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연기법에 나오는 무명과 행에 대한 설법을 보면..
298.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류수의 조우라고 하는 마을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연기법(緣起法)에 있어서 그 법에 대한 설명[法說]과 뜻에 대한 설명[義說]을 말하리라.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여라.
마땅히 너희들을 위해 설명하리라.
무엇이 연기법의 법에 대한 설명인가? 이른바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고 하는 것이니, 즉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고 ……(내지)……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발생하느니라.
이것을 연기법의 법에 대한 설명이라고 하느니라.
무엇이 연기법의 뜻에 대한 설명인가?
이른바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다'고 한다면 그 어떤 것을 무명(無明)이라 하는가? 만일
과거를 알지 못하고 미래를 알지 못하고 과거와 미래를 알지 못하며[3세],
안을 알지 못하고 밖을 알지 못하고 안팎을 알지 못하며[나와 세계],
업(業)을 알지 못하고 과보(果報)를 알지 못하고 업과 과보를 알지 못하며[업보],
부처님을 알지 못하고 법을 알지 못하고 승가를 알지 못하며[3보],
괴로움을 알지 못하고 발생을 알지 못하며, 소멸을 알지 못하고 길을 알지 못하며[4성제],
인(因)을 알지 못하고 인이 일으키는 법을 알지 못하며,
착함과 착하지 않음을 알지 못하고, 죄가 있고 죄가 없음과 익히고 익히지 않음과 못나고 뛰어남과
더럽고 깨끗함[불구부정]과
연기에 대한 분별을 모두 알지 못하며[12연기],
6촉입처를 사실 그대로 깨달아 알지 못하고[3사화합],
이러저러한 것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며,
빈틈없고 한결같음[無間等]이 없어 어리석고 컴컴하며,
밝음이 없고 크게 어두우면 이것을 무명이라고 하느니라.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다 하니, 어떤 것을 행(行)이라고 하는가?
행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몸의 행[身行]·입의 행[口行]·뜻의 행[意行]이니라.
행을 인연하여 식이 있다 하니, 어떤 것을 식(識)이라고 하는가?
6식신(識身)을 이르는 말이니,
안식신(眼識身)·이식신(耳識身)·비식신(鼻識身)·설식신(舌識身)·신식신(身識身)·의식신(意識身)이니라. ..
<잡.298. 법설 의설 경> 내용을 가만히 보면.. 아난 존자가
초심 수행자들 가운데
맹~한 자들만 따로 모아 놓고
가르친 12연기법 내용을 수록한 게 아닌가 합니다.^^.
맹~하다는 기준은..
존재와 법을 구별해 설명해도 둘의 차이를 아직 분명하게 구별하지 못하는 수준을 말합니다.
맹~한 자들에게 강조한 것은 경[지혜]이 아니라.. 계율과 선정입니다.
현대인들은 맹~하지 않음에도.. <경>을 보고 깊이 이해할 겨를이 부족합니다.
해서 선행을 강조하고, 선정을 권하고 있지요.
여기에 있는 분들은 '맹~ 수준'을 넘어선 분이 틀림없어요 ㅎㅎㅎ^^
<298경>에서 설명하듯 '무명'이란 법의 뜻은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경>에 나오듯 무명 뜻을 제대로 알려면.. 불교를 자알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저 <298경>은 세존 말년에 불교 수행을 시작한 초심자들을 향한 가르침이 아닐 수 없어요.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래서 맹~하다고 하는 것인데..
내용이 마음법 보다 존재를 우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맹~하지 않은 이들에게 12연기에서 무명은 무엇이라고 설명할까요?.
짧고 간단합니다.
무명이란 어둑하여 잘 보이지 않으니 잘 모르는 것.().
무명은 밤이거나 아직 새벽이 오지 않은 상태이니 외부에 있는 것으로 알 수도 있지요.
그러나 부처님께서 지적하는 무명은 밖에 있는 게 아닌
마음이 어둡다는 겁니다.
왜 마음이 어둡습니까?.
역사를 잘 모르면, 3보를 잘 모르면, 4성제를 잘 모르면, 12연기법을 잘 모르면 마음이 어두울 수밖에요.
그리고 세존께서 12연기법을 설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생겨 있는 고통인 스트레스는 어디서 오는 건가를 보여주기 위함이지요.
그 근본 자리가 무명이라 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무명 가운데에서 고통을 일으키는 어둠을 무명으로 한정하고 있다는 겁니다.
부처님 시대에 살던 이들은 코로나19로 인해 고통을 느꼈을까요?^^.
그들이 외국에 나와 살면서 소수 민족이라고 무시당하는 고통을 느꼈을까요?
무명이란 지금 여기서 자신이 느끼는 고통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그 시작이 잘 모르기 때문이라는 거지요.
불자도 아닌 자가 12연기법을 잘 모른다고 그로 인해 고통을 받을까요?
'나는 왜 지금 고통을 느끼고.. 괴로워하고 있는 거지?'
에 대한 답을 찾고자 무명에서 시작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 괴로움을 잊고 있는 자에게 12연기법에 나오는 무명을 설명하는 건..
배부른 자에게 음식을 먹어보라고 권하는 것이요..
시간이 남아도는 자에게 여가를 즐기도록 카드 게임처럼 보여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말합니다.
12연기법에서 무명이란
지금 여기서 고통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어..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마음이 일어난 자에게..
왜 그 고통을 겪고 있느냐 하면.. 하고 시작이 무명이라는 것으로..
당신의 고통은 당신이 접촉했거나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잘 모르고 있기 때문에.. 곧 무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라고 설명하는 겁니다.
그러니 무명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나에게 생긴 괴로움의 근본 원인은.. 어둠에 있어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인데..
여기서 어둠을 무명이라 한다 고 말하면 됩니다.^^().
내가 무언가를 접촉했는 데 잘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어서 어떻게 반응합니까?.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고 움직이지요.
움직인다.. 그것이 행입니다.
움직임이 있어 무엇이 접촉된다면..
그것을 알려는 반응이 일어나지요.
그것이 식입니다.
식이 일어나면 식의 대상이 의식되어야만 하잖아요.
그 대상을 명색이라 합니다.
다시 무명부터 명색까지 돌아보시지요.
이런 작용은 순식간에 찰라지간에 일어날 뿐 아니라..
모두 마음 안에서 일어난 것들입니다.
명색이 마음에 나타나면 그것을 알려는 게 일어나겠지요?.
그것이 안이비설신의 6내처입니다. 6처는 감각기관이 아닌 마음에 생긴 겁니다.
그런데.. 그렇습니다. 무명이 일어나면 물이 흐르듯 행이, 식이, 명색, 6입이, 촉이 일어납니다.
그럴 때 무명이 일어났다 하여 일련의 과정을 통해 다 괴로움이 되는 게 아닙니다.
괴로움이.. 그것도 사무치는 괴로움은
무명이 일어나면서 끼어든 욕탐이란 탐욕 때문입니다.().
석가세존이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핵심도..
무명은 저절로 일어납니다. 해서 일체 무명을 일으키지 말라가 아니라..
"탐욕이 끼어든 무명"을 일으키지 않도록..
탐욕을 멸하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과정은 <잡. 214. 2법경>이니 여유(^^)가 있으면
차분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무명이 뭐라구요?^^.
춘원 이광수 소설 "무명"이 떠 오릅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관찰자 시점에서 탐욕으로 저지른 죄로 인해 감옥에 오는 자들이 자기 잘못을 인정하기에 앞서
남을 탓하는 어리석은 자들을 무명으로 보면서 소설을 만들었겠지요.
그런데 무명이란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것이고, 무명을 말하는 이유는 자신에게 있는 고통을 멸하려 함입니다.
소설 "무명"의 주인공은 자신 마음에 있는 무명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주인공은 외부에 있는 무명만을 보며..
현실을 방관하는 초월적인 자세로 일관하는 어리석음에 있습니다.
만해처럼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 잘못된 현실을 깨뜨리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춘원은 한 때 불경을 한글로 번역하는 사업을 추진하려 했다고 해요.
그걸 들은 방한암 스님이 찾아와 말려서 그만두었다고 하고요.
한글 불경이 그때 시작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소설 무명을 보면 그런 눈높이로 불경을 한글로 번역하는 게 옮은 번역이 될까?.. 하는 의심이 들지요.^^.
"다 옳을 수 없지만.. 다 나쁠 수도 없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마음속에 그님이 돌아오질 않네
오늘이 그날일까
그날이 언제일까
해가 지는날
별이 지는날
지고 다시 오르지 않는 날이 / 김민기, 오늘이 그날일까
첫댓글 나무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