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코로나 사태를 대비해 기본소득 문제를 근본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그렇지만 기존 복지제도는 어떻게 할지, 그 많은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기본소득제를 주장하는 사람 대부분이 그런 구체적인 얘기는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김종인 위원장 얘기를 들어봐도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윤곽조차 잡히지 않는다.
'기본소득제(Basic Income)'는 자산 조사나 근로 요구 없이 모든 개인에게 무조건 주기적으로 현금을 지급하자는 주장이다. 왜 이런 기본소득 개념이 나왔는지, 주는 액수에 따라 예산이 얼마나 드는지는 이제 어느 정도 알려졌다. 4차 산업혁명 진행에 따라 인공지능(AI)이 인간 일자리를 위협할 것이라는 두려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가리지 않고 양극화가 깊어지는 점이 도입을 주장하는 핵심 이유다. 그리고 국민 1인당 매월 10만원씩 주려면 대략 연간 60조원(10만원×12개월×5000만명)씩 들기 때문에, 현재 가장 많이 거론되는 액수인 30만원씩 주려면 연간 약 180조원의 예산이 필요하다는 것도 나와 있다.
◇기본소득 어떻게? 윤곽이라도 잡아보면
그럼 어떤 형태로 기본소득제도를 만들고 어떤 방식으로 재원을 마련할지 대략 윤곽이나마 잡아볼 수 없을까. 민간 단체인 LAB2050(대표 이원재)은 지난해 10월 로봇세·환경세 같은 새로운 세원 없이도 2021년부터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 월 30만 원씩 지급하는 방안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현실성 여부를 떠나 이 방안을 살펴보면 기존 복지제도 중에서 어떤 것을 손대야 하는지, 어떻게 재원을 마련하자는 것인지, 앞으로 어떤 논의와 쟁점들이 있을 것인지 어렴풋이나마 볼 수 있다. 이원재 대표는 한겨레신문 경제부 기자,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지난 총선 때 더불어시민당과 연합했던 시대전환 공동대표 등 경력을 갖고 있다.
이들이 내놓은 재원 마련 방안은 크게 기초연금·아동수당 등 현금성 복지제도를 폐지해 3분의1, 비과세·감면 제도를 정비해 3분의1, 재정 구조조정을 해서 나머지 3분의1을 마련하자는 것이 골자다.
덩치가 가장 큰 것은 각종 세금 감면 제도 폐지다. 이들은"소득공제, 세액공제 등 각종 세금 감면 제도를 폐지해 기존 세금 제도의 누진성을 강화하면 56.2조원의 재원 마련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쉽게 얘기하면 연말 소득공제를 없애자는 것인데, 저소득층이 손해보지 않도록 소득세 명목세율을 3%포인트 내리는 내용도 들어 있다.
◇기초연금·아동수당 등 현금성 복지 없애고…
다음으로 덩치가 큰 것은 기본소득으로 대체하는 현금성 복지 폐지다. 구체적인 항목은 △기초연금(18.8조원) △아동수당(3.1조원) △기초생활보장 중 생계급여(3.1조원) △일자리 안정자금(2.8조원) △청년내일채움공제(구직지원 정책, 1.1조원) △두루누리지원사업(4대보험 사각지대 해소, 1.6조원) ▲국민취업지원제도(실업부조, 1.2조원) 등 7개 항목 31.9조원이다. 여기에 △근로장려금(5.5조원) △유가보조금(3.9조원) 등 소득보전 성격의 비과세·감면 제도를 정비하면 18.3조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했다. 합쳐서 50.2조원이다.
그 다음은 탈루·비과세 소득 적극 과세로 15.1조원, 기금·특별회계 정비 같은 재정 구조조정으로 29조원, 지방정부 세계잉여금 등 유휴·신규 재원 25조원 등을 합하면 187조원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 방안을 발표하면서 “개인 연소득 4700만 원 이하 소득계층은 기본소득을 포함하면 기존보다 소득이 늘어나도록 설계했다"면서 “기존 복지 제도는 복잡성 때문에 누가 이익을 보는 대상인지 몰랐지만 이 방안은 수혜 대상이 명확하고 단순하기 때문에 납세자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했다.
국민연금 등 4대 보험은 손대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더라도 기초연금 수급대상자만 544만명, 아동수당 대상자 231만명, 연말정산을 하는 근로소득자는 1858만명에 이른다. 기본소득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그리고 그 논의 과정에서 엄청나게 많은 국민이 영향을 받고 유불리를 따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한마디로 대규모 복지·재정 구조조정이 필요한 작업인 것이다.
◇현실성 판단 어렵지만 필요한 논의 보여줘
이 같은 방안이 현실성이 있는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기본소득제 윤곽을 잡아볼 수 있고, 앞으로 어떤 부분에서 논의·합의가 필요한지 짐작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1월 열린 ‘보수와 진보, 기본소득을 논하다’ 정책토론회 토론에서 석재은 한림대 교수는 이 방안에 대해 “토론회에서 현 단계에서 크게 무리하지 않고 재원을 조달할 수 있는 방안이 나온 것은 성과”라면서도 “그러나 지속가능한
방안인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기본소득제를 도입하려면 현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한데, 기존 사회보장제도 혜택을 받는 사람들이 천만명이 넘는다”며 “아직 북유럽형 복지사회 단계조차도 도입하지 못한 우리 현실에서 기본소득제는 재원 조달의 한계, 공동체 의식 미성숙 등으로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김민철 선임기자
이재명 경기지사 "기본소득에서 2012년 기초연금 데자뷰 느껴져" "똑같은 사람(김종인 비대위원장)에 의해…" "표퓰리즘 때문에 망설이는 사이, 통합당 어젠다 되고 있어"
이재명 경기지사는 6일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화두로 던진 ‘기본소득’ 논쟁을 언급하며 “기본소득에서 2012년 기초연금의 데자뷰가 느껴진다”고 했다. 이 지사는 이날 페이스북에서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머뭇거리는 사이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경제교사였던 김종인 위원장이 기본소득을 치고 나왔고, 어느새 기본소득은 통합당 어젠다로 변해가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기본소득 도입을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이 지사가 이 사안 관련 주도권을 통합당에 뺏겨선 안 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 지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부분적 기본소득은 아이러니하게도 2012년 대선에서 보수정당 박근혜 후보가 주장했다”며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월 20만원씩 지급한다는 공약은 박빙의 대선에서 박 후보 승리요인 중 하나였다”고 했다. 이 지사는 그러면서 “당시 민주당에서도 노인 기초연금을 구상했지만 표퓰리즘이라는 비난이 있었고 비난 때문에 망설이는 사이 박 후보에게 선수를 뺏겼다”고 했다.
이 지사는 “기본소득을 놓고 기초연금과 똑같은 일이 재현되고 있다”며 “일시적 기본소득(긴급재난지원금)의 놀라운 경제회복 효과가 증명되었음에도 정부와 민주당이 머뭇거리고 있다”고 했다. 이어
“(기본소득 도입 주장시 있을 수 있는) 표퓰리즘 공격 때문에 망설이는 사이, 표퓰리즘 공격을 능사로 하며 표퓰리즘 공격에 내성을 가진 통합당이 대세인 기본소득을 그들의 주요 어젠다로 만들어가고 있다”며 “안타깝게도 2012 대선의 기초연금 공방이 똑같은 사람에 의해 그 10년 후 대선의 기본소득에서 재판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