를 주신다는 말씀이죠. 하늘나라에 온갖 좋은 것 아름다운 것을 주시고 지혜와 지식을 주셔서 성경 말씀 속에 단어 하나하나 속에 들어 있는 엄청난 보물을 우리에게 내려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큰 은혜를 받아야지 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내 죄를 자백하여 하나님 앞에 나의 이 더러운 죄를 다 드리게 되면 주님은 내 죄를 이 더러운 것을 받으시고 나에게 영수증을 하나 주시는데 내가 너희의 죄를 다 받았다.
그 영수증이 바로 죄를 사하신다는 것이죠. 죄를 사하십니다. 사하는 데서 끝나지 아니하고 사했다고 하는 그 증거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성령이시다 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성령을 받아야 비로소 죄사함을 받은 것입니다.
15절에서 그게 먼저 시작되는 거고 그다음 단계가 14절 주님의 명령, 주님의 말씀을 준행해 나갈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 말씀을 열심히 잘 이렇게 순종하며 따라가다 보면 결국 은혜에 감격하며 살고 이 감격이 겨워서 가슴이 뜨거워지고 늘 울어도 주님 앞에 이 은혜를 다 갚을 수 없다고 찬송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죠. 그러다가 나중에 어디까지 갑니까? 주님을 위해서 내 목숨도 드리겠습니다. 해서 내 목숨까지 바치는 이런 순교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론 순교자는 실제로 이렇게 순교를 당한 죽은 순교자도 있지만 살아있는 순교자들도 또 많이 있죠. 다 죽여버리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순교의 재물로 이렇게 목숨을 바치게도 하시지만 어떤 사람은 죽음을 맛보지 죽지 않게 하시고 생명을 지켜주시고 그를 통해서 놀라운 일을 이루어 나가시다가 명대로 오래 살다가 이제 평안하게 하나님께서 데려가시는 경우도 있고 그러니까 그걸 가지고 우리가 이렇다 저렇다 얘기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예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은 이 아름답고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다른 건 다 잊어버려도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고 하는,그래서 나를 살려내셨다고 하는 이 놀라운 사실은 절대로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이 크신 은총을 깨닫고 감사하고 주님 앞에 우리들 자신을 들여서 정말 좋은 친구로서 우리의 일생을 살아가는 거룩한 역사가 일어나야지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은혜를 여러분들 모두에게 충만하게 내려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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