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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행전 5장 29절. 은혜와 진리를 받은 사람들의 특징9-순종하는 삶
오늘날의 사람들은 순종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명령을 듣는 자체가 자신들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탁이라면 관대한 마음으로 들어줄수도 있겠지만 명령을 듣는 것은 매우 싫어합니다. 물론 관대함이라는 생각조차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주인의식에서 나온 판단의 작용이기는 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명령이나 순종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사람의 권리를 극대화시킨 이 세상의 풍조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가정 교육을 그렇게 시켰기 때문일수도 있습니다. 자녀를 왕자와 공주로 키웠기 때문에 뭔가를 시키면 “내가 왜 그 일을 해야 해! 다른 사람시켜요”하고 반발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 끝날까지 어떤 권위이든 간에 권위는 살아있기 마련이어서 누군가는 시키는 사람이 있고 누군가는 그 명령대로 순종해야 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가졌고 행사하는 그 권위 가운데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권위가 있고, 또 멸망으로 인도하는 권위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권위 아래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생명으로 가는 지, 아니면 죽음으로 가는 지 알수 없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히틀러에 복종했던 독일국민들은 자기들의 나라가 세계 가운데 제일 강한 나라요 세계를 다스리는 나라를 꿈꾸면서 그 권위에 복종했습니다. 오늘날 독재 사회에서나 이단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생명이 지킴을 받을 거라는, 혹은 그 명령대로 하면 반드시 잘되고 행복할 거라는 전제하에 순종하며 충성합니다.
사실 권위는 기꺼이 순종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세워집니다. 아무도 순종하지 않는데 권위를 세우려고 하면 그 권위는 서지 않습니다. 이런 권위는 부부사이에도 존재하고, 부모와 자식들 간에도 존재하고, 형제들 간에도 존재합니다. 또 학교에 가도 존재하고, 심지어는 친구들 사이에도 역시 미묘한 권위가 존재합니다. 사회에는 이러한 권위들이 더욱더 복잡스럽게 많습니다. 오늘날 MZ세대라는 젊은 세대는 직장에서도 “내가 왜?”라고 상사들에게 항언함으로 인해 직장 상사들을 당혹하게 하고 있습니다.
권위는 어디든지 있습니다. 하지만 권위를 인정하는 사람도 있는가하면 권위를 부인하려는 반항적인 사람도 있습니다. 역사는 권위를 세우려는 자와 권위를 인정하고 순종하는 자, 그리고 권위에 반항하는 사람들이 어우러져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오랜 시간동안 흘러서 사람들의 내면에 자기가 선호하는 사람들과 혐오하거나 싫어하는 사람들로 나뉘어져 그에 속하게 되고, 그 편에서 지지하며 활동하는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가족 간에도 이루어지고, 교회에서도 일어날 수 있고, 동네에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들의 그룹들이 생겨나고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권위를 부여하면서 그 조직을 키우기도 하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은 명령하는 사람과 명령을 받는 사람 중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어떤 사람은 명령하는 데 익숙하고, 어떤 사람은 순종하는데 익숙한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누군가의 말을 듣고 순종해야 한다면 누구의 말을 듣고 순종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세상의 권위와 하나님의 권위가 충돌할 때 어떻게 해야하는 지에 대한 성경적 답변을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사도행전 5장 29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사도들의 대답은 단호합니다.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런 고백은 때로 목숨을 걸어야할 때가 많습니다. 다니엘도 자신을 포로로 잡아간 바벨론의 왕의 신하들 앞에서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목숨걸고 말입니다. 그런 그들을 하나님은 도우셨고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게 하셨습니다.
불행하게도 오늘날은 이런 신앙고백을 듣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신앙고백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없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나 우리 나라 초창기의 교회들은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실제로 그 믿음 때문에 일제 강점기에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죽었습니다. 6.25사변 때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많은 교인들이 자기 사랑에 매여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신앙고백을 듣기가 어렵습니다. “먹고 살려면 위에서 시키는대로 해야지” 이것이 오늘날의 교인들의 신앙고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명령에는 순종해도 하나님의 명령에는 순종하지 않습니다. 순종을 해도 자기의 안전이 확보된 선에서만 순종합니다. 이것은 온전한 순종은 아닙니다. 온전한 순종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 온전하다고 인정하시는 순종입니다.
사도들이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는 말을 하게 된 배경은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예루살렘 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모든 백성들에게 전할 때 자기들의 기존체졔가 무너질까 우려했던 종교지도자들의 위협 앞에서 베드로와 사도들이 한 대답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사도들에게 “너희가 전하는 것을 다시는 전하지 않겠다고 우리에게 맹세하라”고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자기들이 죽인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늘어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전도는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은 전도하라고 해도 안하는 시대지만 그때는 전도하지 말라고 해도 그리스도를 전하지 않고는 견딜수 없는 뜨거운 사랑이 흘러넘쳤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회개해야 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순종을 하지 않으면서도 순종을 하지 않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영적인 불감증에 걸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로 올라가시기 전에 교회가 할 일을 분명히 명령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8-20절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권위있는 명령을 사도들과 오늘날의 교회들, 그리고 우리 교회는 받았습니다.
초대교회를 통해 예수님은 자신이 하신 말씀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늘과 땅이 모든 권세를 예수님이 가지고 계신다는 사실이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과 교회를 통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이 공회로 잡혀갔던 이유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고소당해서 법원으로 끌려간 이유가 그들이 성전 미문 앞에서 구걸하던 하반신 장애인을 고쳐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나면서부터 40년 동안 한 번도 걷지 못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한 마디 말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는 복음에 그 사람은 일어나 걷고 뛰면서 성전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했습니다.
그 장애인 거지는 평생 성전 안으로 들어간 적이 없었습니다. 항상 성전 문 앞에 자기가 동냥하는 자리에 사람들이 메어다 주면 그 자리에서 구걸을 할 뿐 자기가 성전에 들어가고 싶다던지, 성전에 들어가서 예배를 드리고자 하는 갈망조차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침을 받자마자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성전으로 뛰어 들어가 영광의 하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해주신 일을 간증한 것입니다. 교회의 순종이 이 사람의 생애를 완전히 바꾼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정치나 종교 지도자들은 사람들의 관심이 자기들을 떠나 교회에 향하는 것에 대하여 못마땅해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걱정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들을 떠나면 자신들의 존재가 부각되지 못하기 때문이고 그때부터는 자신들의 권위를 다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항상 새로운 세력에 의해 옛 세력은 다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옛세력은 그것을 방어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면서 조금씩 허물어져 갑니다.
사실 교회는 기존체계를 무너뜨리는 그런 의도를 전혀 갖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할 뿐이었습니다. 지금도 교회의 온 관심이 예수님께 순종하는데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아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는 반드시 순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가 자신들에게 임하는 여부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고 진리를 아는 데도 관심이 없습니다. 진리를 행하려면 세상의 흐름과 역행하는 것들이 많은데 그것을 극복하고, 거기서 오는 어려움도 이겨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럴 용기가 없을 뿐 아니라 그럴 생각조차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는 구원받았으니 천국에 갈 거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천국이 어떻게 주어졌습니까?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셨기 때문에 주어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받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영을 받았기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을 받은 사람이 어떻게 순종하지 않겠습니까? 순종이 쉬운 것이라면 어느 누가 순종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순종의 길은 어려운 길입니다. 눈물도 나고, 큰 한숨도 나고, 두려움과 아픔과 괴로움과 외로움에 신음하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그 모든 것을 이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신 은혜와 진리를 받은 사람들은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여러분로 하여금 순종의 자리로 이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근심하셨습니다. 여러분 근심하는 것이 죄는 아닙니다. 하지만 근심에 사로잡혀 그 자리에서 굴복하는 것은 죄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곧이어 염려로 이어지는 마귀의 시험이 뒤따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근심이 일어나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간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근심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평강이 주어집니다.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은 근심의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열어놓으신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정직하게 자신이 하고 있는 근심에 대하여 하나님께 아룁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때가 옵니다. 그때 여러분들은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도 역시 십자가 앞에서 근심하면서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와 간구를 올리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이루어지기를 구하셨습니다. 아버지의 권위에 복종하기로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셨습니다. 하지만 십자가를 피하게 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십자가를 지기 위해 군병들에게 잡히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고 복종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 아버지의 성령이 계셔서 은혜와 진리로 충만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하나님 자신의 말씀에 순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좋아하십니다. 왜 그냥 순종하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순종하는 사람을 좋아하십니까?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이 진리 안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뜻을 아시고 순종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 19절을 보면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하고 말씀하셨으며, 요한복음 12장 49절을 보면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권위를 전적으로 인정하셨고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가르치고 행하시는 것이 자기 임의로 하는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고 보이신 것을 행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제자들 앞에서와 에수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과 에수님을 따르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까지 무슨 말씀을 전하셔야 하는 지를 아들에게 친히 말씀해주셨습니다. 아들은 그 말씀을 듣고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역시 여러분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께 여쭈어보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행동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들이 무슨 일이든지 즉흥적으로 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여러분들은 자기 의를 보이기 위해 행동하는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고 행하라고 하는 대로 행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며,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시는 것을 매우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게 여기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여러분들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물로 드릴 수가 있습니다. 그런 여러분들을 통해 선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리 안에서 순종하는 사람을 얼마나 기뻐하시는 지에 대해서는 신명기 1장 36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께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하시고” 하나님께서는 갈렙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다고 극찬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갈렙에게는 가나안을 보게 되는 은혜와 갈렙이 밟는 모든 땅을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왜 이런 약속을 하셨습니까? 여호수아와 갈렙 외의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음으로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니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은 순종합니다. 그러나 믿지 못하는 사람은 불순종합니다. 믿음의 여부가 순종의 여부를 가르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 믿음은 단순히 환난에서 구원해주시는 그런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믿음을 지키다가 죽임을 당해도 반드시 부활할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영생을 누리게 된다는 믿음입니다. 그들의 마음 속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이신 자신들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 천국에 항상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기꺼이 순종했고 즐거이 순종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순종의 동기는 어디에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순종을 하기는 합니다. 그런데 그 순종의 동기는 이 세상에서 땅의 복을 받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내가 십일조를 잘하면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부자가 되게 하신다”는 믿음을 가집니다. 또 “내가 건축헌금을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집이 잘되게 하실 것야!” “내가 봉사를 하거나 전도하면 하나님께서 내게 건강을 주실거야!” “내가 예배를 잘 드리면 형통하게 하실거야!” 그래서 열심히 이것저것을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이런 믿음을 보시고서 땅의 것을 잘되게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는 순수한 동기에서 헌금을 드리고 봉사하며, 예배를 드리고 또 전도하는 생활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순수한 동기가 무엇입니까? 바로 자신을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와 사랑입니다. 마음에 감사와 사랑이 있는 순종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립니다. 그런 사람은 이미 구원을 받은 것을 믿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믿음이 있다고 하는 사람은 그가 계신 것과 그가 또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에 반하여 순종과 연관되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사람의 유형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입니까? 첫 번째 유형은 대답은 해놓고 행하지 않는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반드시 순종이라는 행동으로 나아갑니다.
예수님은 순종에 대하여 두 형제의 예를 들어 가르치셨습니다. 마태복음 21장 28-30절입니다.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여기서 형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같은 종교적 지도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동생은 세리와 창기와 죄인들을 이야기합니다. 형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겠다고 하면서 “예”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으로 나가서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살았습니다. 그들이 종교적으로 살았다고 해서 하나님께 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교회에서 예배만 잘드리고 집으로 가서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를 바 없이 산다면 그것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이 형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배도 제대로 드리지 않는 사람이 바로 사는 것은 아닙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들 중에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과는 다르게 세리와 창기와 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동생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살다보니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이 얼마나 큰 죄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돌아와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살겠다고 교회로 가서 자기들이 잘못 살았던 죄를 회개하고 가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이웃을 돕고, 가난한 자들을 돕는 일에 헌신한 것입니다. 삭개오가 그런 예가 아닙니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을 영접하지 않았고, 아들이 주는 교훈을 받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세리나 창기나 죄인들은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한 후에 옛 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새 삶을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과연 누가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였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비유를 듣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작은 아들”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리와 창녀들이 아버지의 나라에 너희보다 먼저 들어가리라” 얼마나 충격적인 말씀입니까?
여러분 천국을 여러분들의 방식대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순종한다고 약속해놓고 자기들의 이익이나 전통이나 자기 의를 내세우기 위해 불순종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위해 하나님을 끌어들이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가 의롭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겉모습만 순종하는 것처럼 보이지 실상은 세상에서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들은 거듭나지 못한 증거를 자기 삶으로 증거하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그런 위선을 행한 죄인임을 고백하고 회개하며 주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용서와 함께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창새기 26장 5절을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률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아브라함은 십계명이나 율법을 받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내 명령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다고 하십니다. 그것이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명령하실 때 말씀을 받은 그대로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기를 결단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아브라함처럼 말씀을 받은 그 즉시 순종하십니까?
순종과 관련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또다른 유형은 하나님께 순종한다고 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출애굽기 16장 20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셔서 광야의 모든 백성들에게 명령하신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만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출애굽기 16장 20절 말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그들이 모세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하나님은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시면서 두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하루에 거둘 것은 하루의 것뿐이다. 이틀 것도 거두면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둘째는 “안식일에는 절대로 가서 거두면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다음날 하나님이 안 주실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그러면 자기들은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 먹고난 일부를 아침에 먹으려고 남겨 두었습니다. 그러자 벌레가 생겨서 냄새가 났습니다. 그것을 알게 된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먹을 음식을 숨겨둠으로 불순종한 그 사람에게 크게 노했습니다.
이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결여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함으로 인해 그런 행동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말과 행동에서 자신이 불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그것이 불순종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불신앙의 사람들은 불순종하게 되고 불순종하는 사람은 주변의 사람들에게 괴로움을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는 순종의 사람은 하나님의 보장을 받으며 보호를 받습니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만 보장 받은 것이 아니라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 받게될 기업에 대해서도 하나님으로부터 보장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갈렙이 밟는 땅은 모두 그의 것이 될 것이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절대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절대적인 보장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은 갈렙으로 하여금 욕심꾸러기가 되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하면서 자기의 욕심을 거대한 풍선처럼 부풀립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어떻게 됩니까? 언젠가 풍선이 터지듯이 터져버리는 때가 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진리를 받은 사람들은 자기의 욕심이나 꿈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하나님 나라의 꿈을 키워가게 됩니다. 그로인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에게 가르치셨던 하나님 나라의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복음에 헌신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시면서 놀라운 일들을 계속해서 일으키셨습니다. 예수님에게 행하셨던 놀라운 표적들을 사도들을 통해서도 이루셨을 뿐 아니라 스데반 집사와 빌립 집사를 통해서도 이루셨습니다.
사도들은 말합니다. “우리가 사람의 말을 듣는 것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하겠느냐?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여러분들은 누구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누구의 말에 움직이고 계십니까? 사람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더 귀를 기울이십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을 들으면 즉시 그 명령대로 순종하십니까?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하나님의 명령과는 다른 명령을 내리는 세상 권세자들의 명령을 거역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더 역사하셨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더하여 주셨습니다.
여러분 최고의 권위자이신 하나님과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이 언제나 함께하시면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든 것의 보장이 되실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들은 확인하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게 되실 것입니다. 이 축복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시는 여러분들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