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는 사람과 외모가 비슷합니다. 그러나 생명은 사람과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생명인 하나님의 영이 있지만 원숭이에게는 그 영이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2:7). 따라서 원숭이는 그냥 자기 육체를 위해 사는 육에 속한 짐승이지만 하나님의 영으로 창조된 사람은 그 영이요 생명이신 하나님을 위해 사는 영에 속한 생령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계속된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이 사람에게서 떠나고 맙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창6:3). 이렇게 하나님의 영이 떠나 버리자 영에 속한 사람도 짐승인 원숭이와 다를 바 없는 육체를 위해 사는 육의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런 육에 속한 사람을 종종 짐승으로 비유하곤 합니다(사1:2~3, 마7:6).
모세의 율법은 이렇게 생명이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육의 사람들에게 조문으로 주신 하나님의 법입니다(딤전1:9~10). 마치 원숭이에게 사람이 지켜야 할 법을 주고 그 법을 준수하라는 명령과 같습니다. 원숭이가 사람의 법을 지킬 수 없는 것 같이 육의 사람은 영에 속한 율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육에 속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명하신 것은 영의 사람으로 거듭나지 않고는 절대로 율법을 지킬 수 없음을 깨닫게 해주려는 것이었습니다(롬3:19~20).
육의 사람은 절대로 영의 사람의 생명의 법인 율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육의 사람이 율법을 지키며 살려면 먼저 영의 사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롬8:3~4, 마5:17). 그리고 영의 사람은 성령을 따라 살기 때문에(빌2:13) 조문으로 된 모세의 율법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영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한 생명인 성령이 율법의 요구를 이루게 하는 법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