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에의 매혹 / 김행숙
이 집에 자주 들르는 이유도 커다란 유리창 때문이라고 말했지. 망원경의 성능이 좋아질수록 밤하늘에 나타나는 별들도 많아지니까.
뭐? 우리 동네에 커피 전문점이 부쩍 많아진 이유가 커다란 유리창 때문이라고? 백 년 전 젊은이들에게 유리창은 모던하고 신비로운 물체였어. 세상의 모든 골목에서는 유리창을 깨뜨린 아이가 혼쭐나는 날들이 백 년 동안 반복되었지. 유리창은 있으나 없으나 똑같을 것 같은데.
똑같다고 말할 때, 너는 잠깐 이 세상에서 가장 순진한 얼굴이 되었다. 이 바보야. 이렇게 환한 커피 전문점에서 유리창이 밤을 밀어낼 때, 어둠은 거울 속처럼 너의 얼굴을 가져간다.
커피를 마시며 시험공부를 하고 있다. 이번엔 꼭 시험에 합격하여 공무원이 되었으면 좋겠다. 여섯 시 정각에 퇴근하는.
여기에 앉아 있으면 저녁 여섯 시 무렵부터 시작되는 마술을 볼 수 있지. 세상의 모든 커피 전문점 2층의 천장에 박힌 알전구들이 유리창 너머 허공 속으로 한 개씩 한 개씩 늘어서는…… 놀라운 관경을. 나는 저녁 여덟 시에 청색 하늘에 떠 있는 전구들을 바라 보고 있으면…… 어쩐지 친구를 한 명씩 한 명씩 잃어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유리창 너머에서.
사람들은 백 년 동안 한결같이 유리창을 사랑했다는 생각이 들어. 유리창을 통과하여 찻집으로 날아든 하얀 새를 보면서, 유리창이 가짜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새가 가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마주 앉아 커피를 홀짝거리고 있어.
밤에 / 김행숙
밤에 날카로운 것이 없다면 빛은 어디서 생길까. 날카로운 것이 있어서 밤에 몸이 어두워지면 몇 개의 못이 반짝거린다. 나무 의자처럼 나는 못이 필요했다. 나는 밤에 내리는 눈처럼 앉아서, 앉아서 기다렸다.
나는 나를, 나는 나를, 나는 나를, 또 덮었다. 어둠이 깊어...... 진다. 보이지 않는 것을 많이 가진 밤이다. 밤에 네가 보이지 않는 것은 밤의 우물, 밤의 끈적이는 캐러멜, 밤의 진실. 밤에 나는 네가 떠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낮에 네가 보이지 않는 것은 낮의 스피커, 낮의 트럭, 낮의 불가능성, 낮의 진실. 낮에 나는 네가 떠났다고 결론 내렸다.
죽은 사람에게 입히는 옷은 호주머니가 없고, 계절이 없고, 낮과 밤이 없겠지...... 그렇게 많은 것이 없다면 밤과 비슷할 것이다. 밤에 우리는 서로 닮는다. 밤에 네가 보이지 않는 것은 내가 보이지 않는 것같이, 밤하늘은 밤바다같이.
낮 / 김행숙
너의 주위는 몇 개의 눈동자가 숨어 있는 떨기나무 같은 것. 가시들은 눈동자의 것. 덤불의 것.
너의 주위는 밝다.
하루 종일 불을 켜두었다. 시간은 인공호수 같다.
열두 시간과 열두 시간이 똑같았다. 사랑은 어둠을 좋아했으므로 사랑하지 않는 날들이 지속된다.
두 개의 바퀴 / 김행숙
두 개의 바퀴를 쓰러뜨리지 않고 계속 굴리기 위해.
모든 자전거 도로는 거대한 검은 허파로 빨려 들어간다.
뜨거운 연기를 토하는 산이 보이는 도시에서 살고 있어.
몇 백 년 동안.
혹은 자전거에서 우주선까지.
너에게 엽서 한 장을 띄우는 이유.
이쪽 빌딩에서 저쪽 빌딩으로 날아가는 새와 같지 않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편의점에 들어갔다. 생수와 담배와 콘돔을 샀다.
자전거 도둑이 없는 도시에서 살고 있어.
그까짓 자전거를 타고 네가 영원히 보이지 않을 때까지 도주할 순 없지.
너는 뭔가를 꼭 붙잡고 싶어 했다.
그러나 여기에 있는 것들.
빙빙 도는 두 개의 바퀴처럼.
한 개의 머리에 두 개의 귀가 존재하는 이유.
네가 기울어질 때 쏟아지지 않는 것들.
반대쪽으로 기울어질 때에도 쏟아지지 않는 것들.
검은 숲의 입구가 많이 존재하는 이유.
가을에 큰 홍수가 있을 거라는군.
별자리가 이동하고 있어.
겨울에 눈이 내리지 않을 거라는군. 괜찮지?
낮과 밤의 순서가 뒤집혀도 이틀만 지나면 너는 그 밤이 그 밤같이 곤하게 잠이 들고.
바닷물이 따뜻해지고 꿈이 미지근해진다.
너는 곧 잊혀질 거야.
1인용 식탁 / 김행숙
1인용 식탁이 되는 이유…...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똑같은 가구가 불러일으키는 상념이 달라졌다는 것을 어느 날 알게 되는 것이다.
마음이 약해질 때가 있는 것이다. 나는 마음속에서 의자 몇 개를 꺼내놓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런 의자에 앉힐 수 있는 존재란 유령들뿐이다…... 그런 충고는 대체 누가 하는 것인지 묻는 기분으로 나는 입을 벌리게 되는 것이다.
마음에서 하는 사랑과 침대에서 하는 사랑은 다른 것이다…...
혹은, 마음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과 침대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다른 차원의 사건이다…...
나는 어느 쪽의 사건에 휘말렸을까. 꿈과 꿈같은 것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잘못 알고 있는 것들로만 이야기가 만들어진다면…... 나는 저녁만찬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결혼한 적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두 번째 결혼을 한 적이 있었을 것이다.
축하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사람들이…... 몰려온다. 내가 또다시 공포에 빠지는 이유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