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도 선생. 함민복 선생 두 사람 모두다 등단을 한 詩人이다. 그러나 최석운 선생은 재야(在野). 즉 다시말해 변방(邊方)의 시인이다.
전북 임실군 덕치면 천담리 섬진강변에 초등학교 교사 출신의 김용택시인이 살고 있다면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예밀리 해발 600미터 산간오지에는 오로지 詩를 쓰기 위해 텃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농사꾼 유승도시인이 있다. 남편이 시인임으로 오직 詩쓰는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그것으로 족하다며 불평불만 하나 하지않고 청빈으로 입성을 대신하며 소박함으로 남편을 내조(內助)하고 살아가는 유승도 시인의 아내. 물신주의가 도배 된 현 시대에서는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참으로 보석같은 여인임엔 분명하다. (옛날 백면서생(白面書生)의 아내가 쌀 독에 쌀이 떨어졌음을 보고 자기 머리를 잘라 쌀 한 됫박을 구한 다음 밥을 지어 남편에게 공양을 하니 밥상을 받아든 서생. 아내의 머리에 지른 비녀대신 수건이 둘러쓰져 있음을 보고 그 연유를 물은 뒤 저간의 자초지정을 알고 자기의 신세를 한탄하니 서방님은 오직 글만 읽으라고 했다는 얘기가 있는데 아내에게 기생(寄生)해 살아가는 파렴치범으로만 몰 것인가!)그렇게 볼때 유승도 시인은 정말 복받은 사람이요. 행복한 사람이라고 밖에는 뭐라 더 이상 할 말이없다.
‘긍정의 밥’으로 잘 알려진 함민복 시인이 강화 군청에서 시작(詩作)에 관해 강의를 하던 중 청강생(聽講生)으로 자리를 한 동갑내기 제자가 함민복 시인의 시 세계에 빠져 헤어나오지를 못하고 그냥 그대로 머물러 있기로 작정을 했는데 그 방법은 다름 아닌 함민복 시인을 지아비로 선택하는 것이었다. 호구지책(糊口之策)하나 해결 못하고 살아가는 가난한 시인 함민복. 그에게 인삼가게를 운영하며 변장(變裝-化粧을 한 50대의 여인을 일컬음)을 하고 살아가던 노처녀는 아예 함민복시인이 자기 가게에 들어와 바람과 눈·비를 피하고 삼시세끼를 해결. 오직 詩만을 쓰며 살아가도록 자리를 내주었다. 자연스러운 동거동락이 이루어진 것이다. 정말 하늘이 내려준 복이 아니던가. 이런 복을 누가 감히 받으랴. 함민복 시인은 정말 복받은 사나이다. 이제 그의 시는 앙상하고 메마른 詩가 아니라, 찰진 윤기가 조르르 흘러 내리는 詩이리라.
최석운은 시인은 이렇다 할 대표작이 없는 재야 시인인데 골프샵을 운영하던 샵에서 경리로 일을 하던 여성이 최석운 시인의 詩에 정신을 잃고 그 시의 세계에 헤엄치며 살고 싶어 무려 열 세 살이라는 나이를 뛰어넘어 연상의 최석운 시인과 연을 맺었다고 한다. 최석운 시인을 잘아는 한 지인의 말을 빌리자면 최석운 시인은 다분히 돈키호테의 기질을 지녔다고 한다. 그는 일정한 직업도 없을뿐더러 설령 직업을 갖는다 하더라도 몇 달을 버티어내지 못한다고 했다. 생활은 50대의 아내가 공장을 다니며 버는 돈으로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본다면 최석운 시인의 나이가 괘 된 듯 한데…. 그러나 최석운 시인 자신의 詩에 대한 철학 만큼은 확고부동하다고 했다. 여전히 시를 쓰며 경기대 국문학과 교수로 있는 친구가 운영하는 문학 동인회활동에도 매진하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볼때 유유자적 아무 거리낌없이 자기가 할 수 詩만을 쓰며 살아가는 최석운시인 또한 행복한 사람이 아닌가 싶다.
세 분의 공통점은 부와는 괘를 달리하는 청빈한 삶을 산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가난을 초월하여 사는 사람들이다. 중요한 것은 그들과 함께 삶을 영위하고 있는 아내들 모두가 하나같이 가난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산다는 것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녀들의 삶을 토대로 문학을 하는 남편들이 문학으로만 온전히 승화되기를 일구월심 바란다는 것이다. 그녀들은 돈의 가치가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당금(當今)의 사조(思潮)에 조금도 절여지지 않은 싱싱하고도 푸른, 맑은 영혼의 소유자들이었다. 이런 아내들의 내조(內助)를 받으며 살아가는 시인들. 그들의 시속에는 영혼을 사랑하며 자연을 사랑하며 우주를 찬양하는 감사가 오롯이 녹아있고 또한 샘솟듯 흘러나오고 있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참으로 영혼이풍요롭고 행복한 시인들이다!
金 榮 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