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드라마 야인시대와 영화 바람의 파이터, 장군의 아들 시리즈를 통해 많은 한국의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는 전설의 싸움꾼들을 소개해드릴까하는데요. 이들은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맨손으로만 싸웠다고 합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설의 싸움꾼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시대를 풍미한 전설의 싸움꾼 BEST10
바람의 파이터, 최배달 (본명 : 최영의) (1923년 6월 4일 ~ 1994년 4월 26일)
최배달의 한국이름은 최영의로 일본이름은 오오야마 마스다츠라고 합니다. 최배달은 영화 바람의 파이터로 한국의 대중들에게 알려진 인물인데요. 극진가라데를 창시한 인물로 일본에서는 유명하다고 합니다. 최배달은 소를 때려잡은 일화도 상당히 유명한 일화로 알려져 있으며 최배달은 40대 이후에도 하루 최소 10명 이상과 대련을 계속했다고 합니다.
외로운 독고다이, 시라소니 (본명 : 이성순) (1916년 2월 29일 ~ 1983년 1월 25일)
정치깡패 유지광의 자서전에는 대한민국의 주먹사에는 무수한 실력자가 있으나 공정하게 평가하자면 시라소니를 이길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합니다. 시라소니 이성순은 유명한 반공주의자로 해방 이후 공산당이 북에 집권하자 월남하였다고 합니다. 월남 이후 이북계 조폭의 큰형님으로써 서북청년단, 압록강동지회 감찰부장으로 활동했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서북청년단 인원으로 구성된 KLO부대원으로 한국전쟁에 참여했고 3.1 공수유격단의 부부대장의 자격으로 한국군 최초 공수 강하훈련을 교육했다고 합니다. 시라소니 이성순은 조폭세계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퇴출되고 종교에 귀의해서 평범하다가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종로 황제, 김두한 (1918년 5월 15일 ~ 1972년 11월 21일)
청산리 대첩의 영웅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자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김두한입니다. 김두한은 18세가 되던 해 구마적(고희경)과 싸워 이기면서 종로 우미관을 관리하게 되면서 종로의 주먹황제로 등극하게 된다고 합니다. 실제 인물인 하야시, 시라소니(이성순) 등이 인정한 종로의 주먹황제라고 하는데요. 전 세계를 통틀어도 조폭출신 중 가장 출세한 인물이라는 네티즌들의 평가가 있습니다. 실제로 김두한은 1990년 김좌진 장군의 친자논란에 휩싸였으나 결과적으로 김좌진 장군의 집안의 족보에는 김두한 의원을 김좌진 장군의 자녀로 인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종로신사, 김동회 (1918년 8월 10일 ~ 2004년 8월 25일)
장군의 아들에서 김두한의 죽마고우로 등장하는 김동회는 실제 인물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종로신사 김동회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김두한과 죽마고우였다는 것을 밝혔는데요. 김동회 옹은 인터뷰에서 야인시대의 김영태가 미국에서 살고 있다라고 이야기 하면서 주먹 1세대의 원로로 대접받았으나 2004년 8월 25일에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천하장사, 김무옥
대체적으로 야인시대에 등장하는 인물 중 김무옥은 허구인물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무옥은 실제 인물로 유도 공인 5단의 김두한과 쌍벽을 이루는 싸움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김무옥의 자녀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평생 김두한 의원을 형님으로 모셨고 아버지 역시 김두한처럼 의협심이 강한 사람이었다."라고 소개했는데요. 김무옥 씨 자녀 분께서는 아버지가 살아 계실 당시 김두한의 라이벌이었던 하야시가 김무옥을 찾아와 유도를 알려달라고 했다가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거절했다는 비화도 공개했다고 합니다.
아웃복서, 문영철 (본명 : 문운경)
키가 약 188cm가 넘어 아웃복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던 문영철(문운경)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야인시대의 문영철은 허구인물로 알고 있는데요. 문영철(문운경)은 김두한을 따르던 싸움꾼이었다고 합니다. 복싱권투 출신이다보니 엄청난 펀치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문영철(문운경)은 상해를 무대로 시합을 했고 연속으로 KO로 이기면서 '살인펀치'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문영철의 자녀로는 아들 한명이 있다고 하는데요. 문수영 목사라는 분이라고 하네요
정치깡패, 이정재 (1917년 1월 6일 ~ 1961년 10월 19일)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정부 시절의 정치깡패로 이름을 널리 알린 이정재입니다. 이정재는 단성사 저격 사건 및 야당 정치인들을 향한 정치테러 등을 지시한 실질적인 배후였다고 하는데요. 이정재는 경기도 이천 출신으로 힘이 장사였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정재가 관리하던 동대문 시장 일대에는 상인들의 인심을 얻기 위해 과거 건달들이 폭력 행위 및 협박, 공갈로 상인들에게 보호세를 뜯는 폐단을 없애면서 애로사항을 해결해주는 등 한번도 상인들의 원망을 산적이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정재는 김두한 의원의 경고를 무시하고 권력에 협조하여 스스로 몰락한 인물입니다.
명동황제, 이화룡
일제 해방 전 이북에서 평양엔 이화룡이 있다고 할 정도로 상당히 유명한 건달이었고 젊은 시절에는 만주 등지를 돌아다니며 싸움과 노름을 하면서 세월을 보냈다고 합니다. 해방 이후에는 이북 출신 깡패 이정팔과 명동을 접수하면서 명동파를 결성하였고 이정재의 동대문파와 잦은 대립을 했다고 합니다. 이화룡은 대동강동지회의 특공대장으로써 반공주의 활동을 한 인물인데요. 한국전쟁 이후 1958년 충정로 도끼 사건에 연루되면서 한국 조직폭력계에서 물러나 손을 씻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화룡은 석방 이후 영화사업에 투신하였고 진짜 작품이라는 소리를 듣는 작품들도 여럿 제작했다고 합니다. 이화룡은 1984년 2월 24일에 고혈압으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종로대장, 구마적 (본명 : 고희경)
본명은 고희경으로 알려져 있고 힘이 매우 드센 장사라고 하여 마적(도적놈 괴수)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었다고 합니다. 김동회의 회고록에 의하면 키는 181cm이고 몸무게는 110kg에 달아하는 거구였다고 하는데요. 드라마 야인시대에서는 김두한이 김좌진 버프를 받을 정도로 고전했다고 묘사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밤 10시경 늦은 시간에 인적이 드문 극장 뒷마당에서 김두한에게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쓰러졌다고 합니다. 구마적(고희경)은 해방 이후 한국노총 관련된 일을 맡았고 명동에 한 번씩 술을 마시러 왔다고 하는데 소설가 이봉구의 명동백작에는 사망했다는 언급이 있는 걸로 봐서는 60년대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신마적 (본명 : 엄동욱)
일제강점기 조폭출신으로 본명은 엄동욱이라고 합니다. 신마적이라는 별명은 구마적이 있으니 새로운 마적이 나타났다 하여 신마적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동아일보의 1935년 3월 9일자 기사에는 폭력단의 패왕인 신마적을 종로경찰서에서 체포했다라는 기사를 볼 수 있는데요. 실제로 동아일보의 인터뷰에 따르면 기사와는 반대로 구마적이 기습으로 김두한에게 당하자 복수를 하려고 김두한에게 덤볐다가 깨져서 물러났다고 합니다.
첫댓글 한사람더......!!
고려시대의 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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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사부님^^
이정재 ^^;연예인 이정재만 생각이 납니다
80년대로3가 무랑루즈에서 제2의 김두한을 꿈꾸던 시절이 생각난다는... 쩝
그때 하춘화만 안 만났어도 우찌 되었을지 몰르것네요...
을매나 쎈지 실제로 함 보고싶네여ㅎㅎ
심수봉만 없어도 사부님이 장악했을건데
사랑이 뭔지 백만송이 장미도 물리치고
에휴
민초들의 삶을 힘들게 했던 무리들이 아니었는지!...()
몇사람 이름이 익습니더~~ 그런 사람들이였군요^^
주먹으로 애국한 사람들이네요.
원펀치 쓰리 강냉이~~질풍노도의 학창시절이 아련합니다*^^*
시라소니, 혹은 스라소니의 날아오른후의 박치기와 제자리 솟구치는 모습등을 함 보고 싶습니다~~
전설의 주먹들 중에 단연 최고는 시라소니지요~~
모르는 이름도 있군요~~대체로 격이 있던 분으로 보입니다~~
양력생일일까요? 음력생일 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