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4월 아직 인터넷에서 건축관련 카페가 없을 때
통나무집이라는 보편적이지 못한 테마로 다음에다 "통나무집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카페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확실하게는 알 수 없지만 집짓기를 테마로 하는 카페로서는 최초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왜 속칭 통만사라고들 부르던 지금의 카페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첫번째 이유는 2001년이 통나무집에 뜻을 둔지 딱 10년째 되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 읽은 책중에서 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사람은 나이가 30이 넘지 않고 한분야에서 10년이상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내가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라는 대목을 늘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통나무집을 접한 것이 1990년경의 일본에서 입니다.
그후 여러가지 경로를 걸쳐 1995년 우리나라에 통나무학교라는 것이 처음 생겼을 때
선배의 강요에 못 이겨 대신 갔다 오면서 약간은 본의 아니게 이 업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그후 선배와 함께 노치방식의 통나무집을 짓고 그후 빌더라고 불리는 전문기술자가 되어서 여러집들을 짓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아무생각없이 나무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 나쁜 사람들은 없다고 말하지만
여기도 그냥 보통사람들이 사는 분야입니다.
오래 이 일을 하다 보면 정말 많은 일을 겪게 됩니다.
집을 지어주고 인건비를 못 받아서 민사소송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덕분에 민사소송의 절차와 방법등에 대해서 법무사만큼이나 잘 알게되어 주위의 임금체불문제등에 조언을 할 지경에 이르기도 합니다.
통상적인 직업이 된 후 작업을 계속하다 2000년 경에 참으로 여러가지 일들이 동시에 일어나서
통나무집짓는 일 자체에 깊은 회의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처음 통나무집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농업에 관심을 가지고
귀농을 할 생각으로 귀농을 하게 되면 집을 짓거나 고칠 때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 통나무집기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직업이 되고 부터는 대부분의 집들이 레스토랑과 같은 영업시설을 짓게 되었습니다.
1995년 통나무학교, 그 당시에는 용인에서 '핸드그라프트로그스쿨'이라는 이름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많은 수료생들이 나오면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방식인 통나무집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 읽으켜 레스토랑과 같은 영업시설은 상당히 잘 먹혀 들었습니다.
당시에는 하루 매출액이 200만원이 넘는 것이 보통이었기 때문 1년만 장사하면 투자금은 회수하고
두세배의 이익을 볼 수 있어 통나무집을 지어서 장사하다 고가에 팔고 다시 통나무집을 짓는 것이 성행할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되니 나중에는 완전히 돈 놓고 돈먹기 처럼 되었습니다.
그러니 귀농, 자연농법, 내집짓기에 도움과 같은 생각으로 이 일을 시작한 저는 심각한 회의에 빠졌습니다.
그런 여러가지 일을 겪고는 영업시설만을 짓는 통나무집작업에 깊은 회의를 느끼고 있을 때
지리산에 한옥을 짓는 현장을 알게 되었습니다.
늘 통나무기술자로서 우리기술 한옥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서양의 기술인 통나무집만을 짓는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기회에 한옥을 배우자고 결심하고 한옥현장으로 갔습니다.
한옥현장에 가니 일단 임금은 반 이상으로 깍이고 제일 밑 데모도수준으로 시작하게 됩니다.
그 현장에 통나무기술자 출신이 한사람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동류라 생각하고 모르는 것을 물어보니 잘 안가르쳐 주더라고요.
옆에 있는 사람에게 좀 가르쳐주지 뭔 대단한 것이라고 안가르쳐 주냐고 투덜대니
그사람은 당신보다 하루 먼저온 초보자라고 하더군요.
그사람도 지금 통나무관련 카페를 하고 있습니다.
그 후 이렇게 저렇게 한 세동정도 작업해 보면서 한옥에 대한 이해와 한계를 알게 되었습니다.
한옥 작업을 해보기전과 후에 통나무를 다루는 감각이나 생각이 많이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통나무를 배우러 오는 기술자들에게는 한옥 현장에서 한옥작업을 한번쯤은 경험해보도록 권합니다.
지금까지 통나무기술자중에서 한옥현장을 경험한 사람들이 몇명 있습니다.
한옥을 경험한 후 통나무작업이 한옥부재 가공하는 수준으로 정밀해 진것이 가장 큰 수확이라면 수확인데
이 것때문에 작업시간이 늘어나 전체 이익금은 현저하게 줄어들게 됩니다.
그리고 지리산에서 한옥을 다짓고 나왔을때
그동안 가지고 있던 통나무관련 자료들을 정리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집중적으로 작업하기 위해
노트북과 자료를 담은 박스를 들고 산속 고시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한달간 가지고 있는 자료들을 정리한 것의 일부가
진선출판사에서 출판된 '통나무집 짓기'가 되었습니다.
그 때 옆방에서 건축기술사 시험을 공부하던 건설회사기술이사인 부산갈매기를 알게 되어 나중에 삼량진에 세동의 집을 짓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인연이란 참 묘하기도 합니다.
진선출판사의 사장은 핸드그라프트로그스쿨에서 같은 조로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삼청동에 있는 진선북카페가 원래는 진선출판사사옥자리인데
이 곳을 통나무집으로 북카페로 만들어 보려고 왔다고 하더군요.
결과로는 지금의 진선북카페가 생기고 그러면서 삼청동이 지금의 모습의 변하게 되었습니다.
1995년 삼청동에는 '삼청동수제비집'과 '세상에서두번째로 잘하는집'정도 밖에 없었는데 말입니다.
자료를 정리한 후 출판을 해보려고 알아보니 모두 잘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꺼려하더이다.
그러고 있는데 어느날 피시방에서 있는데 주위에 전에 보지 못하던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원래 컴퓨터프로그래머가 직업이었습니다.
회계관련 프로그램과 같은 경영관계의 프로그램을 짜는 것이 직업이라 컴퓨터를 대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습니다.
처음 16비트 애플부터 386, 486, 586까지 DOS2.0부터 윈도우까지 변화를 같이 겪었기 때문이죠.
피시통신시대가 끝나고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부터 피시방에 다녔지만 처음에는 젊은 학생들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피시방에 아저씨들이 앉아서 바둑을 두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그 때가 O양비디오로 시끄러운 시절입니다.
컴맹인 아저씨들이 대거 인터넷 세계로 진출한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도 있겠지요.
그래 지금이라면 인테넷으로 통나무집을 지을 수 있는 나이대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음에 2001년 4월 29일 다음에 '통나무집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카페를 만드고 정리한 자료들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올린 자료들이 지금 이 카페, 저 사이트들에 누구 쓴 것인지도 모른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카페를 시작하면서 컨셉을 제가 처음 통나무집에 관심을 가진 이유인 내집짓기에 도움이 되도록
스스로 집짓기를 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방향으로 운영하게 된 것입니다.
내가 내손으로 집을 지을 때 도움을 받기 위해서 통나무기술을 익혔듯이
누군가 스스로 통나무집을 짓기를 원하는 사람을 위해 내가 가진 기술을 알려주기 위해서 이지요.
좋은 통나무집이 지어지기 위해서는 기술자들도 통나무집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알고 있어야 되겠지만
소비자인 건축주가 통나무집에 대해서 장확하게 인식하고 합당한 통나무집을 요구해야
전체적인 통나무집의 수준이 올라 갈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소비자가 싸구려, 가장 단가가 낮은 집이 제일 좋은 집이라고 생각하는 이상
제대로 된 기술자들은 점점 도태되고 저급자재로 낮은 임금의 기술자들만 쓰는 업자들만 살아 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건축주들을 교육시켜서 통나무집이란 어떤 집인지 정확한 인식을 가지고 건축에 임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지금의 교육과정인 로그아카데미를 '통나무세미나'라는 이름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첫댓글 2편을 기대하면서...교육 받을때 못들었던 부분을 글로 표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속 추워지는데 감기 조심하세요...^^
나름 깊은 공감을 합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렇군요.. 원장님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어 좋습니다. 다음 글도 기대해봅니다.
처음읽어본 글입니다 원장님 마음이 보입니다 ^^
쓰신 글에 대해 정말 공감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계속해서 그 뜻을 계속 이어 나가시길 기원합니다.
원장님의 이력과 동기 그리고 뜻하는 바를 알게 되었습니다. 공감과 많은 응원을 합니다.
카페를 개설해서 재능을 나누어 주시려는 마음,
인연이 만들어 온 여러가지 일들,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여러일들이 많으셧을텐데 참대단 하십니다.
더구나 후진양성까지 좋은일 하시니 훌륭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