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장년강단)
진실한 일꾼 두기고
에베소서 6:21~22
본문에 나오는 두기고, 무명의 인물입니다. 알려졌다고 훌륭한 것은 아닙니다. 두기고에 대한 소개는 두 절에 불과합니다. 삼손은 사사기 13장~16장까지 무려 4장에 걸쳐 소개되지만 아무도 삼손을 배움의 대상으로 보지 않습니다.
삼손은 배우지 말아야 할 대상입니다. 삼손은 과대평가를 받고 두기고는 과소평가를 받습니다. 하나님나라에서는 삼손보다 두기고와 같이 과소평가를 받았던 사람들이 제 자리를 찾아 앉을 것입니다.
1. 두기고는 회람 편지의 전달자입니다.
에베소서는 회람 편지입니다. 인쇄술이 없었기에 바울이 손으로 서신을 쓰면 그 편지를 누군가가 이교회로부터 저 교회로,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회람을 시킵니다.
바울은 감옥에 있었기에 바울서신은 불온문서입니다. 문서를 전달하다 발각되면 체포됩니다. 그래서 회람 편지를 운반하는 일은 목숨을 거는 일이라 자원자가 드물었습니다. 두기고는 회람 편지를 전달하는 일에 자원합니다. 본서만 아니라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오네시모와 함께 로마를 떠나 소아시아 지방을 순회하며 전달합니다(골 4:7, 9).
그당시 성경은 주머니에 넣을 수 없었습니다. 양피지나 파피루스 나무종이에 기록하기에 엄청 부피가 많고 두껍습니다. 비나 땀에 젖으면 못씁니다. 이걸 이고 지고 숨기고 다니는 것입니다.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이런 수고와 스트레스를 마다하고 두기고는 오직 복음을 전달하는 역할자로 쓰임받기를 자원했던 것입니다.
성경 기록은 대단한 일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 기록하고 그 성경으로 2천 년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구원 받고 위로와 용기를 얻으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왔습니까? 성경저자들의 명예와 영향력에 비해 두기고는 성경을 전달하는 회람자에 불과합니다. 회람성경을 직접 받은 사람 외에는 누가 기억이나 하겠습니까? 그에 비해 성경 기록자보다 아시아 각양각처로 전달하는 회람자들의 위험도가 더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보겠습니까? 성경저자들이야 손수 선택하고 직접 감동 했으니 당연하겠고 회람자들의 수고와 애씀도 결코 과소평가하지 않겠지요. 바울이 그걸 안 것입니다. 그래서 두기고로 마무리를 합니다. 내가 사랑하고 너희들이 사랑하는 주 안에서 신실한 일꾼 두기고! 형제 두기고! 바울이 사도의 상급을 받는다면 두기고도 사도의 상급을 받고 바울이 성경기록으로 상급 받는다면 두기고는 성경전달로 상급을 받을 것입니다.
1882년 가을, 중국 우장에 나와 있던 로스 선교사와 매킨타이어어 선교사에 의해서 누가복음 요한복음이 조선말로 번역되고 출판됩니다. 1887년에는 신약전서가 완간됩니다. 조선청년 백홍준은 가짜 약장수로 변복하고 성경을 서간도에 전파합니다. 서간도에서 75명이 세례를 받음으로 조선인 최초교회가 중국에서 세워집니다.
1884년에는 서상륜이 그 성경책을 숨기고 고향에 와서 동생 서경조에게 전하고 한국 최초의 교회가 조선인에 의해 황해도 솔내(송천)에 세워집니다. 서경조는 1866년 9월 3일 토마스 목사가 대동 강변에서 순교당하는 현장을 목도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권사가 되어 성경을 전파하는 일을 하다 평양신학교에 들어갔고 조선 최초 7인 목사 중의 한 분이며 언더우드와 새문안교회를 세웁니다. 그 손자가 북한인권 지도자로 활약하는 서경석 목사입니다.
성경저자-성경번역자-성경전달자… 모두가 하나님 안에서 아름다운 사람들이고 이런 이들이 모여 아름다운 한국교회를 이룬 것입니다. 이들은 같은 상급을 천국에서 받을 것입니다.
그래요! 설교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설교를 입으로 전달하는 구역장들도… 남편에게 이웃들에게 우리 목사님이 이런 설교를 했다, 전달하는 사람들도 귀하고 더 귀한 것은 설교한 대로 행동으로 살아 보임으로 그 설교를 열매 맺게 하는 여러분이 우리교회 두기고입니다. 이런 이들을 바울은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편지는 그리스도의 성경입니다. 목사는 입으로 성경을 전하지만 여러분은 행동으로 삶으로 성경을 전한다면 세상에 보내는 예수님의 편지이고, 내 인생이 성경을 이어가는 생생한 우리교회 행전이 되는 것입니다.
2. 두기고는 사랑을 받은 진실한 일꾼입니다.
바울에게는 여러 동역자들이 있습니다. 모든 동역자가 사랑을 받은 일꾼은 아닙니다. 마가는 도중하차로 바울이 바나바와 결렬하는 계기를 제공했고 데마는 세상으로 떠나버렸습니다.
두기고는 끝까지 바울 곁에 있었고 감옥까지 따라갔습니다. 이런 두기고를 믿고 바울은 일종의 불온문서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회람 사명을 맡긴 것입니다.
바울은 두기고를 사랑 받는 형제라고 말합니다. 바울에게만 아니라 모두에게 사랑을 받은 형제입니다. 유진 피터슨은, 사랑을 받는 형제를 “나의 벗”이라고 해석합니다. 벗은 비밀은 물론 추억을 공유하고 아픔과 기쁨을 함께 나눕니다.
가족, 동족에게 배척당한 바울에게 형제, 벗은 남달랐습니다. 두기고가 있었기에 바울은 외로워도 사명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그만큼 두기고는 모두에게 친절했고, 겸손했고, 다정했습니다. 그래서 모두에게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목사에게는 사랑받으면서 교인들에게는 사랑을 받지 못하든지, 저희들끼리는 즐겁게 지내도 목사에게는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두기고는 모두에게 인정도, 사랑도 받았습니다. 인정은 받아도 사랑은 쉽지 않습니다. 사랑은 인품을 말하고, 인정은 업적을 말합니다. 교회는 업적이 아니라 인품으로 사랑 받고 존경을 받는 신령한 공동체입니다.
또한 두기고는 진실한 일꾼으로 소개합니다. 유진 피터슨은 든든한 일꾼으로 해석합니다. 든든한 사람! 무슨 일을 맡겨도 해내는 능력의 사람, 충성의 사람입니다. 적어도 도중에 하차하거나 불평하거나 배신하지는 않을 믿는 사람이기에 회람 사역을 맡긴 것입니다. 사랑을 받지만 든든하지 못한 사람이 있고, 든든한데 애틋한 사랑이 일어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두기고는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고 든든해서 회람을 맡기는 신임을 받았습니다.
성경에 먹고 노는 일에 할애했던 삼손의 분량을 줄이고 두기고 같이 사랑을 받게 만든 여러 일화, 사역들, 든든하게 교회를 섬겼던 활동을 자세히 길게 썼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겨우 두 줄입니다.
그렇지만 남들이 알든 모르든 후세에 남을 기록이 있든 없든 교회 안에서 사랑을 받고, 주의 종의 든든한 동역자가 되고, 교회의 진실한 일꾼으로 살았다면 그 자체가 행복이고, 성공적인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로 교회가 채워져야 교회답게 되는 것입니다. (생략) 강정훈말씀닷컴에 가시면 전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5월호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