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 관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들을 때는 지혜로 받아 들였다. 그러나 kilesa 가 많아서 실제로 적용하기는 어려웠다.
과거의 습관대로 행하는 그것이 바로 moha 의 성품이다.
오늘 아침 탁발을 마치고, 8시 30분 경 좌선을 시작했습니다. 10여 분 지나자, 마음에
전혀 수행할 뜻이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향한 대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자문하여 관심을 일으키려 노력했습니다.
예를 들면 ‘왜 오른쪽 눈이 왼쪽 눈보다 밝지?’, ‘왜 오른쪽 눈의 물기가 더 많지?’, ‘왜 오른쪽 콧구멍이 왼쪽보다 크게 느껴지나?’, ‘촉(觸)은 하나인데, 손등과 손바닥의 느낌은 왜 다르지?’...등, 질문하므로써 마음을 깨우려 했습니다.
그렇게 15분 정도 많은 질문을 하니, 마음이 점차 가벼워지고 활발해 졌으며 마음이 스스로 대상을 찾아 갔습니다.
- 몸에 대해서만 생각했나? 그렇게라도 마음을 깨웠다면, 그것으로도 괜찮긴 하다.
다음부터는 ‘무엇이 일어나고 있지?’, ‘늘 아는 것 말고 다른 것을 알 수는 없나?’ 라고
물으면 더 효율적일 게다.
원하는 만큼 안 되니 doas가 생겼고, dosa가 있으니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난 것이다.
그 때는 마음이 알아차린 것에 만족하지 않는 듯 했습니다. 대상에 대해 더 알려고 하고, 문제를 인식하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에는 바람이 불면 바람이 몸을 스치는 느낌 정도를 알았습니다.
이젠 얼굴에 스친 바람과 목이나 팔에 스친 바람이 다르다는 것을 확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것이 나타나 관심을 기울이자, 여태 알지 못했던 두 가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소변이 마렵다’는 생각이 들자, 아는 마음이 ‘어떤 느낌 때문에 소변이 마렵지?’를 관찰했습니다. 그러자, 아랫배의 불룩함과 미세한 전기적 자극 때문에 소변이 마려운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 소변 마려운 생각이 사라지길래 그 이유를 관찰했습니다.
그러자 배의 불룩함은 그대로있지만 미세한 전기적 자극은 사라졌기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또 하나는, 방귀가 나오려 하자 팽창된 기운이 몸속에서 움직였습니다. 몸이 반응하자 그 기운이 몸에서 다시 분해됨을 알았습니다.
지금까지 두 시간 이상 연달아 좌선할 경우, 수행을 지탱하는 힘은 samadhi에서 비롯된
piti 덕분이라고 여겼습니다. 이번 좌선을 통해, 대상을 아는 것 자체에 즐거움이 있고, 그 즐거움으로 인해 수행의 묘미가 더해짐을 알게 되었습니다.
- 알려는 마음과 관심만 있으면, 얼마든지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다.
지혜는 지금 하는 일에 관심이 있고 몰랐던 것을 이해할 때 생긴다.
samadhi 나 선정에서 비롯된 piti가 있고, 지혜로 인한 piti도 있다.
지혜가 뒷받침된 piti가 더 수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