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진 명창
대전에서 공주로 가는 길목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구석기 유물이
발견된 ‘석장리 선사유적지’가 있고, 바로 다음 마을 무릉리에 불세출의
명창, ‘인당(忍堂) 박동진 판소리 전수관’이 있습니다. 전수관은 1998년
명창의 소리를 잇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충남도와 공주시의 지원으로
건립되었으며, 그곳은 박동진 명창이 태어난 곳이자 2003년 88세 나이로
소천한 곳입니다. 우리 교회에 인접한 진잠 장터에서도 소리를 불렀는데
산장산에는 그가 연습을 하던 득공터가 현재도 남아있습니다.
그는 이전까지 ‘토막소리’로 부르던 판소리를 완창하였는데, 1968년
〈흥보가〉를 시작으로 〈춘향가〉, 〈심청가〉, 〈적벽가〉, 〈수궁가〉
등을 완창하였습니다. ‘토막소리’는 작품 전체가 아니라 특정 대목만 부르는
방식으로 짧은 시간 동안 부르는 사람의 역량을 극대화하여 발휘할 수
있습니다. 반면, ‘완창’은 작품 전체를 5~8시간 동안 이어 불러야 하는 일
이기 때문에 체력으로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완창을
함으로써 판소리의 진정성을 회복하고자 노력하였고 진정한 명창의 면모를
보여준 사람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의 장로로서 〈성서판소리〉를
창작 발표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노력이 어우러져 1973년 무형문화재
제5호 〈적벽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습니다.
박동진 장로의 경력을 길게 소개하는 것은 그의 소리를 대하는 마음과
연습의 열정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입니다. 생전에 선창교회에 와서 간증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는 밥 짓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생쌀을
씹어먹었고, 연습을 하느라 목이 터져 소리가 나지 않으면 똥물을 마시면
서 치료하고 다시 소리를 했다고 했습니다.
“소리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이며 축복이여, 평생을 해 온 것인데
하루라도 소리 연습을 안 하고 밥을 먹으면 죄를 짓는 것 같어!” 이렇게
말하던 그는 죽는 날까지 하루도 연습을 거르지 않았으며, 해외 공연을
가도 호텔에 별도의 장소를 허락받아 두 시간씩 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목사로서 말씀을 대하는 자세가 그렇지 못하는 것 같아 부끄러웠습니다만,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이런 마음으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루라도 예배 안 드리고 기도 안 하고 밥을 먹으면 죄를 짓는 것 같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