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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세계를 가르친 현대불교의 스승 10인
1. 머리말
스리랑카는 인도의 남동쪽에 위치한 섬나라다. 열여덟 차례의 식민통치를 받는 등 여러 서양 국가의 식민지 시대를 거쳤다. 식민지 역사는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의 영향을 받았고 그로 인한 득실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당시의 비참한 사회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450년 동안의 식민지 시대를 벗어난 지 70년이 지난 오늘날도 그러한 무형의 의식 지배로 인한 갈등 끝에 결국 ‘국가부도’를 불러온 상태이다.
이런 국가 위기를 진단하고 발전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현 사회 인식을 새롭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위대한 인물이 필요하다. 스리랑카 역사상 가장 영향을 크게 미친 인물이라고 손꼽을 수 있는 아리야라트나(Ariyaratna, 1931~ )는 불교 활동인 사르워다야 운동을 통해 불교를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유지하여 힘쓸 뿐만 아니라 불교정신에 입각하여 현 사회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다. 그는 붓다의 가르침을 평등과 정의라고 규정하였는데, 이는 나 자신의 개인적인 평화가 타인의 평화까지도 더불어 일으킨다는 것이 붓다의 핵심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이 가르침으로 일생을 살아가는 분이 보디사뜨와(보살)라면 그가 바로 스리랑카 국민이 받들고 존경하는 보디사뜨와이다. 그리고 세계 역사상 아주 중요한 인물인 테레사 수녀, 킹 목사, 간디 등의 등장으로 사회적 흐름이 바뀌었던 것처럼 스리랑카에서는 아리야라트나가 민중들에게 필요한 불교의 정신적 지도자이다. 이는 1969년, 그가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오늘날까지도 이 운동이 이어지고 있지만 아리야라트나 이후에는 그에 비해 여러모로 미약한 부분이 많아서 대표적인 인물을 손꼽을 수가 없다. 따라서 국가부도로 힘들어하는 스리랑카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아리야라트나와 같은 강력한 정신적 지도자 등장이 시급하다. 지금 스리랑카 민중의 인심(人心)은 어디에 있으며 누굴 향해 있는가?
2. 특수한 시대적 배경
1) 민족 분쟁
스리랑카 국토의 면적은 6만 5,610㎢이다. 정글에서부터 고산지대까지 인간의 힘이 배제된 채, 자연 스스로가 만들어 낸 다양한 식생을 관찰할 수 있고, 5개의 민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구는 약 2,205만 명(2016년 기준)으로 싱할라족(Sinhala) 74.9%, 타밀족(Tamil) 15.4%, 무슬림(Muslim) 9.2%, 버그르족(Burger) 0.5%이며, 싱할라족은 싱할라어를 사용하고 타밀족과 무슬림은 타밀어를 사용한다. 종교는 크게는 불교 69%, 힌두교 11%, 이슬람교 7.6, 기독교 7.5%, 기타 4.9%로 구성되어 있는데, 싱할라족은 대부분 불교이고 타밀족은 대부분 힌두교이다. 그리고 싱할라족과 타밀족 일부는 기독교와 로마 가톨릭 신자이고 무슬림은 거의 이슬람교를 믿는다.
타밀족은 다시 인도 타밀과 스리랑카 타밀의 둘로 나뉜다. 인도 타밀 쪽은 영국 식민지 때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러 왔다가 정착한 후예들이다. 두 타밀족 간에도 갈등이 있었다. 인도에서 온 타밀족은 대부분이 홍차 노동자로 살아왔다. 스리랑카는 1815년경 대영제국의 침략을 받아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고, 스리랑카를 식민지화한 영국은 식민 지배의 협력을 얻고자 싱할라족의 지지를 끌어들이려 하였다. 그러나 싱할라족은 영국을 침략자로 보고 격렬하게 저항하였다. 결국 싱할라족의 지지를 얻어내는 데 실패한 영국은 대신 소수민족인 타밀족의 지지를 끌어냈고, 이후 영국은 싱할라족과 타밀족 간의 대립과 분열을 조장하며 스리랑카를 통치해왔다. 거기에 영국은 인도 남부 지역에서 살던 타밀족들을 차 재배에 고용할 노동 인력으로 이주시켜 싱할라족의 분노를 더욱 부채질했다. 또한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에도 1972년 헌법 개정을 통해 싱할라어와 불교를 우대하는 정책을 취한 결과 타밀족의 분리 운동은 더욱 강화되었다.
1970년, 1971년, 1989년 세 차례에 걸쳐 인민해방전선이 쿠데타를 일으켰는데, 쿠테타 지도자인 로하나 위제위라(Rohana Wije-weera)가 제거될 때까지 무장 폭동과 학살이 끊이지 않았다. 이때 살해된 사람들은 6만여 명으로 대부분 청년들이었는데, 승려와 대학생이 가장 많았다. 당시 스리랑카는 종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분쟁이 발발한 것이 아니었다. 아리야라트나는 분쟁과 전쟁의 아픔을 극복하려면 서로 존중하며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민주주의를 지향해야 한다고 일깨웠다.
전반적으로 보면, 1948년 독립 이래로 지난 70년간 스리랑카에서 권력을 잡은 모든 정부가 가난한 이들의 자발적인 개선을 위한 적절하고 충분한 자원을 제공하는 데 실패하였다. 어려운 경제 상황은 민족적 편견과 종교적으로도 서로 다른 이들에 대한 적대감을 강화하는 결과만을 초래하였다.
아리야라트나는 붓다의 말씀 중에서도 “증오는 증오로 닦아 없앨 수 없으며 다만 친절을 통해서만 사라진다. 이는 영원한 진실이며 진리이다”를 더욱 강조하였다. 이런 가르침으로 범람하는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자 한 초심의 입장을 고수하였다. 그리고 그는 변함없이 비폭력적 행위(Ahimsā, 아힘사)를 도덕적 예시를 통해 소통하고자 추구하면서 깜짝 놀랄 만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분노를 정복하는 것은 겸손과 자비, 사악을 정복하는 것은 선과 지혜, 인색을 정복하는 것은 관용과 베풂, 거짓말을 정복하는 것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라는 붓다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이처럼 폭력이 문제나 갈등을 해소하지 못함을 사람들에게 확신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과도기적인 과정에서 사르워다야(Sarvodaya) 운동을 시작하였다.
2) 참여민주주의 사상의 형성과 변화
아리야라트나는 1958~1972년까지 나란다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에 학교사회 봉사연맹의 부사장으로 입사하여 낙후된 지역 사회인 가나툴루와(Kanatuluwa) 마을에서 시행한 유학 캠프를 계기로 사르워다야 쓰라마다나 운동(Sarvodaya Shramadana Movemen)을 최초로 시작하였다. 간디의 비폭력, 농촌 발전 그리고 자기희생 원칙 등 사상을 굳게 믿고 생활화하고 실천해나가며,발전의 세속적 원리와 이타심과 연민의 불교적 이상 사이의 중요한 연관성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사르워다야 운동을 펼쳐나갔다.
사르워다야 운동의 기본 사상은 불교의 가르침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 바로 사성제, 중도사상, 사무량심 수행, 십바라밀 등이 사르워다야의 근본 사상이다. 또한 그는 독실한 불교 신자로서 수만 명의 ‘가족 모임’과 수백만 명의 뜻을 같이한 사람들과 함께 스리랑카를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명상을 주도하였다.
그는 현재 스리랑카의 사르워다야 쓰라마다나운동 회장, 스리랑카 사회봉사중앙협의회 회장. 스리랑카 성교육 아시아태평양국 회장, 스리랑카 중국학회 회장. 멕시코 칠카보드의 회원, 미국 국제평화식량위원회(International Commission on Peace and Food, U.S.), 세계기아프로그램(World Hunger Program)의 회원, 아시아농촌개발연구소(Asia Institute of Country Development, Asia)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많은 상을 받았다. 1969년 필리핀의 라몬 막사이사이상, 1982년 벨기에 국왕 바우두인 국제개발상, 1986년 미국 브라운대학교 제1회 앨런 숀 파인스타인 세계헝거상, 1986년 스리랑카 데샤반두상, 1990년 덴마크 아우구스트포울상, 1990년 인도 잠날랄 바자즈 국제상을 수상했다. 또한 인도 정부로부터 간디 평화상과 1996년 니와노 평화상을 받았고, 1992년에 킹 보도인상 그리고 평화 정착과 마을 발전에 관한 노력을 인정받아 2006년에 아차리야 수실 쿠마르 국제평화상을 받았으며, 2007년 스리랑카 국민훈장 등을 수상하였다. 이러한 활약상을 본 스리랑카 출신의 미국 외교관 패트릭 멘디스(Pattrick Mendis) 박사는 그를 ‘스리랑카의 간디’라고 일컬었다.
3. 가르침과 통찰
1) 사르워다야(Sarvodaya) 운동
‘사르워다야’는 산스끄리뜨어로 ‘모두의 일어남’이라는 뜻으로 시간, 생각과 힘 모두를 일어나게 하기 위하여 함께 나눈다는 의미이다. 사르워다야 운동은 아리야라트나 박사가 대학생 봉사단을 발족하여 어려운 농촌 지역으로 내려가 봉사활동을 했던 곳에서 시작되었다. 현재는 스리랑카 전체 마을 3분의 1에 해당하는 1만5천 개의 마을이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 운동에 참여한 이들은 사회의 신질서를 건설하기 위해 아주 구체적인 항목들을 실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최소한의 것들 즉 깨끗한 물, 소박하고 충분한 식사, 깨끗한 평상복 두 벌과 외출복을 포함한 의복 총 6벌, 간소한 주거 공간과 청결한 수건, 식탁보 등을 갖추고, 생활의 규율을 바르게 하며, 생활의 가치를 농업이나 교육, 면학, 예술문화 활동에 둘 수 있도록 하는 것 등이다. 60여 년 동안 끊임없이 발전을 거듭해온 사르워다야 운동은 오늘날에도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나가며 국내외의 관심을 끌고 있다.
사르워다야는 지난 수십 년간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했을까? 이 운동의 광범위한 사회개발 프로그램은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게 하며 교육을 통해 수백만 명의 삶의 질을 향상시켰다. 예컨대, 2004년 12월 인도양 쓰나미가 발생했을 때 아리야라트나와 그의 팀은 6시간 이내에 피해 현장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재난구호에 나섰다. 하지만 정부 차원의 구호 활동은 이틀 이상이 걸렸다. 사르워다야는 전쟁으로 파괴된 지역에서 스리랑카 군대와 타밀 타이거즈 사이의 적대 관계가 고조되는 동안에도 비당파적 및 인도주의적 입장을 견지하였다. 그들이 펼쳐온 활동을 폭넓게 살피면 사르워다야를 통해서 수행된 재해 예방 조치 운영 및 활동과 업적을 발견할 수 있다.
2) 사르워다야 쓰라마다나(Shramadana) 운동
쓰라마다나(Shramadana) 운동은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한 친환경적 생태학적 의식 개발 운동으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수만 개의 사회개발 ‘운동’이 있지만 ‘사르워다야 쓰라마다나’ 운동만큼 지역사회에서 광범위하게 긍정적 성과를 거두고 있는 사례는 전무후무하다. 쓰라마다나는 ‘노동 보시’라는 의미다. ‘쓰라마’는 노동이고 ‘다나’는 보시 또는 공유를 의미한다. 쓰라마다나는 따라서 공동의 노동력이나 집단적인 에너지를 의미한다. 이 개념은 또한 불교적 가치의 핵심이 되는 표현으로, ‘바른 생계’는 불교의 핵심 가르침 팔정도의 하나이고 ‘보시’는 육바라밀 중의 하나이다.
1977년 스리랑카에서 싱할라족과 타밀족 간의 민족 갈등이 발생하여 ‘까만 7월(Kalu July)’을 맞았을 때, 매일매일 일어나는 민족 갈등을 해소할 방법을 찾던 아리야나트나는 쓰라마다나 운동을 5단계(Pancavidha)로 세분하여 시작하였다. 이 다섯 단계의 운동을 ‘5R’이라고 불렀다. 첫째, 피해를 받은 주민들에게 필요한 응급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므로 ‘구호(Relief)’를 첫 번째 ‘R’로 삼았다. 둘째, 피해를 받은 주민들이 스스로 자존감을 회복하고 행복한 삶을 살도록 정신적, 물질적 도움을 주는 캠프를 꾸리는 과정을 ‘복귀(Rehabilitation)’라고 하여, 두 번째 ‘R’로 삼았다. 셋째, 이렇게 도움을 주는 방법으로 피해 주민에게 평등하고 조화롭게 살아가도록 하는 것을 ‘화해(Reconciliation)’로, 세 번째 ‘R’이라고 한다. 넷째, 파괴된 집, 학교, 수도, 병원 등 모든 서비스를 정부와 힘을 합해 다시 조립하기 위한 과정이 ‘복원(Reconstruction)’이라는 네 번째 ‘R’이다. 다섯째 단계로 각종 피해 주민들이 다시 마을의 전통을 세우기 위한 심리적, 정신적 상담 프로그램들을 만들었다. 파괴된 마을의 다른 사르워다야 마을과 같이 재건을 위한 ‘각성(Reawakening)’이 다섯 번째 ‘R’이다.
또한 사르워다야 운동은 역시 다섯 단계로 마을 개발을 실현해 가는데, 1단계는 추구하는 이념과 공동체 정신을 소개, 권장하고 이것이 쓰라마다나 캠프 전체에 퍼져나가도록 한다. 2단계로 참여하는 사람들(주부, 청소년, 노인, 어린이, 농부 등)의 요구에 부응하도록 프로그램을 짠다. 3단계는 마을 단위의 사르워다야 공동체를 출범시켜 필요한 것들의 우선순위를 설정, 토론하여 시급한 일부터 자원과 노동력을 모두 사용한다. 4단계에는 직업훈련을 하고, 마을 신용금고를 만들어 활용하는 등 사회개발프로그램이 계속되면 소득이 높아지고 독립적인 지역사회를 만든다. 마지막 5단계는 마을 단위에서 벗어나 다른 지역사회와 경제적인 공유가 가능한 저력 즉 지속적인 힘을 키우도록 하였다.
아리야라트나가 가르쳤던 쓰라마다나는 오늘날까지도 스리랑카 마을마다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고, 사르워다야 단체의 일원이 아니어도 마을에 대청소의 날이나 혹은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자발적으로 쓰라마다나를 한다. 이국땅인 대한민국에서 생활하는 스리랑카인들도 고국에서처럼 ‘쓰라마다나의 날’이면 1년에 3회 한국에서 사는 이주민들 위한 언어, 문화교류, 고민 상담 등 마하위하라에서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친다.
선견지명이 있는 이상주의자 아리야나트나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쓰라마다나 운동은 3만 명 이상의 노동자와 140억 달러 이상의 자산을 가진 세계에서 가장 큰 노동자 자율관리 실험장으로 변모하였다. 따라서 사르워다야와 쓰라마다나의 개념은 모두의 일어남으로써 모든 곳에서 개발할 수 있으며 공동체로 함께함으로써 협력적인 노동을 통해 성장 번영할 수 있다는 염원의 표현이다.
4. 사회 개혁을 위한 신질서 확립과 출판 활동
1) 인도주의적 불교에 의한 사회복지 활동
아리야라트나가 국민운동으로 비폭력적인 사회 변혁을 이룬 것을 보면 사람들을 돕기 위한 인도주의적 활동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리야라트나는 불교 행사에 참여할 때마다 붓다의 이 게송을 독송한다.
고통받는 중생들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위험에 처한 중생들이 모든 위험에서 벗어나기를! 걱정이 있는 중생들이 모든 걱정 근심에서 벗어나기를!
아리야라트나는 모든 모임이나 행사를 할 때 약 2분간 침묵 속에서 이 자비명상을 시작함으로써 모든 존재에 대한 자애로운 생각을 깊고 넓게 확장한다. 사르워다야는 물질적, 사회적 현실에서 발생하는 모든 현상을 단절된 주관적 개인적 변화의 과정으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매일의 (이기심, 도구화, 객체화) 의식에서 종종 간과하는 가장 기본적인 현실에 대한 각성이다. 따라서, 기본적인 인간의 필요가 충족되지 않은 호흡 곤란이나 목마름을 소홀히 한 결과로 빚어진 마음의 불안을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고통의 실체를 예리한 인식으로 통찰하고 공감함으로써 함께 해소하는 것이다.
쓰라마다나 운동은 주민들이 단 1회로 그치지 않고 흉금을 터놓고 장기간에 걸친 대화를 통해 공동체의 중추적 의사를 결정하는 민간 의결기구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르워다야의 주요 재원 중 하나는 해외 민간재단의 후원인데, 이 기부자들은 양적 성장을 꾀하기 위해 사르워다야를 압박하기 시작하였다. 후원자들이 ‘세계은행식의 재정적, 관리적 시스템’을 강요하고, 관리 행정과 재정 경영을 중앙집권식 체제로 바꾸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르워다야의 기본정신인 참여민주주의 전통, 예를 들어 모든 지도자는 마을 공동체에서 선출하고 전국본부나 법인체들의 기술을 실무적으로 지원하는 전통 등에 배치되어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다. 또한 양적 잣대로 마을 개발사업을 평가하려는 기부자들과 사르워다야와의 개발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 차이로 충돌이 표면화되었다. 결국 사르워다야는 재정 악화로 1,000여 명의 직원을 해고하고, 여러 프로그램을 중단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난관에 봉착해서도 지도자 아리야라트나는 자신의 소신을 꺾지 않고 단호하게 행동하였다. 사르워다야는 후원자의 지원이 없이도 이뤄질 수 있다는 신념으로 ‘운동을 다시 시작하자’고 호소하면서 결코 후원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사르워다야의 비전을 포기할 수 없다고 설득했다. 그들의 구미에 맞추다 보면 공동체 구성원들은 자유를 잃을 수 있는데, 자유는 마음에 영양을 공급하므로 식량보다 훨씬 더 소중한 것이라고 단호한 의지를 피력하였다. 자립률을 높일 비장의 카드가 없는 빈국인 스리랑카에서 사르워다야 운동이 진정한 승자가 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아리야라트나는 강제가 아닌 자유로운 상태에서, 부자가 아닌 가난한 자, 특히 약자가 강해질 수 있는 사회에서만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하였다. 불교의 보시(dāna)와 계(sīla), 명상(bhāvanā)은 타인을 도우면서 개인적 삶의 태도와 질마저도 바꿀 수 있기에 불교정신을 바탕으로 일어난 운동인 사르워다야 운동은 세상의 귀감이 될 것이다.
2) 이기주의, 탐욕, 증오 극복을 위한 행동 프로그램
사르워다야 운동의 기본 사상은 불교의 가르침을 위주로 한 것이다. 아리야라트나는 불교의 가르침과 본인의 철학이 담긴 수많은 논문과 책을 출판하였다. 그리고 세계 방방곡곡을 순회하면서 특강을 진행하였다. 《불교와 사르워다야(Buddhism and Sarvodaya)》 《스리랑카 사르워다야 쓰라마다나 운동의 실천에 나타난 불교 경제학(Buddhist Economics in Practice, in the Sarvodaya Shrama-dana movement of Sri Lanka)》 등의 저술을 통해 불교를 기반으로 형성된 자기의 사상을 체계화하여 전 세계에 알렸다. 아리야라트나는 ‘무상(無常)’을 사르워다야 쓰라마다나 운동의 근거로 삼는다. 삶이 무상하기 때문에 불자들은 모든 존재가 상호의존적이라는 것을 이해하면 자신의 고통을 극복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고통을 극복하도록 돕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사르워다야 회원들에게 ‘내가 없다’는 의미의 무아(無我) 개념은 “이런 이타적인 봉사를 통해 열반으로 향하는 길에 자기 마음을 좀 더 각성하고 자애로운 상태로 바꾸는 방법으로 본다”고 특별히 강조한다. 이 운동의 일원이 되기 위해 자원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연민에서 벗어나야 참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연민은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아 개념에 따르면 나는 독립된 존재가 아니고 이 우주에 공동으로 연관된 존재이기 때문에 타인을 위한 봉사로 나의 시간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아리야라트나는 사성제(四聖諦)를 재해석한다. 첫 번째 고성제는 모든 것이 괴로움을 기반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붓다의 말씀처럼 고통이 전 세계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사르워다야에서 쓰라마다나 운동은 고성제를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처해 있는 환경의 가난, 질병, 억압, 불일치 등의 문제를 똑바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하고, 두 번째 집성제는 전 세계의 고통이 어디에서 오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고통의 원인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피력하였다. “마을의 퇴폐 상태는 하나 이상의 원인, 예를 들어 이기주의, 경쟁, 탐욕, 증오와 같은 요인이 있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사르워다야 쓰라마다나 운동은 개인적 차원과 공동체 전체가 인간이 지닌 이기주의, 경쟁, 탐욕, 증오를 사회적 행동 프로그램으로 극복하고자 하였다. 세 번째 멸성제는 고통을 없애는 방법이다. 여기서는 열반을 성취함으로써 고통이 끝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을 사람들의 고통은 멈출 수 있다.”고 강조하는데, 개인적인 고통은 불교적 가르침으로 끝날 수 있기에 각 마을 사람들의 고통도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네 번째 도성제에서는 올바른 견해 · 의도 · 말 · 행위 · 생계 · 노력 · 알아차림 · 집중으로 구성된 팔정도를 수행하면 괴로움을 멸하는 열반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도성제의 부분을 인간 회복에 적용될 수 있는데, 예컨대 ‘올바른 알아차림’을 “개방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마을의 필요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해석하였다.
사르워다야는 인간의 욕구를 깨끗하고 아름다운 환경, 안전한 물의 적당한 공급, 깨끗한 최소의 의복, 균형 잡힌 식사, 간소한 가옥, 보건, 통신, 자급 가능한 연료, 교육, 문화적 교육적 개발환경 10가지로 정의하고 각 항에 대한 자세한 실천 지침을 내세웠다. 예를 들면, ‘연료확보’를 위해서 태양에너지, 생체 천연가스, 등겨나 코코넛 껍질 등 대안적 에너지원 이용을 촉구하고 있는데, 이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위한 생태적인 요구들을 포함한 것이다. 지역사회 전역에서 이 운동을 실천하고자 노력한다면 지역사회의 구성원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 그들의 고통을 덜어낼 수 있는 지침들이다.
아리야라트나는 다른 스리랑카 민족주의자들과 달리, 독단적이지 않고 교조주의적 면모가 전혀 없는 수용적 · 개방적 사상을 기초로 사르워다야 운동을 창안했는데, 이는 지적, 정신적, 문화적인 차원에서 세계 평화와 인류의 번영을 위한 가장 모범적인 대안 제시라고 할 수 있다.
5. 맺음말
오늘날 인류는 괄목할 만한 성장과 발전을 이룩하였지만, 인간의 욕심으로 위기에 빠진 지구의 환경오염 문제가 현재 우리한테 큰 고민으로 남았다. 우리가 갈등을 극복하고 직면한 최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류가 아리야라트나와 같은 사회운동가들의 사상을 심층적으로 연구하여 이들의 가르침을 통해서 정신적, 윤리적 이해를 명철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아리야라트나와 같은 평화운동가들의 깨달음을 전 세계가 공유할 시점이 된 것이다.
스리랑카가 독립하면서 표출되기 시작한 각종 불만을 정치인들은 민족과 종교 갈등으로 교묘히 조장해 나갔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하여 아리야라트나가 쓰라마다나 운동을 시작하였다.
아라야라트나가 펼친 운동의 긍정적인 영향으로 남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스리랑카는 카스트, 민족, 종교 등 어려운 문제들을 상대적으로 잘 극복하고 있다. 2010년에 스리랑카에서 발생한 ‘쓰나미(Tsunami)’도 갈등 없이 원만하게 힘을 합쳐 극복했던 것은 사르워다야에서 오랫동안 가르쳐왔던 ‘쓰라마다나 운동’의 영향이 지대했을 것이다.
요한 갈퉁이 “평화적인 세계질서에는 군사적,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힘이 고려되어야 한다. 그중 한두 가지만으로 평화를 구축할 수 없다.”고 말한 것처럼 평화 유지는 평등사회가 만드는 것이다. 스리랑카는 오랫동안 불교 전통을 지켜오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민족주의 전통을 지나치게 앞세워서 그런 것이 아닐까. 이 점을 감안하고 힘든 현지 상황에서도 평화 운동을 펼친 아리야라트나가 존경스럽다.
스리랑카에서 아리야라트나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지금도 정부로부터 탄압, 암살 위협, 경제적 압력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0여 년 동안 함께 노동하며 정신 수행을 병행하면서 세상의 경제 흐름 속에서 민중과 함께 살길을 찾는 지도자의 면모는 그를 스리랑카의 간디 또는 보살(보디사뜨와)로 칭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것이다.
국가 부도, 마약 문제, 사회갈등을 극복하며 해결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서 아리야라트나의 사상을 향한 관심과 연구는 향후 깊이 있고 다양한 주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담마끼띠 dammakiththi@hanmail.net
스리랑카 켈레니야대학교,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불교학(석사), 동국대학교 대학원 졸업(불교학 박사). 동국대 불교학과 강사, 한국스리랑카 마하위하라 사원 주지 등 역임. 주요 논문으로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의 공사상에 관한 연구〉 “ A comparative study on Mahayana Sutra of the World Father (loka pitṛu) and the Christian Gospels’ Universal Father” 등과 저서로 《스리랑카에서의 삼장 보존과 현대화 과정》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