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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7. 30 은퇴 목사의 기쁨
밤이 되어 핸드폰을 열어본다. 아무래도 핸드폰이 나를 한 번도 부르지 않은 것 같다. 내 구식 핸드폰도 별로 볼 일이 없어진 것이다. 목회를 내려놓은 지 4년째다. 교인들과의 전화는 거의 다 끊겼고, 관계를 가졌던 여러 기관과의 빈번한 소통도 끊겨졌다. 잘 된 일인데도 때로는 소외된 것 같다. 하지만 현역에서의 내려놓음이요, 해방이요, 자유인이라 하면 좋겠다.
몇 사람과 기도하고 시작했던 개척교회로부터 30년. 한 교회에 매여서 오직 교회만을 위해 전심전력, 십자가의 길, 눈물과 영광의 길을 오지 않았는가. 이제는 주일이라도 후배들을 찾아 개척교회나 농촌 교회도 가고, 일찍 나서서 소록도로 가기도한다. 회중석에 앉아서 교인들과 어울리면 전에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느낌과 감동을 맛본다. 그리고 쌓아두고 읽지 못했던 책들을 꺼내 읽으니 이 기쁨이 크다. 강단에서 내려오니 몰랐던 것들이 많이 보이고, 세상 일도 많이 배워진다.
어쩌다가 걸려오는 전화는 반갑고 고맙다. 며칠 전, 생일 이었다. 캐나다 사는 작은 딸네 손자 녀석이 전화에 대고 생일축가를 불러준다. 작년에 캐나다에서 두 달을 지내면서 아침마다 유치원에 데려다 주었던 녀석이다. 많이 컸다. 아들과 두 딸네 아이들, 여섯 손자 손녀들이 내게는 좋은 친구들이다. 사소한 것으로 고마워하고, 순진무구해서 아직은 속이지 않고, 이중성격쓰지 않으니 나로 하여금 아이 되게 한다. 옆에 사는 큰 딸네 아이들을 거드는 스스로의 책임도 싫지 않다.
장인 생일이라고 큰 사위가 외식을 시켜준다. 음식을 먹는데 핸드폰에 문자가 들어온다. 생일축하 메시지다. “인경입니다 목사님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 가르침 부탁드려용 ㅎㅎㅎ” 1학기에 강의를 나갔던 대학교 학생이다. “고마워. 너희들 때문에 행복했다” 나도 답장을 넣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계속 메시지가 들어온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양수연입니다 목사님 생신을 진심으로 축하드려용 목사님 정말 존경합니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사랑합니다^ㅠ^” 또 “생신 축하드립니다ㅎ 다음 학기에도 좋은 강의 부탁드립니다 ~☆~” 기분 좋은 연락이다. 집에 와보니 다른 학생들과 학과장 교수님 글도 들어와 있다. 학과장님이 시켰는가?
매주 하루씩 나가는 대학에서 <한국 교회의 초기역사>를 강의하면서 친해진 아이들이다. 좋은 강의를 하려고 제법 연구를 해서 교재를 쓰고, 영상자료도 만들어서 현장감을 살렸다. 벚꽃이 만발했던 봄날에는 ‘1백년 역사의 전북금산교회 ‘ㄱ 자 예배당’에 가서 현장학습도 했다. 70객 은퇴목사의 강의가 고루하고 지루하고 답답하지 않도록 노력했었는데 괜찮았던 것 같다. 다큐멘터리 전문사역자들을 길러내는 학과이다. 은퇴하고도 교회 밖에서 이런 청년들을 섬길 수 있으니 큰 기쁨이다.
생일에 장미 한 아름 꽃바구니가 배달되었다. 작년에도 선물을 주셨던 안양 사는 김 집사님이 보냈다. 우리 교회 떠난지가 10년이 넘었다. 내가 전화를 했다. “집사님! 나~, 눈물나오네. 우리는 은퇴했어도 부부가 사니까 좋은데, 집사님은 혼자 살면서 얼마나 고생하셔요? 오늘은 그런 생각에 눈물이 나오네요.” 말 그대로 나는 목이 매였다. 무남독녀 어린 것이 초등학생 때 우리 교회에 와서 신앙생활을 잘했다. 시댁 가족에게 전도해서 시어머니는 우리 교회 집사가 되었다. 남편의 직업상 현장 따라 이사를 다녔지만 동산교회를 잊지 못해했는데 남편이 암으로 갑작스럽게 별세했다. 딸 결혼에는 내가 안양까지 달려가서 주례를 해서 축복했다. 지금은 손녀 둘을 키우며 지낸단다. 교인도 멀리 이사하거나 교회를 바꾸면 관계가 끊어지는 것인데 이렇게 오랫동안 못 잊는 분이 더러 있다. 부족한 목회자였지만 그 무엇인가를 잊을 수 없다는 분들이다.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예수님 말씀이다. 많은 사람을 만나며 지내온 목회 30년. 교인들과 함께 하며 그들을 섬겼던 일들이 큰 보람으로 남는다. 은퇴 후에도 여전히 섬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큰 기쁨이다.
캐나다 동부 관광(천 섬- 넓은 강에 떠 있는 섬들이 1천 여 개라서 천섬이라는데 그 가운데 하나이다-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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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 목사님 생신 여기서 축하드려요~
늘 건강하세요~~
어디십니까?
가족 여행, 아니면 지리산 둘레길. 너무 더워서 아닐테고...
전 과장님, 영전을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