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4:43~54)
"Unless you people see miraculous signs and woders,
you will never believe."
"만약 너희들이 기적과 경이를 보지 않았더라면,
너희는 결코 나를 믿지 않았을 것이다." (48절)
가끔씩 예수님의 언어나 행적 중에서
당시 상황에 맞는 대화의 결이나 예상되는 행동과 벗어나는 경우가 있다.
간음을 저지르는 여인을 둘러싼 군중을 두고
갑자가 땅에 무언가를 적는 행위들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상황이 그렇다.
오늘 본문에서 왕의 신하가 죽음 직전인 자신의 아들을 고쳐달라고 간청할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위의 48절 내용도 다소 그런 면이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아마도 단순히 처해진 상황을 통해서 예수님이 바라보시는 깊은 부분,
통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오늘 본문에서도 치유의 주인, 근본이 되시는 예수님에 집중해야 하는데
왕의 신하는 아들의 치료에만 매몰되어 있었던 것 같다.
같은 인간으로서, 충분히 왕의 신하를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더라도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고 변화되어야 하는 것은
치유를 포함한 모든 것, 우리에게 가장 중대한 어떤 것도
주관하시고 통제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품 안에 거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요구하신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를 추구하지 않으면
단지 우리의 연약함으로 인해 당장은 이해하고 기다려야 하는
그런 수준이 아니라
점점 더 추악해지고 '괴물'수준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러니 적극적으로 하나님 자체를 따르는 믿음이어야 한다.
이러한 교훈은
요즘 한국 교회에 극명하게 나타난다.
기적과 기사에 매몰된다.
몰인격적, 몰상식적이 되어 버렸다.
그저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라는 명목으로
파렴치한 현실에서의 행동을 정당화 시켰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욕망과 관성에 젖은 교회 지도자에게, 이를 사주하는 사탄에게
철저히 농락 당한 결과이다.
하나님 자체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부수적인 일, 나에게 이익이 되는 일,
나의 욕망을 채워주는 일을 추구할 때
처음에는 그 두 가지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아서
하나님 또는 하나님과 관계된 신앙을 추구하는 좋은 모습으로 보일 수 있으나
결국에는 선한 목표 지점과 괴물의 흉물스런 국면으로
극명하게 나누어진다.
<오늘의 명언>
믿음은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주님 말씀을 따르는 순종이 있어야 믿음이 자라난다. -존 오트버그-
"하나님! 감사합니다.
병원으로붜 좋지 않은 진찰을 받고
식단 조절과 생활의 여러 부분을 개선한 지 2일 째 됩니다. ㅋㅋ.
하나님께서 저의 주변의 삶과 생활을 개선시켜 주시기 위해서
현실을 보여 주신 은혜(!)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소한 질병 하나에 침착되어
하나님의 은혜와 변함 없는 사랑을 망각할 때가 많습니다.
저에게 깊고 담대한 믿음을 허락하소서.
그러한 지경에 이르기 위해서는 세상 기준으로
험난한 일도 하나님 안에서 극복하려는 각오가 있어야 하는데
저는 그러한 용기가 없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입니다.
저를 고쳐 주옵소서.
말씀 묵상과 느낌 수준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주신 선한 의지를 거룩한 의무감으로 현실에서
실현하며 살아가게 해 주십시오.
소영이의 몸 컨디션이 좋지 않습니다.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오늘 엄마 생신으로 집에 방문하여 잠시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셔서
기쁘고 행복한 시간 되게 해 주시옵소서.
감사 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