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 18일, 대구 중앙로역에서 일어난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는 192명의 희생자와 148명의 부상자를 발생시킨 대한민국의 역대급 사회적 참사로 기록되고 있다. 우울증을 앓던 50대 남성이 인생을 비관하며 일으킨 방화였지만, 당시 도시철도 관계자의 미흡한 위기 대응 또한 참사의 원인으로 평가되었다는 점에서 지난해 10월 29일에 일어난 이태원 참사를 떠 올리게 만든다. 분노와 자책, 슬픔과 원망 등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게 만든 사건에 대해 한국 영화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슬픔을 이기는 사랑의 기억
이호재 감독의 <로봇, 소리>(SORI: Voice from the Heart, 2015)는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당시 실종된 딸을 찾아 10년 동안 전국을 헤매고 다닌 아버지 해관(이성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딸 유주(채수빈)의 행적을 알 수 있는 사람과 단서를 찾아 전단지를 돌리며 떠돌던 중 바다에 추락한 인공위성 기능의 로봇을 건지게 된다. 세상의 모든 전화를 감청하고 녹음하는 기능을 갖고 있는 이 로봇에게 ‘소리’(심은경)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유주의 통화 기록을 좇게 된다.
세상의 모든 음성정보를 가진 로봇 소리는 하늘에서 떨어졌지만 해관에 의해 어린 아이의 옷을 입고 유모차에 태워져서 다니며 나사와 국정원 직원을 피해 다닌다. 비록 로봇 소리와 해관은 붙잡히게 되지만 딸 유주가 죽기 전 아빠에게 남긴 사랑의 메시지가 담긴 녹음 파일을 전해 듣게 됨으로써 해관의 모든 갈등은 사라지게 된다. 국정원의 손에서 탈출한 로봇 소리는 새로운 음성 주인을 찾아 사막을 여행하기 시작한다.
‘로봇 소리’는 인간 구원을 향한 사랑의 메시지를 가지고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메타포처럼 읽혀지기도 한다. ‘로봇 소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란 뜻이 아니라 죽음과 죽음의 위기로부터 인간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원형의 이미지를 일부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영화 <로봇, 소리>는 딸의 음성통화기록을 가진 로봇을 통해 참사로 인한 상실의 고통을 극복하는 데 필요한 사랑의 중재자 혹은 메신저의 역할을 보여준다. 상실에 따른 부인과 분노를 극복하는데 필요한 것은 사랑을 기억하는 일이다.
비극이 사랑을 만나 희극이 되다
<힘을 내요, 미스터리>(2019)는 우리에게 익숙한 장애인을 둔 가족 드라마의 장르를 반복하면서도 <럭키>(2016)를 만든 이계벽 감독의 스타일로 색다르게 변형시킨 착한 영화다. 지적 장애를 앓고 있는 아빠와 어른스러운 어린 딸의 동행은 <아이 엠 샘>(2001)에서 이미 그 감동의 깊이를 확인했고, 백혈병과 같은 불치병을 앓고 있지만 어른 뺨치는 똑똑함과 의젓함은 <열두 살 샘>(2012)이나 우리나라 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2014)의 아역 주인공들을 보는 듯하다. 출생의 비밀을 안은 채 아빠와 대면하는 어린 소녀라든가 화재 현장에서 사람을 구하는 소방관들의 희생적인 모습, 깡패 같지 않은 깡패들의 희화된 이미지 등 <힘을 내요, 미스터리>에는 어디선가 본 것 같고 익숙한 장면들이 퍼즐처럼 하나의 그림을 위해 맞춰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익숙한 장르 영화를 새롭게 인식시키는 것은 차승원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지체장애인 연기는 그와 유사한 영화들이 이미 보여주듯이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연계되어 세속에 찌든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는 것은 물론이다. 어린 딸 샛별(엄채영)이의 과자를 빼앗아 먹으려는 유치한 행동과 자신의 피를 모두 주고서라도 샛별이를 살리려는 마음이 한 인물로부터 나오는 점은, 이 영화가 찰리 채플린의 영화들처럼 희비극(tragicomedy)의 구조를 갖고 관객을 웃기고 울린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를 끌어들인 점은 코미디 장르의 특성을 넘어서서 감동의 드라마로 발전시키는 원동력 역할을 한다. 특히 지체 장애를 갖고 있는 주인공 철수(차승원)의 행동을 관객이 이해하도록 만들 뿐만 아니라 그가 지체 장애를 갖게 된 이유가 다름 아닌 참사 현장의 소방관으로서 목숨을 아끼지 않는 자기희생적인 구조의 결과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시킨다는 사실에서 이 영화의 개성은 살아있다.
비극적 사건을 분노나 허망한 마음이 아닌 사랑과 희생 그리고 은혜를 갚는 현실의 기억으로 소환시킨 것은 이 영화를 기독교적 가치로 해석되게 하는 결정적 이유이기도 하다. 거기다 사고의 트라우마로 인해 지하철 계단조차 내려가지 못하는 주인공이 자신의 딸을 위해서 과감하게 지하도로 뛰어들 수 있는 용기는 사랑의 힘이 치유를 위한 첫걸음일 수 있음을 나타내는 일이기도 하다.
첫댓글 우리는 몸 어느 한 곳이 아파도 병원을 찾으면서.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중병 증세 중 하나인 대구 지하철 참사를 겪으며 왜 치료에 소홀하면서 비슷한 일을 반복하고 있는지 참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