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모(48·여)씨는 지난 1일 오전 1시쯤 서울 거여동에서 박모(58)씨가 운행하는 영업용 택시에 승차했다. 만취한 상태였던 최씨는 목적지가 어디냐고 묻는 운전사 박씨에게 “일단 유턴을 하라”며 소리친 후 갑자기 뒤통수를 때리고 목을 졸랐다. 깜짝 놀란 박씨는 가까스로 앞차와의 추돌을 피한 후 멈춰섰다. 박씨는 경찰에 신고했고 최씨는 송파경찰서에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운전자폭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대중교통 운전자의 안전 운행을 보장하기 위해 2007년 4월3일부터 특가법상 운전자폭행죄가 시행되고 있다. 법안 취지는 운전 중인 사람을 폭행했을 때 일반 폭행보다 강하게 처벌해 운전자와 대중교통 이용자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행 2년이 된 지금 대중교통 운전자들은 여전히 폭행에 노출돼 있다.
법 조항 자체가 모호한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 법은 ‘운전 중’인 운전자 폭행에만 적용된다. ‘운전 중’이란 ‘차가 굴러가는 동안’이다. 이 때문에 경찰은 특가법 혐의 적용에 소극적이다. 정차되어 있는 상황에서 폭행이 이뤄질 경우 단순폭행 사건이 된다.
포천중문의대 강남차병원 정신과 서호석 교수는 “폭행이나 욕설 등 위해를 당하면 신체적 흥분이 극도로 높아지기 때문에 이후 운전자의 주의집중력이 심하게 저하되고 사고가 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특가법상 운전자폭행죄의 범위를 단순히 운전 중 뿐 아니라 ‘운전 업무를 하는 중’으로 넓힐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법 조항의 모호성은 경미한 처벌로 이어졌다. 2007년 4월 이후 2823명(월 313명), 지난해 4451명(월 370명)이 운전자폭행 혐의로 입건됐지만 정작 특가법이 적용된 경우는 각각 302건, 1004건에 불과했다. 게다가 지난해 법원에서 처리된 1004건 중 적은 액수의 벌금형, 집행유예 등 약한 처벌에 그친 사례가 818건(81.4%)에 달했다.
운전자를 폭행했을 때 가중처벌이 된다는 것을 아는 시민은 많지 않았다. 회사원 김모(33)씨는 “택시기사와 실랑이가 붙어 싸울 뻔한 적이 있지만 가중처벌 되는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기사들이 느끼는 위협은 전혀 줄지 않았다. 택시기사 백성열(47)씨는 “일반시민들은 ‘운전자폭행죄’가 가중처벌될 정도로 중대한 범죄라는 것을 모른다. 택시기사는 취객들의 폭행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정기덕(56)씨 역시 “운전자폭행은 목격자가 없어 혐의 입증이 어렵기 때문에 가해자가 쉽게 풀려난다”며 “택시운전자를 보호하도록 법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련 법안을 처음 발의했던 한나라당 안상수 의원은 “대중교통 기사 폭행은 국민의 안전에 심대한 위협”이라며 “법이 제정됐는데도 운전자폭행이 줄지 않고 있으므로 적극적으로 경각심을 일깨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