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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고장의 놀이문화
어느 시대이고 그 여건에 맞게 놀이 문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달 밝은 추석 때는 밤에 처녀들은 강강수월래를 했고, 남자들은 씨름을 했다.
설에는 윷놀이, 연등 때는 연날리기, 봄에는 화전놀이,
여름에는 외서리, 놀이가 있었다.
우리 고장은 농촌이고 집성촌이기에 모이기 좋고 해서 놀이 문화가 발달했으리라 생각된다.
다음은 여러 자료에서 놀이마다의 개요를 찾고,
내가 어릴 때에 보고, 듣고 또한 동네동무들과 놀았던 놀이를 적어보았다..
1.줄다리기
어느 해 달구벌 축제 때 대봉교에서의 줄다리기
2.윷놀이
o개요-윷놀이는 직경 1.5㎝ 길이 25cm정도의 사리나무를 반으로 쪼개어 윷을 만든다. 던져서 나타나는 면의 수에 따라 도·개·걸·윷·모로 구분하고 ‘말’이 말판에서 그 숫자만큼 움직인다. 윷가락이 멍석의 범위를 벗어나거나 가운데 그어진 선을 넘지 못하면 ‘낙방’이라고 하여 무효가 되고 순서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다.
보통 윷말은 각 팀이 4개씩을 갖고 상대와 겨루었기 때문에 ‘넉지빼기’, ‘넉동빼기’‘넉동나기’라고도 한다. 참여 인원은 2명, 또는 4명으로 편을 나누어 내기를 걸고 즐겁게 놀기도 한다.
o우리 마을에서는 설을 쇠고 모이면 윷놀이가 시작 된다. 집집마다 또는 동네마다 남녀노소 없이 편을 갈라 윷을 논다. 기역 나는 큰 윷놀이는 내가 어릴 때 강호정에서 인구마을과 아랫귀미 마을의 대항전이였다. 음식을 장만해 놓고 청년 딸래들이 1대1로 대전하여 이기는 편이 계속 상대와 대전하여 승부를 결정하는데 그때 조교의 인동(고 병태)형님이 고향을 방문했다가 연이어 잡아내는 장면을 본 기억이 난다
o또 어느 해인가 인구마을의 산대댁 사랑체에서 추운겨울인데도 음식을 준비해놓고 두 칸 대청에서 우리 인구 청년 딸래들이 모여 윷을 크게 놀랐던 추억이 떠오른다.
삼체계 날 윷놀이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들
윷 판(우리지방과는 명칭이 다르다.)
3.연날리기
o개요-연날리기는 바람이 많이 부는 넓은 곳에서 실시된다. 연날리기에 필요한 도구는 연과 연실, 그리고 실을 감는 얼레이다. 연은 주로 종이로 만들며, 창호지나 백지, 3첩지, 닥지 등을 사용한다. 연실은 과거에는 명주실이나 무명실을 사용했으나 근래에는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사람들이 늘고 연 끊어먹기가 성행함에 따라 나일론 등을 사용하고 있다. 얼레는 대게 잣나무, 참나무, 소나무 등으로 만들었지만 근래에는 나왕목을 사용하며 지방의 특색에 따라 2칸, 3칸, 4칸으로 만들기도 한다.
연날리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신분의 구별 없이 누구나 즐겨오던 놀이이다. 연의 종류에는 방패연, 꼭지연, 반달연, 치마연, 동이연, 초연, 박이연, 발연, 나비연, 등 다양하나 우리고장에서는 가오리연과 방패연을 많이 날렸다.
o우리고장에서는 이월 연등 날에 쓰인 한지로 가오리연을 만들어 뒷솔밭에서 새들 쪽으로 연을 날렸다. 연을 올리려면 연줄이 필요하다. 우리 집에는 무명베를 짤 때 쓰는 ‘실꾸리’가 있었는데 할머니 몰래 가지고가서 연을 날렸다. 나는 연을 잘 만들었고, 높이 멀리 날리는 축에 속했다.
4.씨름
o개요-우리네 씨름에는 서서 하는 선씨름, 허리띠를 두 손으로 잡는 띠씨름, 오른팔과 다리에 샅바를 감고 겨루는 바씨름, 오른쪽 넓적다리에 맨 샅바를 상대가 왼손으로 잡는 왼씨름, 왼다리에 맨 샅바를 상대가 오른손으로 잡는 오른씨름 등의 다섯 가지가 있다. 이밖에 나이에 따라 어른의 상씨름, 젊은이의 중씨름, 어린이의 애기씨름으로 나누기도 한다. 씨름은 어느 때나 즐기지만, 5월 단오 씨름을 으뜸으로 치며, 7월 백중이나 8월 한가위 씨름은 버금간다. 씨름은 남성들의 운동경기인 민중 오락이며 가장 서민적인 놀이이다.
o우리고장에서는 추석에 ‘뒷번드기’ 묘 뿌리에서 장난삼아 씨름을 많이 하였다.
5.화전놀이
o개요-원래 삼월 삼짇날(上巳日)에 진달래꽃을 넣고 국수와 술을 만들어 선조 제사(祭祀)에 올렸다. 이날 각 촌락의 서당서생들은 등고(登高)라 하여 산으로 올라가 화전을 지져 먹으면서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삼짇날이 3월초에 거행되는 경건한 행사였음에 비해 화전놀이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꽃을 찾고 멋을 찾는 요즘의 봄나들이로 유생(儒生)은 유생끼리 부인들은 부인들끼리 어울려서 부락단위로 산천을 따라 유락(遊樂)하는 3월의 연중행사라 할 수 있다. 강원도 강릉일대 사람들은 대개 낙산사·소금강·경포호·땅재봉·장현(長峴)저수지·태장봉·시루봉 등이다.
o우리고장에서는 삼월 삼짇날이 지나면 동네 딸래들이 마당지산에 올라 참꽃을 따와서 어느 집을 골라 모여 전을 부쳐 먹고 하루를 놀았다.
o1953년도 4월 초 어느 봄날에 청석골 탄건바위 아래에서 인구, 월연, 장밭의 청년 딸래들이 모여, 청년들은 물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끓이고, 딸래들은 참꽃을 따서 화전 을 꿉고 하여 천렵을 겸하여 화전놀이를 한 기념사진
6.널뛰기
o개요-도판희(跳板戱)라고도 한다. 두툼하고 긴 널빤지 한복판의 밑을 괴어 중심을 잡은 다음, 널빤지 양쪽 끝에 한 사람씩 올라서서 뛰어올랐다가 발을 구르면 상대방은 그 반동으로 뛰어오른다. 이렇게 번갈아 두 사람이 뛰어올랐다가 발을 굴렀다 하는 놀이로, 높이 오를 때는 5∼6척까지도 뛰어오른다.
널뛰기의 유래에 대하여는 고찰할 자료가 없고, 다만 고려시대부터 전승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이다. 고려시대 여성들은 말타기·격구(擊毬) 같은 활달한 운동을 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널뛰기 역시 놀이의 성격으로 보아 당시의 여성들이 즐겼을 것으로 짐작된다.
o우리 집이 새로 지어져 새집으로 이사를 하였는데 그때 마침 널뛰기에 알맞은 판자가 남아있었다. 그래서 아래채 앞의 빈 채소밭에다 흙을 파서 중심을 만들고 널빤지를 올려 널뛰기를 하였다. 동내 딸래들은 물론 청년, 어린이들 까지 와서 널을 뛰었다.
8.자치기
o개요-경상도 지방에서는 새끼자(작은자)를 구멍 속에 넣어 한쪽을 지면(地面) 위로 나오게 걸쳐놓은 다음, 어미자(큰자)로 가볍게 끝을 때려 공중에 뜨게 하여 떨어질 때 어미자로 되받아 친다. 이때 날아오는 새끼자를 수비측이 받아버리면 공격자는 실격되고 수비측은 100자를 얻으며, 못 받았을 때는 새끼자가 떨어진 지점부터 구멍까지 어미자로 재어 가산한다. 공격자가 헛손질을 하여 어미자로 새끼자를 때리지 못했을 때는 실격이 된다.
o우리고장에서도 자치기를 많이 하였다. 우리 집 옆에 사는 어느 집에서는 사촌끼리 자치기를 하다가 눈을 다쳐 평생을 어렵게 사는 이가 있었다.
o나도 어릴 때 동무들과 우리 집 바깥마당에서 재미있는 자치기를 많이 하였다.
9.제기차기
o개요-조선시대에는 제기를 ‘적이’라고 하였는데 음이 점차 와전되어 ‘더기’, ‘저기’, ‘제기’로 부르게 되었다. 제기의 형태도 시기에 따라 달랐으나 근대에 이르러 가장 많이 이용된 제기로는 가운데 구멍이 있는 옛날 돈인 엽전이나 쇳조각에 참지 또는 색실, 털실, 천 등을 꿰여 술이 달리게 만든 것 등이었다.
제기차기방법에는 한발은 땅에 짚고 다른 발은 땅에 댔다 뗏다 하면서 발목안쪽 모서리로 연속차올리기, 한발은 땅에 대지 않고 든 상태에서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차기, 두발로 번갈아차기, 한발로는 발목안쪽 모서리로 차고 다른 발로는 뒤축으로 차기, 한발로 땅을 딛지 않고 차다가 제기를 머리나 잔등에 올려얹기, 한발로 올려차기를 하다가 나중에 발등으로 멀리 차던지기 등이 있었다.
o우리고장에는 엽전에 천을 찢어 감아서 제기를 만들어 찼다.
10.타작놀이
o개요-보리타작놀이라고도 하는 타작놀이는 가농작(假農作), 또는 내농작(內農作)의 일종인 모의 타작놀이이다. 가농작은 풍농을 기원하던 의례적 놀이로, 종류도 다양하고 전국적으로 행해졌다. 조선시대에는 농사의 중요성을 알리고 풍농을 기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궁중에서 행한 기록들이 있는데, 민간의 것보다 규모가 크고 화려했다
정월 14일날 저녁 아이들은 수수깡을 잘라 껍질을 벗기고 그 안의 흰 속으로 벼, 보리, 콩 등의 곡식 모양을 만든다. 이것을 여러 개 만들어서 큰 대공에 꽂아 변소 옆 잿더미(두엄)에 꽂아 둔다. 대개 이때쯤 눈이 많이 와 있기 때문에 수수깡을 꽂은 곳은 눈으로 덮여 있다. 보름날 새벽에 그것을 걷어다 놓고 “한 섬이여, 열 섬이여!”, 또는 “보리 한 섬, 벼 한 섬, 콩 한 섬!” 하고 크게 외치면서 도리깨질을 하는 흉내를 낸다.
o우리고장에서는 타작놀이가 음력 정월 14일에 어린이들이 풍년을 기원하면서 행하는 놀이이다. 형님들과 수수깡을 적당한 길이로 껍질을 벗겨서 속과 껍질을 분리하여 놓고, 칼로 알맞게 잘라 이어서 곡식 모양을 만들어 퇴비장에 꽂아둔다. 마당지산에서 달맞이간 사람들의 “달 봤다”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오고 보름달이 뜨면 기다란 막대기를 들고 타작하는 흉내를 내며 타작을 했다. 부서긴 곡식을 담으며 한 섬, 두 섬하며 외쳤다.
11.공기받기
o개요-두 사람이상 어린이들이 모이면 공깃돌만 갖고 쉽게 놀이를 한다. 옛 시절의 어린이들에게 널리 보급되었다.
*다섯알 공기, : 손등에 모두 얹을 수 있는 조그만 하고 동그란 모양의 공깃돌 5개를 바닥에 흩어놓고 한 알 잡기를 시작하여 5개를 다잡으면 끝내면 한 알은 위로 던지고 나머지 돌을 바닥에 놓은 다음 바닥의 공기를 쓸어 쥐고 떨어지는 돌을 받는다.
*많은 공기 : 수십 또는 수백 개의 공기돌이 있어야 한다.
o우리고장에서는 남녀 구분 없이 어린이들이 공깃돌을 주어 나무그늘이나 어느 곳에서라도 둘러앉아 공기받기를 많이 하였다. 놀이기구가 귀한 시대라 돌만 주우면 쉽게 놀 수 있었다.
12.땅재먹기
o개요-지름이 60~70㎝ 가량 되게 땅에 동그라미를 그어 놓고 그 양편에 어린이들이 마주 앉아서 가위 바위 보를 하여 이긴 아이가 엄지를 중심으로 뼘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땅을 차지한다. 이렇게 가위 바위 보를 하여 계속 땅을 차지해 가다가 빈 땅이 없어지면 상대방의 땅도 차지하게 되며 한 어린이가 동그라미 안의 땅을 모두 차지하면 이긴다. 이것을 지방에 따라서 '땅 뺏기', '땅 재기' 등으로도 부른다.
o우리들은 여름날 나무그늘에 앉아서 땅재먹기 놀이를 많이 하였다.
13.말타기
o개요-소년들이 두 편으로 나누어 양쪽의 대장이 가위, 바위, 보를 하여 이긴 편은 말을 타는 쪽이 되고, 진편이 말이 된다. 말이 된 쪽은 대장이 벽에 기대서면 다음 사람은 대장의 허리를 꼭 끼고 허리를 구부리고 서고, 그 다음 사람은 또 허리를 구부려 앞사람의 허벅지를 끼고 허리를 굽혀 엎드린다. 진 쪽의 인원이 이렇게 하여 말을 만들면 이긴 쪽에서는 한 사람씩 멀리서 달려와 이 위에 올라앉는다. 이때 말이 무너지면 다시 해야 하고, 타던 사람이 말에서 떨어지면 그쪽이 말이 되고 말이던 쪽이 타게 된다. 따라서 탄 쪽은 위에서 말을 무너지게 하려고 온갖 동작을 다하고 말은 위에 탄 사람을 떨어뜨리려고 노력한다. 말도 허물어지지 않고 사람도 떨어지지 않으면 양편의 대장이 가위, 바위, 보로 승부를 가리고 진 쪽은 다시 말이 된다.
o우리고장에서도 어린이들이 말타기놀이를 많이 하였다. 멀리서 뛰어와 말을 타는 기분은 아주 좋았지민 말이 되었을 때는 힘들었다.
14.돌차기
단단하고 평평한 땅바닥에서 2∼3명씩, 인원이 많을 때는 편을 갈라서 노는 놀이다. 저마다 지름 10 cm 정도의 둥글고 납작한 돌을 장만하여 가위,바위,보로 정한 순서에 따라 시작한다. 땅바닥에 칸을 5개 그려 놓고 첫번째 사람이 돌을 첫째 칸에 놓고 오른발을 들고 왼발로 돌을 차서 첫째 ·둘째 ·셋째 ·넷째 ·다섯째 칸까지 갔다가 나올 때는 바로 둘째 칸을 거쳐 첫째 칸으로 나오면 된다. 도중에 돌이 줄에 닿든지 칸 밖으로 나가면 실격이 되어 다음 사람이 한다. 돌아오기를 많이 하는 사람이
o돌줍기
개요-돌차기는 땅바닥의 그림을 따라 말을 차 나가는 놀이이다. 지방에 따라 방법이 조금씩 다르다. 흔히 여자 어린이 두 셋이 벌이며, 편을 가르기도 한다. 말은 지름 10센티미터쯤의 납작한 돌로, 각기 제 것을 마련한다.
출입구에 서서 말을 1에 던지고, 앙감질(한 발은 들고 한 발로만 뛰어가는것)로 2 · 3을 지나, 3 · 4에서 두 발을 내린다. 다시 앙감질로 5 · 6을 지나 7 · 8로 들어가면서 몸을 돌려 두 발을 내린다. 같은 방법으로 돌아와 2에서 앙감질을 한 채, 말을 집어서 출입구로 나온다. 이어 말을 2에 던지고, 앞처럼 8까지 가며, 3에 던진 말을 4에서 집고 4에 던진 것은 3에서 집는다. 이때도 앙감질로 하며, 7 · 8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말을 집는다.
두 번째는 말을 9에 던지고, 출입구로 들어간 다음, 9를 지나 밖으로 나가서 밭 주위를 앙감질로 한 바퀴 돈다. 9의 말을 집고 9로 들어가 출입구로 나온다. 이로써 한 판이 끝난다(리운경).
o우리 고장에서도 어린이들이 남녀 구분 없이 돌차기 놀이를 많이 하였다.
15.쌍육
o개요-쌍육은 한자로 雙六, 雙陸이라고 표기한다. 쌍육은 부녀자들이 집안에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놀이로서 널리 전승되어왔다.
놀이의 방법은 위와 같은 말판을 만들어 흰 바둑과 검은 바둑돌을 15개씩 말로 만들어 자기 것을 상대편 앞에 놓고 1에서 6까지 점이 찍힌 주사위 두 개를 가지고 한 개씩 두 번 던 저 그 수대로 말을 자기 앞으로 進馬시키는데 한 마리를 계속 진마시켜도 좋고 두 마리를 숫자대로 옮겨도 좋다. 말을 진마 시키다가 상대편 말이 한 마리가 있으면 잡는다. 잡힌 말은 다음 주사위를 던질 때 나타나는 숫자대로 원자리의 1에서 6사이에 가져다 놓는다. 그러나 만일 그 숫자 위에 상대방 말이 두 마리 있으면 가져다 놓지 못하고 상대편말이 한 마리가 있으면 말을 잡고 그 자리에 놓게 된다. 이리하여 상대편 있던 말을 모두 진마 시켜 자기 앞의 1에서 6사이에 적당히 안배시킨 다음 주사위의 숫자대로 말을 떼어낸다. 말을 떼어내기 시작하면 다시 진마는 시키지 못하고 몇 번이고 주사위 숫자대로 만 떼어내어 먼저 말이 말판에 없어지는 편이 이긴다.
이 놀이는 진마시키는데 묘미가 있으므로 머리를 써야 되기에 여가 선용에 바람직하다.
o우리고장도 쌍육놀이가 성했다. 우리 집에도 한지에 그린 쌍육판이 있어 내가 어릴 때 할머니와 쌍육놀이를 자주 하였다.
16.고누(꼰뜨기)
o개요-우물고누, 줄고누, 참고누, 호박고누, 자동차고누 가있다.
놀이 방법이 소박하고 어느 곳에서나 할 수 있는 놀이이다. 고누의 이름은 말밭의 모양에 따라 붙여진다.
*놀이용구 : 적당한 크기의 땅바닥이나 종이나 바위바닥에 고누말판을 그린다. 말은 흰 색이나 검은 색의 말을 준비한다. 바위바닥에는 줄은 푸른 풀잎으로 그린다.
1)우물고누 : 말밭에 우물을 정하고 각기 말 2개를 놓는다.
o놀이방법 : *양편의 말은 우물ㄴ,ㄹ사이를 건너지 못한다. *처음 시작 때는 ㄱ,ㄷ의 말부터 움직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ㄴ. ㄹ을의 말을 ㅁ에 먼저 두면 길이 막혀 한 편의 말은 움직이지 못한다. *말을 번가라 두어가다가 어느 편이든지 먼저 말길을 막아 상대편의 말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면 이긴다.
2)줄고누 : 직선의 수에 따라 이름이 붙는다.
*놀이 1)방법 : 가로 세로의 직선에 따로 말을 두어 가면서 그림과 같이 검정말 1점을 흰말 2점으로 포위하여 따낸다. *먼저 상대방의 말을 전부 따내는 편이 이긴다.
*놀이 2)방법 : 양편의 말은 앞과 옆으로 한 칸씩 갈 수 있고, 뒤로는 후퇴하지 못한다. *두는 말 앞이나 옆에 잇대어 있는 다리로 하여 한 칸씩 뛰어 넘을 수 있다. *이같은 방법으로 먼저 상대편의 말을 잡거나 또는 상대편의 집을 차지하는 편이 이긴다.
o우리고장에서는 농사일을 하다가 점심시간에 흙바닥이나 넓적한 돌 위에 쑥이나 풀입을 뜯어 판을 그려 고누를 떴다. 또는 아이들이 소먹이기를 하다가 소를 풀어놓고 나무그늘에 모여앉아 꼰뜨기를 많이 했다.
o내가 어느 학교에 근무할 때 학교운동장 둘레에 서있는 푸라다나스나무 밑에 있는 시멘트 구조물에 고누의 판을 그려놓고 어린이들이 활용토록 하니 인기가 있었다.
17.딱지치기(때기치기)
o개요-종이로 접은 딱지를 땅바닥에 놓고 다른 딱지로 쳐서, 뒤집히거나 금 밖으로 나가면 따먹는 남자 어린이 놀이이다. 때기치기 또는 표치기라고도 한다. 딱지는 두꺼운 종이로 접은 것과 그림이 찍힌 종이를 오려낸 두 종류가 있다. 앞의 것은 어린이들이 접지만, 뒤의 것은 가게에서 판다. 그림 딱지는 원형 또는 네모꼴이며 그림 외에 별 · 숫자 · 글씨도 찍는다.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진 아이가 딱지를 땅에 놓으면, 이긴 쪽이 제 것으로 그 딱지 옆을 힘껏 내리쳐서 바람을 일으킨다. 이것이 ‘넘겨먹기’이다. 오른손잡이는 왼발을, 왼손잡이는 오른발을 딱지 옆에 댄다. 남의 것이 뒤집히면 먹고 다시 치지만, 실패하면 차례를 넘긴다. 이때 발을 바짝 대면 바람이 힘을 받아 잘 뒤집힌다. 또 저고리 단추를 풀어 헤치고 쳐서 바람의 양을 늘리기도 한다. 딱지를 살짝 밟아서 한 쪽을 들면 아주 유리하다. 이 때문에 ‘밟았다’느니 ‘밟지 않았다’느니 하는 시비가 곧잘 일어난다. 가장 뒤집기 어려운 것은 사방을 같은 길이로 접은 방석딱지로, 안에 두툼한 종이를 끼워 넣기도 한다. 딱지종이는 두껍고 클수록 좋다.
o우리고장의 때기치기는 어린이 중심으로 성행하였다. 나도 ‘장방’에 있는 형님들의 헌 교과서를 찢어서 열심히 때기를 만들어 동무들과 치기를 하였다. 어떤 때는 많이 따서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와 장방에 모아두었다가도 어느 날은 잃어버려 속이 상한 때도 있었다.
18.팽이치기
o개요-팽이는 박달나무·대속나무와 같이 무겁고 단단한 나무나 소나무의 관솔 부분을 깎아서 만들며, 이러한 나무라야 끝이 쉽게 무뎌지지 않고 오래 간다.
이 밖에 벽돌이나 기왓장을 갈아서 만들기도 하고, 근래에는 쇠구슬과 같은 철제를 팽이의 심지에 박아 돌리기도 한다. 깎아서 만드는 팽이는 무엇보다 균형이 잘 잡혀야 머리를 흔들지 않고 한 자리에 박힌 듯이 서서 오래 돌아간다.
팽이 끝에는 작고 둥근 철제 뿔이나 못을 박아서 쉽게 닳지 않으면서도 오래 돌아가도록 하기도 하며, 윗 부분에는 태극무늬나 물감으로 여러 가지 모양을 그려서 돌아갈 때 아름다움을 나타내기도 한다. 팽이는 보통 몸통을 채로 후려쳐 가면서 돌리는데, 채 막대의 길이는 50㎝ 쯤으로 끝에는 명주실이나 노끈 꼰 것을 잡아맨다.
끈의 끝 부분은 실오라기가 약간 풀려서 너슬거려야(너불거려야) 팽이에 닿는 부분이 넓어져서 오래 돌아간다. 그러나 채를 쓰지 않고 돌리는 바가지팽이·상수리팽이·뺑오리 같은 것들도 있다. 바가지팽이는 어린이 손바닥만한 바가지조각 한가운데에 구멍을 뚫고 끝을 뾰족하게 깎은 나무심을 박는다.
o우리고장에서도 팽이치기가 성행 했다. 팽이를 나무로 깎아 만들기가 쉬웠다. 특히 어름 위에서의 팽이치기는 아주 재미있었다. 팽이체로 팽이를 감아 돌리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동무들과 오래 돌리기 시합이나, 서로 부디쳐 넘어지게 하여 승부를 가리는 놀이는 재미가 있었다.
19.썰매타기
o개요-눈이나 얼음 위에서 썰매를 타며 노는 놀이. 팽이치기와 함께 대표적인 겨울철 놀이이다. 썰매는 눈이나 얼음판 위에서 저절로 미끄러져 가며 타게 만든 놀이기구로서, 잘 미끄러질 수 있게 날을 달아 만든다.
썰매의 형태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가장 일반적인 것은 어린이가 앉을 만한 널판 바닥에 적당한 높이의 각목을 나란히 붙이고 여기에 대나무나 쇠줄을 박아서 눈이나 얼음 위에서 잘 미끄러지도록 만든 것이다.
탈 때에는 끝에 뾰족한 쇠꼬챙이를 꽂은 송곳을 양손에 쥐고 이를 이용하여 썰매를 움직이거나 방향전환 또는 멈춰서는 동작을 한다. 그러나 송곳으로 양쪽의 얼음을 찍어가며 타는 방법으로는 속도가 느려서 큰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보통은 한 어린이가 탄 썰매를 다른 어린이가 뒤에서 민다.
o우리 마을 앞에는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사철 어린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겨울에 얼음이 얼면 썰매를 만들어 탔다. 그러나 개울 폭이 좁고 물의 양이적어 넓은 곳이 없었다. 얼음이 얼면 얼음 따라 썰매를 타고 올라갔다 내려오는 재미는 아주 좋았다. 얼음이 깨어져 물에 빠지는 일이 많아서 개울가에 나뭇가지를 주어다 불을 피어놓고 옷을 말리기도 했는데 잘못하여 옷을 불에 태워 먹기도 하여 어머니의 꾸중을 듣기도 많이 했다.
썰매를 만들려면 철사와 판자가 필요했다. 그때 우리 집은 새집을 지었기에 나무판자 조각이 있어 만들기 쉬웠으나 바닥에 부칠 철사가 없어 자호천의 제방의 철사를 몰래 끊어와 만들기도 했다.
썰매를 타는 곳의 범위가 점점 넓어져 잔드매기 근처의 자호천과 오산보안까지 원정 가서 넓은 얼음판을 신나게 달린 기억이 난다. 그러나 얼음이 깨어져 물에 빠져 죽을 번 한 일도 있었다.
<참고자료>
o전통문화의 맥 - 경상북도교육위원회
o한국민족문화대백과
첫댓글 옛 어린시절 자양에 추억 자료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부분 경험하고 놀았던 내용들이라 세삼스럽습니다. 어릴때 번지럽게 자라서 안해본 일들이 없는같습니다.
보름달보러 마당지산꼭대기 올라가보고, 여름 아랫귀미가는길에 수박밭서리도 못하고 주인에데 들켜 도망도 다니고,자치기(맛대)놀이, 논바닥 말뚝박기등 재미있지만 위험한 일들도 많았습니다,,,,,
놀이 문화가 많이 바뀌어서 요즘 아이들은 거의 모르는 것일건데요. 저로서는 어린 시절에 해본 추억의 놀이가 많습니다. 곧 설이네요 기억이 새롭습니다.
삼체계 윷놀이 사진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역시 사람은 추억을 먹고산다는 말이 맞군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