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명필(名筆)의 광기(狂氣)
갈기 선 가라말이 질풍같이 달려오면
팔랑댄 백학 솜털 설화지(雪花紙)로 내려앉고
억새는 무아경(無我境)에 빠져 광초서(狂草書)를 쓴다네
* 신불산(神佛山 1,195m); 울산광역시 울주군, 경남 양산. 속칭 영남알프스로 키 작은 억새가 참 좋다. 능선 실루엣이 흑마(가라말)처럼 보이다가도, 바람이 불면 미친 듯이 하얀 갈기로 변한다. 동쪽 지릉인 아리랑 릿지는 스릴 있는 코스로 알려짐.
* 설화지; 강원도 평강(平康) 부근에서 나던, 뽕나무로 만든 질 좋은 전통 백지(白紙).
* 광초서; 심하게 흘려 쓴 초서의 일종, 당나라 장욱(張旭)의 두통첩(肚痛帖)이 유명.
* 질풍경초(疾風勁草); 모진 바람과 강한 풀. 모진 바람이 불면 강한 풀을 알 수 있다는 뜻으로, 역경을 겪어야 비로소 그 사람의 진가를 알 수 있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후한서 왕패전)
* 한강포럼 송년시조 일부수정 2003년 12월.
* 졸저 『鶴鳴』 정격 단시조집((8) 제 4-4 울주8경 중 제5경 ‘신불산 억새평원’ 시조 참조. 2019. 6. 20 도서출판 수서원.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부제 산음가 산영 1-387(303면). 2018. 6. 25 도서출판 수서원.
2. 산호무도(山呼舞蹈)
까슬한 수크령꽃 자색(紫色) 바람 일궈내고
각혈(咯血)한 단풍잎들 실여울로 침잠할 제
구절초 청향에 취해 누런 학이 춤추네
* 황악산(黃岳山 1,111m); 경북 김천, 충북 영동. 학이 많이 찾아온다 하여 황학산(黃鶴山)으로도 부른다. 명찰 직지사(直指寺)를 품고 있으며, 높이는 나무젓가락(일본말 와리바시) 둘로 외워두면 잘 잊어먹지 않는다. 억새류, 바람, 단풍, 구절초 등이 좋다.
* 산호무도; 백성이 ‘만세(萬歲)’라고 부르거나 춤을 추어 임금을 축복하던 일.
* 수크령; 키 30~80cm의 벼과(科)의 한해살이 또는 여러해살이풀(屬)로 자주색 꽃이 핀다. 고사성어(故事成語)에 나오는 결초보은(結草報恩)의 풀로 알려져 있음.
* 한강포럼 송년시조 2003년 12월.
* 백수 탄생 100주년 기념 추모작품 제출.(2019.8.4)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산영 제1-620번.(451면)
3. 암봉 밑 석간수
곤하게 잠든 산을 꼬집어 깨운 한낮
살구 빛 젖꼭지가 어른어른 비췄거늘
빨아도 몽땅 핥아도 줄지 않는 묘미여
* 학가산(鶴駕山 882m) 경북 예천, 안동. 일명 선비봉, 문둥이봉, 인물봉 등으로 부른다.(디지털안동문화대전). 그곳 석간수로 기억나는데, 명수(名水)임에는 틀림없다.
* 한강포럼 송년시조 (2003년 12월). 그 후 일부수정.
* 산음가 14-10 ‘학수레 타고 낮잠’-학가산 시조 참조.
4. 거웃에 숨은 산
감귤 빛 방둥이에 꼬리 친 복사 눈빛
낯 설은 객(客)에 놀라 암코라니 주춤하다
터럭 속 숨었다 나온 벼룩 마냥 튀누나
* 옥녀봉(玉女峰 410m) 충남 논산, 전북 완주. 금남기맥(錦南岐脈). 산색이 요염하다. 옥녀봉은 남한만 해도 65개가 넘는다. 450봉 바로 밑 한적한 숲에 숨었던 고라니가 갑자기 튀어나와 깜짝 놀랐다. 깜찍한 연인 L 같으니라구? 지도상 옥녀봉은 15분 쯤 더 운행한 3등 삼각점(마모로 판독불가)과 무덤이 있는 곳이다.
5. 불가사리 산봉
속이고 탐한다며 산(山)이 날 뿔로 받네
쇠 먹고 불도 삼킨 불가사리 달랠 길은
막걸리 빈대떡 안주 얼쑤 밖에 없나니
* 함박봉(403m); 충난 논산, 전북 완주. 금남기맥. 함지박처럼 움푹 파였으며, 꽤나 덕이 있어 보인다. 무덤 2기가 있고, 무슨 중요한 지점인지 모르지만 태극기가 펄럭인다.
* 불가사리; 고려 때부터 전해오는 전설로 쇠를 먹고 불을 삼키는 난폭한 소를 등장시킨다. 민초를 괴롭히고, 멸시하고, 천대하는 관(官)의 횡포를 징벌하다 순치(馴致)되는 줄거리로, 관용과 자비만이 악(惡)을 다스리는 요체(要諦)임을 갈파(喝破)한 내용이다.
6. 몽유병 환자
낙엽 진 우듬지엔 돌배만 달랑 한 개
메아리 까착까착 허물 벗는 능구렁이
신녀(神女)를 끼고 자다가 몽정(夢精) 흘린 째마리
* 작봉산(鵲峰山 419m), 까치봉(458m); 충남 논산, 전북 완주, 금남기맥. 서로 이름도 비슷한데다, 거리도 가까워 편의상 묶어 논하기로 한다.. 능선은 허물 벗는 능구렁이 같이 엉큼한데, 까치까지 주접을 떠니? 산이 째마리일까? 산객이 째마리일까?
* 천재와 바보의 차이는 종이 한 장도 나지 않는다!
* 신녀; 1) 여성의 신, 천녀(天女). 2) 까치의 딴 이름.
7. 여선(女仙)의 노리개
창옥병(蒼玉屛) 농담(濃淡) 풀고 가야금 퉁긴 옥수(玉手)
헝클어진 실능선을 동심결(同心結)로 매듭한 뒤
쌍호박(雙琥珀) 노리개 삼아 저고리에 매달다
* 보장산(寶藏山 555m); 경기 포천 창수면. 간간이 기암괴석이 있고, 많은 전설을 간직한 숨은 명산으로, 정상부는 두 개의 봉우리로 이뤄져 있다. 한탄강(漢灘江) 지류인 산 남쪽, 가경(佳境)이 다섯 있다는 오가리(五佳里) 영평천(永平川)에, 영평8경의 하나인 창옥병은 글자그대로 푸른 옥 병풍을 두른 듯 수려하다. 오지라 그런지 능선이 사방으로 흩어져 있다.
* 당동징; 가야금의 열두 줄을 나타내는 구음(口音), "청흥둥당동징땅지찡칭쫑쨍"중, 제4, 5, 6번을 가리킨다. 한글 음계로 '레미솔' 쯤으로 보면 된다.
* 동심결; 두 고를 내고 맞죄어 매는 매듭. 납폐(納幣)에 쓰는 실이나, 염습(殮襲)의 띠를 매는 매듭 따위에 씀.
* 호박불취부개(琥珀不取腐芥); 호박은 먼지를 흡수하지만, 썩은 먼지는 흡수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청렴결백한 사람은 부정한 물건은 취하지 않음’ 비유하여 이름.
* 동심(同心)산악회 제59차 정기산행(2003. 11. 23).
8. 인수봉의 크로노스
시원한 죽부인(竹夫人)을 혀끝으로 밀쳐내곤
발정한 바위 등에 달라붙은 수캐 됐니
낫으로 무자비하게 잘라야 할 뭐 끝봉
* 북한산 인수봉(804m); 천태만상을 띤, 이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남근형의 천혜암장이다. 실학자 이수광이 쓴《지봉유설(芝峰類說)》에는 “아이가 어머니의 등에 업힌 것 같은 한성의 부아암(負兒岩: 북한산 인수봉)이 마치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형상이므로, 이를 막기 위해 안산(鞍山, 일명 무악산)을 어미 산, 즉 모악(母岳)"이라고 한 데서 유래했다고 적고 있다.
* 크로노스(Cronus); 가이아(대지의 여신)와 우라노스(천계)의 아들. 아내 레아의 부추김을 받은 그의 아들 제우스에게 낫으로 거세당한다. 때로는 시간을 인격화한 존재로 보기도 한다(희랍 신화).
* ‘남자는 세 끝을 조심하라’는 슬랭(俗語)이 있다. 혀 끝, 손가락 끝, 뭐 끝.
* 당단부단(當斷不斷) 반수기란(反受其亂); 결단을 내려할 시점에서 결단하지 아니하면, 그로 인해 어려움을 입는다. 출처; 사마천의 사기(史記) 춘신군전(春申君傳).
* 등반은 고고한 행위의 예술!
* 발정과 유의어; 상내 나다. 암내 나다.
* 명암명곡열전 제3번 불임시술 시킨 바위-삼각산 인수봉 시조 참조.
* 졸저 『명승보』 삼각산10경 중, 제2경 ‘인수귀운’ 시조 참조.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제229 쪽.
* 필자의 모산(母山)이자, 가장 좋아하는 암봉이다.
9. 소 탄 목동
목매기 꼴 먹이려 청하(淸河)골 올랐더냐
등마루 쓸어주면 너를 편히 태울거니
목동아 풀피리 불고 하늘재로 오르렴
* 우척봉(牛脊峰 775m); 경북 포항, 영덕. 천령산(天嶺山)의 주봉으로 소잔등 같다. 12개의 폭포를 가진 빼어난 계곡 청하골을 사이에 두고, 북쪽의 내연산(內延山) 삼지봉(710m)과 마주한다. 아름다운 절 보경사(寶鏡寺)를 거쳐 오른다. 겸재 정선이 청하현감으로 있을 때 그린 ‘내연삼용추도’가 유명하다.
* 중국 정주(鄭州) 하남박물관에는 학 다리뼈로 만든 약 6천년 된 고대 피리(7공)가 있다.
10. 바위로 술 빚기
백암(百岩)을 고이 썰어 백화주(百花酒) 담아보세
송뢰(松籟)로 밀봉한 후 향훈 짙은 아가타(阿伽陀)로
산뜻한 오운거(五雲車) 탄 채 수수만년 마시게
* 덕주봉(德主峰 893m) 바위길; 충북 제천, 월악산국립공원 내. 북쪽 덕주골과 남쪽 고무서리계곡 사이에 있는 아기자기한 암릉길이다. 왕관바위를 비롯, 백화가 만발하듯 기암과 소나무가 도사려 있다. 덕주봉을 지나면 만수봉(985.2m)이 나타난다.
* 백화주; 100가지 꽃으로 빚은 아주 귀한 백화주(百花酒)는 100가지 병을 다스린다. 허준의 《동의보감》, 서유구의 《임원십육지》, 빙허각 이 씨가 쓴 《규합총서》 등에 술 빚는 방법이 자세히 나와 있다. 백화주는 맨 먼저 눈을 뚫고 꽃을 피운다는 매화부터, 서리 내릴 때 피는 국화까지 꽃을 모아 말린다. 그리고 찬 기운이 짙어가는 10월 중하순쯤에 술을 담그는데, 술이 익기까지는 거의 100일이 걸린다.(출처; 하루하루가 잔치로세)
* 송뢰; 소나무에 이는 바람. 송풍.
* 아가타(阿伽陀-梵); 모든 병을 고친다는 인도의 영약(靈藥)으로, 번뇌를 없애는 영묘(靈妙)한 힘이 있다함(佛). 술을 달리 이르는 말.
* 오운거; 신선이 타고 다닌다는 오색의 운기(雲氣)를 그린 수레.
* 산음가 10-1 ‘공주의 자태’ 시조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