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는 윤봉길 의사 탄신 100주년이었는데, 올해는 2·8독립선언과 3·1운동,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이요, 또한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이다. 이러한 때, 일제강점기를 다룬 서사성 있는 우리의 문학작품을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태백산맥>을 가운데 두고 <아리랑>과 <한강> 대륙을 연결
우리나라에는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기 2년 전인 1943년에 태어났으면서 같은 대학(동국대)을 졸업한 대형작가가 두 분 있다. 황석영과 조정래다. 각각 철학과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황석영은 30대에 대하소설에 손을 붙여 40대 초반에 10권 분량의 <장길산>을 완성했으며 이후로 한 권 분량의 장편소설을 주로 펴낸 데 비해, 조정래는 40대 초반에 대하소설에 손을 대어 60대가 되도록 꾸준히 대하소설만 써냈다.
중년기에서 장년기에 이르기까지 치열한 작가정신과 왕성한 필력을 보인 조정래는 <태백산맥>을 가운데 두고 앞뒤로 <아리랑>과 <한강>이라는 대륙을 연결, 이른바 '문학산맥'을 이루어냈다. '살아 있는 현대사 교과서'라는 예찬이 붙기도 한다. 교과서처럼 설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이 책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일 터.
대하역사소설은 타임머신을 타지 않고는 가볼 수 없는 시대를 유적 답사 및 자료 탐색 등 고증을 거친 뒤, 작가 나름의 시각으로 조명하고 상상력의 나래를 펼쳐 독자에게 화두를 던져야 하기 때문에 써내기가 힘들다. 물론 <조선왕조실록>을 늘이고 다듬어 쓰는 식의 아류 역사소설은 빼놓고 하는 말이다.
자신이 살아온 성장기나 현재 살아가는 시대상을 소재로 쓰는 소설은 상대적으로, 잠깐이라도 살아보지 못한 시대의 역사를 펜으로 창조해내는 대하역사소설에 비해서는 쓰기가 쉽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대하역사소설을 써낸 박경리, 조정래, 황석영 등을 대형작가라 부르는 것이다.
대하소설 첫 유럽 번역과 '아리랑 문학관' 건립의 의미
일제강점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대하소설을 꼽자면 박경리의 <토지>(21권)와 조정래의 <아리랑>(12권)을 들 수 있다. 두 작품 중 항일 투쟁 이야기를 많이 다루고 있는 <아리랑>의 시대적 배경은 동학혁명 이후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이어진다.
<아리랑>은 평자들이 흔히 말하는 대로, 한민족이 겪은 수난과 설움, 그리고 항일투쟁사를 다룬 작품이다. 나라를 빼앗긴 민족의 슬픔을 집요하고 빼어나게 다루었기 때문에, 대하소설로는 처음으로 유럽 완역 출간이 이루어졌다. 프랑스 아르마땅 출판사에서 1998년 1부 3권이 나온 데 이어, 2003년 5월 전권이 완간되었다.
더욱이 작품의 무대인 전북 김제에 '아리랑문학관'이 건립됨으로써, 마치 역사의 짐을 등에 짊어지고 히말라야 산맥을 오르내리듯 하는 은근과 끈기의 작가정신을 체험할 수 있는 체험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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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랑> 전12권의 위용 이 소설의 탄생은 우리의 박제된 근현대사에 생명의 힘을 불어넣었다. |
ⓒ 김선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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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된 역사에 생명의 힘 불어넣어
<아리랑>은 일제 침략부터 해방(解放)에 이르기까지 한민족(韓民族)의 끈기 있는 투쟁과 생존, 그리고 굴곡진 이민사(移民史)를 다룬 민족소설이다. 내가 처음 대한 것은 <한국일보> 연재소설 지면을 통해서였다. 이분이 <태백산맥>에 머무르지 않고 대작가의 역사를 이루어내는구나 싶었는데, 그렇게 시작된 작품이 '아, 한반도', '민족혼', '어둠의 산하', '동트는 광야' 이렇게 200자 원고지 2만매의 4부작으로 완성이 됐다. 그것도 해방 50주년에 맞추어서 그 넓은 광야를 '잘 빚어진 예술작품'이라는 옥토(沃土)로 일구어냈던 것이다.
이 작품이 완성되기 이전의 우리의 근현대사는 어쩌면 박제(剝製)되어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런데 거기에다 사람이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힘을 불어넣었다.
<아리랑>은 작가가 그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어떻게 모두 기억하고 써나갔을까 싶을 정도로 아주 복잡한 인물 구성을 간직하고 있다. 2만매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으면서도 완성도가 덜 된 졸작 이민사(移民史) 소설을 썼던 나의 기억에 의하면, 죽었던 인물이 쓰다 보니까 다시 살아나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그분의 대하소설 쓰기에 감탄하는 것이다.
최근 <태백산맥> 200쇄 기념 강연회에서 대하소설은 더 쓰지 않고 다음 세대에게 맡기겠다는 뜻의 이야기를 하셨다는데, <대하소설 작법>이라는 책을 한 권 남겨주시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복잡한 인물 구성으로 빚어낸 서사문학 속으로
<아리랑>의 줄거리를 보자. 김제군 죽산면에 사는 감골댁의 아들 방영근은 빚 20원 때문에 하와이에 역부로 팔려간다. 그즈음 일본인 하시모토와 쓰지무라는 한반도에 진출하여 죽산면 일대의 땅을 몽땅 차지하려는 야욕을 가진다. 여기에 오직 돈을 벌기 위하여 민족을 배반하고 친일(親日)을 선택하는 백종두와 장덕풍 같은 이들이 등장한다.
그런가 하면 송수익과 신세호, 승려 공허 같은 이는 개화사상을 지녔으며, 외세에 대항하여 의병항쟁에 나선다. 항쟁 도중에 송수익이 부상을 입자 공허의 도움으로 암자에서 치료를 받게 되지만 송수익은 죽었다는 소문이 퍼진다.
의병이 해산되자 지삼출과 손판석은 일본군의 포로가 될 뻔한 위기를 겪고 나서 가족을 이끌고 만주로 이민을 떠난다. 감골댁의 가족도 만주로 떠나는데, 그녀의 두 딸(보름이와 수국이)은 지주의 아들과 일본 앞잡이들의 성추행으로 고통의 삶을 이어간다.
하와이로 팔려 갔던 방영근은 노예처럼 살아가다가 악독 농장주에 대항하여 한인회를 결성하고 훗날을 모색한다. 한편 만주로 간 송수익은 독립군을 지휘하며 대종교에 입교하고 신세호와 사돈을 맺는다. 일제(日帝)에 의한 토지조사가 실시되고, 승려 공허는 만주와 조선을 오가며 독립자금을 모으다가 송수익을 사모하던 청상과부 홍씨와 사랑을 나누고 아들을 낳는다.
양치성은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 신분을 숨기고 송수익의 행방을 추적하며, 도중에 수국이를 겁주어 데리고 산다. 만주에서 일본토벌대의 조선인 살육이 처절하게 벌어지고, 일본인 앞잡이 양치성 때문에 수국이의 어머니인 감골댁은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삼일운동이 일어나고, 정 부잣집 셋째 정도규는 사회주의에 앞장서 소작투쟁에 앞장서며, 여기에 연해주 빨치산 이광민, 윤철훈, 윤선숙 등이 가담한다. 하시모토는 죽산면 땅의 반 이상을 거머쥔 상태. 그는 공산주의자를 찾아내려고 애쓴다. 한편 송수익은 무정부투쟁을 계획했으나 주장록이 배반하는 바람에 관동군에게 붙잡힌다. 징역 15년, 그러나 견디기 어려운 고문을 받아 감옥에서 숨을 거둔다. 송수익의 아들인 송가원과 송중원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독립운동에 몸을 바친다.
공허는 보름이의 아들이며 혈청단원인 오삼봉을 데리고 압록강을 건너던 중에 총알에 맞아 숨을 거둔다. 그때쯤 20만 명에 이르는 한인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된다. 또한 동북 항일연군 소탕령이 떨어져, 조선독립군이 수없이 숨을 거둔다. 오로지 조국의 독립에 몸 바쳐 전쟁터에 나갔지만 결과는 참담한 희생뿐이다. 포로가 되어 강제징용을 당하거나 심지어는 생체실험을 당하여 목숨을 잃는다.
사력(死力)을 다하던 일본이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로 패망하자, 이번엔 중국인들이 만주에 살던 한인들을 죽이겠다고 달려든다. 해방되긴 했지만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한인들에게 닥친 것은 넓고 넓은 만주로의 유랑 길이다.
김윤식과 신경림은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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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랑> 양장판 12권째 표지 <아리랑>의 탄생은 우리나라 현대문학의 쾌거다. |
ⓒ 김선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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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에 대해서 문학평론가 김윤식은 '장대한 서사적 구조, 민족사의 구체성을 발바닥 글쓰기로 담아낸 점, 민족생존의 싸움에서 어떤 패배도 치욕이 아니며 싸우지 않음이야말로 불명예라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는 점'을 들어 '광복 50주년을 눈앞에 둔 이 시점에서 음미되어야 할 사항이 아닐 수 없다'고 십 수 년 전에 평가했었다.
시인 신경림은 '개성적 인물 창조, 탁월한 묘사, 광범위한 자료 조사로 식민지시대의 새로운 민족사를 창조해 내고 있다. 작가는 위의 세 가지 요소를 마술적으로 조화시켜 우리를 식민지 시대의 굴욕과 열등감에서 해방시키는 동시에, 주인공들의 다채로운 삶과 애증을 통해 진한 문학적 감동에 사로잡히게 한다.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세운 90년대의 걸작이다'라고 극찬한 바 있다.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조정래닷컴 대문에는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는 작가의 말이 붙어 있다. 임진왜란을 겪고도 정신 못 차리다가 결국은 나라를 빼앗기고 말았던 그늘진 과거를 가지고 있는 우리 민족에게, 그러나 지치거나 꺾이지 않고 독립운동을 벌였던 은근과 끈기의 저력을 핏줄로 간직하고 있는 다음세대를 위해서 작가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하는 교훈을 일깨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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