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6년 7월 26일 온고을교회 주일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 다비딕 커버넌트 》
시 89:1~52
〈 1. 낯설게 하기 〉
노을 좋아하시죠? 해 질 녘 서쪽 하늘 붉은 노을!
그 노을이 가진 아름다움을 제대로 담아내려면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저는 오늘, 노을을 가장 잘 표현했다고 생각하는 영화 대사 한 마디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2018년에 상영된 영화 《변산》 혹시 보셨습니까?
부안을 배경으로 이준익 감독이 연출하고, 박정민과 김고은이 타이틀 롤을 맡았습니다.
영화에서 노을을 아주 멋지게 드러내는 명대사가 있습니다. 박정민의 대사입니다.
“내 고향은 가난해서 보여줄 건 노을밖에 없네…”
저는 이 한 마디가 노을을 기가 막히게 표현한 한 줄, 시라고 생각합니다.
이 한 줄보다, 노을을 더 잘 드러내는 시를 아직 못 보았습니다.
변산 해수욕장, 한때는 여름 피서지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황량해졌습니다.
피서지로서 한 물 갔지만, 노을까지 한 물 간 것은 아닙니다.
서해안의 노을은 ‘창조의 때부터 지금까지’ 명품 중의 명품 노을입니다.
그 노을을 어쩜 이렇게 잘 표현한단 말입니까?
“내 고향은 폐항, 내 고향은 가난해서 보여줄 건 노을밖에 없네…”
저는 한 사람의 목회자요, 설교자로서, 설교 강단에 설 때마다 고민에 빠집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은총,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선포할 수 있을까?
저는 오늘 《다윗 언약》을 한번 멋지게 드러내고픈 욕심에 사로잡혔습니다.
영화 《변산》에서 박정민이 노을을 멋들어지게 말한 것처럼, 저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시 쓰는 법을 잠깐 들여다봤습니다. 시 작법 중에는 “낯설게 하기”가 있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독자에게 낯설게 표현하면 독자가, ‘이게 뭐임?’ 하면서 집중합니다.
그래서 제가 첫 번째로 한 것은 《다윗 언약》을 낯설게 표현해 보자!
어떻게 했습니까? 《다윗 언약》을 영어로 표기하고, 그 말을 설교 제목 삼았습니다.
☞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 《 다비딕 커버넌트 》입니다!
〈 2. 구약의 약속 - 커버넌트 〉
《 다비딕 커버넌트 》에서 다비딕(Davidic)은 다윗(데이빗 David)의 소유격입니다.
한글 성경에서 ‘다윗’으로 표기한 영어는 ‘데이비드’입니다.
영어권 남자의 이름에서 흔히 보는 이름입니다.
영국의 축구선수 ‘베컴’ 그의 이름이 데이비드입니다. ‘데이비드 베컴’
남자 이름으로 데이비드를 쓰는 것은 바로, 성경의 다윗에서 따 온 이름입니다.
《 다비딕 커버넌트 》에서 커버넌트(Covenant)는 언약, 계약, 약속이라는 뜻입니다.
한글 개역개정판 성경에서는 ‘커버넌트’를 언약으로 번역합니다.
그러니 《 다비딕 커버넌트 》는 “다윗 언약”입니다.
다윗 언약으로 하면 될 것을 왜 굳이 《 다비딕 커버넌트 》로 했냐고요?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시에서 ‘낯설게 하기’라고요!
오늘은 ‘다윗 언약’을 《 다비딕 커버넌트 》로 낯설게 다가가 확실하게 새겨두고자 합니다!
☞ 이제는 ‘커버넌트’라는 단어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한글 성경이 ‘언약’으로 번역한 커버넌트는 지금도 영어권에 있는 단어입니다.
약속, 계약의 뜻입니다. 그런데 영어권에서는 이 단어를 잘 쓰지 않습니다.
비즈니스나 거래에서는 컨트랙트(Contract)나 어그리먼트(Agreement)’를 씁니다.
‘커버넌트’를 잘 쓰지 않는 이유가 뭘까요?
커버넌트는 구약성경에서 유래한 계약을 의미합니다.
구약 성경의 계약은 지금에 비하면 매우 원초적이고 끔찍하기조차 합니다.
구약에서 계약 당사자는 소나 양, 염소를 잡아서 반으로 쪼갭니다.
그리고 계약 당사자가 그 가운데를 나란히 걸어갑니다.
만일 이 계약을 어긴 사람은 쪼개놓은 동물처럼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계약’은 짜르다는 뜻의 ‘카라트’와 계약을 의미하는 ‘베리트’가 합쳐집니다.
“카라트 베리트 (כָּרַת בְּרִית, Karath Berith)”입니다.
‘카라트’는 다이아몬드의 크기를 나타내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다이아몬드 원석을 어떻게 짤라냈느냐(카트)는 것이지요!
“‘계약’을 짜르다” 즉, “카라트 베리트”에서 나온 단어가 ‘커버넌트’입니다.
한글 성경으로 펴낼 때, 이 ‘커버넌트’를 번역하기에 애를 먹었습니다.
오늘날 동물을 반으로 쪼개놓고 치르는 계약은 없습니다.
한글 성경에서 ‘커버넌트’를 어떻게 번역할까? 고심 끝에 ‘언약’으로 결정합니다.
☞ 그래서 ‘다윗 언약’입니다. 오늘은 《 다비딕 커버넌트 》로 확실하게 새기고자 합니다!
〈 3 하나님이 다윗에게 해 주신 약속 〉
구약 성경에 《 다비딕 커버넌트 》는 사무엘하 7장에 나옵니다.
다윗은 그때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왕궁을 대리석으로 짓고 태평성대를 맞이합니다.
“나는 이렇게 호사스런 궁궐에 사는데, 하나님의 전은 텐트라서 안타깝습니다.”
궁중의 전담 선지자 나단에게 고백합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전을 짓고 싶다는 것이지요!
나단이 다윗의 의중을 하나님께 아뢴 후 받은 응답을 다윗에게 전합니다.
하나님은 성전 건축은 아들 솔로몬에게 맡기라 하면서, 다윗에게 언약을 하나 해 줍니다.
삼하 7:14~16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15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이것이 다윗 언약, 정확히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해 주신 약속’입니다.
오늘은 《 다비딕 커버넌트 》로 분명하고 확실하게 접근하고자 합니다.
다비딕 커버넌트, 핵심은 2가지입니다.
첫째,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라”
둘째, “너의 집과 너의 나라와 너의 왕위가 영원하리라”
요약하면, “① 하나님의 아들 ② 영원한 왕권” 잘 기억해야 합니다.
☞ 《 다비딕 커버넌트 》는 신구약 성경을 한 줄로 꿰는 키워드입니다.
〈 4 시편 88편 저자 에단 〉
오늘 설교 본문이 시편 89장입니다.
시편 89장은 에스라인 에단의 시입니다.
에단이 시편 89장에서 다윗 언약 《 다비딕 커버넌트 》를 집중적으로 거론합니다.
시 89:3~4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내가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며 내 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 4 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네 왕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하셨나이다”
사무엘하 7장에 있는 《 다비딕 커버넌트 》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의 자손을 ① 하나님의 아들로 삼고 ② 왕권이 영원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 나라가 쪼개졌습니다. 남북으로 분열되고 말았습니다.
분열은 패망의 지름길입니다.
시 89:38~40 “그러나 주께서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노하사 물리치셔서 버리셨으며 39 주의 종의 언약을 미워하사 그의 관을 땅에 던져 욕되게 하셨으며 40 그의 모든 울타리를 파괴하시며 그 요새를 무너뜨리셨으므로”
시인 ‘에단’이 보기에 《 다비딕 커버넌트 》는 물거품이 된 듯 보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통탄의 시를 씁니다.
〈 5. 하나님의 다비딕 커버넌트 이행 〉
《 다비딕 커버넌트 》는 성경을 관통하는 키워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시편 89장에서 하나님은 《 다비딕 커버넌트 》를 망각하신 듯 보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 다비딕 커버넌트 》를 어기셨다면, 오늘날의 기독교는 존립할 수 없습니다.
약속을 어기는 하나님이 창조주라면, 사람들이 어찌 하나님을 믿겠습니까?
하나님은 사무엘하 7장에서 《 다비딕 커버넌트 》를 수여하셨습니다.
시편 89장에 와서 《 다비딕 커버넌트 》는 위기를 맞이합니다.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 하나님은 약속을 깨는 분이 아닙니다.
☞ 하나님이 어떻게 언약을 이행하는지, 신약성경 누가복음으로 가봅니다.
눅 1:30~33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약혼만 했지, 아직 요셉과 동침하지 않은 마리아에게 천사 가브리엘이 전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전한 말씀을 그대로 옮겨온 것입니다.
다윗 언약의 핵심은 2가지입니다.
“① 하나님의 아들 ② 영원한 왕권”
하나님은 이 2가지를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는 방법으로 지키십니다.
①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은 성전을 건축하게 되는 ‘다윗의 후손’에게 아버지가 되겠다 하셨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다윗의 후손’으로 보내십니다.
아버지가 되어주심으로 아들이 되는 자가 아니라, 진짜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이보다 더 완벽한 언약의 이행은 없습니다.
② 영원한 왕권
하나님이 다윗에게 약속해 주신 왕권은 이스라엘만의 왕권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이삭-야곱’에서 다윗으로 이어지는 육적 혈통만의 왕이 아닙니다.
세상 모든 나라와 만백성을 다스리는 왕권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왕중왕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 하나님은 《 다비딕 커버넌트 》를 완벽, 그 이상으로 이행하십니다! 할렐루야~
〈 6. 다비딕 커버넌트 이후 〉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우주만물, 삼라만상이 주님의 피조물입니다.
세계 모든 족속이 다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고 알리기 위하여 한 민족을 택하셨습니다.
유대인,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지금까지 유대인만을 품고 계시다면 온 인류의 주님이라 할 수 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것인데, 이스라엘만 붙들고 계시겠습니까?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제사장나라로 선택한 민족입니다.
그 민족과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하여 하나님은 자기를 세상에 알리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편적 인류의 하나님으로 드러내셔야 합니다.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 다비딕 커버넌트 》를 이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이 유일하시고 보편타당한 창조주로 계시하셨습니다.
크신 하나님의 이 세상 창조에 이은 온당한 다스림입니다.
하나님이 《 다비딕 커버넌트 》를 이 땅에 주시고 이행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온 인류에게 하나님은 왕으로 계시하였습니다.
☞ 여기서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그렇다면 유대인의 나라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적당히 쓰고 버리신 것이냐?
어떻게 대답할 수 있습니까?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 한국의 속담입니다.
한국도 미국도 러시아도 인도도 일본도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손가락입니다.
깨물면 아픈 손가락입니다.
예수님 이후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여러 나라, 열방 중 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 예수님 이후 이 땅에는 교회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 이전에는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지킴으로써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 이후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믿고 부활을 믿는 자가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 7. 마무리 〉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화 《변산》 이야기로 오늘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내 고향은 가난해서 보여줄 건 노을밖에 없네…”
노을은 피를 토하듯 붉은빛으로 우리를 감동시킵니다.
구약시대 언약식에도 붉은빛이 있었습니다.
반으로 쪼개진 동물의 피입니다.
《 다비딕 커버넌트 》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
① 하나님의 아들이요, ② 왕중 왕으로 오신 예수님,
예수님도 커버넌트의 제물이 되어 쪼개지고 붉은 피를 흘리십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어 찢기고 쪼개져 흘리신 보혈입니다. 할렐루야~
시편 89편을 쓴 시인 에단처럼, 우리도 고난과 질고로 쓰러지고 넘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도 에단처럼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하면서 부르짖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그때 피를 토하듯 붉은 노을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커버넌트’의 제물이 되어 쪼개진 희생양을 바라보라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흐르는 붉은 보혈로 우리를 속량하십니다.
에스라인 에단이 쓴 시편 89장 마지막 절을 함께 읽습니다.
“여호와를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아멘! 아멘!”(시 89:52)
할렐루야~
|
|

첫댓글 “AI 시대의 설교자가 될 수 있어서 참 행복합니다!”
오늘 설교 중 제가 직접 한 말입니다.
저의 세대는 1~2년 전부터 은퇴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설교 작성시 AI의 조력을 경험하지 못하고 물러나는 것입니다. 저와 동년배 목사들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가 개척한 교회라서 좀 더 목회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기에 AI의 도움을 십분 받고 있습니다.
설교 본문에 대한 질문 뿐 아니라 예화를 위한 질문까지, 마음껏 누구 눈치도 안 보고 물어보면서 인공지능의 답을 참고하여 설교를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히 행복입니다.
설교 준비를 할 때는 의문이 한 둘이 아닙니다. 그동안 주로 주석을 참고했는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또한 주석을 보는 데는 한계가 있는데, AI는 웬만한 주석을 능가하는 답변을 즉각즉각 해 주니 너무 좋습니다. 언제 이렇게 빠른 답변을 확인하면서 설교를 준비할 수 있었나요? 그런 때는 없었습니다. 한 주 내내 성경과 씨름하고, 주석을 통해 확인하고, 인터넷으로 검색하면서 설교를 준비하다가 AI의 도움을 받으니 너무 좋습니다.
물론 AI의 도움을 어느 선까지 활용할 건가의 문제는 숙제로 남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샬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