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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주에 사도행전 5장 첫 부분에서 초대교회에 사탄이 교회를 휘저어놓은 사건을 보았습니다. 사탄은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를 이용해 위선과 거짓으로 교회를 혼란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로 교회를 다시 바로 세우며 교회의 순결성이 유지되게 되었고 다음 세대에 교회의 바른 모습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을 통해 참 교회가 어떠해야 하는 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교회에 있었던 신비학 놀라운 사건의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사도들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게 됩니다. 이런 놀라움 속에 공동체 구성원들은 두려움과 경외심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합니다. 사람들에게 임하는 이런 놀라운 역사를 보면서 예루살렘 사람들은 교회를 두려워하면서도 믿는 자들은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바로 교회가 진짜였기 때문입니다. 능력이 있었고, 거룩함이 있었고,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살아있는 공동체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 땅의 교회는 어떻습니까? 교회의 모습과 성도의 모습, 우리의 생활과 교회의 사역이 진정 이 시대에 영향력을 끼치는 지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진정 아름다운 공동체, 초대교회와 같은 능력의 공동체,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은혜의 공동체로 바로 세워지기를 소망합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 고주리교회, 그리고 이 땅에 있는 모든 교회가 참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세워져서 그리스도의 임재 가운데 참 교회로 더욱 바르게 설 수 있게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땅에 세워진 교회가 추구할 참 교회, 첫째는 하나님 능력이 나타나는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5장 12절을 보시겠습니다.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오늘 본문에서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많은 표적과 기사가 민간에 일어났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을 통해 놀라운 기적과 표적을 베푸셨습니다. 여기서 먼저 우리의 시선을 붙잡는 것은 표적과 기사 자체가 아니라 표적과 기사의 원천과 대상입니다. 표적과 기사의 원천은 뭘까요? 바로 우리 하나님이시죠. 그럼 표적과 기사의 통로는 뭐인가요? 오늘 본문을 보니 ‘사도들의 손’입니다. 여기서 ‘사도의 손’은 도구라는 것이죠. ‘손’이 주인이 아닙니다. ‘손’이 의지를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손’은 단지 명령을 수행하는 수단일 뿐입니다. 여기서 깨달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당신의 방식으로, 당신의 사람들을 통해 이루시지만 결코 그 사람들을 주인으로 세우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개혁주의 신앙이 들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누리는 모든 은혜의 근원은 하나님이시고 능력도 하나님이시고 목적 또한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은 통로일 뿐이며 표적과 기사도 하나님께서 위대하시며 세상의 모든 것이 되신다는 것을 살짝 비춰주는 현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믿는 사람들이 다 솔로몬 행각에 모였다” 기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솔로몬 행각은 이스라엘 땅에서 중요한 곳입니다. 솔로몬 행각은 성전의 한 부분입니다. 유대인들의 신앙을 교훈하는 곳이고, 산헤드린 공회의 재판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제 그곳을 그리스도인들이 점령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솔로몬 행각에 모일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역설이 있습니다. 성전은 구약의 영광을 상징하고, 그 영광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성전의 중요한 모임 장소에 그리스도의 새 언약 공동체가 세워지고 그 장소에 그리스도인들이 모였습니다. 유대인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심판했던 장소였던 곳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 의해 점령되어 복음의 부흥을 일으키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오늘 본문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표적과 기사는 구원의 역사 속에서 “그리스도의 왕권”을 드러내는 한 줄기 빛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살아계시며 놀라운 역사를 행하고 있음을 오늘 본문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런 표적과 기적들이 어떤 것인지를 오늘 본문 15, 16절에서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함께 살펴보시겠습니다.
사도행전 5장 15, 1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사람들이 병든 자를 메고 나와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 그림자라도 덮으면 좋겠다” 기대했습니다. 여기서 많은 오해가 발생합니다. ‘그림자’에 어떤 마법적 능력이 있었던 것처럼, 베드로의 신체가 ‘능력의 저장고’인 것처럼 착각한다면 이것은 마치 이단, 사이비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몸, 베드로라는 인물이 능력자이기에 이런 기적이 일어났다”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베드로를 신으로 받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신격화하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가 전하는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기 위해 이 상황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림자’가 뭔가요? ‘그림자’는 빛이 있어야 생기는 존재입니다. 빛이 없으면 그림자도 없습니다. ‘그림자가 있다, 그림자가 생긴다’, 그러면 반드시 ‘어딘가 빛이 있다’라는 의미입니다. 지금 이 시간 우리 대한민국 남부지역은 온통 흐리고 비가 내리고 있어 그림자를 발견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이 곳 경기도 화성은 날씨가 화창하고 햇빛이 쨍쨍해서 그림자가 확실히 보입니다. 빛이 있는 곳에는 그림자가 있습니다. 베드로의 그림자는 빛이 있었기에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보면서 우리는 “베드로의 기적은 베드로가 신이다, 베드로가 능력자이다”라는 의미를 버리고 “베드로를 쓰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빛이시다”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며 “우리에게 임하는 모든 능력은 빛되신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에게 임하는 것이다”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베드로를 그렇게 따라다닐까요? 이 본문에서 당시 예루살렘교회의 사람들 속의 간절함을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대중적 신앙 표현’입니다. 베드로의 능력을 믿고 따랐다는 것보다 어떻게든 고침을 받아야겠다는 간절함이 묻어나와 베드로를 붙잡고 베드로의 그림자라도 붙잡아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잘못되면 우상숭배와 가짜 믿음으로 변질될 수 있지만 베드로가 그렇게 가르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렇게 간절히 어떻게든 고침을 받아보려고 했다는 것이 이 본문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이 본문을 보며 고침의 의미를 깨달아야 하는 우리들, 그리고 그 당시의 예루살렘 교인들 가운데 제대로 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베드로의 그림자가 병자를 고친 것이 아니라 베드로에게 임한 성령께서 역사하셨고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로 치유를 받게 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놀라운 기적, 놀라운 치유의 역사를 볼 때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예수, 지금도 성령으로 교회를 다스리시는 예수님께서 이 놀라운 일의 근원이시다라는 사실을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다고 하지만 정작 그 능력이 임하기를 기대하는 간절함이 있습니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만져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까? 고쳐주시면 좋고 어쩌다 고쳐주시면 괜찮고 정도로 우리 신앙의 확신이 없이 그리스도의 살아계심, 그리스도의 임재, 그리스도의 능력을 무가치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개인, 우리 가정, 우리 교회와 우리 직장, 우리가 속한 모든 곳에서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기대하십니다. 간절함으로 하나님을 찾고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땅에 세워진 교회가 추구할 참 교회, 둘째는 하나님의 거룩함이 살아있는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5장 13절입니다.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예루살렘 사람들은 교회 공동체를 함부로 대하지는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직전에 있었던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성령을 속이고 거짓 신앙을 가지고 사기 고백을 했던 그들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교회에서는 ‘경외심과 두려움’이 자리를 잡았고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차원이 다른 질서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방금 읽은 본문에서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라는 말씀에서 ‘상종하다’라는 단어를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이 ‘상종하다’라는 단어의 헬라어 의미는 ‘단순히 말을 섞거나 옆에 있는 정도가 아니라, 달라붙다, 밀접하게 연합하다, 한 무리에 붙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13절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라는 말은 ‘아무도 교인들과 접촉하지 않았다’라는 의미라기보다 ‘교회를 가볍게 여기고 함부로 그 무리에 끼어들려는 사람이 없었다’라는 뜻입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있어 초대교회는 약간의 거리감이 있었습니다. 이 ‘거리감’은 ‘외면’이라기보다는 ‘조심스러운 경계’였습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의 결과를 보며 교회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일을 보며 예루살렘 사람들은 ‘저 공동체에는 정말 하나님이 계신다. 함부로 들어갈 곳이 아니다.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될 것 같다’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교회가 무조건 세상과 가까워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교회가 세상과 어느 정도 거리감이 있어야 한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세상 사람들에게 교회는 두려움의 존재로 느껴질 만한 특별함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거룩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거룩함’은 단순히 도덕적인 완벽함이 아닙니다. ‘거룩함’은 하나님의 임재를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초대교회는 거룩함이 살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교회를 두려워하면서도 존경했습니다. 가짜는 쉽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앞에서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짝퉁은 망가트려도 별 것 아니기에 근처에 가도 조심스럽지 않습니다. 하지만 명품은 혹시 흠집이라도 나면 물어내야할 금액이 크기에 가까이 가는 것조차 부담스럽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본문의 초대교회는 진짜이기 때문에 예루살렘 사람들이 교회 근처에 함부로 다가가지 못하면서도 교회를 칭찬하며 존경했습니다. 방금 읽은 본문의 뒷 부분에 “백성이 칭송하더라”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교회 공동체와 교회 사역자들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교회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교회라는 공동체에 대해서는 칭찬하며 교회모임은 좋은 모임, 교회에 소속된 사람들은 좋은 사람이라고 인식하였다는 것입니다.
요즘 이 시대의 교회는 어떻습니까? 이 세상의 현대 교회는 건물이 멋지고 예배가 세련되고 프로그램이 잘 돌아가고 시스템이 체계적입니다. 그래서 외형적으로도 멋지고 프로그램도 많고 뭔가 활발한 활동이 있으면 좋은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들은 성도수를 보면서, 어떤 사람들은 체계적인 예배모습을 보면서, 어떤 사람들은 찬양에 사용된 악기와 기교를 보면서, 어떤 사람들은 목사님의 설교 유튜브 조회수나 다른 교회 성도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것을 이야기하며 우리 교회가 좋은 교회라고 말합니다. 물론 그런 것들도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하나님께 기뻐하시는 교회는 진정 어떤 교회일까요?” 세상이 보기엔 ‘작고 연약해 보이는’ 교회처럼 보여도 그 안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능력이 역사하고 거룩함이 지켜지고 사람들의 삶이 변화된다면 그것이 진짜 교회일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세상 사람들에게 어떤 인상을 주고 있습니까?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거룩함이 살아있습니까? 나는 하나님 앞에서 숨김없이 참 자유를 누리며 하나님과 바른 소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거룩함으로 바로 서서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제대로 믿음생활 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땅에 세워진 교회가 추구할 참 교회, 마지막 셋째는 참 믿음으로 주님을 만나는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5장 14절입니다.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방금 읽은 사도행전 5장 14절에서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라는 표현은 성경 원어인 헬라어 원문에서 현재 분사형이 사용되었습니다. 즉 “믿는 자들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를 의미하는 내용입니다. 한 순간 많아진 것이 아니라 성경이 기록될 당시에도 계속 여전히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남녀의 큰 무리”라는 이 표현은 성경에 참 특이하게 기록된 내용입니다. 왜냐면 ‘여성’이 성도로 참여하고 있음을 공식적으로 기록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활동에 남녀가 모두 참여하며 남성과 여성이 모두 숫자적으로 성장하게 되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남성과 여성 모두를 품었습니다. 당시 사회에서는 여성은 종종 배제되거나 소외되었지만 하나님 나라는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은 모두에게 열려 있고, 하나님의 공동체는 열린 문을 가진 공동체입니다. 놀랍게도, 두려움이 있던 공동체에 사람들이 계속해서 모여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전도의 결과가 아닙니다. 공동체 자체가 복음의 증거가 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능력 있는 교회 거룩함이 있는 교회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는 교회였기에 사람들이 두려움을 가지면서도 하나님을 향한 이 모임에 마음을 열고 자발적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도 마찬가지이고 지금 사회주의 국가나 이슬람이 사회를 지배하는 국가를 가보면 신앙을 갖게 되는 것, 교회에 참여하게 되는 것은 곧 죽음을 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핍박, 그 협박에도 교회에 나오게 된다 이것은 정말 기적과 같은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5장 13, 14절에는 아주 흥미로운 긴장감이 있습니다. 백성들에게 교회는 너희들이 함부로 끼어들지는 못하는 특별함이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데 그런 두려움과 차별적인 독특함을 보여주는 교회에 대해 백성들은 계속 찾아오고 주님께로 나왔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에는 교회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교회의 매력이 존재했던 것입니다. 교회의 거룩함 때문에 아무나 가볍게 공동체에 붙지는 못했지만 바로 그 하나님의 임재 때문에 진실로 믿는 사람들은 더욱 주께로 나아왔습니다. 교회가 대중적으로 가벼워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강력한 거룩의 공동체, 더 말씀 앞에서 제대로 살아야 하는 어려움을 가르쳐도 사람들이 더해졌다는 사실입니다. 요즘식으로 표현하면 진입장벽을 낮췄더니 사람이 많아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들어오기 힘들게 만들었음에도 들어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거룩을 지킬수록 오히려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5장 14절에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라는 것은 기적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땅에 기적을 허락하시고 교회를 통해 일을 만드시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영혼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능력을 눈으로 보고 치료를 경험하고 돌아가서 ‘진정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내 병이 나은 것을 보라. 그의 이름으로 기도를 받았는데 병이 나았다’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근처의 작은 성읍과 도시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우리 고주리교회는 어떻습니까? 겉모습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과 거룩함이 머무는 교회되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이 핵심이 아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는 교회 오늘 본문의 이 예루살렘교회의 모습이 저와 여러분의 교회, 우리 고주리교회가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을까 합니다.
몇 해 전, 한 외국 선교사님이 중동 지역의 비밀 교회를 방문했다고 합니다. 그 교회는 정식 건물도 없고 찬양을 부를 때도 소리 죽여 속삭이듯 불렀습니다. 성경은 손으로 베껴 쓴 것으로 완전하게 모든 성경 구절이 기록되어 있지도 못했습니다. 예배드리다가 들키면 모두 잡혀가서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불안한 예배를 드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를 방문한 선교사님은 말로 다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습니다. 사람들은 눈물로 기도했고 실제로 병이 치료되는 기적을 경험하며 서로가 서로를 챙겨주는 참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선교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록 그 교회는 건물은 없었지만, 거기엔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그 성도들이 진짜 교회였습니다.”
초대교회, 예루살렘 교회는 단순히 ‘사람이 많아서’ 놀라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건물이 있어서, 프로그램이 있어서, 유명한 지도자가 있어서 놀라운 게 아니었습니다. 그 교회 안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실제로 역사했고, 거룩함이 지켜졌으며, 그로 인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주님께로 나아오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유대인의 형식적이며 가식적인 신앙의 상징이었던 솔로몬 행각이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신앙으로 이제 생명의 역사가 넘치는 장소가 바뀌게 된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교회 부흥은 주의 생명의 말씀으로 놀라운 기적이 나타나게 되고 그 놀라운 기적을 보며 택함받은 사람들이 몰려들게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초대 예루살렘교회 모습을 통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교회를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로 능력이 나타나는 교회, 둘째로, 거룩함이 살아 있는 교회, 셋째로, 사람들이 주께로 나아오는 교회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섬기는 우리 고주리교회가 치유의 역사가 넘치고 사람들에게 희망을 보여주고 살아있는 공동체로 이 땅을 변화키시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