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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소포클레스의 희곡 <오이디푸스 왕>
대본 장 콕토가 프랑스어로 쓴 대본을 다시 장 다니엘루가 라틴어로 번역 / 라틴어
초연 연주회 형식의 초연 : 1927년 5월 30일 파리, 사라 베르나르 극장
오페라 형식의 초연 : 1928년 빈 국립극장
배경 신화 시대 그리스의 테베
<1992년 일본 마츠코토 사이토 기넨 페스티벌 / 오페라 58분 + 인터뷰 59분 / 한글자막>
사이토 기넨 오케스트라 & 도쿄 오페라 합창단 연주 / 오자와 세이지 지휘 / 줄리 테이머 연출
오이디푸스.....테베의 왕, 선왕 라이오스의 아들.....필립 랭그리지(테너)
이오카스테.....오이디푸스의 왕비이자 어머니........제시 노먼(메조소프라노)
크레온...........이오카스테의 남동생.....................브린 터펠(베이스바리톤)
티레시아스.....나이 많은 장님 예언자...................해리 피터스(베이스)
양치기............................................................로버트 스웬젠(테너)
사자使者........코린트에서 온 전령.......................미키오 타타라(베이스바리톤)
해설자............................................................가요코 시라이시
오이디푸스 댄서...............................................다나카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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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덕션 노트 ===
그리스 비극과 일본 전통 무대를 결합, 비주얼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형식의 <오이디푸스
렉스>
소포클레스 원본, 콕토 대본, 다니엘루의 라틴어 가사의 극적 구성, 오페라-오라토리오
제시 노먼, 필립 랭그리지, 브린
터펠 등 화려한 출연진
세계적인 연출가 줄리 테이머 제작, 연출
일본 사이토 키넨 페스티벌 공연 실황
제작자 노트, 주요 제작자
및 배우 인터뷰, 포토 갤러리 수록
=== 내지 해설 === <맥스 해리슨 Max Harrison / 황진규 번역>
서사적 비인간성에 대한 비극
스트라빈스키는 자신의 경력 가운데 고대 그리스 문화에 각별히 경도되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의 작품에서 그리스 세계가 처음 모습을 보인 것은 1906~97년에 쓴 <폰과 양치기>였으며, 그 다음에는 역시 1907년에 쓴 <전원곡>에서였다. 그러나 이러한 흥미는 1926~34년 사이의 시기에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발레곡 <뮤즈를 이끄는 아폴론>과 멜로드라마 <페르세포네>, 그리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페라-오라토리오 <오이디푸스 왕>이 이 시기에 작곡되었다. 이런 성향은 <듀오 콘체르탄테>나 더훗날의 발레 <오르페우스>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이디푸스 왕>은 1926년 1월에서 1927년 3월 사이에 니스에서 작곡되었으며, 관현악 편성 작업은 5월에 초연 20일을 앞두고 완료되었다. 이 곡은 1927년 5월 30일에 파리의 사라 베르나르 극장에서 디아길레프가 이끄는 '발레 뤼스'의 단원들에 의해 연주회 형식 공연으로 초연되었으며, 지휘는 스트라빈스키 자신이 맡았다. 공연 형식과 <불새>와 함께 공연했다는 사실 때문에 <오이디푸스 왕>은 대단한 인상을 주지는 못햇다. 그러나 이 곡은 스트라빈스키의 작곡 경력에서 거의 한가운데에 위치하며, <마브라>(1922)에서 시작해 <난봉꾼의 행각>(1948~51)으로 끝난 작곡가의 신고전주의 시기에 나온 첫 번째 대작이기도 하다.
스트라빈스키는 오래 전부터 극적인 대작을 쓰고 싶어 했으나, 당시 그는 자신의 조국에서 멀리 떨어져 살고 있었으며 남은 평생 동안에도 그렇게 될 운명이었다. 따라서 언어의 선택 역시 중요한 문제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주제가 결정되기도 전에 언어가 먼저 정해졌다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작곡가는 현재 통용되는 어떤 말보다도 오래된 언어, 즉 다소 먼 옛날의 신성화된 말로서 그가 음악에서 이용할 수 있는 주술적인 측면을 지닌 언어를 원했다. 따라서 그는 라틴어를 선택했으며, 훗날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소멸하지는 않았으나 화석화된, 그리고 기념비적인 성격을 띠게 됨으로써 성스러워질 어떤 위험도 없는 언어 매체를 사용하는 것은 대단한 이점을 안겨주었다."
주제 선정의 측면에서는, 스트라빈스키는 고대 그리스 설화를 선택하기로 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으며, 십대 후반에는 아버지의 장서에서 러시아어로 번역된 셰익스피어와 단테, 그리스 희곡을 읽었다. 그는 자신이 그네디치의 번역으로 읽었던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에 특히 흥분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고, 이 희곡이 그가 택한 소재가 되었다. 이 희곡은 대단히 잘 알려진 이야기라는 장점이 있었고, 따라서 스트라빈스키의 생각으로는 청중이 텍스트에 친숙하리라고 가정할 수 있었으므로 그 자신은 엄격한 음악적 극화(劇化)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는 이런 점에 착안해서 1차 세계대전 이전에 발레 뤼스가 파리에서 공연한 시즌 동안 알게된 장 콕토와 접촉했다. 스트라빈스키는 얼마 전에 소프클레스의 <안티고네>를 번안한 콕토의 작품에 감탄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오이디푸스 왕>의 대본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콕토의 프랑스어 대본은 많은 개정을 거친 뒤에 장 다니엘루 신부에 의해 라틴어로 옮겨졌으며, 스트라빈스키는 번역작업이 마무리되자마자 음악을 붙이는 일에 착수했다.
초연이 성공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트라빈스키는 초창기 공연 때부터 무대 동작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을 비롯해 이 작품이 어떤 방식으로 공연되어야 하는가를 분명히 정했다. 합창단은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채 한 줄로 앉아 두루마리를 읽는 방식으로 노래하는 반면, 독창자들은 각자 서로 다른 높이의 연단에 서 있어야 했다. 콕토에게 말한 바에 따르면 작곡가가 원한 것은 일종의 '정물(靜物)'이었으며, 악보에는 다음과 같은 주석이 달려 있다. "티레시아스와 양치기, 전령을 제외한 등장인물은 모두 각자에 맞게 만들어진 의상과 가면을 쓴 채로 있어야 한다. 이들은 오로지 머리와 팔만 움직일 수 있다. 이들은 살아있는 초상이라는 인상을 주어야 한다." 오이디푸스는 전곡에 걸쳐 보이는 반면, 이오카스테와 크레온은 자신의 아리아를 부를 때만 조명을 받음으로써 실제로 드나들지 않고도 무대에 등장했다가 퇴장하는 효과를 낸다. 마지막 장면에서 오이디푸스의 눈이 먼 것은 가면을 바꿈으로써 암시된다.
이 비극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설명하는 해설자는 청중이 사용하는 언어로 이야기하게 하자는 것은 콕토의 착상이었다. 바꿔 말하자면 스트라빈스키의 착상이 아니었다. 훗날 작곡가가 다들 아는 이야기를 누군가가 설명해야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여러차례 이야기했던 이유가 이것으로 해명된다. 그러나 이 착상은 공연 무대에서나 녹음으로 들을 때나 상관없이 몇 가지 면에서 대단히 효과적이다. 첫째로, 라틴어와 고대의 세계를 다룬 문학에 숙달한 이는 <오이디푸스 왕>이 나왔을 당시보다 줄어들었다. 둘째로, 해설자는 부분적으로는 언어의 차이에 의해 듣는 이로 하여금 전체 이야기의 무시무시한 사건들로부터 거리를 두게 한다. 셋째로, 벌어질 일을 앞서 이야기함으로써, 극적 놀라움이라는 요소를 없애고 청중을 음악 자체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
이 작품의 기본 구조는 아리아와 이중창, 합창이라는 고전적인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엄청나게 극적인 충격을 주는 합창을 비롯해서 성악과는 완전히 별개로, 이것은 스트라빈스키가 1917년에 쓴 교향시 <나이팅게일의 노래> 이후로 완전한 편성의 교향악단을 위해 작곡한 첫 작품이었다. 그 결과는 이전의 유혹적인 관현악법과는 매우 다르며, 이것은 부분적으로 <병사의 이야기>와 <마브라>에서, 현악기군이 빠진 <팔중주>와 <관악기를 위한 교향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실내악곡을 쓴 데서 얻어진 경험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작품에서 각 악기는 뒤섞이기보다는 서로 거리를 두고 있으며, 거의 '분석적'인 방식으로 구별되고 있다. 그리고 <관악기를 위한 교향곡>(1920)의 기념비적인 성격 역시 <오이디푸스 왕>을 가리키고 있다.
이 작품의 음악적 소재도 이처럼 한층 냉정해진 태도에 맞춰 주제 면에서 서로 관련이 없는 민첩한 블록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곡에서는 맨 처음에 해설자가 소포클레스의 비극을 '다양한 장면에 깃든 기념비적인 측면'을 살린 채 고전 버전을 듣게 되리라고 이야기한다. 스트라빈스키가 악상을 다룬 방식 역시 기념비적인 효과를 창출하며, 이는 수단의 다양성에 의해 성취된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엄격한 리듬과 맞물린 단순한 화성 덕분이기도 하다. 리듬과 관련해 스트라빈스키는 전령의 아리아 '나는 산 속에서 Reppereram in monte'를 제외하고는 그때까지 자기 스타일의 두드러진 특징이었던 악센트와 박자의 빈번한 변경을 행하지 않았다. 이 곡에서는 변화와는 거리가 먼 리듬 패턴이 기계적인 단조로움이 아닌, 오이디푸스에 대한 운명의 냉혹한 추적을 암시하는 가혹한 규칙성을 지닌 일련의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사실 이와 같은 방식의 처리는 거의 전곡에 걸쳐 있으며, 그 생생한 예로는 테베의 백성들이 스핑크스를 물리쳤던 오이디푸스에게 역병으로부터 자신들을 구해 달라고 탄원하는 1막 첫머리의 합창 '역병이 우리에게 내렸고 Caedit nos pestis'를 들 수 있다.
날카로운 화성 구사 역시 지극히 단순한 수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를 들어 크레온의 아리아 '신께서이렇게 응답하셨소 Respondot deus'를 반주하는 트럼펫이 연주하는 C장조의 삼화음이 그렇다. 그러나 스트라빈스키는 이런평범한 수단이 진부함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고유한 조성적 기능을 제거했다. 고전적인 조성 체계에서 친숙했던 화성은 단절되고 '화석화'된 방식으로 다루어지며, 이로써 이 작품에서 사용되는 죽은 언어와 비슷한 종류의 장중함을 획득했다. 단조가 우세한 것 역시 언급할 만하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아리아에서 긍정적인 분위기를 지닌 장조로 나아가려고 애쓰지만, 대개는 실패하고 만다. 다른 이유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마지막에서 두 번째에 등장하는 합창 '그가 여기 있소! 보시오! Adest! Ellum!'를 '죽음의 타란텔라'라고 표현한 스트라빈스키 자신의 묘사이다.
독창 파트에 대해 말하자면, 가장 개성적으로 형상화된 배역은 말할 것도 없이 오이디푸스이다. 그는 비록 무의식적이기는 하나, 왕으로서 지닌 권력을 강조하면서 이전에 저질렀던 범죄의 결과를 피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가 노래하는 독단적이고 심지어 오만하기까지 한 선율은, 라이오스 왕의 시해라는 수수께끼를 풀겠노라고 나서는 '이 수수께끼를 풀 것이오 Ego divinado'에서 볼 수 있듯이 이따금 반복되는 상행 음계와 하행 음계의 형태로 된 정교한 장식음을 수반한 스타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장식음은 바로크 오페라에서 차용한 것으로, '백성들이여, 그대들을 지켜주겠소 Liberi, vos liberabo'에서 그렇듯이 오이디푸스가 노래하는 선율이 한 고정된 지점을 중심으로 한 고음역에 머무는 경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례상의 기도를 연상케 한다. 그리고 오이디푸스는 특히 독단적인 태도를 보이고자 할 때마다 한 악구를 온음 혹은 반음 올려서 되풀이하는 경향을 보인다. d단조로 끝나는 티레시아스의 폭로 '왕이 바로 선왕을 시해한 자요 Rex peremptor regis est'에 응하는 대목이 이 점을 특히 잘 드러낸다. 여기서 오이디푸스는 조성을 높여 '질투는 복 받은 자를 증오하나니 Indivia fortuam odit'를 E장조로 시작한다.
스트라빈스키의 기나긴 신고전주의 시기 가운데 상당히 일찍 작곡된 곡임에도 불구하고, <오이디푸스 왕>은 그가 이전에 거둔 성과를 종합하고 있다. <팔중주> 및 <피아노 독주를 위한 세레나데>와의 연관성은 명백하며, 대위법적인 반주는 <마브라>를 떠올리게 한다. 외부적인 영향에 대해 말하자면 스트라빈스키는 영웅적 오페라와 특히 17세기 오페라-오라토리오의 관습을 적용했다. 그러나 그가 강조한 것은 의식적인 측면이며 인간적인 측면은 배제했다. 이오카스테가 자살하고 오이디푸스가 스스로 장님이 되는 것을 알리는 해설의 각 악구마다 말미에 트럼펫 팡파르가 울리는 것이 그 전형적인 예이다. 이것은 인간적인 비극에 서사적인 비인간성을 부여한다. <오이디푸스 왕>은 때로 다소 놀라운 장엄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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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오페라 366
오이디푸스 왕
전 2막. 소포클레스의 희곡을 장 콕토가 대본으로 만들었다.
사전 지식
오이디푸스에 관한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용어는 자식(특히 아들)이 부모(특히 어머니)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성적(性的) 감정을 느낀다는 의미다. 이 작품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왕이 되기 전 오이디푸스의 행적을 살펴봐야 한다. 오이디푸스는 테베(Thebes)의 라이오스(Laius) 왕과 이오카스테(Jocasta) 왕비 사이에서 태어났다. 왕은 아들 오이디푸스가 언젠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신의 계시(신탁)를 듣고는 이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아들 오이디푸스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복사뼈를 부러뜨리고 무릎을 꺾어 걸어 다니지 못하게 한 뒤 산 속에 버릴 생각을 했으나, 차마 어린 아들에게 그런 참혹한 행동을 할 수 없어 신하(메신저)에게 먼 산 속에 죽게 내버리라고 지시한다. 신하는 오이디푸스가 측은해 산속 목자에게 맡긴다. 어린 오이디푸스는 사냥을 나온 코린토스(Corinth)의 폴리보스(Polybus) 왕을 만나 왕궁으로 함께 간다. 오이디푸스는 폴리보스 왕과 메로페(Merope) 왕비를 친부모로 알고 성장한다. 성장한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신탁이 자신에게 내렸음을 우연히 알고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피하기 위해 코린토스 왕궁을 떠나 방랑한다. 그는 우연히 라이오스 왕을 만난다. 라이오스가 친아버지인 줄 모르는 오이디푸스는 사소한 말다툼 끝에 왕과 결투를 벌여 그를 죽인다. 신탁이 이루어진 것이다.
에피소드
스트라빈스키는 이 오페라를 제전(祭典) 드라마로 만들었다. 그래서 장 콕토의 대본을 모두 라틴어로 번역했다. 가사가 라틴어이므로 전달에 엄숙함이 깃들어 있다. 마스크를 쓴 출연자들은 라틴어 가사를 충실히 전달하기 위해 상대방이 아닌 객석을 보고 노래했다.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은 이른바 신고전주의 스타일이다. 그렇지만 여러 스타일의 음악을 간간이 혼합해 사용했다. 다만 지나친 극적 표현과 스테이지 액션을 배제하고 마치 조각상을 끌로 쪼아 다듬는 것처럼 명확한 표현을 전달하게 했다. 나중에 스트라빈스키는 음악보다는 장 콕토의 내레이션에 초점을 맞추어 대본을 수정했다. 일례로 프롤로그의 해설은 프랑스어를 그대로 사용했다. 스트라빈스키의 <오이디푸스 왕>은 6편의 에피소드로 진행된다.
프롤로그에서는 스피커(내레이터)가 오이디푸스에게는 덫이 놓여 있다는 말로 드라마의 시작을 선언한다. 제1막에서는 세 가지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첫째, 테베의 시민들이 오이디푸스에게 테베를 역병에서 구해달라고 요청한다. 둘째, 크레온이 테베에 라이오스 왕을 죽인 자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테베로 돌아온다. 셋째, 오이디푸스가 눈먼 예언자 티레시아스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라고 강요한다. 오이디푸스는 살인범을 색출하여 추방할 것을 다짐한다.
오이디푸스는 전왕 라이오스의 살인범으로 이오카스테 왕비의 동생 크레온을 의심한다. 제2막에서도 세 가지 에피소드가 전개된다. 첫째, 이오카스테 왕비가 신의 계시의 진실성에 대해 의심을 품는다. 둘째, 오이디푸스는 자기가 어떤 노인을 죽인 장소가 라이오스 왕이 살해당한 장소와 같다는 것을 알고는 심적 갈등을 겪는다. 셋째, 메신저와 목자의 입을 통해 진실이 밝혀진다. 오이디푸스가 자기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했다는 내용이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는 메신저가 이오카스테 왕비의 죽음과 오이디푸스가 스스로 눈을 찔러 장님이 된 뒤 테베에서 추방된 사연 등을 전한다.
줄거리
[제1막] 오이디푸스가 테베의 왕이 되고 몇 년이 흘렀다. 테베의 시민들이 왕궁으로 몰려와 전왕 라이오스가 무참히 살해된 데 대해 신들의 노여움이 크므로 테베를 신들의 저주에서 구해달라고 외친다. 테베는 오래전에 있었던 것처럼 역병에 시달린다. 오이디푸스는 라이오스 살해범을 찾아 멀리 추방할 것을 약속한다. 눈먼 예언자 티레시아스(Tiresias)는 오이디푸스에게 그 일을 중지하는 것이 좋을 것임을 암시한다. 오이디푸스는 이오카스테 왕비의 동생 크레온(Creon)이 왕좌를 차지할 목적으로 전왕 살해에 연루된 것으로 짐작해 티레시아스의 권고를 강력히 거부하며 비난한다.
[제2막] 오이디푸스는 라이오스 살해의 유일한 목격자인 라이오스의 하인을 찾는다. 그 하인은 오이디푸스가 테베의 왕이 되자 종적을 감추었다. 메신저가 들어와 코린토스의 폴리부스 왕이 사망했음을 전한다. 메신저는 오이디푸스가 폴리부스 왕의 양자임을 밝히면서, 오이디푸스의 생부와 생모가 누군지는 모른다고 말한다. 오이디푸스와 메신저의 대화를 들은 이오카스테 왕비는 그제야 진실이 무엇인지 깨닫고는 깊은 죄책감과 절망으로 왕궁을 빠져나와 도피한다.
얼마 후 오이디푸스도 진실을 알게 된다. 오이디푸스는 어머니의 뒤를 쫓아간다. 또 다른 메신저가 무대에서 공연되지 않은 뒷이야기를 전한다. 산속으로 도피한 이오카스테 왕비는 기구한 운명을 한탄하며 나무에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주검이 된 어머니를 발견한 오이디푸스는 어머니의 옷에 달려 있는 핀으로 자기 눈을 찔러 영원히 앞을 보지 못하게 된다. 드라마는 오이디푸스가 자기 아이들을 외삼촌 크레온에게 부탁하며 멀리 사라지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이디푸스 왕 [Oedipus Rex, King Oedipus] (OPERA 366, 2011. 6. 27., 한울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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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자료 ===
그리스로마신화 인물백과
오이디푸스 Oedipus
테바이의 왕
요약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테바이의 왕이다. 테바이 왕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되리라는 신탁을 때문에 세상에 나오자마자 산속에 버려졌다. 하지만 목동에게 발견되어 요행히 살아남았고 이웃나라의 왕자로 성장하여 결국 신탁의 예언대로 아버지를 죽이고 테바이의 왕위에 올라 어머니와 결혼하게 된다.
오이디푸스 인물관계도
오이디푸스는 테바이 왕 라이오스와 메노이케우스의 딸 이오카스테 사이에서 태어났다.
오이디푸스는 카드모스 가계에 속한다. 오이디푸스의 증조부 폴리도로스는 카드모스의 아들 중 한 명으로 닉테이스와 결혼하여 오이디푸스의 조부 라브다코스를 낳았다. 닉테이스의 아버지 닉테우스는 용의 이빨을 땅에 뿌려 태어난 ‘스파르토이’ 중 하나인 크토니오스의 후손이다. 오이디푸스의 어머니 이오카스테는 역시 ‘스파르토이’ 중 하나인 에키온의 후손으로 간주되며, 테바이의 섭정 크레온과는 남매지간이다. 오이디푸스의 선조들은 모두 테바이의 통치자였다.
오이디푸스는 어머니 이오카스테와 결혼하여 두 딸 안티고네와 이스메네, 두 아들 폴리네우케스와 에테오클레스를 낳았다.
신화 이야기
부어오른 발
오이디푸스의 아버지인 테바이 왕 라이오스는 젊은 시절 피사 왕 펠롭스의 궁에서 망명생활을 한 적이 있는데 이때 펠롭스의 아들인 미소년 크리시포스를 사랑하여 겁탈했다고 한다. 크리시포스는 이를 수치스럽게 여겨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아들을 잃은 펠롭스는 라이오스에게 절대로 아들을 얻지 못할 것이며 행여 얻게 되더라도 그 아들의 손에 목숨을 잃게 되리라는 저주를 퍼부었다 (하지만 크리시포스는 이복형제인 아트레우스와 티에스테스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설도 있다).
테바이로 돌아온 라이오스는 메노이케우스의 딸 이오카스테와 결혼하였지만 부부 사이에서는 오랜 세월 자식이 태어나지 않았다. 라이오스 왕은 델포이의 신탁소를 찾아가 그 이유를 물었고, 신탁은 그가 얻게 될 아들이 장차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될 거라고 예언하였다.
얼마 뒤 실제로 이오카스테가 아이를 임신하자 라이오스는 신탁의 예언이 실현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발목을 뚫어 가죽 끈으로 묶은 뒤 부하를 시켜 인적이 없는 산에 내다버리게 하였다. 하지만 곧 죽을 줄 알았던 아이는 코린토스의 목동에게 발견되어 살아남았고, 목동은 아이를 자식이 없어 안타까워하는 코린토스의 왕 폴리보스와 그의 아내 메로페(혹은 페리보이아)에게 데려다 주었다 (혹은 아이를 버리라는 명을 받은 라이오스의 부하가 아이를 불쌍히 여겨 코린토스의 목동에게 넘겨주었다는 설도 있다). 폴리보스 부부는 아이의 발이 심하게 부어 있는 것을 보고 이름을 오이디푸스라고 지었다. 오이디푸스는 ‘부어오른 발’이라는 뜻이다.
코린토스의 왕자
오이디푸스는 폴리보스 왕의 궁전에서 자신의 혈통을 모른 채 성장하였다. 오이디푸스가 청년이 되었을 때 한 코린토스 사람이 말다툼 끝에 그가 왕의 친자식이 아니라 주워온 아이였다는 말을 하였다. 오이디푸스는 부모에게 사실을 물었지만 속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하자 신탁소를 찾아갔다. 하지만 신탁은 그가 원하는 대답 대신 충격적인 예언을 하였다. 그가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자기 어머니와 결혼하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폴리보스 왕과 메로페 왕비를 여전히 친부모로 믿고 있던 오이디푸스는 신탁의 예언이 실현되지 못하도록 코린토스를 영영 떠나기로 결심하였다.
아버지 살해
코린토스를 떠난 오이디푸스는 보이오티아로 가는 길목에서 마차를 탄 라이오스 일행과 마주쳤다. (일설에는 오이디푸스가 달아난 말을 찾아오는 길이었다고도 한다). 라이오스는 나라에 반은 사자이고 반은 여자인 스핑크스라는 괴물이 나타나 사람을 해치는 탓에 민심이 흉흉해지자 신의 뜻을 묻기 위해 델포이로 가는 길이었다. 오이디푸스는 물론 자신의 혈통을 모르고 있었으므로 그가 자신의 친아버지라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라이오스의 시종 폴리폰테스는 오이디푸스에게 마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비켜서라고 했지만 오이디푸스는 말을 듣지 않았다. 폴리폰테스가 시비 끝에 자신의 말을 죽이자 화가 난 오이디푸스는 라이오스의 일행을 도망친 하인 한 명만 빼고 모두 죽여 버렸다. 이로써 그가 친부를 죽인다는 신탁의 예언이 실현되었다.
어머니와 결혼
그 사이 테바이에는 라이오스 왕의 죽음이 알려졌고, 그렇잖아도 스핑크스 때문에 공포에 휩싸여 있던 테바이의 민심은 왕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으로 더욱 흉흉해졌다. 왕의 죽음으로 테바이의 섭정이 된 이오카스테의 오라비 크레온은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스핑크스를 퇴치하는 사람에게는 테바이의 왕위와 이오카스테 왕비를 아내로 주겠다고 공표하였다.
얼마 후 여행을 계속하던 오이디푸스는 테바이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높은 바위에 앉은 스핑크스를 만났다. 그곳에서 스핑크스는 지나는 사람들에게 수수께끼를 내고 풀지 못하면 잡아먹고 있었다.
스핑크스는 오이디푸스에게 두 가지 수수께끼를 냈다. ‘한때는 두 발로 걷고, 한때는 세 발로 걷고, 한때는 네 발로 걷는데, 발이 많을수록 더 약한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두 자매가 있는데 하나는 다른 하나를 낳고, 다른 하나는 또 다시 다른 하나를 낳는 것이 무엇인가?’ 오이디푸스는 곧 수수께끼를 풀었다.
첫 번째 수수께끼의 답은 인간이었다. 인간은 아기일 때는 네 발로 기고 늙어서는 지팡이에 의지하여 세 발로 걷기 때문이다. 두 번째 수수께끼의 답은 매일같이 서로 교차하는 밤과 낮이었다. 오디세우스가 수수께끼를 풀자 그동안 이 수수께끼로 수많은 테바이 사람들을 잡아먹었던 스핑크스는 분을 참지 못하고 앉아 있던 바위에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
오이디푸스는 크레온이 공표한 대로 테바이의 왕이 되고 이오카스테를 아내로 맞음으로써 자기 어머니와 결혼하리라는 신탁의 예언도 이루어지게 되었다.
밝혀진 비밀
호메로스에 따르면 그러고 얼마 뒤 이오카스테는 오이디푸스의 발목에 난 상처를 보고 그가 자기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목을 매고 죽었고, 오이디푸스는 계속 테바이를 다스리다 전쟁터에서 최후를 맞았다고 한다.
하지만 비극작가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을 더욱 드라마틱하고 비극적으로 만들었다. 그에 따르면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왕위에 오른 뒤 테바이에 계속 역병이 창궐하자 델포이의 신탁에 재앙의 원인을 묻게 하였다. 신탁은 라이오스 왕을 살해한 자를 찾아내어 나라에서 추방해야 역병이 그칠 것이라는 답을 내렸다. 이에 오이디푸스 왕은 선왕 라이오스의 살해범을 찾으라는 명을 내렸고, 눈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신탁의 예언이 오이디푸스 자신을 향하고 있다고 경고하였다. 오이디푸스가 혼란스러워하자 이오카스테 왕비는 과거의 예를 들며 테이레시아스의 경고를 반박하려 하였다.
예전에 라이오스 왕이 아들의 손에 죽고 자신은 제 배로 낳은 아들과 결혼하게 될 거라는 신탁이 있었지만 라이오스 왕은 델포이로 가는 길목에서 강도를 만나 죽었고 자신이 낳은 아들은 산속에 버려져 죽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오카스테 왕비의 말은 예전에 같은 길목에서 사람을 해친 적이 있는 오이디푸스를 더욱 두려움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오이디푸스는 라이오스의 명으로 아이를 산속에 버린 부하를 수소문하여 데려오게 하였다. 바로 그때 코린토스에서 특사가 찾아와 폴리보스 왕의 죽음을 알렸다.
코린토스의 특사는 오이디푸스에게 이제 부왕이 죽었으니 코린토스로 돌아와 왕위를 이어달라고 하였다. 하지만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어머니와 결혼하게 되리라는 신탁을 두려워하여 코린토스로 돌아가기를 거절하였다. 그러자 코린토스의 특사는 그가 실은 주워온 아이였다며 오이디푸스를 안심시키려 하였다. 그 특사는 다름 아닌 오이디푸스를 산속에서 주워 폴리보스의 궁으로 데려간 목동이었던 것이다. 결국 라이오스의 옛 부하와 코린토스의 특사를 통해 모든 진실이 밝혀지자 이오카스테 왕비는 목을 매고 죽었고 오이디푸스는 왕비의 브로치로 자기 눈을 찔러 장님이 되었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그 후 오이디푸스는 신탁의 지시대로 테바이에서 추방되었고 그가 이오카스테 왕비에게서 얻은 맏딸 안티고네는 장님이 된 아버지의 방랑길에 동반자가 되어 따라나섰다. 두 부녀는 신탁에 따라 오이디푸스가 최후를 맞이할 운명의 땅인 아테네 근처의 마을 콜로노스까지 함께 갔다. 오이디푸스와 이오카스테 사이에서는 그 외에도 딸 한 명과 아들 두 명이 더 있었지만 이들은 아버지 곁에 머물기를 거부하였다.
테바이 섭정 크레온과 오이디푸스의 아들은 오이디푸스가 묻히는 땅에 신들의 축복이 있으리라는 신탁을 듣자 그를 다시 테바이로 데려오려 했지만 아테네 왕 테세우스의 환대를 고맙게 여긴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유해가 아티카 땅에 묻히도록 지시하고 마침내 숨을 거두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정신분석학을 창시하여 현대 심리학과 심리치료에 지대한 공헌을 한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신화에서 자신이 ‘오이디푸스 단계’라고 명명한 극적이고 복잡한 심리적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원초적 표현을 발견하였다. 이 단계에서 남자아이들은 아버지에게서 이탈하여 어머니를 욕망의 대상으로 느끼게 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이 단계를 성공적으로 거쳐나가지 못한 사람은 평생 성적 자신감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립적인 인간으로 성장하지도 못한다. 이 단계에서 극복하지 못하고 남겨놓은 죄의식과 불안은 무의식 속으로 ‘억압’되어 결국 심각한 정신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유일한 치료는 무의식을 의식으로 끌어올리는 일이다. (게롤트 구드리히, 『신화』, 해냄출판사)
[네이버 지식백과] 오이디푸스 [Oedipus] - 테바이의 왕 (그리스로마신화 인물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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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불멸의 오페라 3 / 박종호> ★★★
누구도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오이디푸스 왕>의 뛰어난 오페라 프로덕션이 바로 일본 산골에서 올라간 무대다. 조지 티시핀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무대미술을 바탕으로 한 줄리 테이머의 연출은 혁신적이며 메시지가 강하면서도 아름답다. 동양을 대표하는 일본적인 무대와 무용이 서양을 대표하는 그리스 고전과 상통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제시 노먼(이오카스테 역)은 최고의 노래를 부르고 필립 랭그리지(오이디푸스 역)나 브린 터펠(크레온 역) 등도 훌륭하다.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와 그가 설립한 사이토 기넨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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