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에버랜드와 인접하여 있는 '호암미술관'을 찾아 '희원'도 함께 둘러 보았다.
'호암미술관'은 삼성그룹 창업자인 '호암 이병철' 선생에 의해 '1982.4.22' 개관되었다. 이후 민족문화의 산 교육장이 되고 우리 국민에게 문화창조의 꿈을 준다는 설립 취지 아래 다양한 전시, 연구, 교육활동을 하고 있는 곳이다. 또한, '1997.5월' 전통 정원 '희원'을 개원하여 한국 전통미술과 함께 전통 조경의 멋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곳으로,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호암미술관은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이라는 주제로 2024.3.27~6.16일까지 젠더라는 관점으로 동아시아 불교미술을 조망하는 최초의 대규모 기획전을 개최하였다. 이번 전시는 한국과 일본, 미국, 유럽 등 27개 컬렉션에서 불교미술 92점(한국 48점, 중국 19점, 일본 25점)의 불교미술품을 통해 '① 불교미술 속 여성'과 '② 제작과 후원의 주체로서 여성'이라는 두 주제를 조명하였다. 전시 작품 92점 중 절반 이상인 47점이 한국에 처음 들어왔다고 한다. 한편, 이번 전시회에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이 5번을 찾았다고 하고, 미술애호가로 알려진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방문 사실을 알리기도 하여 더욱 흥미로운 마음으로 찾게 되었다.
미술관 입구 진입로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수려하게 조성된 나무 숲을 지나 미술관을 향한다. 미술관에 들러 차분하게 작품들을 감상하기 위한 마음의 준비라도 하라는 듯 한적한 진입로가 마음을 안정시킨다. 서울 리움미술관에서 출발하는 셔틀버스가 있다지만 예약에 실패(조기 마감)하여 자가용을 이용했는데, 관람료 1.4만원(65세 이상 경로 7천 원)에 주차료가 7천여 원이 나왔다. 주차료를 과하게(30분에 1,500원) 받는 저의는 무엇일까?
호암미술관 본관
입구에서 바라보니 왼쪽으로 다보탑이 보인다. 전반적으로 경주 불국사를 연상케 하는 컨셉이었다.
전시 1부(미술관 1층), 다시 나타나는 여성
불교에서 부처와 보살은 남성 혹은 성별을 초월한 존재지만 그보다 위계가 낮은 천신에게는 남녀의 구별이 있다. 이러한 성별의 구별은 불교미술에 등장하는 여성의 유형과 직결된다. 전시의 1부는 '불교미술 속에 재현된 여성상'을 인간, 보살, 여신으로 나누어 살펴봄으로써 지난 시대와 사회가 여성을 바라본 시선을 이야기 하고 있다.
1층에 있는 1부 전시실(2층에는 2부 전시)
세계 각지에 소재한 불교미술 걸작품 92건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귀한 전시는 오로지 작품만을 위한 조명을 밝혀 전체적인 분위기는 어둡다. 이 때문에 '왜 전시장이 컴컴하냐?', '글자가 안 보인다' 등의 항의도 있었다지만, '무가지보'(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한 보배) 작품들의 가치를 더욱 높이기 위해 작품에 초점을 맞추었으리라 이해하고 관람해야 한다.
(좌)석가탄생도(조선, 15세기, 일본 혼가쿠지 소장)와 (우) 석가출가도(조선, 15세기, 독일 쾰른동아시아미술관)
'석가탄생도'와 '석가출가도'는 15세기에 석가모니의 탄생을 전후한 여러 장면과 출가를 묘사하여 그린 '한 세트'로 추정되는 불화로, 일본과 독일에 흩어져 있던 두 불화는 이번에 난생 처음으로 한자리에서 전시되었다고 한다. 형제의 상봉인가?
(좌)시왕도와 (우)구상도
(중앙)아미타여래삼존도(고려, 14세기, 리움미술관), (우) 아미타여래삼존도(중국 남송, 13세기, 미국 클리블랜드 미술관)
(좌)아미타여래이십오보살내영도(일본, 무로마치 혹은 모모야마시대, 16세기, 나라국립박물관) (중앙)석가여래삼존도(조선, 1565년, 족자, 비단에 채색,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우)약사여래삼존도(조선, 1565, 비단에 금니,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보물)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품인 조선 시대 불화 '석가여래삼존도'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인 보물 '약사여래삼존도'도 이번 전시에서 세계 처음으로 동시 전시되었다. 조선 제11대 왕 중종의 계비이자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1510-1565)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아들 명종과 자신의 무병장수, 왕손 생산을 기원하며, 1565년에 점안한 400폭 불화 중 현존하는 6점 중 일부다.
전시 2부(미술관 2층), 여성의 행원(行願)
2부에서는 찬란한 불교미술품 너머 '후원자'와 '제작자'로서 여성을 발굴한다. 불교도의 가장 궁극적인 바람인 성불과 극락왕생을 사경, 발원문, 불화, 조각을 통해 이야기하고, 여성들의 신앙, 창조적 역량, 노동이 교차하면서 태어난 불교 자수와 복식에 초점을 맞추는 시간으로 숭유억불 정책 속에서도 적극적으로 불교를 지지했던 왕실 여성들이 후원자로 나서 조성된 '불화'나 '불상', 머리카락을 이용해 불보살의 형상을 수놓은 '자수 불화' 등을 볼 수 있었다.
(좌)감지금니 묘법연화경 권1-7 중 권4 변상도(감지에 금니, 리움미술관 소장)와
(우) 자수 가사(중국 명, 15세기, 미국 클리블랜드 미술관)
자수 종자아미타여래삼존도(일본)
고대 인도의 문자가 적힌 '세 개의 원'이 중앙에 수 놓여 있다. 중앙의 원은 '아미타여래'(중앙), '대세지보살'(왼쪽), '관음보살'(오른쪽)을 상징한다. 검은 문자 및 그림에는 머리카락으로 수를 놓았다는 '수불'이다.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물(조선, 1662년, 송광사성보박물관, 보물)
(좌)금동 관음보살 입상(백제, 7세기 중반, 일본 개인 소장)
'부여 규암리'에서 출토된 것으로 추정되는 백제 '금동 관음보살 입상'은 국내에서 일반에 처음 공개되는 불상으로 아이돌급 인기를 누리고 있다. 관람객들의 사진 세례를 받으며 앞태 뒤태 미모를 뽐냈다. 모델 포즈같은 자세와 오묘한 미소까지 자아내 감탄을 일으키고 있다. '높이 27cm'로 은은하게 웃는 모습이 압권이어서 '백제의 미소'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이 가져갔다가 2018년 6월 존재가 드러난 이 불상은 문화재청이 당시에 최대 42억 원에 매입하려 했으나, 소유자가 150억 원을 제시하면서 환수가 불발됐다. 호암미술관은 "개인소장품인 이 불상을 이번 전시를 위해 대여해 온 것"이라고 밝혔다.
(좌)백자 성모자 입상, (우)나전 국당초문 경함(고려 13세기, 일본 개인 소장, 높이 25.6cmⅹ너비 47.3cmⅹ깊이 25.0cm)
고려시대 국보급 작품 '나전 국당초문 경함'(두루마리 형태의 불교 경전을 보관하던 상자)은 전 세계에 단 6점이 남아있는 진귀한 명품으로 평가된다. 이번 전시회를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가면 다시 볼 날을 기약할 수 없다. 옻칠한 나무 위에 얇게 잘라서 갈아낸 전복 껍데기로 '국화' 무늬를 넣고, 금속 선으로 '넝쿨 줄기'를 표현해 13세기 고려 나전의 정수를 보여주는 국보급 작품이다.
은제 아미타여래삼존 좌상
극락을 다스리는 '아미타여래'(중앙), 현세에서의 구제자 '관음보살'(우), 지옥에서의 구제자 '지상보살'(좌)로서, 세 조합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초에 이르러 큰 인기를 얻었고, 고난으로부터 구원받길 바라고, 언젠가는 극락에 다시 태어나길 바라며 불보살을 만들어 시주하였다고 한다.
전통정원 희원
한편, 호암미술관은 한국 정원문화의 진수를 재현한 전통정원 '희원(熙園: 밝은 동산)'도 자랑한다. 중국, 일본과 달리 자연미를 강조해 경치를 빌려온다는 뜻을 지닌 '차경(借景)'을 토대로 조성한 희원은 대표적인 수도권 나들이 코스로 꼽힌다. 전통문화의 계승과 우리문화의 우수성을 재조명하기 위해 1997년 5월에 개원한 2만평 규모의 정원이다.
(좌)2층석탑과 (우) 팔각오층석탑
호암정
(좌)법원지, (중앙) 보화문(전돌로 쌓아올린 아름다운 문), (우) 읍청문
(상)관음정, (중앙, 하)삼만육천지
'문무인석'을 배치한 잔디공원
호암미술관 특전전 관람을 모두 마치고, 오늘의 관람 동선을 복기하며 잠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