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산 용현계곡 보원사지(普願寺址)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105>
2026.4.25(토) 10:45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탐방후 용현집 주차장에서 900m 위의
백제의 미소 원찰 보원사지 방향으로 이동하여 약 30여분(10:50~11:20) 동안 보원사지 탐방하는 시간을 갖는다.
강당(講堂)계곡 - 운산 윤병석(雲山 尹炳錫)
가야산 먹고개 넘어 아라메길 따라 천년 세월
문다래미 산허리에 풍월 읊던 강당계곡
아슴히 떠오르는 향빛 산소리 여기저기 묻혀 낙엽이 하늘 땅을 흩날리고 있네
청산녹수 방선암 찾던 옛 묵객 다 어디 갔나
중원 멀리 고운(孤雲)님 몸소 거닐던 꿈길만 아른거리네
학산 조재억 - 금학리
아라메길 - 이생진
가면서 정들고 오면서 추억이 되는 아라메길
세월이 닳지 않은 마애삼존불의 얼굴에 너의 미소 활짝 피었다
보원사 오층탑에 앉았던 봉황 개심사 아미타여래랑 해미읍성 저 멀리 도비산 너머 바다를 한숨에 다녀왔는데
너는 지금 아라메길 어디쯤 가고 있니.
조선시대 해미현에 있던 선비들이 비경이 아름다운 용현계곡을
방선암이란 이름이 새겨진 마당바위 위에서 문인들이 시회를 열어 시배틀을 열었다고 한다.
이것을 기리기 위해 바위에 새긴 이름이 '방선암'이라고 한다.
방선암(訪仙岩)
홍병권(洪秉權), 김진(金璡), 한맹유(韓孟裕), 윤선좌(尹善佐)
10:50 보원사지 관광안내소앞의 이정표
10:53 내포 가야산 보원사 주차장
내포 가야산 新 보원사
2004년 12월 9일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수덕사 말사로 등록하여 현재의 보원사(普願寺)를 유지하고 있다.
보원사 법당의 철조여래좌상
보원사 복원을 위한 임시법당
보원사의 법고와 목어
보원사지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금동여래입상(국립부여박물관 소장)과 고려시대에 제작된 철불좌상 등이 있다.
현재 보원사지에는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석조와 당간지주, 5층 석탑, 탄문국사 승탑과 승탑비 등이 남아 있다.
비문의 글은 김정언이 짓고 글씨는 한윤이 썼다.
보원사지에서 나온 석조물 잔해
사적 제316호 지정된 서산 보원사지 모습
백제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는 보원사의 옛터로 통일신라~고려초에 크게 융성하였고
왕사, 국사를 지낸 법인국사(法印國師) 탄문(坦文, 900~975)이 묻힌 곳이며
주변에 100개의 암자와 1,000여명의 승려가 있었다고 전하는 대사찰이었다.
100여 개의 암자와 관련하여서는 이곳에 본래 99개의 암자가 있었는데
어느 스님이 100을 채운다고 백암사(百庵寺)라는 절을 세우자 모두 불타버렸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 절터에 신라와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대형 철불 2구가 있던 것을 중앙박물관에 전시중이며
1967년도에는 백제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금동여래입상이 출토되는 등 유물로 보아 당시에는 매우 융성했음을 알 수 있으며
백제와 신라, 고려초 불교미술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있는 사적지이다.
유물로는
① 보물 제102호 : 통돌을 장방형으로 파내어 만든 한국 최대의 석조
② 보물 제103호 : 사찰에 불교행사가 있을 때 불기나 괘불을 걸기 위해 만든 당간지주
③ 보물 제104호 : 백제계의 양식 기반위에 통일신라와 고려초의 석탑양식을 갖춘 5층석탑
④ 보물 제105호 : 975년(고려 광종 26)에 법인국사가 입적하자 광종의 지시로 세운 승보탑
⑤ 보물 제106호 : 법인국사의 생애가 기록된 승보탑비가 있다.
절의 규모를 짐작하게 하여주는 것으로 석조와 당간지주가 남아있다.
석조는 화강석의 돌을 파서 만든 것으로 절에서 물을 담아 쓰던 용기이다.
약 4톤 정도의 물을 저정 할 수 있을 정도로 현재 남아있는 돌 그릇 중에 가장 큰 석조이다.
당시 절의 규모를 짐작케 해준다. 저녁이 되면 이 석조 안의 물을 떠서 1000여 명의 스님들이 먹을 밥을 했고
그 쌀뜨물이 용현 계곡을 뿌옇게 만들었고 절의 행사가 있는 날이면 그 물이 홍수가 날 지경이었다고 한다.
보원사에 대한 기록은 신라 말기 최치원이 남긴 '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에 등장한다.
웅주(공주) 가야산 일대의 보원사는 의상을 계승한 화엄종 10대 사찰의 하나로 언급되고 있다.
고려시대 보원사는 법인국사 탄문(900-975)과 관련 있다.
고려태조 왕건은 왕후가 임신을 하자 탄문으로 하여금 백일 기도를 하게 하였고, 이렇게 하여 낳은 아들은 고려 4대 왕인 광종이 되었다.
과거시험과 노비안검법을 통한 개혁정치와 왕권강화로 조선시대 태종 이방원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태조 왕건에 이어 혜종-정종-광종까지 고려 초기 4명의 왕이 모두 탄문을 지극 정성으로 모셨던 것으로 보인다.
탄문이 국사(國師)가 되어 가야산 자락의 보원사로 옮겨갈 때 광종이 왕후와 백관을 데리고 전송하였으며 어의를 보내 병을 살피게 하였다.
탄문은 다음해 3월에 가부좌한 채 입적하였으니 그 때 나이 75세다.
광종 또한 탄문이 죽은 지 2개월 후에 죽으니 참으로 기막힌 인연이다.
고려 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보원사는 유교국가인 조선이 들어서면서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보원사가 사라져가던 그 자리에 민가와 논밭이 들어섰다가 최근 10여 년 다시 절터로 복원되었다.
오직 석물들만 남아 그 옛날의 자취와 영광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보원사지 뒷산은 서산아라메길 천년미소길 구간으로 2.6km 떨어진 상왕산 개심사로 이어진다.
법인스님 탄문의 사리탑과 비석
탑명은 보승탑. 비문의 글은 김정언이 짓고 글씨는 한윤이 썼다고 한다.
고승이 이승의 수도를 마치고 열반에 들면 그 유골을 봉안하여 스님의 승탑(부도)을 세운다.
그런 다음 스님의 행장을 만들어서 비문을 새겨 천 년이 가도록 널찍한 거북 등에 올려 비를 세운다.
탑이 서 있는 가까이에 탑비 자리를 마련하여 한 쌍을 나란히 조성한다.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瑞山 普願寺址 法印國師塔) 보물 제105호(寶物 第105號)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은 옛 보원사 터에 세워진 탄문(坦文, 900~975)의 승탑(僧塔)이다.
탄문은 고려 초의 대표적인 화엄종 승려로서 광종(光宗) 때 승려 최고 직위인 왕사와 국사를 지냈으며
말년인 975년(광종 26)에 보원사로 내려와 머물다가 3개월 만에 입적하였다.
고려 왕실은 탄문에게 '법인(法印)'이라는 시호(諡號-공덕을 칭송하여 붙인 이름)를, 그의 승탑에 '보승(寶乘)'이라는 이름을 내리고
국가의 최고 장인(匠人)을 보내 승탑과 탑비(塔碑-승려의 행적을 기록한 비)를 제작하도록 하였다.
승탑은 탄문이 입적한 975년에서 탑비의 비문이 완성된 978년사이에 완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승탑은 승려의 사리를 모셔놓은 탑으로 사리탑(舍利塔), 부도(浮屠), 묘탑(妙塔)이라고도 하며
사리를 넣어두는 몸돌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기단을 쌓아 받치고 위에는 머리 장식을 얹는다.
보원사지 법인국사탑은 통일신라 승탑 양식에 따라 머리 장식을 제외한 모든 석재가 팔각형으로 제작된 고려 초기의 승탑이다.
이 승탑은 몸돌의 사천왕상과 보관을 쓴 인물상, 지붕돌의 귀꽃(지붕돌 모서리에 새긴 꽃모양의 장식) 등의 조각이 매우 뛰어나다.
법인국사 탄문(法印國師 坦文, 900 ~ 975)
신라 말 고려의 승려로 속성은 고(高), 자는 대오(大悟), 호는 성사미(聖沙彌)이고,
시호는 법인(法印), 탑호는 보승(寶乘)이다.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瑞山 普願寺址 法印國師塔碑) 보물 제106호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119-2
총높이 4.25m, 폭 1.15m/화강암
법인국사의 탑비로 978(고려 경종 3)에 경종의 지시로 세워졌다.
비몸 높이 230Cm, 폭 115Cm, 글자 수 5,000여 자나 되는 거비이며 국공(國工)을 파견하여 이들이 세우게 했다.
이분은 신라말~고려초의 고승으로 법호는 탄문(坦文)이다.
비문의 내용은 탄문의 일대기이며 900년(신라 효공왕 4)에 출생하여 15세에 계(戒)를 받고
968년(고려 광종 19)에 왕사(王師), 974년(광종 25)에 국사(國師)로 지내다가 이곳 보원사에 와서 975년(광종 26)에 입적하였다.
역대 왕들과 가까웠으며 국가 시행 불사를 도맡아 시행하였고
특히 광종은 왕권강화 작업기간 이후 정신적인 지주로서 왕사, 국사로 가까이 있게 했으며 입적하자 매우 슬퍼하였다.
이분은 학승으로 제자가 많아 말년에 보원사에 올 때 선(禪), 교승(敎僧) 천여명이 영접했으며 이곳을「고산(故山)」이라 하고 여기에 와서 묻혔다.
보원사지 법인국사보승탑(보물 제105호)
보원사지 금당지(金堂址)
금당지 주변에서 확인된 초석의 종류는 방형에 원형주좌가 도드라진 초석, 고막이초석, 귀고막이초석 등 3가지로 분류된다.
금당지의 중앙에는 철조불상을 모셨던 좌대가 남아 있으며
보원사지는 금당 앞에 1기의 탑이 있는 1탑 1금당 형식으로 조성되었다.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瑞山 普願寺址 五層石塔)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은 2025년 12월 국보로 승격 지정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은 옛 보원사 터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이다.
현재 보원사터 가운데 서쪽 사찰 구역의 중심에 위치한다.
이 탑은 상하 2층의 기단 위에 5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올리고 정상에 머리 장식이 있는 구조이다.
현재 머리장식은 네모난 받침돌만 남아있고 그 위에 머리 장식을 고정하기 위한 철제 찰주(擦柱-탑의 중심 기둥)가 꽂혀 있다.
보원사지 오층석탑은 백제와 통일신라 양식을 계승한 석탑이다.
기단의 이중 구조, 상하층 기단 양옆에 돋을 새김한 팔부중(八部衆-불법을 지키는 여덟 신)의 배치나 조각 수법 등은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석탑 모습이지만 조각이나 돌을 다듬는 기술 등이 다소 섬세하지 못한 점은 고려 석탑의 특징이다.
또한 지붕돌이 얇고 넓어 완만한 경사를 이루면서 네 모서리 끝이 살짝 들린 것은 옛 백제 지역에 남아있는 백제탑의 특색이다.
1968년과 2003년에 해체 보수 작업이 진행되었는데 1968년 해체할 때 사리구(舍利具-사리 용기)와 함께
납석제 소탑(小塔-작은 모형탑) 등이 나와 국립부여박물관에 보관·전시 중이다.
오층석탑은 고려시대 석탑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힐 뿐만 아니라
감은사탑 같은 중후한 안정감과 정림사탑 같은 경쾌한 상승감이 동시에 살아난 명품이다.
기단부 위층에 새겨진 팔부중상의 조각들은 그 하나하나가 독립된 릴리프(relief)로서 손색이 없고
기단부 아래층에 새겨진 제각기 다른 동작의 열두 마리 사자상은 큰 볼거리다.
아래위로 튼실하게 짜여진 기단부 위의 오층 몸돌은 정림사탑에서 보여준 정연한 체감률도 일품이지만
마치 쟁반으로 떠받치듯, 두 손으로 공손히 올리듯 넓적한 굄돌을 하나 설정한 것이 이 탑의 유연한 멋을 자아내는 요체가 되었다.
이런 굄돌받침의 형식은 보령 성주사터의 삼층석탑에서 처음 나타난 것으로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걸쳐
이 지역의 석탑에만 나타나는 백제계 석탑의 '라벨' 같은 것이다.
법인국사탑비문에 탄문이 고려 광종을 위하여 조성했다는 기록을 통해 10세기 중반에 건립된 것을 알 수 있어
우리나라 석탑 양식 기준이 되는 고려시대 석탑이라고 한다.
비교적 명확한 조성시기, 고려왕실과 불교와의 관계, 통일신라의 양식을 계승하면서도
고려시대 새로운 기법들이 나타나는 석탑이라는 유산적 가치를 인정받아 2025년 12월 국보로 승격 지정되었다.
석탑의 상하층 기단부에는 각각 팔부중상(부처의 법을 지키는 8명의 선신)과 사자장이 새겨져 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많이 희미해지긴 했지만 마치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하나하나
꼼꼼히 보면 어느새 윤곽이 나타나고 전체적인 윤곽이 그려진다.
중문터 계단
용현천을 건너 당간지주
보원사지 당간지주(普願寺址 幢竿支柱) 보물 제103호
당간(幢竿)을 지탱하기 위해 세운 석조물이다.
당간은 절 앞에 세워 부처나 보살의 위엄과 공덕을 표시하고 사악한 것을 내쫒는 의미를 가진 당(幢)이라는 깃발을 다는 깃대이다.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원래의 위치에 놓여있다.
마주보고 있는 두 지주의 안쪽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으며 바깥쪽에는 양측 가장자리를 따라 돌대(突帶)가 돋을 새김되어 있다.
기단부가 없어진 것을 화강암으로 새로 보강하였는데 주위에 흩어져 있는 여러 가지 석재들로 보아 원래는 직사각형의 기단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보물 제103호 보원사지 당간지주
네모난 기단부 위에 두 개의 돌기둥이 세워져 있다.
안상을 새긴 방형의 기단 위, 양 기둥 사이에 당간을 받치는 주좌(柱座)가 놓여 있고
양쪽 기둥의 안쪽에는 당간을 고정하는 간공(竿孔)이 패여 있고,
꼭대기에는 간구(竿溝-꼭대기에 고랑을 파서 고정)를 파서 아래쪽의 간공과 함께 당간을 고정시키도록 만들었다.
기둥 정면의 양쪽으로 길다랗게 돋을새김으로 장식하였고
측면에는 양쪽 가장자리와 가운데에 세 줄로 돋을새김 장식을 하였다.
11:50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및 보원사지 탐방후 처제부부와 함께 어죽, 수제돈가스, 김치전으로 점심식사 시간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