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신도와 불자마을에만 국한하지 않고
마을 전체 관공서까지 40kg 20가마 ‘배달’
"어르신들 부처님처럼 봉양, 무산스님 뜻"
12월22일 동짓날 점심 양양 낙산사 후원에 모이는 신도들과 지역 어르신들.
낙산사 총무 본일스님. 동지를 앞두고 사흘 밤낮 신도 대중들과 더불어 팥죽운력을 지휘하고 팥죽나눔에 솔선했으며 이 날 공양간에서도 팥죽을 그릇에 담으면서 신도들과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관음성지 양양 낙산사(주지 일념스님)가 12월22일 계묘년 동지를 맞아 양양군 전체 마을 어르신과 지역 관공서에 1만분에 달하는 팥죽공양으로 전법포교와 자비나눔을 실천했다. 사찰 신도와 불자마을 주민에 국한됐던 기존 동지 팥죽나눔을 2배수가 넘는 물량으로 통 큰 보시를 선보여 귀감이 되고 있다. 사찰을 둘러싼 마을 전체를 귀한 인연으로 여기고 동네 어르신들을 부처님처럼 공경하고 차별없이 받들어 모시라는 설악 무산대종사의 유지를 실천하는 것.
낙산사가 올해 준비한 팥죽은 40kg 20가마에 달한다. 이는 1만인분에 해당하며 동짓날 충분히 먹고 포장도 해가면서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넉넉하게 나누기 위함이다. 팥죽은 동짓날을 사흘 앞둔 12월19일 아침부터 21일까지 날마다 밤 10시가 넘도록 스님과 신도들이 대중운력으로 십시일반 정성을 다해 쑤었다. 특히 낙산사 신도를 대표하는 관음회와 바라밀회, 합창단과 불교대학이 조를 편성해서 팥죽만들기에 대거 동참했다. 인스턴트 팥죽, 기계 팥죽, 중국산 팥죽이 넘쳐나지만, ‘낙산사 동지 팥죽’은 국내산 식재료에 신심과 원력이 가미되어 맛도 좋고 소화도 잘되는 ‘보약’이다.
낙산사가 지역에 전한 팥죽나눔은 양양군 6개 읍·면·동 134개 노인정을 대상으로 실시했으며 구체적인 현황은 다음과 같다. 양양 현북면에 16개 노인정에 1080인분, 현남면 20개 노인정에 1500인분, 서면 20개 노인정에 1380인분, 손양면 18개 노인정에 1080인분, 강현면 26개 노인정에 1680인분, 양양읍 34개 노인정에 2880인분, 밀양소방서에 80인분, 양양군청에 200인분, 현남면사무소와 현북면사무소 서면사무소, 등 면사무소에 270인분, 강현119와 현북119에 60인분, 강현파출소에 10인분, 낙산해경에 25인분 등이다.
12월22일 동짓날 당일 점심에는 동지법회를 마친 200여명의 신도들이 낙산사 달력을 손에 들고 공양간에 모여 팥죽을 맛봤다. 팥죽뿐만아니라 팥고물 가득한 시루떡과 함께 맛있는 찰밥에 오색나물 마파두부까지 화려하고 맛깔스런 공양으로 신도들의 행복하고 건강한 새해를 서원했다.
낙산사 원주 설원스님은 “예전보다 팥죽물량이 상당히 많이 늘어서 손이 많이 부족했지만, 신도님들이 밤늦도록 열심히 동참해주고 사중 스님들도 힘껏 도와주셔서 화합하는 분위기가 좋았고 덕분에 팥죽도 더욱 맛나게 쑤어졌다”며 “많은 어르신들과 지역에서 고생하는 공무원들에게 좋은 음식을 전할 수 있어서 뿌듯하고 흐뭇하다”고 말했다.
낙산사 신도모임 관음회 회장 상도행 보살은 “이 강추위에 이웃에 어르신들이 맛있게 드실 것을 생각하면서 힘든 줄도 모르고 우리 봉사자들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준비한 팥죽”이라며 “맛있게 드시고 행복하고 건강하게 겨울을 잘 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날마다 신도들과 함께 밤늦도록 지극정성으로 팥죽운력을 진두지휘한 낙산사 총무 본일스님은 이 날 공양간에서 팥죽을 연신 담아내면서 “운력이 쉽지는 않았지만 따뜻한 팥죽공양으로 지역 전체가 훈훈해지는 느낌이 들어 행복하다”며 환하게 웃었다.
거동이 조금 불편하지만 가장 먼저 공양간에 도착한 최순희(85) 어르신은 “어제는 우리 마을로 낙산사 팥죽이 배달이 와서 맛있게 먹었고 오늘은 버스 타고 낙산사에 와서 동지불공 드리고 동지팥죽 먹고 가려고 공양간에 왔다”며 “스물셋에 이 마을로 시집와서 60년 넘게 낙산사를 다녔지만 절에서 마을까지 내려와 맛난 공양 챙겨주시니 너무나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낙산사 후원에서 자원봉사하는 신도들과 원주 스님.
낙산사 후원 동짓날 점심풍경.
많이 달라, 더 달라, 조금만 달라... 총무 본일스님은 신도들 주문에 척척 움직인다.
공양에 앞서 공양물을 올리고 조왕기도를 올리는 낙산사 원주 설원스님.
설원스님이 환하게 웃으며 팥죽에 곁들일 콩나물국과 동치미를 준비하는 모습.
동지팥죽을 맛보려는 후원의 줄이 끝없이 이어졌다.
관공서에 보낼 팥죽수량을 살피는 원주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