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東疎
七成滿大性 謂卽無上正等菩提自體 所成滿菩提自體 此餘
成滿自體 尙無與等 何況超勝
칠성만대성 위즉무상정등보리자체 소성만보리자체 차여
성만자체 상무여등 하황초승
일곱째, 가득함을 이루는 것이 대승의 본성과 맞다. 이를테면 무상정등
보디 그 자체로 인해 무상정등보다 자체가 이루어진 것이다. 여타의
그 어떤 자체가 원만히 이루어졌다 해도 이것에 비하면 결코 대등하지
를 못하는데 어찌 이것보다 그것이 더 뛰어나고 더 훌륭하다 할 수가
있겠는가.
불교는 남의 것을 빼앗아 내 것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다. 아니면 남의 것을 빼앗아 나에게 주도록 애원하는 종교도 아니다. 불교는 철저히 자기 것을 자기가 찾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는 남에게 원한 살 일이 없고 스님은 남에게 미움 받을 일이 없다. 아니 자기 것을 자기가 찾아 쓰겠다는 데 누가 왜 흉보고 손가락질을 하겠는가.
우리가 혹시라도 거지가 되어 갖은 고생을 다 하며 힘들게 살아가면 어쩌나 싶어서 아주아주 오래전에 부처님은 우리들의 가슴에다 금덩어리 하나씩을 넣어주시고 세상을 떠나셨다. 그것이 얼마나 반짝이고 값비싼지 세상과 맞바꿀 만큼 큰 금액의 금덩어리였다.
하지만 우리는 어리석어서 그것을 쓸 줄 몰랐다. 어린아이에게 수표를 주면 어떻게 쓰는지 모르는 것처럼 우리도 그것을 그냥 가숨에 품고서 삼계를 유랑하는 상거지 신세로 참 기구하게 살아왔다. 온갖 풍상과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 말할 수 없는 신고의 세월을 살아왔다. 정말로 오랫동안 거칠고 힘들게 버텨온 세월이었다. 그런 초췌하고 파리한 삶은 여기 인간세상에서도 계속되었다. 그 가엾은 모습을 보다 못해 부처님이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나셔서 내가 옛날에 제각각의 가슴에다 금덩어리 하나씩을 다 넣어주었는데 어쨌는지 한번 찾아보라고 하셨다.
우리들이 찾아보니 그 금덩어리가 그대로 있었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제부터라도 필요할 때 그것을 팔아서 쓰면 고통의 삶이 없어질 것이다고 하셨다. 우리는 환호했다. 그러면서 모두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래도 부처님은 못 미더우셨는지 몇 번이나 우리를 보고 확인하셨다.
내용이 계속 이어집니다.
첫댓글 가슴 속 보배를 찾아 쓰기를.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