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승아양 막으려면… “스쿨존 방호울타리 개발, 설치 의무화를”
[도로 위 생명 지키는 M-Tech]〈3〉 ‘스쿨존용 울타리’로 사고예방을
기존 보행자용으론 참사 못막아… 센 충격 견디는 차량용 수준 필요
신형 ‘스쿨존용 울타리’ 개발 시급… ‘울타리 의무화’ 법안 국회서 계류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 ‘방호울타리’만 설치됐더라면….”
대전 서구 둔산동 스쿨존 내 음주사고로 배승아 양(10)이 세상을 떠난 후 뒤늦게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앙선과 인도 부근에 방호울타리가 설치됐다면 음주차량의 돌진을 막을 수 있었을 거란 뜻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재 스쿨존에 주로 도입되는 보행자용 방호울타리로는 막기 힘들었을 것이라면서 첨단 기술로 강도를 높인 신형 스쿨존용 방호울타리를 개발해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 “신형 스쿨존용 방호울타리 개발해야”
국토교통부의 ‘도로안전시설 설치 및 관리 지침’에 따르면 방호울타리는 크게 보행자용과 차량용으로 나뉜다. 현재 스쿨존에는 주로 무단횡단 방지를 목적으로 한 보행자용 방호울타리가 설치되고 있다.
하지만 보행자용 방호울타리로는 차량의 돌진을 막기 어렵다. 대전 스쿨존 당시 음주운전자는 건너편 상가 경계석과 충돌한 뒤 운전대를 반대로 꺾어 중앙선을 넘은 후 인도로 돌진했다. 당시 시속 42km였는데 이 정도 속도라면 보행자용 방호울타리를 쓰러뜨리고 보행자를 덮칠 수 있는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스쿨존 내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선 더 센 충격을 견딜 수 있는 ‘차량용 방호울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국토부 지침에 따르면 가장 낮은 강도(SB1)의 차량용 방호울타리(충격도 60KJ)는 1.5t 차량(쏘나타 차량 평균 무게)이 시속 45km 속도로 45도 각도에서 돌진해도 막을 수 있다.
조준한 삼성교통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차량의 과속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 보행자용 울타리로는 스쿨존 내 보행자의 안전을 담보하기 어렵다. 차량용 방호울타리 수준의 강도를 가진 스쿨존용 방호울타리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첨단 기술과 내구성 좋은 신형 소재를 활용하면 보행자용 방호울타리 설치비용(m당 8만∼10만 원)에서 크게 오르지 않은 선에서 도입이 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 스쿨존 내 방호울타리 설치 의무화 필요
동시에 스쿨존 내 방호울타리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 도로교통법은 스쿨존에 무인 교통단속 장비, 횡단보도 신호기 등의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안전펜스나 방호울타리 등 보행안전장치 설치는 ‘권고’ 사항이다.
법 조항이 없다 보니 각 부처 지침도 제각각이다. 국민안전처가 2015년 내놓은 ‘어린이 노인 및 장애인보호구역 통합지침’은 보행자용 방호울타리 설치를 ‘적극 권고’하고, 무단횡단 방지용 펜스 설치를 ‘우선 고려’하도록 했지만 의무화하진 않았다. 행정안전부 지침에서도 스쿨존 내 무단횡단방지시설(중앙분리대 포함)과 보행자용 방호울타리는 ‘설치 적극 권고’ 사항이다. 반면 국토부의 ‘도로안전시설 설치 및 관리 지침’은 초등학교, 유치원 부근의 통학로에 “반드시 방호울타리를 설치할 것”이라고 규정했다. 경찰 관계자는 “법이 미비한 탓에 스쿨존 내 방호울타리 설치 현황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며 “부처 지침을 넘어 법이나 시행령으로 강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배 양 사고 이후 스쿨존 내 안전을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국회 움직임은 여전히 더딘 상황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배 양 사고 발생 12일 만인 20일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도로교통법 개정 관련 논의를 시작했다. 하지만 방호울타리나 볼라드(차량 진입 억제용 말뚝) 등의 의무 설치를 골자로 한 도로교통법 일부개정안은 법안심사소위에도 오르지 못했다. 행안위 관계자는 “비용 문제 등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지만 국민 공감대가 큰 사안인 만큼 서둘러 관련 논의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과속-신호위반 등 한 번에 단속… ‘AI 카메라’ 도입 추진
초등생 스쿨존 사고 70%가 저학년
“통합단속카메라, 사고예방 효과적”
“스쿨존 진입 알리는 장치 확충 필요”
통합단속 카메라로 본 서울 영등포구의 한 사거리 모습. 과속, 신호 위반, 불법 주정차, 정지선 위반, 횡단보도 앞 일시정지 등을 한꺼번에 단속할 수 있어 스쿨존에 도입하면 효과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교통문화연구소 제공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내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는 인공지능(AI) 기술이 반영된 ‘스쿨존 통합 단속 카메라 장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스쿨존에서 발생하는 여러 반칙운전을 하나의 장비로 관리 감독하면서 안전 수준을 한층 업그레이드하겠다는 것이다.
‘AI 통합 단속 카메라’는 과속, 신호 위반, 불법 주정차, 정지선 위반, 횡단보도 앞 일시정지 불이행 등을 한 번에 단속할 수 있다. 지난해 관련법 개정으로 스쿨존 내 횡단보도 앞 일시정지 의무화가 시행되면서 수요도 늘고 있다.
통합 단속 카메라 개발사인 지앤티솔루션의 윤희돈 박사는 “다양한 교통환경을 AI 기술로 학습해 올해 말까지 단속 정확도를 99%까지 높일 계획”이라며 “주로 운전자 부주의로 사고가 나는 스쿨존의 교통안전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AI 통합 단속 카메라’가 도입되면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의 사고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5년(2017∼2021년 ) 동안 스쿨존 내 초등학생 사상자 10명 중 7명이 1∼3학년이었다.
단속도 중요하지만 운전자에게 자발적으로 스쿨존 제한속도(시속 30km)를 잘 지키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보완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상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운전자에게 스쿨존은 ‘마음 놓고 속도를 낼 수 없는 공간’이란 인식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며 “스쿨존에 들어섰다는 것을 운전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알리는 장치가 확충돼야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스쿨존에 들어서면 자동으로 차량 속도가 제어되는 지능형 기술이 도입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교통 선진국에선 이미 관련 연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교통안전공단 관계자는 “신기술이 개발되고 상용화되면 국내에도 신속하게 도입될 수 있도록 준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유근형 사회부 차장, 한재희 기자, 이축복 기자, 신아형 기자, 윤다빈 기자, 송유근 기자, 전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