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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글>
하느님 찾아 떠날 때...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할까요?
더도 말고 자기 자신‘전부’를 가져가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외관상으로만 떠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의 환상과 추상적 모형만을 가지고 갑니다.
그들은 길을 떠나기에 앞서 자기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려 합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만들어진 인물, 채색되고 책에서 모방한 인물로 꾸밉니다.
그리고는 자기 자신의 그림자요 로보트인 가공의 인물이 이제는 하느님을 찾으라 떠나보냅니다.
그들은 한 번도 그들의 전 존재로서 실지 체험에 뛰어들지 않습니다.
떠나야 할 때는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나귀에 실고
자기 몸, 정신, 영혼을 생긴 그대로 함께 가지고 떠나야 하며
위대함과 약함, 죄로 얼룩진 과거와 원대한 희망들.
가장 천박하고 격렬한 경향들... 이 모든 것을 지고 떠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모두가 ‘불’속을 지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영혼과 육신이 함께 하느님을 인식할 수 있는 인간적 존재가 되기 위하여,
이 모든 것은 결국에는 하나로 합쳐져야 합니다.
- <정관의 경로> 中에서 일부 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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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영적지도신부 훈화 >
떠나는 삶에서...
글 : 윤 클레멘트 (양호) 신부님
<전주교구 소속 지도 신부>
25일간 몸을 두었던 파트나의 아트메다르샨에서
델히의 S.Xavier로 갑니다.
델히에서 이틀 더 묵을 것입니다.
그리고 서울로 갑니다.
떠나왔습니다. 지금까지...
움직이고 옮겨왔습니다. 지금까지...
늘 떠나는 삶으로...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삶은 떠남입니다...
삶은 움직입니다...
삶은 역동입니다...
그러나 고요 속에서 그리고 침묵 안에서...
Contemplation in action ! ( 행동 속에서의 묵상 ! )
action in Contemplation ! ( 묵상하면서 행동 ! )
내 작은 삶의 모토입니다...
기도와 행동...
평화와 역동...
사랑과 떠남...
진리와 헌신입니다.
삶은 떠나는 것입니다.
머물면 성장하지 않습니다.
움직이면 나아집니다.
행동은 진리입니다.
지금껏 떠나온 나의 작은 생애는
지금도 끊임없이 떠나고 있습니다.
고향에서 타향으로...
머무름에서 움직임으로...
사랑에서 승화로...
폭풍에서 호수로...
미성숙에서 성숙으로...
미완성에서 완성으로...
떠나고 변화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사람들, 자신도...
진리에 헌신하고,
기도에 생명을 둔 채...
지금은, 지금은...
페트나에서 델히로 떠납니다...
또 누군가들을 만나고...
또 무엇인가들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흠숭, 찬미, 감사...
기도, 사랑, 평화...
침묵, 기쁨, 진리로 살고 싶음입니다.
떠나고 싶음입니다...
어제도 떠났습니다.
오늘도 떠납니다.
내일도 떠날 것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 함께...
- 신부님의 ‘순례자의 노래’ 中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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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인 대축일
2020. 11. 1
마태오 5, 1 ~ 12ㄴ
♠ 복음 공부 –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 들어가기 전 : 그 옛날 모세가 시나이 산에 올라가서 하느님께로부터 율법을 받았던 것처럼 이제 예수님께서는 산 위에 오르시어 제자들과 군중들을 가르치신다. 여기서 다뤄질 산상 설교는 두 가지 주제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나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요, 다른 하나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일이다. 하느님의 뜻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구체적인 삶 안에서 구현해야 한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 산상 설교를 복음서의 다섯 설교(산상설교 5-7장, 파견설교 10장, 비유설교 13장, 공동체 설교 18장, 심판설교 24-25장) 가운데 가장 먼저, 가장 길게 다룬다. 이는 그가 이 가르침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보여 준다. 그는 산상설교 전체의 열쇠가 되는 ‘참행복 선언’을 산상설교 서두에 8가지로 요약, 역설적으로 제시하면서 모든 이에게 최대 행복인 하늘나라 백성이 되는 자격을 제시한다.
* 1-2절 : 산상설교의 전체적 배경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산’에 올라가 앉아 ‘복음 중의 복음’이며 하느님 나라의 토대가 놓여 있는 산상설교를 시작한다.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설교를 시작하시기에 앞서 보이신 엄숙한 모습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율법을 받기 위해 산으로 오르는 모세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탈출19,3). 또한 군중은 시나이 산 아래에서 기다리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세보다 더 위대하신 분이다. 모세는 하느님의 계명이 적힌 판을 받고 내려왔을 따름이지만, 예수님은 산에 오르자, 좌정하듯 자리를 잡고 직접 당신의 말씀을 들려주신다. 물론 그 말씀은 율법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한다.
* 3절 : 이 구절에서의 ‘행복하다’라는 말은 하느님께 사랑받는 존재로 귀하게 여김을 받으며, 인정과 존중으로 지지받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늘나라 백성의 참행복은 현실 자체가 비참할지라도 하느님의 뜻을 좇아 살아갈 때 축복을 받을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다. 이러한 행복은 하느님이 계시다는 확고한 믿음을 전제로 한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단순한 물질의 부족이나 어떤 결핍으로 인한 표면적인 궁핍함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핵심에 이르기까지 가난한 것을 뜻하며, 어떤 현세적 재물이나 쾌락도 채워줄 수 없는 텅 빈 상태를 말한다. 즉 하느님 앞에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음을 알고, 전적으로 하느님께 의탁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4절부터 이어지는 슬퍼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들, 의로움에 주린 사람들, 자비로운 사람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모두가 이 마음이 가난한 사람의 특징이다. 이렇듯 진정으로 가난한 제자의 삶은 전적으로 하느님께 신뢰하는 삶으로서 실제로 세상 재물을 소유하게 되더라도 그것에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다. 오직 하느님만이 그들의 목표가 되고 하늘나라만이 그들의 유일한 보상인 것이다. 따라서 이 첫 번째 참행복이 사실상 산상설교 전체를 이끌어내고 있다고 하겠다.
* 4절 : 세상의 고통, 죽음, 병, 불행한 갖가지 사건으로 슬픔을 겪는 이들에게 약속되는 위로는 하느님이 현존하신다는 사실과 그분이 최종적으로 오실 거라는 약속에서 비롯된다. 슬픔은 인간으로서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체험하는 순간이다. 이때 우리가 하느님께 마음을 연다면 그분의 사랑과 자비로 위로를 얻을 것이라는 것이다. (참조 : 묵시 21, 4 ⇒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 5절 : ‘마음이 가난한 사람(3절)’과 ‘온유한 사람’(5절)은 성경에서 동의어로 ‘겸손한 사람’ 곧 하느님 앞에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음을 알고 전적으로 하느님께 의탁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온유함’은 독선으로 인해 타인을 속단하거나 경멸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동료 인간들에게 드러내는 가난과 겸손의 정신이다. 이 온유함의 대표적 모범은 예수님 자신이시다(참조 : 마태 11, 29 ; 21, 5). 하느님백성이 약속된 땅을 선물로 받았듯이 이러한 온유한 사람들도 하늘나라를 얻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 6절 : 마태오가 강조하는 ‘의로움’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를 갈망하는 이들 모두에게 기본이 되어야 하는 자세이다. 하느님 안에서는 정의와 자비가 함께 가는데,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자비를 베푸셨듯이 우리 또한 자비를 실천할 때 우리를 의롭다고 말할 수 있다. ‘흡족하다’라는 말은 하늘나라의 표상으로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초대하시는 크고 풍요로운 잔치를(이사 25, 6-10) 뜻한다. 우리가 의로움에 주리며 목말라 할 때 바로 이러한 하느님 나라에 초대될 것이라는 것이다.
* 7절 : 자비롭다는 말은 하느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말로서, 하느님 최고의 자비는 죄의 용서이다. 구약에서도 하늘나라 도래를 죄의 용서와 동일시했다. 자비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한다. 왜냐하면 자신도 하느님의 자비로 용서받았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또 행복하다는 것이다.
* 8절 : 구약 시대에 하느님 계신 곳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은 몸과 마음이 깨끗한 자들에게만 허용되었다. 그런데 예수님 시대에 와서 “깨끗하다”는 개념이 단순히 법이나 세칙을 엄격히 따르는 것으로 퇴화해 버렸다. 예를 들면 시체나 나병환자의 접촉을 피하거나, 식사 전에 손을 씻으면 깨끗한 것으로 여겨진 것이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 외적 청결함만 강조하는 바리사이인들을 지적한 것이다. 깨끗함은 정의와 동의어로 마땅히 하느님께 돌려야 하는 것을 돌려드리는 것, 하느님을 향해 마음을 열어둔 사람들로서 오롯한 마음으로 그분을 찾는 사람을 말한다. 이런 사람들이 하느님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 9절 : 성경 안에서의 “평화” ⇒ “샬롬”은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하느님의 백성 사이에 이기심 없는, 흠 없는 삶을 의미한다. 예수님 자신이 ‘평화의 왕’으로 우리에게 오셨다. 죄나 온갖 형태의 불의에 의해 파괴된 평화를 인류에게 회복시켜 주는 것이 하느님 자신의 일이요, 하느님께서 당신 아들에게 맡긴 임무이다(이사 9, 6). 그러므로 평화를 이루는 이들 또한 하느님의 자녀로 불린다는 것이다.
* 10절 : 지금까지 나온 행복의 결론 구절로서 박해 받는 사람들에게 하늘나라를 약속하신다. 참행복에 서술된 대로 정의와 자비와 평화를 위해 일하다 보면, 당시 마태오 공동체의 신자들이 겪어야 했던 것처럼 박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이 구절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실제로 하느님의 뜻을 추구하다가 그 결과로 당하는 박해를 감수하는 것, 바로 그 자체가 하늘나라를 획득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 11-12절 : 구약 예언자, 예레미야, 에제키엘, 아모스도 모두 하느님 말씀을 전하다 박해를 받았다. 즉 예부터 하느님을 증언한 사람들은 항상 고통을 받았음을 상기시키며, 그리스도를 따를 때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로 인해 생긴 박해라면 기뻐할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종종 자신의 잘못된 삶 때문에 가해지는 비난도 박해라고 합리화시키는 경우도 있는데,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해 생긴 질책을 박해라고 여긴다면 곤란하다.
♠ 복음 요약 : 예수님 시대의 율법학자들은 율법을 준수함으로써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했고,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제의를 준수해야 축복을 누릴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반해 예수님께서는 참행복 선언을 통해 율법의 참뜻,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축복을 받는다고 하신다. 그런데 인간들에게 최대의 보상을 가져다주는 이 길은 세상적인 기준을 완전히 뒤집는 반전을 요구하는 만큼 결코 쉬운 길은 아니다.
♠ 대화 방향 : ⓵ 물질만능의 현세에서 8가지 참행복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까요? 나 혹은 주변에 실제로 참행복 선언을 살아낸 성인이나 이웃이 있다면 소개해 봅시다 (예: 성 프란치스코 등)
♠ 참고 문헌 : ▪ 생활성서 여정, 베소라 성서주해, 200주년 성서주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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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 32주일 / 평신도 주일
2020. 11. 8
마태오 25, 1 ~ 13
♠ 복음 공부 - 열 처녀의 비유
☞ 들어가기 전 : 이 ‘열 처녀의 비유는 마태오 복음에만 나오는 특수사료(SM)로 초대교회에서 전승된 것이다. 또한 상징에 불과한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유대인의 혼인풍습을 전제로 한다. 구약에서는 야훼와 이스라엘의 관계를 주님의 혼인 계약으로 제시되었고, 아가서에서는 이 사랑을 부부간의 사랑으로 묘사하고 있다. 새로운 이스라엘에는 그리스도가 오시며 새로운 계약의 혼례식을 올린다. 그리스도는 신랑이고 교회는 신부다. 세례자 요한은 자기 자신을 신랑의 친구(요한3.29)라고 정의했다. 예수님께서는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이제 위대한 혼인잔치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제자들이 깨닫도록 해주신다. 지금은 약혼시기에 지나지 않는다. 마지막 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혼례식을 위해 신부를 집으로 데려 갈 것이다.
* 1~5절 : 1절은 이 단락의 제목이며 2-5절은 서곡이다. 1절의 ’신랑‘은 재림하신 그리스도를 말하며, ’슬기로운 처녀 다섯 명‘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킨 그리스도인들이며,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지키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다. 신랑은 신부집에서 장인과 혼인 계약서에 따른 세부사항을 협의하느라 신랑이 늦게 옴에 따라 생긴 일이다. 이는 예수님의 재림이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지연되면서 늘 깨어있는 삶을 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된다.
* 6~9절 : 본론으로 그리스도께서는 회개의 시간을 주기 위해 재림을 늦추시지만 반드시 오신다. 등잔에 채워야 할 기름은 생활 속에서 복음을 듣고, 실천하는 선행을 베푼 사랑을 뜻하며, 이것은 스스로 삶을 통해 마련할 수밖에 없고, 또 평소에 준비해 두어야 한다. 또한 나누어 줄 수 없을 만큼 때가 시급히 왔음을 뜻한다.
* 10~13절 : 결론으로 때가 되어 신랑이 오고 잔치가 시작되면 기름을 구해 보려는 때 늦은 방책은 소용없이 자신의 공덕에 따라 어떤 이에게는 기쁨과 구원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한편에 가감 없는 심판을 받게 되는 이들도 있다. 슬기론 자 또는 어리석은 자가 될 것인가는 전적으로 매일의 삶을 어떻게 살았는가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늘 깨어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일깨우고 있다.
♠ 복음 요약및 대화 방향 :
오늘 복음의 결론은 준비의 필요성입니다. 인간은 언제 죽음이 닥쳐 그리스도님 앞에 나아갈지 모르며, 언제 주님께서 오실지 모르는 이 때에 대한 준비가 미리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등불만으로 족한 것이 아니라, 여분의 기름까지 있어야 합니다. 어두운 세상에 기름 없는 등잔, 등잔만 보고도 등불인 줄 알고 저마다 등잔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등잔만 보고 등불인줄 알고 허상에 사로잡혀 세월은 보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기름은 불을 붙였을 때 빛이 되어 어두운 곳을 밝혀줍니다. 자기를 태우는 만큼 주위를 환하게 비추어 줍니다. 그 불빛을 보고 어두운 곳에 있는 사람은 밝은 곳으로 찾아 나설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등불 같은 사람을 원하는가 봅니다.
①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무엇을 준비 했으며, 예수님을 맞이하는 신부로서 나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② 신랑이 오기 전 졸다가 잠이 들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며, 나의 어떤 면일까요?
♠ 참고 문헌 및 추가 자료 : ▪ 마태오복음 해설 ( 리카르트 굿즈빌러 저 / 김태준 역 / 성바오로출판사) ▪ 유다인들의 혼인 풍습에 대하여 - 이스라엘에서는 약혼과 동시에 법적으로 혼인이 성립되는데, 신랑 신부가 일 년 동안 각자의 집에서 혼인을 준비합니다. 준비 기간이 끝나면 신부 집에서 신랑을 맞이하는 예식을 준비하는데 사막의 열대성으로 저녁에 예식을 시작합니다. 신랑이 자기 친구들과 함께 신부의 집으로 행차하면, 신부의 친구들은 등불을 들고 마중 나가서 모두 신부의 집으로 들어갑니다. 신랑은 신부를 데리고 하객들과 함께 다시 자기 집으로 가서 밤을 세우며 잔치를 벌이는데, 보통 한 주간이나 계속되는 잔치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혼인생활에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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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 33주일 / 세계 가난한 이의 날
2020. 11. 15
마태오 25, 14 ~ 30
♠ 복음 공부 -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 14절 : <여행을 떠나면서 > 루카 19:12~27을 보면, 왕위를 받기 위해 다른 나라로 떠나는 귀족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아마도 헤롯이 분봉왕 책봉을 받기 위해 오래도록 로마에 있었던 사실이나, 아니면 당시
상업을 하던 부호들이 먼 무역 여행을 위해 오랜 기간 집을 떠났던 사실에 근거한 비유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 같은 일상적 사실을 암시한 것이기 보다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이 땅에 성육신(Incarmation)하셨던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할 일을 맡기시고 승천하셨다가 다시 이 땅에 심판의 주로 오실 것을 묘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15~28절 : (1)소유하고 있는 양의 차이에 따라 성실성의 차이가 있을 수 없음을 나타내며, (2) 주인의 주관심사가 이윤을 많이 남기거나 적게 남기는 데에 있지 않고 주어진 여건 안에서 성실히 노력함으로써 주인의 기대에 부응(副應)하는 자세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실로 그들은 100% 충성과 성실을 통해 100% 결실과 만족을 주인께 돌려 드렸다.
* 29~30절 :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이러한 격언 구절은 마르코 4:25에서도 사용되고 마태오13:12에서도 비슷하게 사용된다. 특히 마르코복음에서는 달란트 비유와는 전혀 다른 내용에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이 구절은 독립적으로 전해져 사용되는 격언구임을 알 수 있다. 실로 예수께서는
비유를 마무리 짓는 결론적인 말을 대중이 익힌 사용하고 있는 격언구로 맺으신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기 일에 성실하게 충성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종말적 심판의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명료하게 보여주고 계신 것이다.
♠ 복음 요약:
1. 베드로의 외침을 들으시는 예수님
교황은 이 복음 말씀을 세계 가난한 이의 날과 연관시켜, 물에 빠지지 않게 구해달라는 베드로의 외침이 가난한 이들, 태아들, 굶주린 이들, 버림받은 노인들, 친구 하나 없이 “삶의 풍랑에 직면”한 이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고향을 떠나야만 하는 이들”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박탈당한 이들 안에서 메아리치고 있다고 말했다. “가난한 이들의 외침은 나날이 더 커져만 갑니다. 그러나 점점 더 부유해져 가는 극소수 가진 자들의 소음에 묻혀 그들의 외침은 갈수록 더 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2. 손을 뻗어 내미시는 예수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손을 내밀어 베드로를 구하신다. 교황은 예수님의 이 행위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과의 관계를 통해 우리의 신앙을 실천하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한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교황은 무관심과 좌절감 등의 감정으로 짓눌려 팔짱을 끼고 바라만 보는 태도는 그리스도인에게 용납될 수 없는 악에 대한 대응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것처럼, 반드시 손을 뻗어 내밀어야만 합니다.” 아울러 교황은 이렇게 덧붙였다.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의 외침을 들으십니다. 우리도 과연 그렇습니까?”
3. 대가 없이 주시는 예수님
끝으로 교황은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의무감으로서가 아니라 대가 없이 기꺼이” 베풀길 바라시며, 되갚을 수 없는 이들에게도 베풀길 바라신다면서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
“주님, 손을 내밀어 저희를 단단히 붙잡아 주소서. 저희가 주님처럼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저희가 일시적인 것들을 뒤로하는 법을 알게 하시고, 주위 사람들에게 안심의 원천이 될 수 있게 하시며, 도움이 필요한 모든 이들에게 대가 없이 기꺼이 베풀 수 있게 하소서. 아멘.”
♠ 대화 방향 : 내가 주위의 사람에게 댓가 없이 줄려고 생각한 적이 있는지.. ?
그런 마음이 지속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성서형제회 안에서 나눔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언제이고, 왜 그러는지 생각해 봅시다
♠ 참고 문헌 : ▪ 성경 주해서 ▪ 보득솔 (청년 성서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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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 성서 주간 -
2020. 11. 22
마태오 25, 31 ~ 46
♠ 복음 공부 -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
* 31~33절 : 주님께서 오시면 양과 염소들을 구별하시어 우측에 양들을 좌측에 염소들을 세우신다.
* 34~40절 : 양들은 하느님께 복 받은 사람들이며 천국을 차지하게 된다. 주님께서 굶주리고 목말랐을 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준 사람들이며, 주님께서 나그네였을 때 따뜻하게 맞아들인 사람들이다. 헐벗고 병들고 교도소를 방문하여 찾아주고 돌보아 준 사람들, 그 모든 선한 행동을 한 사람들은 ‘그 작은이들에게 해준 것이 바로 주님께 해드린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하지만 양들은 모른다. 주님을 보지 못했기에,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교도소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 41~46절 : 선행을 하지 않았던 “염소들에게는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 복음 요약 : 지난번 선종하셨던 허 데레사 님은 천국에서 해처럼 빛나고 계실 것입니다. 1984년 허 데레사 님은 그동안 선행들이 인정을 받으시어 김수한 추기경으로부터 가톨릭 전국 박애대상 사랑부문을 시상하셨다. 그분 수상에 관한 ‘가톨릭신문 기사 내용’ 을 발췌하여 옮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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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부문 허순덕 여사
매 순간을 주께 봉헌해온 30년가난한 이가 있는 곳이면 늘 함께 해와
〃보다 잘 드는「그분」의 연장 되고파〃『부모와 자식 사이에 어떻게 공로라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까? 다만 자식으로서의 효도를 한 것뿐입니다』한 가정의 주부로서、또 불치의병에 시달리는 병자로서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을 향한 지칠 줄 모르는 사랑으로 30년 세월을 살아온 허순덕(데레사ㆍ52ㆍ전주 복자성당) 여사는 제2회 가톨릭대상 사랑부문 대상 수상소감을 이같이 밝히면서『이 영광은 우리에게 신앙의 씨앗을 심어주신 순교선조들께 돌리고 싶다』고 두 손을 모았다. 1954년 나바위 성당에 우연히 갔다가 처음으로 대한 14처에 자석처럼 끌려 1955년 3월 영세한 허 여사는 달라고 하기도 전에 먼저주신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기 위해 매 순간을 그리스도께 봉헌키로 결심、거대한 사랑의 탑을 쌓아온 것이다. 허여사가 영세 이후 30년간 행한 사랑의 행각은 일일이 나열할 수가 없을 정도로 수다하다. 교회 내에서의 직책은 전주목자성당 교리교사 레지오단장 프란치스꼬 3회 수련장 애령회 총무 교도소후원회 사제양성후원회 회원 등 이지만 이 직책을 중심으로 한 그의 몸으로 뛰는 이웃사랑은 양로원 고아원 공소 갱생원 고학생 행려자 돕기 등 공적 사항에 나타난 것만도 19개 분야이다. 따라서 전주교구 내에서도「가난한 이가 있는 곳이면 항상 허 여사가 있다」는 얘기와 함께 미신자들 사이에서도「살아있는 성녀」로 불리기도 한다.
새벽4시면 기상、기도와 묵상 독서로 하루를 시작하는 허 여사의 놀라운 에너지의 원천은 바로 그리스도의 성체와 십자가에 대한 사랑과 믿음. 이 같은 믿음은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게 했고 이 새로운 이웃을 통해 허 여사는 사랑에 대한 맛을 알 수가 있었다. 이 사랑의 맛은 또 점점 깊어져 그리 넉넉치 못한 형편인데도 재정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활동 가르멜 수녀원 건립에 천만 원을 내어놓았고 그리스도인이라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행려자들의 영적 물적 지원에 남모르는 정성을 쏟았으며 복자성당 내에 빈첸시오의 집을 개설、사랑의 파급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사랑하지 않으면 몸이 아플 정도로 사랑에 익숙해져 있는 허 여사는 이번 수상으로 인해 작은 정성이 오히려 크게 드러난 것 같아 송구스럽다면서 그분이 허락하시는 한「보다 더 잘 드는 연장」으로 여생을 살아가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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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천국에서 이 글을 보시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아멘 !
♠ 대화 방향 : 지금 한국은 노령화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우리 주변의 미소한 사람들은 바로 독거노인들입니다. 주변에 있는 독거노인들에게 따스한 관심을 기울여 봅시다.
특히 우선 성서형제회 회원들 중에서 독거노인이 있는지 찾아보고 사랑을 실천합시다.
독거노인 한분을 소개합니다. 전주 서신동 하늘채 아파트 101동 1202호에 사시는 분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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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 1 주일
2020. 11. 29
마르코 13, 33 ~ 37
♠ 복음 공부 : ‘종말의 때는 언제인가?’ 라는 제자들의 첫 질문에 두 가지 비유로(13.28-29) 그때를 알려주시고, 경고의 말씀을 하신다(30-32). 종말의 표지로 무화과나무에 이어 멀리 떠난 주인과 종의 비유를 든다(34-36). 그리고 마르코는 종말의 일시는 아무도 모른다는 단절어(32절)와 주인을 기다리는 문지기 비유를 (34-36절)이용하여 13장의 결론을 내린다.
* 33~34절 : 항상 대비하라. 그 날과 그 시간은 종말과 재림의 시간이다. 그 시간은 아버지만 아신다고 한다. 예수님이 모르실리 없겠지만, 틀림없이 그날이 오기 때문에 너희 모든 그리스도인은 종들에게 권한을 준 주인이 언제 올 줄 모르기 때문에 주인이 각자에게 맡긴 책임을 성실하게 수행하면서 문지기처럼 조심하고 깨어 지키라”고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다.
* 35~37절 : 깨어있어라. 예수님시대 로마에서 통용되었던 4등분을 (저녁, 한밤중, 닭이 울 때, 이른 아침) 응용하여 예수님의 재림 시기의 불확실성을 부각시키며, 재림이 갑자기 이루어지기에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훈시하신다. “깨어 있어라” 를 4번이나 강조하면서 그릇된 열광주의(13.5-6.21-23)와 잠으로 표현된 부주위한 무관심(13.36)이란 두 가지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깨어 지키라” 고 거듭 일깨운다.
♠ 복음 요약 : 마르코복음 13장은 모든 복음의 지평을 종말까지 펼쳐 교회는 대림1주일로 예수님의 마지막 가르침인 “깨어 있어라” 라는 말을 4번이나 한다. 강조한 것은 ‘그때’가 언제일지 모르기 때문에 대림시기에 주님께 대한 희망과 기다림의 자세가 강조된다. 인류가 지금까지 걸어온 발자취가 역사이듯 우리의 삶도 각자의 역사 안에 신앙으로 깨어 있을 뿐만 아니라, 세상으로부터의 위장된 진리로 우리를 유혹시키는 수많은 세속적인 것으로부터 깨어 하느님께로 가는 걸림돌을 인지하여 회개하고, “아버지의 뜻이 내 삶 안에 이루어지기를” 청하는 기도의 삶으로 매일매일 성실하게 살아 미래의 희망으로 이끈다.
♠ 대화 방향: 대림시기는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는 기다림의 시기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자주 잠에 빠져든다. 그래서 그분의 뜻과 원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런 나에게 깨어있어라 하신다. 나에게 있어 “깨어있어라...” 는 말씀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요? (특히 대림절을 시작하면서...)
♠ 참고 문헌 : ▪ 예수님을 따라 (성서가족을 위한 마르코 복음서 해설 / 성서와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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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 기고 >
성서형제회, 창설 정신으로 되돌아 가자...- 제 16 부 -
권 토마 (순) / 안산 원곡본당 F・B
+ 찬미 예수님
전주교구에서 만든 성서형제회 자료는 우리가 과거를 살펴볼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기에 그러한 자료를 만들어 준비해주신 분들께 먼저 감사드린다.
나름대로 그 이전의 활동모습들을 다 표현할 수는 없었겠지만, 이 자료를 근거로 해서 본다면, 2가지 중요한 부분이 뚜렷하게 잘 나타나게 되는데, 그것은 창설자신부님의 깊은 고뇌가 고스란히 배어 있고, 초대 봉사자들의 엄청난 열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약 50년 전에는 혼란한 시기였기에 창설자 신부님의 고뇌를 잘 알 수는 없지만, 그분이 난곡지구에서, 그리고 청송에서의 모습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으리라 여긴다.
자료를 보면, 그분은 에콰도르에 가신 후에도 한국에 남아있는 성서형제회를 위해 다시 한국에 찾아오셔서 끔찍이 단체를 살피셨다.
그 이후의 모습은 완연히 달라졌다. 일 년에 한 번 있던 전국 규모의 수련회는 수련회와 묵상회가 전국적으로 두 번 이뤄졌고, 지역단위로 이루어지는 묵상회는 실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전까지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던 교구승인 문제에 대해서 신경을 쓰는 반면에, FB회원들의 성서공부모임이나 봉사자 양성에는 다소 등한시한 모습이 있는 듯하다. 창설자 신부님이 에쿠아도르 선교보고서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에서는 아나윔공동체의 맥이 끊어진 것 같이 보인다.
자료에 의하면, 한국 성서형제회에 2개 팀의 아나윔공동체에 있었다고 한다.
아나윔공동체는 수도공동체이고 독신주의를 표방한다고 창설자신부님은 보고서에서 말씀하신다.
창설자 신부님이 어떤 이유로 이들의 방향을 바꾼 지는 잘 모르겠지만, 시작은 수도회 재속회 형태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교구단체 모양으로 바뀌었다고 볼 수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수도회를 중심으로 재속회 형식으로 평신도모임을 하고 있다.
재속회 양식을 빌리지는 않았지만, 마리아회나 천주섭리회는 이런 모습을 조금 유연하게 적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처럼 소규모의 모임들이 여러 개 있고, 그들은 수도자를 통해서 팀리더를 양성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들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공동식사도 하고, 수도회에 모여서 친교를 갖기도 한다.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실내체육관등에 모여서 운동회와 신앙대회를 겸한 모임도 갖는다.
어떤 곳은 마치 수도자들이 하는 것처럼 입회청원기, 봉헌기를 거쳐서 종신서원도 갖는 의식도 갖는다고 한다.
교구단체로는 하기 어려운 프로그램들에 대해 그들은 장기간 동안 계획에 의해서 수도회의 지향에 따라 하느님께 나아가는 것을 실습과 훈련을 통해서 배우고 실천하며 세상에 적용하기도 한다.
남미 에콰도르는 말처럼 쉽게 되지는 않을 것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임 없이 해나간다는 것이다.
오래 전에 한국외방선교회에서 훈련을 시켜서 남미로 파견하기 시작했다.
그들 중에 더러는 보고서 형식이나 책을 통해서 그 사실을 알려준다.
남미 어느 지역에서 불만을 토로했다.
"신부님은 주일에 왜 미사를 드리지 않습니까?" 라고... 그 신부님은 미사시간이 되었는데 그 성당에서 신부님을 돌봐주는 자매님 외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 신부님은 기다리다가 미사를 드리고 돌아갔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곳 사람들은 미사시간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것이다.
‘왜 신부님이 미사를 기다려주지 않았느냐’ 는 것이다.
그 사람들은 가난하다. 그 사람들은 행사를 즐겨한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행사준비에는 돈을 많이 사용한단다.
그러나 그들이 성당에 대한 생각은 깊다고 한다. 태어난 아이들에게 유아세례는 반드시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들이 아무리 가난해도 그들이 가진 돈을 다 털어서라도 자신의 돈으로 성당을 짓는다고 한다. 그들이 천주교를 믿게 된 것은 그들 조상이 스스로 받아 믿기보다는 대체로 정복자들에 의해서 강제로 믿게 된 것이다.
에콰도르만 하더라도 오랫동안 최근까지 정복자들이 그 지역에 있는 원주민들에게 농장 등에서 일을 시켜도 품삯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품삯 대신 그곳에서 생산된 농작물 일부를 아주 조금 가져다 먹을 정도였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 식구들을 위해서 그들이 가까이 갈 수 없는 고지대나 저지대 습지대에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남미에서는 소공동체모임을 많이 한다. 신부님의 선교보고서는 교구 내에 몇 백 개의 코이노니아가 있다고 한다.
유럽에서 온 선교사 신부님들의 보고에 의하면, 가난한 지역에서는 수많은 소공동체가 있지만 대도시 부유한 백인들이 사는 곳은 모임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신앙도 편하게 하기를 원한다.
십자가를 지기보다는 즐겁게 행사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성서형제회에서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지만, 그 일에 희생하기보다는 즐거이 참여하기만을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특히 조선시대 선교사들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높은 산과 언덕을 몇 군데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앉아서 카톡이나 밴드 등으로 간단히 이를 해결하려고 한다.
우리들 중에서 힘든 일이 있거나 아픔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함께 하지 못하고 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놀라운 고백을 한다.
“세상이 나를 뭐라고 하느냐...?” “그러면 너는 내가 누구하고 생각하느냐...?” “주님은 그리스도이시고, 살아계시는 하느님의 아드님입니다.” 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주님은 “이것은 너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라고 하신다.
그리고 주님은 그런 일은 ‘십자가의 고난’을 받아야만 가능하다고 하였더니, 베드로가 이를 만류하자, 예수님은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며 꾸짖으신다.
우리가 고난을 겪지 않고 쉽게 구원을 받는다면 왜 우리는 우리의 죄고백과 용서의 청하는 일들을 해야 합니까?
왜 사도 바오로는 내가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쓰레기로 여기겠습니까?
우리는 이미 주님 이름을 부르면서 나의 죄를 고백함으로써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고, 이미 구원받았다고 하면서도 바오로는 이미 완성된 것이 아니고, 힘껏 달려가서 상을 받는다고 하였다.
주님은 사도 바오로의 편지글을 통해서 말씀하신다.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노력함으로써 이를 이룬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거저 우리에게 주셨다.” 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이를 거저 받았으니 남들에게도 거저 줌으로서 하느님이 하시는 일을 이 땅에서 완수해야 한다고 하신다.
창설자 신부님과 수도회 분들은 이를 위해서 먼 에콰도르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선서를 통해서 하느님과 공동체에서 서약한 우리는 이를 따르기 위해서 노력과 희생을 다 해야 하고, 이는 하느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일이고, 우리에게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여주심으로 우리가 하느님의 일을 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멘...!
성령강림대축일 성령으로 가득한 베드로가 여러 나라에서 모여든 사람들 앞에서 요엘 예언서를 선포하자 사람들은 세례를 받고 신자로서 공동체생활을 시작한다.
이제 우리도 성서형제회(FB) 설립 50주년을 앞두고서, 새로운 공동체생활을 하듯이 새로운 마음으로 맨 처음 창설자의 정신으로 코이노니아를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복음적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지 분명히 하나씩 정리해야 할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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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재정 회계 보고 >
♠ 2020년 9월분 F·B본부 입출금 내역
일자 | 내 용 | 수 입 | 지 출 | 잔 액 |
8 /30 | 전월 이월금 | 1,528,040 | ||
9 /14 | (서울 당산동) 로고스 팀 F·B 의연금 (9월분) | 50,000 | 1,578,040 | |
9 /24 | (전주 호성동) 예수성심 팀 F·B 의연금 | 40,000 | 1,618,040 | |
9 /25 | (서울 목3동) 복음의 기쁨 F·B 의연금 | 30,000 | 1,648,040 | |
9 /30 | (서울 당산동) 산상수훈 팀 F·B 의연금 | 50,000 | 1,698,040 | |
9 /30 | 사회복음화 지원금 (전주 교도소) (9월분) | 50,000 | 1,648,040 | |
9 /30 | 예수그리스도수녀회 에콰돌선교 후원회비 (9월분) | 30,000 | 1,618,040 | |
9 /30 | <기쁜소식지> 인쇄비 (10월호) | 170,000 | 1,448,040 | |
9 /30 | <기쁜소식지> 발송 우편요금 (10월호) | 40,000 | 1,408,040 | |
월간 전체 입출금 합계 | 170,000 | 290,000 | ****** | |
다음 달 이월금 (통장 잔고) | 1,408,040 | |||
<< 입금할 계좌 : 농협 100071-51-033709 이강진 >> |
♠ 설립 50주년 행사를 위한 후원금> 상황 안내
입금 시기 | 입금자 | 수 입 | 지 출 | 누 계 |
2020. 9. 30 | 전월 이월금 | 1,740,000 | ||
2020. 10. 20 | 0 | 0 | ||
월간 전체 입출금 합계 | 0 | 0 | ****** | |
다음 달 이월금 (통장 잔고) | 1,740,000 | |||
<< 모금 계좌 : 우리은행 1002-860-557530 한남기 >> |
♠ <에콰도르 선교지 돕기 후원금 모금 > 상황 안내
입금 일자 | 후 원 자 | 후 원 금 | 에콰도르 송금액 | 잔 액 |
전월 이월금 | 250,000 | |||
2020. 9. 25 | 전주 김 ○○ 자매님 | 700,000 | 950,000 | |
2020. 9. 27 | 안산 박 ○○ 자매님 | 50,000 | 1,000,000 | |
2020. 10. 7 | 서울 한 ○○ 형제님 | 50,000 | 1,050,000 | |
2020. 10. 7 | ** 송 금 ** | 700,000 | 350,000 | |
이번 입출금 총액 | 800,000 | 700,000 | ||
다음 달 이월금 (통장 잔고) | 350,000 | |||
<모금 계좌 : 국민은행 033201-04-137855 박원석 (에콰도르 선교후원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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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소식란 >
♠ <안산 원곡 성당 재건축헌금 모금> 안내
- 11월에 안산 원곡성당입당을 앞두고 적지 않은 빚이 있기 마련인데,
지난 9월 전국봉사자 월례회의에서 한시적으로 건축후원을 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팀 또는 지구 봉사자님과 상의하여 뜻을 모아주시길 바랍니다...
* 입금할 계좌 : KB국민은행290301-04-058548이유경
♠ < FㆍB 지구 봉사자 선출 > 일정 안내
- 각 지구에서는 ‘전임 지구봉사자’의 주관 하에 11월 5일까지 ‘신임 지구봉사자’ 선출을 진행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신임 지구봉사자 명단’ 은 11월 8일(日) 전국 봉사자월례회의 때에 ‘전국 조정 말씀선포자’ 에게 제출 바랍니다.
♠ 11월 <전국 봉사자 월례회> 모임 안내
- 봉사자 월례회>를 다음과 같이 갖고자 합니다...
※ 일 시 : 2020년 11월 14일 (토) 오후 2시
※ 참석 방법 : 21명이 가입돼 있는 [전국 팀봉사자 카톡 방]에서 진행합니다...
※ 부탁 사항 : 각 지구 봉사자 및 각 본당 봉사자님은 각 팀의 말씀봉사자를 카톡방에 초대.
※ 안 건 : ① 각 팀 현황 보고 ② 기타 협의 사항(지구봉사자 선출상황 확인)
③ 팀 말씀봉사자 대면 연수회④ 성서형제회 운영 관련 사항
⑤ 50주년 행사 관련 협의 등
※ 문의 사항: 전국조정 말씀선포자 : 이 리드비나(유경) / ☎ 010-8952-7578
♠ < 영적 일기 > 작성 안내
지난 주일(9월 20일)부터 '영적 일기' 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기본은 1주일 단위로 주어진 주제에 의해 영적일기를 작성하면 됩니다.
그러나 매일매일 영적일기를 쓰시는 분은 매일매일 하던 대로 작성해주시면 됩니다.
'묵상주제' 와 '영적 일기' 작성방법은 팀 봉사자에게 문의하시거나, F・B 단톡방에 첨부된 파일을
다운 받아서 작성하시면 됩니다.
작성방법은 예시처럼 작성하면 되지만, 좀 더 나은 방법이 있으면 개선해서 작성하세요.
그리고 ‘영적 일기’ 노트는 각자 노트를 준비하시거나 팀별로 준비를 해서 작성하시면 됩니다.
정성껏 작성한 영적일기는 ‘50주년 기념미사 때에 봉헌할 예정이고, 감사선물을 드립니다.
(전시는 하지 않고, 봉헌예절 후 다시 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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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의 겨자씨
“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 마태오 5장 11~12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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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의 기도 지향
- 교황님의 기도 지향 -
“ 로봇 공학과 인공지능의 발전이
언제나 인류에게 도움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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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부터 하느님의 자녀들이 안전하게 보호되고, 감염자들이 하루빨리 완치될 수 있도록 열절한 기도를 해주십시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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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기쁜소식지를 볼때마다 형제님께 늘 죄스런마음이 듭니다.. 제가 여기에 경험이 없기에 혼자서 하시도록 도와드리지 못해서 말입니다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