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소식을 들으며/靑石 전성훈
한겨울 속에 맞이하는 입춘, 봄은 그렇게 소식을 전하나 보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연일 계속 몰아치는 동장군의 위력에 정신이 혼미해 어리둥절한 채 입춘을 맞이한다. 사람의 기억은 세월 따라 온전하지 못하게 된다. 아무리 힘든 시간을 겪어도 그 순간이 지나가 버리면 잊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기억 창고 속에는 지나간 겨울이 가장 추웠다고 새겨진다. 그렇다, 올겨울 지구별의 북반구는 그야말로 극한 한파에 시달리며 신음하고 있다. 우리나라만 지독히 추운 게 아니다. 북미 지역과 유럽은 ‘겨울 폭풍’이 발생하여 재난급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다.
매스컴에 의하면, 지구 북반구 전역을 강타한 한파의 원인은 북극 찬 공기의 잦은 남하라고 한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북극 지역 온난화로 ‘폴라 보텍스(Polar Vortex: 극소용돌이)이탈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폴라 보텍스‘는 북극, 남극 등 극지방 상공에 형성되는 영하 50도 이하의 거대한 찬 공기 소용돌이로 극지방 상공에 묶여 있어야 하는데, 지구온난화로 지역 이탈이 잦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바람은 찬 공기와 따뜻한 공기의 온도 차가 클수록 빠르게 분다고 한다. 북극 찬 공기와 중위도 따뜻한 공기의 경계에서 발생한 ‘제트기류’가 지구 전체를 강하게 돌면서 ‘폴라 보텍스’의 남하를 막는 바람 띠 역할을 해 왔는데, 북극 지역 온난화의 영향으로 이 제트기류가 약해져서 연일 강추위가 지속된다는 설명이다.
바깥 공기가 아무리 차갑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도 시간은 흐르고 계절도 변한다. 봄이 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문구가 있다. 젊은이는 잘 모를지도 모르지만, 나이가 지긋한 사람은 누구에게나 친숙한 어휘,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이다. 봄이 오는 길목에 좋은 운이 있고 아울러 밝은 양의 기운을 세워 경사가 많기를 기원하는 조상들의 소박한 심정을 담아 대문에 적어 놓은 봄맞이 풍습이다. 아파트에 살다 보니 대문에 이런 글귀가 붙어 있는 집을 보기가 쉽지 않다. 나 또한 한 번도 이렇게 써서 대문에 붙여 놓은 적이 없다. 대문에 봄을 맞이하는 글을 써 붙이는 게 조상의 좋은 풍습을 이어간다는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추위로 웅크리고 지내던 사람에게 봄이 온다는 소식에 수탉이 홰치듯이 가슴을 쫙 펴고 심호흡하며 심기일전하라는 뜻도 있다고 생각한다.
입춘이 들어서면 남쪽의 한강처럼 북쪽을 대표하는 얼었던 대동강도 풀린다는 우수雨水가 뒤따른다. 봄비처럼 내리는 우수를 접하면 겨울잠 자던 개구리가 깨어난다는 경칩驚蟄이 곧바로 들어선다. 그때쯤이면 겨우내 힘들게 하던 북풍한설도 슬며시 고개를 숙이며 지나가고, 남녘 어딘가에서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립고 반가운 꽃소식이 들릴 것이다. 군자의 기품을 조용히 뿜어내는 매화가 꽃을 피웠다는 소식도 들리리라. 하지만 봄소식이 들린다고 정녕 봄이 우리 곁으로 다가온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예로부터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이 있다. 봄은 아직 멀었다는 듯이 3월의 꽃샘추위가 찾아오면 한겨울보다 더 매서운 추위를 느낄 수도 있다. 두툼한 겨울옷을 성급하게 벗어 던지고 내의도 벗고 가벼운 봄옷을 입었기에 살갗을 파고드는 찬바람이 칼바람처럼 더욱더 춥게 느껴진다. 젊어서는 계절을 조금 일찍 맞이해도 그다지 별다른 문제가 없다. 세월을 앞서가는 젊은이답게 보여서 보기에도 좋다. 그러나 노년에는 조금 늦게 반응하고 받아드리는 게 좋을 듯하다. 자연과 마주 대할 때도 시절 인연이 무르익어야 자연스럽고 잘 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웅크리며 추위와 지내다 보면 어깨를 펼 날이 오리라. 지금은 우리 세대의 시대도 나의 날도 아니다. 옆으로 비켜서서 세상과 자연을 바라보는 때이다. 역할이 끝나면 자리를 내주고 비켜서서 바라보면 몸도 마음도 편해진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 틈에 봄이 정말 가까이 와 있으리라. (2026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