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님의 군단에 입단하다
2025. 2. 26
제주에서 10여 년의 길고 긴 휴가 아닌 휴가를 끝내고
2025년 2월 12일 다시 성모님 군단의 단원이 되었습니다.
서울 병원진료를 마치고 내려온 바울리나도
2월 26일 같은 쁘레시디움에 입단하였습니다.
돌아보면 다시 재 입단한 과정도
성모님의 전구와 주님의 은총이었다는 것을 느낍니다.
바울리나의 갑작스런 병원 입원과 함께
회복해가는 과정을 통해서~~
제가 영세를 받고 성모님 군단에 입단하기까지
20년 이상의 오랜시간이 걸렸습니다.
입단하게 된 과정을 보면 이렇습니다.
1. 영세를 받다
저는 1980년 제 아내와 결혼하기 위해 처가집에 인사하러 갔는데
장모님께서 사위감으로 별로 탐탁하지 않았는지
떼어버릴 생각으로 조건을 걸었습니다.
외지에서 낳고 자란 사람을 무얼 믿고 딸을 주느냐고 하시며,
영세를 받으면 나에 대해 모든 것을 믿고 딸을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곧 바로 성당에 알아보고 교리반에 입교했고
6개월 동안 개근하여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후의 신앙생활은
겨우 주일만 지키는 신앙생활을 18년 동안 했습니다.
단체활동도 하지 않았고, 기도 생활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직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공부하고 일을 했습니다.
그런대로 직장생활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회사에서도 필요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 인정받음이 모든 어려움을 보상해 주었고
그것이 행복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1997년 IMF이후 외국회사와 조인트 벤쳐가 된 후
경영권을 외국회사에서 갖게 되었고
나는 다른 업무를 할 것을 권유받아 영업교육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회사에서 각광받던 마케팅팀에서 한직으로 밀려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던 시절...
내가 그토록 추구해 왔던 남에게 지지 못하는 일류병,
칭찬, 인정, 인기, 자존심 등이 한꺼번에 무너진 듯한 절망감에
스스로 깊은 구렁으로 빠져들어갔던 시절...
거의 3개월 이상 잠 못 이루는 불면증과
가슴을 찌르는 듯한 통증에 시달리고
한편으론 아내의 수술,
전세금 반환 문제와 아파트 입주 문제 등으로 죽고만 싶던 때...
20년 전 돌아가신 어머님도 안타까우셨는지
꿈결에 하얀 소복차림으로 시골에 있는 선산에서부터
매일 조금씩 제가 살고 있는 집 가까이로 오시더니
나중에는 집 앞 버스 정류장 맞은편까지 오셨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흡사 어머니 품으로 오라는 듯
2. 묵주(기도)를 만나다
이 때가 저의 광야생활이었습니다.
오직 하느님만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요.
그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아내의 한 마디.
"당신 그렇게도 정신을 못 차리면 주님께서 다른 방법으로 깨우쳐 주실거야.
예를 들면 내가 수술받다가 잘못 되든지...
아니면 하나 밖에 없는 딸 유나가 무슨 사고를 당하든지.."
이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리에는 섬광 같은 느낌이 오면서
'그래 정신을 차리자. 주님께 매달리자'는 생각이 들어
매일미사 참례, 성서쓰기, 묵주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강남 성모병원에서 수술을 기다리고 있던 아내를 찾아오신 수녀님의
기도와 한 마디 말씀이 나에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수녀님은 아내의 고교 은사였는데,
당시 미국에서 소임을 하는 중 잠시 귀국하신 때였습니다.
아내가 수녀님께 자신은 괜찮으니
남편을 위로해 주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수녀님은 복도에 있는 긴 의자에 앉아 나의 어깨에 손을 얹고
묵주기도는 주님의 일생을 묵상하면서 성모님과 함께 드리는 좋은 기도이니
자주 바치라고 하시면서 묵주기도 시작 전에
'성모님, 제가 지금 몹시 힘듭니다.
한 발짝만 저와 함께 떼어 주십시오' 하고 나서
기도하라는 말씀이 지금도 뇌리에 생생합니다.
출퇴근 전철에서, 점심 후 회의실에서
시간만 나면 묵주를 손에 들고 기도를 했지요.
그러자 서서히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고
가슴을 찌르는 고통도 줄어들어가는 것을 느꼈고
여러가지 걱정거리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 하나 해결이 되는 것을 보면서 주님의 은총임을 깨달았습니다.
신앙 생활을 20여 년 하면서도 그 동안 느끼지 못하고
무덤덤하게 살아 왔던 무딘 마음에 주님의 사랑이 들어오면서
내 마음도 서서히 부드럽게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때서야 주님의 사랑에 감사드리며 이제 나도 주님을 위해서
무엇인가 해야겠다고 기도 중에 결심하곤 했습니다.
몸과 마음이 정상으로 회복된 후 생각해 보니
아프기 전과 후가 별로 변한 것이 없었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습니다.
그런데도 내 마음이 이렇게 평화스러운 것은 왜일까?
원효대사가 했다는 말 '일체유심조' 즉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것이 아닐까요?
그동안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해 왔던 부귀, 명예, 존경,
건강, 자존심 등에 대한 것이 뭐가 그토록 중요한가?
중요한 것은 내 구원의 문제요.
구원에 이르기 위해 열심히 사는 것이 중요하지...하는 생각으로
내 인생관, 가치관이 바뀌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이 때부터 성당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고
매일미사에도 참례하고 기도 생활도 하면서
가톨릭 신자로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3. 성모님의 군단에 입단하다
2000년 5월
그 때 나의 신앙의 멘토인 조도밍고 형제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끈질긴 형제의 권유로 6개월 만에 항복하고
레지오에 입단을 하게 된 것입니다.
성모님 군단의 일원으로서 기도하고 봉사하는 일을 하게 되었지요.
특히 성가복지병원에서 매주 토요일 병원봉사한 것이
나의 어려웠던 시기를 잘 극복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봉사란 남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지만
봉사를 통해 주님에게서 받는 은총이 훨씬 크다는 것이지요.
사도들의 모후Pr. 서기를 4년 하고나서
꾸리아 부단장을 하다가 여주로 이사했습니다.
여주에 가니 역사가 오래된 평화의 모후Pr.이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어
문의해 보니 4간부 할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1년 반 동안 레지오활동을 하지 못했습니다.
4. 도전리에 평화의 모후 Pr. 을 창단하다
도전리에 정착해 매일 새벽미사를 참례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천국과 같은 생활을 하고 주민들과도 친해졌습니다.
그런데 오랜 역사를 가진 평화의 모후Pr. 이
간부할 단원이 없어 해체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재창단을 위해서 우리 부부가 간부로 참여하기로 하고
신부님께 단원모집에 대한 편지를 부탁했습니다.(아래)
이런 과정을 거쳐 07년 3월 7일
9명의 단원으로 재창단을 했습니다.
이후 북여주 성당이 여주성당에서 분가하게 되어
2008년 7월 6일 북여주성당에 Cu.를 창단하게 되었고
초대 꾸리아 단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창립당시 5개 Pr. 행동단원 40명이
2010년에는 8개 Pr. 행동단원 59명으로 성장했습니다.
2011년 목표를 아래와 같이 수립하고 단장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제주로 이사하기로 결정을 한 후
갈멜수녀원 비비안나 수녀님을 미사 가는 길에서 만났습니다.
수원 순교 가르멜 봉쇄 여자 수도원을 창립하는 과정에서
저희도 수녀님들께 도움을 주기도 했고
자주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수녀님은 섭섭하다고 하시며
늘 손에 쥐고 기도하시던 묵주를 제게 주셨습니다.
얼마나 많이 하셨는지 반들반들 윤이 났습니다.
5. 레지오 마리아에 재입단하다
제주로 이사온 후 레지오에 입단하려고 시도했다가
여러가지 문제로 입단을 미루고 있었는데
성모님 군단의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지 않는 것이
마음이 불편했고 아내의 갑작스런 입원이 후
아내와 함께 다시 레지오활동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제야 고해성사를 보고 오랜 냉담에서 벗어난 것처럼
성모님의 따스한 품에 안긴 듯 합니다.
비비안아 수녀님이 주신 묵주는 레지오 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늘 잠자리에 두고 잠들기 전에 손에 쥐고 가슴에 놓고
묵주기도를 하다가 잠들곤 했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쓰러져 병원에서 투병중이던 때
늘 이 묵주를 휴대하고 다니면서 성모님께
바울리나의 건강을 회복시켜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지인들이 기도해 주셨지만 특별히
로마에 계실 때에도 기도해 주신 갈멜 수녀님입니다.
빠빠는 미사예물 못받는답니다
그래서 교황수행비서추기경님(새로추기경되신 인도분
저희가 아시는분)에게 우리 은인들 지향대로 미사청했습니다
빠빠 알현할 때에도
우리 은인들 강복해달라고 직접 청하고 편지도 드렸습니다
바울라자매님 스테파노형제님 위해 많이 기도합니다
저희 창립과정에서
결코 잊을수 없는 분들입니다
주님께서 꼭 기억해주시리라 믿습니다
드디어 2025년 2월 12일 샛별Pr. 에 입단했습니다.
차일피일 미룬 것이 10년이 다 되었습니다.
샛별도 해체되기 일보 직전 현 단장이신 마리아 단장께서
2000차가 다 된 샛별이 해체되는 것이 안타까워 단원을 모집하여
겨우 4간부를 채워 2014년 11월 2000차 주회를 했습니다.
오늘(2월26일) 아내도 입단하여 7명이 되었습니다.
아내의 갑작스런 일로 인해 다시 레지오에 입단한 것입니다.
처음 레지오를 대하는 마음으로
활동할 수 있을 때까지 쉬지않고 성실하게
레지오 단원으로 살 것을 다짐합니다.
오늘 아침기도와 묵주기도를 드리며
신앙생활이 나태해진 대자를 만나 점심식사를 하고
오랫동안 쉬고있는 베드로 형제를 찾아 볼 예정입니다.
주보와 생활성서 송봉모 신부님의 책을 가지고~
민태원의 "청춘예찬"에서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巨船)의
기관(汽罐)과 같이 힘있다. "라고 했듯이
나에게도 "성모님의 군단"이라는 말이
그동안 잔잔하던 내 마음을 고동치게 합니다.
청춘의 피는아니지만
성모님의 힘으로 다시 시작하자!!
첫댓글
세잎 클로버 님
제주엔 이젠 봄기운이 완연하시지요
만인의 가슴에 평안을 주시는 귀한
정성과 사랑이 가득하신 작품으로 3월의 첫날을 마중을 드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