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래빠와 그의 아들 래충빠가 뽄토로 가는 도중 진 마을 근처에 이르렀을 때였다. 래충빠가 청하였다.
"오늘 밤은 진 마을에 들러 보시자들을 만나도록 합시다."
그러나 미라래빠는 이렇게 말했다.
"아들아, 먼저 뽄토로 가도록 하자. 이 지방의 보시자들이나 제자들, 승려들에게는 알리지 말고 말이다."
래충빠는 불쾌하게 여겼지만 미라래빠에게 순종하여, 그를 따라 '붉은 바위'의 뽄토에 있는 찌푸니마종 동굴로 향했다. 거기에 도착하자 미라래빠가 말하였다.
"래충빠야, 물을 좀 길어 오너라. 나는 불을 피울 테니까."
래충빠는 물을 길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뽄토 골짜기와 찌푸 마을 사이의 넓은 초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능선에 이르렀다. 아름다운 초원 가운데에는 때마침 산에 사는 야생 염소들이 새끼를 낳고 있었다. 늙은 염소와 젊은 염소들은 번갈아 새끼를 낳더니 마침내 이백 마리가 되었다. 이 야생 염소들은 갓 태어나자마자 뒤뚱거리며 즐겁게 뛰어다녔다. 천진난만한 염소들의 동작과 모습에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다가 래충빠는 생각했다.
'이곳의 야생 염소들은 빼탕의 염소들보다 훨씬 발랄하고 귀엽구나.'
래충빠는 염소들의 노는 모습이 너무나 흥미로워서 시간이 흐르는 것도 잊어버렸다.
한편 불을 지피던 미라래빠는 래충빠가 인도에서 갖고 온 경전들을 펼치고 대자비심으로 기도하였다.
"모든 다끼니들에게 간곡히 구하오니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할 '무형의 다끼니 진리'와 교의를 지키고 보호하시길! 진리의 모든 수호자들이여! 교의와 중생들에게 큰 해를 끼칠 삿된 주문의 외도 경전들을 소멸시키도록 하소서!"
미라래빠는 기도가 끝난 뒤 잠시 동안 명상에 잠겼다. 그런 다음, 대부분의 두루마리 경전을 불태웠다. 단지 몇 개의 두루마리만 타다 남았을 뿐이었다.
야생 염소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던 래충빠는, 두목으로 보이는 큰 염소 한 마리가 저편 능선 너머로 염소떼를 모조리 몰고 간 후에야 비로소 정신이 났다.
'이럴 수가! 너무 오랫동안 시간을 지체했구나! 당장 돌아가야겠다. 스승님이 호되게 꾸짖지나 않으실지......'
그는 즉시 돌아갔다. 동굴로 건너가는 외나무 다리에 도착했을 때, 동굴 저쪽에서 연기가 피어올랐고 종이 타는 냄새가 났다.
그는 혹시나 책들이 타는 게 아닐까 하고 걸음을 재촉하였다.
동굴 안으로 들어섰을 때는, 빈 나무상자 외에는 두루마리 경전들이 거의 없어진 뒤였다. 래충빠의 심장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 하였다.
"경전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는 크게 분개하며 스승을 향해 외쳤다.
미라래빠는 응답하였다.
"그대는 물을 길러 갔다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대가 죽었으리라 생각하고 중요하지 않은 책들을 모조리 불태웠다. 내가 보니 그것들은 무익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수행을 방해하는 유혹거리가 되겠더라. 그런데 그대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오랫동안 꾸물거렸느냐?"
하지만 자만심에 가득 찬 래충빠는 생각했다.
'스승님은 마침내 신랄한 이기주의자가 되었구나! 나를 이처럼 가혹하게 대하시다니! 다시 인도로 돌아가서 띠푸빠에게 가르침을 배울까, 아니면 다른 곳으로 찾아갈까?'
래충빠는 미라래빠에 대한 신심을 완전히 잃은 채 한참 동안이나 죽은 사람처럼 그 자리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가까스로 정신을 가다듬은 그는 스승에게 말씀드렸다.
"야생 염소들이 노는 걸 구경하다가 늦었습니다! 이젠 스승님이 제게 주셨던 황금이라든지 인도에서 제가 겪었던 시련이 모두 부질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다른 나라로 떠나려 합니다."
신심을 잃어버린 래충빠는 미라래빠를 경멸하고, 심지어는 적개심을 품기까지 하였다. 미라래빠는 래충빠에게 말하였다.
"아들 래충빠야, 그대가 나에 대한 신심을 져버릴 이유는 없다. 이 모든 일은, 그대가 빈둥거리며 늦장을 부린 데에도 책임이 있다. 그대가 행여 기뻐한다면, 나는 그대를 위로해주겠다. 자, 보라!"
바로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미라래빠의 머리 위에 역경사 마르빠가 일월보주(日月寶珠)의 연화좌 위에 앉아 계신 지금강불의 모습으로 화현하신 것이었다. 법통의 스승들이 그 둘레를 에워싸고 있었다. 미라래빠의 눈과 귀의 좌우에는 두 개의 태양과 두 개의 달이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두 콧구멍에서는 비단 실오리 같은 오색 찬란한 빛이 흘러나왔다. 두 눈썹 사이에서는 눈부신 광명이 방사되었다. 그의 혀는 한 개의 작은 팔엽연화좌(八葉連花座)로 바뀌었다. 그 위에는 해와 달의 궤도가 새겨져 있었는데, 거기에서는 지극히 섬세하고 아름다운 자음과 모음의 글자들이 섬광처럼 빛났다. 그것은 마치 한 개의 머리카락으로 쓴 글자 같았다. 또한 그의 심장에서는 무수한 빛무리가 쏟아졌다. 그러더니 빛무리는 이내 무수한 작은 새들로 변하였다. 이윽고 미라래빠는 노래하기 시작했다.
첫댓글 자만심과 의심은 진리에 대한 큰 장애.
나무아미타불 _()_
나무아미타불 _()_
나무아미타불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