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상태에 대한 열등한 상태를 뜻하는 말로, 불완전함의 미학을 나타내는 일본의 문화적 전통 미의식 또는 미적 관념의 하나이다.
일본어 와비(わび, 侘)와 사비(さび, 寂)는 서로 다른 개념이지만, 묶어서 와비사비라고 한다. 즉 덜 완벽하고 단순하며 본질적인 것을 뜻하는 와비와, 오래되고 낡은 것을 뜻하는 사비가 합해진 와비사비는 부족하지만 그 내면의 깊이가 충만함을 의미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물질적 풍요보다는 부족해 보이지만 남들에게 비쳐지는 삶이 아닌 자신의 본질적인 삶을 추구하면서 ‘와비사비 스타일’이 새로운 삶의 트렌드로 각광받고 있다.
대표적인 와비사비 스타일은 자연스럽고 여백의 미가 있는 단순함을 추구하는 특징이 있으며, 차분하고 오래된 것의 미학을 중시한다. 따라서 필요 없는 것은 구매하지 않고, 생활 용품이나 가구는 재활용하거나 고쳐 쓰면서 자기 삶의 안정감과 만족감을 찾는다.
덴마크에는 휘게라는 문화가 있어요. 안락하고 느긋한 삶,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덴마크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뜻해요. 이 휘게의 영향을 받고 자란 니콜라이 버그만은 검소함과 여백의 미를 중시하는 이케바나 문화에서 익숙한 정서를 느낀 게 아닐까요? 일본 사람들도 언뜻 자신들의 정서와 대비되어 보이는 니콜라이 버그만의 공간에서, 익숙한 향기를 맡았던 것일지 모르고요.
일본에는 ‘이케바나’라는 꽃꽂이 문화가 있어요. 일본 가옥에서 방의 한 켠을 바닥보다 높게 단처럼 만든 공간인 ‘도코노마’에 그림족자를 걸고 꽃꽂이를 장식함으로써 마음의 평온을 찾으려 했던 것이 그 기원이에요. 16세기 무렵 이케바나는 대중의 삶에 내려 앉았어요. 다도와 와비사비*가 인기를 얻으면서, 꽃꽂이에도 간소함을 추구하는 문화가 피어나기 시작했죠.
*와비사비: 완벽하지 않은 것들을 귀하게 여기는 삶의 방식
일본 이케바나의 특징은 균형이에요. 어느 나라든 꽃을 아름답게 여기는 문화가 있는데요. 주로 꽃의 화려함과 색채에 집중한다면, 이케바나는 꽃의 형상과 의미에 중점을 둬요. 비대칭적인 형상과 여백을 바탕으로 꽃을 이루는 가지, 잎사귀 등의 소재를 화병과 배치하죠. 꽃 자체의 화려함보단 전체적인 아름다움을 살리는 것이 핵심이에요
이케바나는 정신적인 면에서도 의미하는 바가 있어요. 일본 사람들은 이 시간을 조용한 장소에서,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삶을 회고하는 시간으로 여겨요. 꽃을 장식하는 단순한 작업 속에는 꽃과 조화를 이루며 마음을 치유하려는 바람이 깃들어 있죠. ‘겸손한 아름다움’은 이케바나를 함축하는 한 문장이에요.
그런데 이런 정제된 일본의 꽃꽂이 문화에, 보다 드라마틱한 변화가 일어났어요. 때는 2000년. 일본인들이 오랫동안 유지했던 겸손한 아름다움에 완전히 균열을 내버리는 플로리스트가 등장한 거죠. 유창하게 일본어를 구사하는 덴마크의 청년, 니콜라이 버그만이에요.
니콜라이는 2001년 도쿄에 자신의 첫 플라워샵 ‘니콜라이 버그만 플라워 & 디자인(Nicolai Bergmann Flowers & Design)’을 오픈했어요. 스칸디나비아 문화의 심플함과 일본의 세밀한 감수성을 결합해, 일본에서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파격적인 플라워 스타일링을 선보였죠. 이 특별한 꽃의 이름은 플라워 박스. 단순한 네모 상자를 넘칠 만큼 풍성하고 화려한 꽃으로 가득 채운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