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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샘통신 5/190909]방외지사(方外之士)의 새우 욕심
방외지사(方外之士)를 아시는지요? ‘어떤 조직에도 얽매이지 않고 산 속에서 은둔하며 사는 도인(道人)’을 일컫는 말이지요. 명리학자(命理學者) 조용헌씨가 같은 제목으로 책을 여러 권 냈지요. 그 주인공 중의 한 명을 십 수년 전부터 친히 알고 지냅니다. 알고 지낸다고 하지만, 1년에 열 번쯤 안부전화를 주고 받지요. 장성 축령산 속을 가면 그분이 있지요. 1954년생. 저는 ‘청담(호)형님’이라고 하고, 그분은 저를 꼭 ‘우천’이라고 부르며 ‘삶의 도반(道伴)’이라고 생각합니다. 엊그제 제 고향집을 생각지 않게 다녀갔지요. 마당까지 트럭이 들어오는데 반가운 얼굴이었습니다. 선물로 가져온 ‘팔목주’ 페트병 2개. ‘팔목주(八木酒)’ 한번 검색해 보세요. 여덟 가지 나무로만 만든 참으로 희한한 술입니다. 장성의 전통주로 맥(脈)이 끊긴 것을 축령산 도사가 복원해냈습니다. 첫잔을 마시면 언뜻 ‘낸내(그으름 냄새)’가 나는 듯한데, 그 맛을 표현하기 어렵지만 잊을 수 없게 만듭니다. 조상들의 지혜가 몽땅 담긴 우리의 술. 한산 소곡주나 전주 문배주, 안동 소주, 경주 법주, 진도 홍주 등은 언제나 맛볼 수 있지만, 팔목주만큼은 오직 청담형을 거치지 않으면 맛볼 수 없는 대한민국의 가장 희귀한 술입니다.
팔목주를 보자마자 형님에게 무엇이든 주고 싶었습니다. 마침 토방에 최근 제가 직접 철사로 만든 큰 채반에 민물새우 3kg을 말리고 있었습니다. 오늘 새벽 잡아왔다고 자랑을 하자마자 형님은 당신 부부가 가장 좋아한 것이라며 ‘겁치(무한한 욕심)’가 났습니다.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싹 쓸어갔습니다. 하하. 줄 것이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평소 아무것도 거칠 것없이 탈속(脫俗)한 형이 새우에 깜빡 할 줄은 몰랐습니다. 대도시의 삶에 찌든 가련한 ‘중생(衆生)’들에게 힐링 장소를 제공해주겠다는 뜻으로 ‘세심원(洗心院)’이라는 흙집을 수 년에 걸쳐 혼자 짓더니 열쇠 100개를 만들어 지인들에게 무료로 제공해 화제가 된 분입니다. 2008년인가 ‘신동아’ 잡지에 대서특필된 적도 있었지요. 공교롭게도 그달 신동아에 제가 쓴 모교의 이야기도 10여페이지 같이 실린 인연도 있습니다. 그러더니 몇 년 후에는 순전히 편백나무로만 귀틀집을 여섯 채 지어 ‘휴림(休林)’이라는 기가 막힌 휴식공간을 만들었습니다. 훙미가 있는 친구들은 ‘축령산 휴림’으로 검색해 보시지요. 최근엔 기인(奇人)답게 더욱 ‘엉뚱한 큰 일’을 벌였더군요. 이른바 편백나무로만 만든 3층짜리 거창한 ‘훈제실(燻製室)’을 3채나 축령산 정상 근처에 짓고 있습니다. 곶감, 고기 생선 등을 숙성시킬 거랍니다. 실제로 가보고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 불쑥불쑥 내뱉는 말들이 모두 귀 담고 듣고 새겨야 할 ‘어록(語錄)’입니다.
아무튼, 새우를 싹 걷어가더니 마음이 심히 흡족했나봅니다. 무 넣고 잘 끓여먹었는데, 아까워 냉동실에 남겨놓았다는 전화를 두 번이나 했으니까요. 그러더니 겨울 될 때까지 남들이 잡아가기 전에 날마다 잡아 냉동실에 넣어두라는 것입니다. 또 한번 훑으러 오겠다고 합니다. 흐흐. 스님이 고기맛을 알면 빈대도 남아나지 않는다는 격입니다. 저는 세상에 없는 ‘팔목주’만 가져다준다면, 얼마든지 제공할 용의가 있습니다만, 슬그머니 또다른 욕심이 생겨 슬그머니 말했습니다. “청담형, 알았는데, 우리집 ‘애일당’까지 완공되면 초대할 터이니, 그때 작더라도 ‘달항아리’ 하나 선물로 주셔잉” 했지요. ‘달항아리’ 도자기를 보신 적 있으신지요? 아아-, 풍만한 중년여인의 엉덩이를 보는 기분이 드는, 육감적이기까지 한, 선조들의 슬기가 집약된, 희고 둥근 도자기를 보시면 기분이 차악 가라앉고 그분처럼 방외지사가 될까요? 그 기대에 가슴이 부풉니다. 길게 쓰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그 형이 보낸 ‘시같지 않은 시’ 전문을 쓴 후, 2008년인가 어느 새벽에 그 형에게 써보낸 편지 한 통 그리고 2016년에 그가아니면 벌일 수 없는 다시 없는 이벤트 ‘세심비’ 기획전과 관련한 글을 실으며 줄이겠습니다. 청심청안(淸心淸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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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뛰어놀던
임실 오수 고향으로 귀향하신 도반에게
전화를 하였더니
민물새우를 많이 잡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팔목주 들처메고 임실행.
민물새우 3키로 보시받아
적당히 포장, 냉동실에 보관중.
오늘은 국물을 무엇으로 끓일까?
영감이 떠오른다.
묵은지 새우탕
멸치 육수 조금
묵은지 양파 새우 넣고 끓은 다움
마늘 청양고추 파
간은 간장으로
와 맛나다. 흐흐
주변정리가 즐거운 날이 되겠다.
노년은 요리를 할 줄 알아야 아름답다.
요라는 나만의 레스피가 있고
영감은 어머니를 생각하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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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잎 편지 75신/20081110]귀틀집 여섯 채를 장만한 방외지사여
먼저 초대해준 장성 축령산 휴림(休林) 개원식에 응하지 못해 송구합니다. 얼마 전 청담선생의 초대장을 받고 가슴이 설레기까지 했는데요. 갑작스레 몇 가지 일이 겹쳤습니다.
선생(앞으로 형이라고 부르겠습니다)의 초대장은 읽을수록 기분이 좋습니다. 무엇보다 형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대로 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축령산 가을숲 이야기’이라는 제목의 초대장을 옮겨봅니다.
휴림 개원식에 초대합니다.
늘 푸르기만 하던 잎은 어느덧 색을 입어
늦가을 한 잎 떨어지는 나뭇잎에 소식을 전합니다.
그동안 삶을 통하여 느낀 바 있어 평소 염원했던 지식인 쉼터
휴림을 축령산 기슭 선비가 숨어사는 고을 은사골 일번지에
축령산에 있는 편백나무 삼나무 황토와 어우러진 구들 귀틀집
여섯 동은 꽃피는 봄날 착공하여 단풍 절정기에
개원하게 되었습니다.
휴림의 첫 밤을 당신에게 드립니다
행복한 집 짓기
집짓는 동안
힘이 들어도 행복
어려움이 있어도 행복
마음이 아파도 행복
집짓는 동안은
나의 영혼을 만들고 있어 행복하였습니다.
이제는 보고만 있어도 행복합니다.
당신은 아예 초대장에 어눌한 시까지 한 편 써보냈더군요.
열 달 가까이 집짓는 동안 행복해했을 형의 천진한 모습이 떠오릅니다. 금방이라도 달려가 축하해드릴 일인데, 귀틀집 뜨근뜨근한 황토방에서 허리를 지져야 할 판인데,
편백나무 숲에서 피톤치드를 맘껏 들이마시며 삼림욕을 실컷 하여야 할 판인데, 무엇보다 마음에 맞는 친구들 만나 밤새 형이 빚어놓은 ‘팔목주’(八木酒·여덟 가지 나무로 만든 술)를 마시며 고담준론에 날새는 줄 몰라야 할 터인데, 안타까웠습니다.
형은 어쩌면 그런 대견한 생각을 하고, 그것도 곧바로 실천에 옮길 수 있을까요. 스님들처럼 마음을 비우니 세상사는 게 별 것 아니던가요. 그래서 조용헌님이 형을 ‘방외지사’(方外之士)라고 하였겠지요. 그 유명한 황토방 ‘세심원’(洗心院)을 10년에 걸쳐 짓고
집열쇠를 100여개 만들어 지인들에게 나눠줘 세간의 화제를 낳았던 게 벌써 몇 년 되었지요. 그동안 다녀간 인사들이 1만명을 웃돈다고 했던가요.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거기다가 숲속 개인미술관을 지어놓고 달덩이같은 백자항아리만 눈이 빠지게 쳐다보고 계신다지요.
그러면서 귀틀집 여섯 채라고라고라?
그것도 순전히 혼자 지었다고라?
집들이(개원)에 불러주기까지 했는데,
도시인들의 습성은 무엇 하나 훌훌 털어내지 못하고 미적미적하다, 결국 죽을 때에 되어서야 “우물쭈물하다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유언이나 남기고 죽기 십상이지요.
형이 쉰 인가요? 많지도 않은 나이에 탄탄대로인 공무원 생활을 때려치우고, 축령산 자락에서 자유자적하는 형의 삶이야말로 신선이 따로 없게 보입디다.
우리나라 으뜸 독림가(篤林家) 임종국선생을 국가유공자로 해달라는 청원운동을 벌이는 형의 열정 앞에 우리는 늘 부끄럽더이다.
임선생이 조성했다는 257ha의 편백나무숲은 얼마나 장관인가요.
이런 숲 하나가 없었다면 우리의 자연은 얼마나 가난했을까요.
지난 2005년 그분은 돌아가신지 18년만에
자신이 평생 가꿨던 숲의 13년산 느티나무 뿌리 곁에 묻혔다지요.
이 땅에 춘원 임종국선생이 계셨기 때문에 오늘날 형님이 축령산에 있게 된 것이라고 생각해봅니다. 아마도 맞는 말이겠지요.
‘평소 염원했던 지식인 쉼터’를 공짜로 빌려준다고요.
그게 하고 싶었던 일이군요. 좋은 일입니다.
형이 아니면 그 누가 그런 ‘기특한’ 생각을 했겠습니까.
올해가 가기 전에 식구와 불쑥 찾아가 ‘진짜 쉰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싶습니다. 이름도 희한하지요. 고창(高敞)군 고수(古水)면 은사((隱士)리 1번지. 옛물터에 선비들이 숨어 살던 으뜸고을이었을까요. 그곳에서 산림처사(山林處士)처럼 사시는 형이 부럽습니다. 어쩌다 한양땅 발길을 내딛곤 공기가 나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드셨지요. 그렇겠지요. 예전에 신석정시인도 서울에 오면 “공기가 보인다”며 서둘러 하향(下鄕)을 했다지요. 형님에겐 ‘청심청락(淸心淸樂)하시라’는 덕담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날마다 청심하고 날마다 청락인 것을. 때로는 약까지 오릅디다.
어차피 속물은 속물대로 사는 것이고,
형같이 '사는 것같이 사는' 사람도 있어야겠지요.
형은 아마도 전생에 적선(積善)을 많이 한 듯 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일’ 많이 하소서.
형님이 끓여주던 무공해 된장찌개 맛이 이 신새벽, 사무칩니다. 愚弟 愚泉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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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너더리통신 4/161209]‘세심(洗心)비’를 아시나요?
세심비(洗心)비라니? ‘마음을 씻는 비’는 대체 무엇을 말함인가? 최근 종로구 효자동(청와대 바로 앞 200m 지점) ‘우물갤러리’에서 이색전시회가 있었다(11.11.∼12.1.). 이름하여 ‘세심비展’. 정확하게 11월 11일 오전 11시 11분 테이프커팅을 했다. 전시회를 연 분은 기획하여 준비하여 개막하기까지 3년이 넘게 걸렸다한다. 어느 아줌마가 ‘대통령 위의 대통령’이 되어 국정을 농단하는, 말도 안되는 사건이 터질 줄 그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전대미문의 사건과 타이밍이 당초 의도와 희한하게도 맞아떨어졌는데, 청와대 바로 코 앞에서 위정자들과 정치권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의미로 빗자루로 마당을 쓰는 퍼포먼스를 하자는 것. 그의 오랜 지론(持論)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빗자루로 쓸어놓은 마당의 모습’이라는 것. 그가 고백하기를 “3년 전 어느날 법정스님 빗자루를 손에 잡는 순간 마음에 만 볼트의 전류가 흘렀다”는 것이다. 그때 빗자루야말로 단순히 청소도구가 아닌 마음을 맑게 해주는 청량제라는 것을 깨달아 이같은 기획을 했다. 오죽헌, 도산서원, 병산서원, 남명기념관, 소쇄원, 현충사, 다산초당, 제주 추사 유배지, 필암서원, 등 전국의 유명 서원이나 사당 등을 찾아다니며 대나무 가지를 조금씩 ‘구걸’하여 빗자루를 만들기 시작한 게, 바로 ‘세심비’이다.
정말 그럴 듯하지 않은가. 멋지다. 역시 그답다. 그에 대해서 소개를 하자. 청담 변동해. 1954년생. 장성 축령산 귀틀집 주인이다. 일찍이 군청 공무원으로 제법 오랫동안 일하다 불쑥 명퇴를 하고 10년에 걸쳐 황토집을 혼자 엄청나게 공들여 지은 게 축령산 세심원(洗心院)이다. 열쇠를 100개 만들어 가까운 지인들에게 공짜로 나눠 주었다던가. 도회지 생활에 지친 영혼들이 이곳에서 하루라도 묵으며 ‘마음을 씻고’ 힐링을 하라는 ‘기특한 바람’을 담았다하여 화제가 되었다. 우리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 조용헌씨가 지은 ‘방외지사(方外之士)’라는 책에도 당당히 오른, 기인(奇人)이라면 기인일 게다. 방외지사는 또 무엇인가? 이 세상의 방외(方外)로 나간 사람이라니?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사람일 수도 있고, 죽기 전에 살고 싶은 대로 한번 살아보겠다는 신념을 실행에 옮긴 사람일 수도 있다. 요즘 방송을 타는 ‘자연인(自然人)’도 그렇다할 것이다. 더 나아가, 한 세상을 먹고 사는 문제만 고민하다 죽고 말 것인가? 심각하게 끙끙대다 ‘과감히’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고 ‘홀연히’ 떨쳐일어난 사람이랄 수 있다.
그는 확실히 방외지사가 맞는 것같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세심원 근처에 편백나무로 귀틀집을 다섯 채를 지어 힐링센터도 만들었다. 편백나무, 삼나무의 피톤치드가 몸에 좋다 하지 않던가. 소문이 난 바람에 귀틀집 관리만 해도 먹고사는 문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모양이다. 언제 어디서나 당신의 ‘개똥철학’을 마음놓고 펼칠 수 있으니, 얼마나 바라던 삶일까? 그야말로 100% 유기농 음식에 ‘무공해(無公害) 삶’을 즐기고 있다. 부러울손! 1년에 잘하면 한두 번 만날 때마다 “어이, 우천. 머뎌 시방? 빨리 대처생활 청산허고 내려오랑깨” “집 지을 터는 내가 그냥 주께”. 솔직히 그게 정답인 줄 뻔히 아는 데도, 나는 왜 우물쭈물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이 ‘소돔과 고모라’의 도시에서 갈팡질팡, 허덕허덕, 기진맥진하는 것일까? 참으로 못난 놈이다.
아무튼, ‘세심비전’ 아이디어는 또 때가 때인지라 기가 막혔다. 유일한 흠은 전시기간 중 주말 대규모 시위로 갤러리 앞이 ‘차벽(車壁)’으로 막혀 개미새끼 한 마디 드나들지 못하게 봉쇄가 됐던 것. 한 불목하니(절에서 밥 짓고 땔나무하고 물긷는 일을 맡아서 하는 사람)가 선지식(善知識. 고명한 스님)께 불법을 가르쳐달라고 하자 스님이 “법당 앞 마당이나 쓸어라”고 했다던가. 3년여 동안 열심히 마당만 쓸었는데도, 어느 참선스님이나 수행스님들보다 불법에 대한 내공이 훨씬 웃돌아다던가. 도통(道通)의 길이 이리 쉬운 것을. 도시는 대부분 성냥곽같은 아파트 살림인지라 빗자루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렇더라도 현관 입구에 빗자루 하나 걸어놓고 보라는 게 청담의 주장이다.
“글먼 얼매나 이쁘것소. 마음이라도 내 발 딛고 서있는 곳부터 깨끗이 치우고 살면 마음이 맑아지지 않겠소. 맑게 사는 게 행복이지라우” 그렇지만, 나는 쇄소의 의미를 더욱 확장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 빗자루로 세상의 온갖 부정부패, 비리, 불의, 위악, 위선, 더러움 등을 싸아악 쓸어버렸으면 좋겠다"는 것. 머리 정신이 다 개운하게 , 그야말로 '깨깟이' 말이다.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깨닫도록, 그리고 정의가 끝끝내 승리한다는 것을 이 빗자루가 보여줄 수는 없는 것일까. 이것은 개인적인 쇄소가 아닌 정치학적이고 사회학적인 쇄소에 해당될 듯. 아산 현충사의 대나무로 만든 빗자루여! 쓸어라. 이 껄쩍지근한 세상의 '먼지란 먼지'를 몽땅 쓸어없애라.
지금으로치면 초중등 국정교과서에 해당되는『소학(小學)』의 핵심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쇄소응대진퇴(灑掃應對進退)’일 것이다. 소싯적부터 물 뿌리고 청소하는 ‘소쇄’를 통해 자신의 주변을 관리하는 법을 알아야 하고, 어른을 맞이하고 접대하는 ‘응대’를 통해 인간관계를 깨우쳐가며, 나아가고 물러나는 상황을 아는 ‘진퇴’를 통해 현실 파악과 상황인식을 올바로 하는 것이야말로 ‘한 삶’을 제대로 사는 최상의 지혜가 아닐까. 소학은 그것을 어릴 적부터 몸에 배도록 가르치는 주옥같은 경전(經典)일 것이다. 셋 중에 가장 기본은 ‘청소’. 그런데, 우리 사랑스런 자녀들, 어디 제 방 하나도 제대로 건사하던가. 나약하게 키우는 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더 나아가, 청소는 실제로 쓸고 닦고 비질하는 것이지만, ‘마음의 때’를 닦아내는 것도 청소(淸掃)일 터. 자기 수양의 도(道)는 ‘마음의 청소’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임을. 방외지사는 말한다. “빗자루 한 개를 바라보더라도 이 정도 마음을 품고 바라보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마음을 닦는 행(行)의 시작이 빗자루이다”. 옳은 말. 탄핵 어쩌고하는 이 ‘미친 시국’에 어서 빨리 시골에 가 마당깊은 집 마당을 쓸고 싶다.
임실 오수 냉천 고향으로 귀향하신
우천 최영록 도반께서
보내주신 글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