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이 닭이 아니고 인류가 인간이 아니라면
김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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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9일 새벽,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 수천 명이 구호품 트럭으로 몰려들었다. 트럭에 접근했을 때 총성이 울렸고 옆에 있는 사람들이 쓰러졌다. 이스라엘 측은 전차와 드론으로 사격하고, 운전사는 겁에 질려 앞으로 돌진했다. 100여 명의 주민이 죽고 수백 명의 다리와 팔과 머리가 으깨지고 절단되었다. 총에 맞거나 밟히거나 트럭에 치여 피 흘리는 친구와 가족들 옆에서 굶주린 주민들은 방금 전 옆 사람이 쥐고 있다 놓아버린 피로 덮인 밀가루 포대와 쌀과 콩 통조림을 움켜쥐었다.
팔레스타인의 박영근, 액체성 시인 키파 판니와 밤새 술을 마시고
새벽 무렵 호프집에 들렀다 시인 김정환이 통닭을 주문했는데
토탈치킨을 달라고 했는데
통닭 어느 부위에도 닭의 얼굴이 없어
부리와 입이 없어
둥글고 붉은 눈이 없어
그러므로 내가 이제껏 먹어 치운 치킨은
통닭이 아니라 죽은 조각이겠지
2
수탉rooster이 없어도 연애가 없어도
1년에 200개씩 알을 낳는 산란닭은 암탉hen이 아니다
수컷이라는 이유로 플라스틱 부대에 담겨 버려지는
갓 태어난 수평아리가 병아리가 아니라면,
위풍당당한 어미를 따라 삐약삐약 줄지어 걸어가는
봄날의 병아리를 상상하는 말은 퍼지지 않겠지
기대수명이 7년이 넘지만 7주 만에 50배 이상 체중을 불려야 하는
닭고기와 닭이 같은 말이 아니라면
비프가 풀을 좋아하는 소가 아니고
포크가 짚을 좋아하는 돼지가 아닌 것처럼
치킨이 닭이 아니라면
부리가 잘리고 털이 뽑힌 채
창문 없는 벽에서 살다 가는 육계를 살아있는 닭으로 여긴다면
팔리지 않겠지 잘려 나간 부위들을 떠올리게 하는 말은
시집 한 권 크기의 공간 위에서 격렬하게 떠는 날개
닭가슴에 난 물집을 상상하는 이야기는
그러므로 우리가 팔고 산 것은 신음과 비명을 잘라버린 말
화상 입은 무릎과 궤양투성이 다리가 잘린
뽀얀 닭가슴살 같은 말
내가 흘린 것은 피 흘리지 않는 말
패키지 속에 든 깔끔한 알몸,
플라스틱 꾸러미 같은 말
3
2024년 4월 1일, 오전 8시께였다. 이집트와 국경을 맞댄, 가자 최남단 라파에서 WCK(월스센트럴키친) 구호팀 활동가들이 차량 3대에 100톤의 식량을 싣고 가자 북쪽을 향해 떠났다. 마치 결혼식이라도 가는 것처럼.
데이르알발라에 도착하여 구호품을 창고에 부리고 날이 어둑해서 이스라엘 측과 미리 조율하고 약속한 해안도로를 따라 라파로 되돌아오는 중이었다. 이스라엘 드론 ‘엘비트 헤르메스 450 무인기’에서 3발의 미사일이 구호팀 차량 3대를 차례로 명중시켰다. 그 자리에서 구호 활동가 7명이 즉사했다. 그중 최연소자는 25살, 통역자 겸 운전자인 팔레스타인 청년 사이프 아부타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