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와인 1세대(2)
우리나라 와인 1세대에서 빠질 수 없는 분이 ‘피터현(1927-2019, 한국명 현웅)이다. 함흥 출신의 언론인으로 더 타임스, 뉴욕 타임스 등에 활동하면서 한국 관련 기사를 기고하여 우리나라를 널리 알렸고, 1974년에는 북한에 직접 들어가 당시 북한 사회의 현실을 취재하여, ‘북한기행’을 출간했다. 또 1981년에는 중국을 방문,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뤼순(旅順) 감옥을 취재해 처음으로 한국에 알리기도 했다. 프랑스 루아르에 작은 샤토에서 살면서 조선일보에 29회 기고를 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비교적 잘 알려져 있는 분이다. 비노테크의 이민우 대표와는 돈독한 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에로틱한 이야기를 잘하시는 분으로도 딱 한번 만났는데, 정말 재미있었다.
또 한 분은 미주중앙일보 사장을 지냈던 김행오(1927-2011)씨다. 1988년 5월, LA 동아제약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만났다. 자그마한 분이 “어! 자네야?” 하면서 “이제 한국이 정신 차렸구만! 자네가 와인 배운다며?”라고 묻는 것이다. 그러면서 바로 나를 데리고 로스앤젤레스 근처 와이너리 투어를 시켜 주었다. 미리 예약을 해두었던 것이다.
이 분은 서울대 화공과를 졸업하고 미국통역관, 영화 제작, 사진작가 등 숱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미군 통역을 맡으면서 와인에 눈을 떴다고 한다. 1960년대 말, TBC 동양방송이 설립되면서 초대 편성국장으로 일했고, 이병철 회장의 와인도 정리하고 조언했다. 한번은 이병철 회장이 무통을 가져와서 잔에 따르니까 찌꺼기가 있는데 마셔도 되느냐고 묻더라는 것이다. 괜찮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자네나 마시라고 주고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시절에 와인을 섭렵한 분이었다.
이 분은 1970년대 초, 미국 내 동양방송 지사 설립을 위해 LA로 이주했다. 1974년에 창간된 미주중앙일보의 초대사장을 지내고, 퇴직 후에 LA에 눌러 앉아 동아제약 사무실과 같이 사용하는 광고회사 고문을 맡고 있었다. 그 후에도 동아제약 직원과 10일 동안 서부 여행할 때 여행 스케줄을 완벽하게 짜주었다. 어디를 지날 때는 시속 몇 마일로 5분 정도 가면 오른쪽에 작은 간판이 보이는데, 차는 어디에 주차하는 것이 좋고 어디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등 아주 세밀한 여행 안내였다.
그리고 내가 한국으로 돌아갈 때 ‘코메리칸’이란 잡지에 와인에 대해 기고한 카피 본을 한 묶음 주면서, “한국 교포들 이거 하나도 안 읽어, 갖고 가서 읽어 봐. 저작권 그런 거 없어. 많이 알려.” 사실, 내 ‘와인’ 책은 이 기고문이 모태가 되었다. 그리고 귀국하기 전에 사가지고 가야할 와인 리스트를 빈티지까지 써서 나에게 주었다. 대개 1976년 ‘파리의 심판’에 나온 와인이었다. 덕분에 책과 자료도 많이 가져와야 하는데 와인 15병까지 들고 비행기를 타느라 비행기 안에 읽던 책을 깜박 두고 내리기까지 했다. 당시는 와인을 들고 기내 탑승이 가능한 때였고, 와인은 술로 취급하지 않은 때라서 와인 15병은 공항 세관도 아무렇지도 않게 통과하였다. 그 후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교류가 있었으나 내가 와이너리 관둔 후 소식은 끊겼다.
이 두 분의 선각자적인 활동 때문에 와인이 우리나라에 거부감 없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1인당 국민소득이 100불도 되지 않던 시절에 어떻게 와인을 접하게 되었고, 이를 우리나라에 소개할 생각을 했는지,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려면 그쪽의 문화도 함께 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 시대를 앞서 가신 분들이다. 이 분들이야말로 진정한 우리나라 “와인 1세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