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8년 고구려 멸망 이후 평양성은 민족의 북방 한계선이 됐다. 통일신라가, 고려가 그랬다. 조선엔 함경도를 얻었지만 변방이다. 평양성 이전의 역사는 안개 속에 흩어졌다. 그런데 한민족사가 그럴 역사인가. 고구려가 무너지기까지 중국 역사를 보자.
중국 역사는 삼황·오제의 신화시대에서 하(BC 2070~BC 1600), 은(BC 1600~BC 1046), 주(BC 1046~BC 771)로 시동을 건다. 이어 춘추전국 시대, 진시황 등장(BC 209), 항우·유방의 격돌, 한나라 건국(BC 202), 다시 삼국시대, 남북조시대, 수나라로 이어지다 당이 건국(AD 618)된 것이다.
이 시기 한민족 역사는 어떤가. 고대 한민족은 깊은 기록을 남긴다. 멀리 삼황(三皇)의 염제까지 소급된다. 청(淸) 말의 저명 사가 왕셴탕은 염제 신농씨는 동이의 한 갈래인데 산동이 기원지라고 했다. 사마천의 사기는 신농씨의 후계 치우가 구려족(동이)의 임금이라고 썼다. 은나라는 동이족 국가라고 사서들은 쓴다. 동이족은 한민족의 선민족이다.
고조선은 더 선명하다. 고조선은 춘추시대인 BC 7세기 관자(管子)에서 흔적이 시작, 전국시대인 BC 4세기 위략(魏略)에서 강자로 나타난다. 고조선은 진시황 때도, 한나라 때도 있었다. 한민족의 역사가 중국사와 궤를 같이할 만큼 길고, 뚜렷함을 사서가 증명한다. 그런데 이 역사는 버려지고 한민족사는 한반도로 욱여넣어진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펴낸 중·고교 역사를 펼쳐보라.
중학교 국사 교과서의 본 내용은 서문과 부록을 빼면 7~327페이지다. 그 가운데 삼국 이전의 고조선은 18~20페이지다. 고교도 마찬가지다. 전체 16~335페이지 가운데 고조선은 32~35페이지다.
한민족사 시간을 반 넘게 차지하는 고조선과 이전 시대는 외면하고 반도 내에서 툭탁거리는 삼국 얘기가 국사의 실질적 시작이다. 삼국의 형성과 다툼 같은 한반도 내 역사를 중학교는 32~61페이지, 고등학교는 36~60페이지로 다룬다. 고조선과 그에 앞선 1000년 넘은 역사를 300쪽 가운데 세 쪽, 1%만 다루고 반도로 밀려들어간 1500년 역사는 97%나 다루는 것이다.
우린 진시황이 학자를 탄압하고 책을 태웠다는 분서갱유(焚書坑儒)는 아는 척해도 같은 시대 고조선이 뭘 했는지는 모른다. 주나라가 한반도에 기자(箕子)를 보냈다는 황당한 역사는 논하면서도 고조선이 전국시대의 강국 연나라의 수십만 대군과 대전을 벌였다는 사실은 아예 모른다.
중·고교 국사 교과서 부록엔 왕의 계보가 실려 있다. 시작은 삼국시대부터다. 고조선은 없다. 본문엔 고조선을 한국사의 출발로 삼는다면서도 부록은 고조선 역사를 외면하는 것이다. 사학자들은 뭐하는 건가.
한국의 국사 교육이 평양성 너머로 치고 나갈 생각도 못하니 중국은 아예 깔본다. 집에서 천대받는 한민족 고대사를 주워서 탐원공정을 통해 자기네 역사로 만든다. 동북공정 때 그렇게 흥분했던 한국민들, 지금은 탐원공정이 뭔지도 모른다.
다행히 요즘 국사 교육이 다시 강조되고 있다. 정부·여당도 그렇게 기운다. 그러나 그게 지금의 중·고교 국사책을 반복하는 정도라면 필요 없다. 왜곡된 현대사를 고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민족사의 중요 부분인 고대사를 지금처럼 가르친다면 평양성을 못 넘는 오그라진 교육의 재판일 뿐이다.
고대사 재교육은 민족사 확립과 더불어 예방외교라는 실익도 있다. 고조선 역사를 조선사만큼 중시한다면 중국이 무슨 공정이니 엄두도 못 낼 것이다. 한국은 해외 진출이 지상 과제인 현대판 유목국가다.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고대사 연구와 교육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