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콘치타 (어느 어머니의 영적일기) 중에서.
현세적인 모든 것은 사라져 가고 있다.
“나는 더할 수 없이 완벽한 영적 고독 속에 잠겨 있다. 그러나 이는 하느님의 뜻이고, 내가 보기에 하느님은 오직 당신 뜻이 있는 곳에만 계신다. 더 이상 아무 것도 이해할 수가 없으니, 내가 곧 하나의 혼돈(chaos)이다. 나의 영혼과 갈망과 느낌을 종이 위에라도 표현할 필요가 있었건만, 그것도 모조리 사라지고 말았다. 나의 느낌이나 식견, 심지어 고통과 눈물까지도 비밀로 간직하는 경향이 생겼다. 모든 것을 예수님 안에 감춘다. 모든 것이 오로지 그분만을 위한 것이다. 내 안에 얼마나 큰 변화가 일어났는지! 일체가 사라져 가고 변하고 종결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게 보인다. 아무 것도 없다. 이 땅에서는 일체가 티끌이요, 그림자요, 헛것이요, 거짓이다. 실재요 진짜이며 가치 있는 것, 지속적인 것, 존재하는 것은 하늘에 있다. 땅과 그 안의 만물은 다만 인간이 그분께로 올라가기 위한 발판일 따름이다. 모든 것이 하느님 안에 사라진다. 사랑도 고뇌도 꿈도 희망도 소망도 열망도, 모든 것이, 모든 것이 그분 안에 사라진다.
지나간 삶을 되돌아보고 내 마음 속을 살펴보면 그 애정들이 발견된다. 그러나 이미 지나가 버렸다. 지극히 뜨겁던 소망도 지나갔다. 그 허영심, 그 잘못과 무질서한 행위, 이런저런 과장된 열성들도 다 지나갔다. 결정적으로 지나가 버렸다. 내 남편을 무척 사랑했지만 그것 역시 지나갔다. 수녀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살건 죽건, 저기에서 죽건 어느 허름한 농가의 뜰에서 죽건 내 집에서 죽건, 혼자 죽건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죽건, 사랑 받으며 죽건 혐오와 멸시를 받으며 죽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이다. 단 한 가지 소망밖에 없으니, 하느님의 뜻이 내 안에 이루어지는 것뿐이다.”(일기 1917년 11월 16일)
그러나 아내 또는 어머니로서의 그녀의 마음이 모든 정당한 애정에서도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으리라. 그와는 반대로 삶과 하느님과의 결합 속으로 전진할수록 그녀는 더욱더 인간적이 되어갔던 것 같고, 그러자 그 모든 애정이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되었던 것이다.
그녀의 마음은 가족들의 모든 기념일을 꼬박꼬박 챙겼고, 자녀들의 사소한 축일이며 모임들도 챙겼으며, 그들의 기쁨과 시련 중에도 충실히 함께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 모두의 엄마요 각자의 엄마로 있었던 것이다. 1931년 아메리카의 금융 공황으로 자식들의 사업이 위협을 받게 되자 그녀는 하느님께 그들을 구해 달라고 간청하기도 하였다. 그들은 성실한 사람들로서 평생토록 일해 온 터에 달러의 가치 하락이 빚은 결과와 맞서서 용감하게 투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병은 아직 낫지 않았고, 날마다 굴욕적인 일들과 함께 자식들의 파산이 다가오고 있음을 보는 심한 고통과 집안의 어려움에 싸여 있다. 이 때문에 내 마음이 몹시 괴롭다. 하느님의 지극히 거룩하신 뜻으로 기꺼이 받아들였건만, 그렇다고 해서 이 고통의 세계를 온통 뒤덮고 있는 나의 구체적인 고통이 제거된 것은 아니다.”(일기 1931년 5월 22일) “
가슴에 칼이 꽂힌 듯한 심한 아픔을 느꼈다. 나의 한 아들이, 우리 모두와 연관된 사업을 위하여 30년이나 일해 온 끝에 파산 위기에 처하게 되자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의 사업 실패라는 불명예가 곧 닥치리라는 점 외에도, 내 자식들이 저마다 가족과 함께 길거리에 나앉게 될 판이다... 주님, 오직 주님께 빌어 얻고자 하는 것은 저에게 필요한 힘과 제 자식들의 신앙을 보존하는 것뿐이옵니다.”(일기 1931년 5월 28일)
다음은 이미 나이 69세로 성화의 길 막바지에 오게 된 이 탄복할 어머니가 하느님께 바쳐 올린 비탄과 뜨거운 간청의 부르짖음이다.
“자식들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니 고통스럽다. 하느님께서 그들의 사업이 풀리기를 원치 않으시는 것 같고, 따라서 이 재난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주님,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제 가슴이 마구 으깨지고 못박히는 것 같지만, 저로서는, 오 예수님, 저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저를 내치시어 비참과 저버림과 남의 동정으로 먹고 사는 거지 생활 속에 있게 두십시오. 저 자신에 대해서는 이제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자식들은 잊을 수 없습니다. 자식들이 우는 것을 보니 눈물이 절로 나고, 그들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니 괴롭기 짝이 없습니다.”(일기 1931년 11월 11일)
그러니 하느님께서, 어머니의 간청으로 가나에서 첫 기적을 행하신 그분께서, 어떻게 이 어머니의 부르짖음을 못 들은 체하실 수 있었겠는가? (결국) 자녀들이 용감하게 상황을 호전시킬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콘치타의 만년은 괴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녀는 막내아들이 결혼한 뒤 그 쓸쓸한 심경을 일기에 이렇게 적어 두었다.
“하느님께서 아홉 명의 자녀를 주셨다가 다시 다 거두어 가셨으니, 이제 내게는 모든 것이 끝났다. 그분께서는 찬미 받으소서! 수도자가 되거나 죽거나 결혼하거나, 그분께서 그 모두를 이 어머니의 가슴에서 차례차례 데려가신 것이다. 남편의 침대를 포함해서 열 개의 침대가 텅 비어 버렸고 나만 지금 혼자, 혼자 달랑 남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죽음도 멀어짐도 없으신 그리스도, 절대로 나를 떠나시지 않을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있다.”
“결혼한 자녀들에게 있어서 어머니는 부차적인 애정의 대상에 불과할 따름이다.” 하고 그녀는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어머니는 희생과 고독 속에서 기뻐한다. 자녀들의 행복을 기뻐하는 것이다.”(이상 1929년 9월 24일의 일기)
게다가 콘치타는 남편을 잊은 적이 없었다. 해마다 남편이 죽은 날인 9월 17일이 되면, 다음과 같이 일기 속에서 충실히 기억하곤 하였다.
“남편이 타계하여 아이들에게 지상의 아버지가 없어진 지 어언 3년이다. 얼마나 슬픈 추억인가! 주님, 주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아이들은 아빠의 무덤에 갔는데, 나는 발을 다쳐서 갈 수 없었다. 내 마음은 계속 싸우고 있다. 정말이지, 눈물로 젖은 빵을 먹고, 눈물로 땅과 내 십자고상을 적시고 있다! 오! 저의 예수님! 당신께서 원하시는 것은 저 역시 원합니다... 저는 무섭도록 사무치는 고독을 느낍니다. 오 제 어머니 마리아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일기 1904년 9월 17일)
“홀로 된 지 20년이 되었다. 주님, 저에게 너무나 잘해 주었고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방해한 적이 없는 제 지상 남편의 영광을 보존해 주시고 더해 주십시오. 제 아이들의 아버지인 그는 모범적인 아버지이며 신사, 신의가 있는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인의 모범이었사오니, 부디 당신 자신으로 그를 충만케 해 주십시오.”(일기 1921년 9월 17일)
“홀어미가 된 지 31년,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이 지상에서 내게 주셨던 소중한 남편을 데려가신 지 31년이 되었다.
주님, 그의 영광을 더해 주시고 제 인사말도 전해 주시겠습니까? 물론 그렇게 해 주실 것이니, 그토록 당신은 친절하십니다! 저 높이 하늘에는 남편과 함께 저의 네 아이들, 곧 카를로스와 페드로와 파블로와 콘차도 있습니다. 오 예수님, 찬미 받으소서!”(일기 1932년 9월 17일)
이처럼 콘치타는 이 지상에서 사는 동안 자기 남편과 자녀들과 하느님께 언제나 충실하였다.
영혼의 고독은 마음의 고독을 능가한다. 이 영적 고독은 그녀의 만년 20년에 걸쳐 무서울 정도에 이르렀으니, 십자가 위에서 느끼신 그리스도의 내적 고통과 그 버림받음과 점점 더 같아지고 있었다. 이때 콘치타는, 아드님께서 승천하신 뒤에 겪으신 마리아의 “고독”이 (지상에서 순례 중인) 신전(神戰) 교회를 위하여 얼마나 엄청나게 큰 공로가 되었는지를 계시를 통하여 알게 되었고(1917년), 사제직의 위대성과 비참함에 대한 그리스도의 “속내 이야기”(를 담은 메시지)를 받았으며(1927년-1932년), 마침내 “성삼위의 일치 안에” 이루어질 온 우주의 “완성”에 대한 숭고한 계시들을 집대성하였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의 얼굴
콘치타의 생애라는 영화의 화면을 다시 돌려 보면, 그 영적 여정의 한결같음에 감탄하게 된다. 모든 사건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그녀 안에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의 모습을 새겨 넣으신 것이다. “나의 삶 전체에 십자가 도장이 찍혀 있다.”(일기 1925년 7월) 그러므로 우리는 그녀의 온 생애에 걸쳐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의 모습이 점진적으로 각인되어 가는 것을 추적해 볼 수 있다.
“오 예수님! 제가 당신을 위하여 쓸쓸하게 버림받고 어쩔 줄 모르도록 무력한 상태가 되어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해 주소서.”(일기 1893년)
“십자가에 달리신 분을 생각하면 나의 육체적 고행과 내적 고통이 죄다 가벼워진다.”(일기 1894년 3월-4월)
“나는 십자가 위에 계신 하느님을 만났다.”(일기 1894년 8월 26일)
콘치타가 33세의 젊은 부인이었던 1895년부터 주님께서 그녀의 영성 생활 계획을 분명하게 보여 주셨으니, 그것은 곧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의 반영이 되는 것이었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을 반사하는 거울”
“예수님께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내가 내 아버지 안에서 그분과 하나인 것과 같이 너도 참으로 나와 ‘하나’이기를 바란다. 네가 십자가에 못박힌 네 예수의 모습을 재현하는 드맑은 거울처럼 되기 바란다. 내가 십자가에 달려 있었던 그대로의 나를 네 안에 반영하고자 하는 것이다. 네 편에서는 네 안에 나의 모상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단순하게 너 자신을 내맡기기만 하면 된다. 가시관을 쓰고, 채찍질을 당하고, 비탄 속에서 십자가에 못박히고, (옆구리가 창에) 꿰뚫리고, 무력해지고... 네가 그런 나와 똑같이 되는 것이 나의 바람인즉, 이 모든 것을 하나하나 묵상하면서 살아 있는 나의 초상이 되어라. 내 아버지께서 네 안에서 (나를 보시고) 흐뭇해하시면서 죄인들에게 당신 은총을 넘치도록 쏟아 부어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일기 1895년 4월 6일)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다. 하느님께서 콘치타에게 내려 주신 모든 은총은, 특히 신비적인 강생의 은총은 그녀 안에서 활동하면서 그녀를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로 변화시키고 있었다.
“나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내 안에 재현해야 한다.”(일기 1921년 9월 16일)
이는 하느님께서 그녀 생애의 만년에, 특히 죽음의 순간에 그녀 안에 실현하실 것이었다. 육체적 정신적 고통, 질병, 내적 고뇌, 신앙과 희망을 거스르게 하는 유혹 및 버림받음의 시간들이 콘치타를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의 반영이 되게 할 것이었다. 그녀는 모든 것에 동의하였다. 갈바리아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와 완전히 같아지려고 하였고, 인간 육신의 모든 상태와 노쇠를 나누어 가졌다. 하지만 그녀의 영혼은 갈수록 더 거룩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거의 온통 예수님이 되었다! 나의 몸, 나의 영혼, 나의 삶, 나의 고통, 나의 시간.. 이 모든 것이 완전한 자유로 그분의 것이 되었으니, 그분께서 사제들을 위하여 좋으실 대로 쓰시기를 빌 따름이다!”(일기 1829년 1월 31일)
첫댓글 피앗 피앗 피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