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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18:1-3)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들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그의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의 사치의 세력으로 인하여 치부하였도다.”하더라.
계시록의 마지막은 마귀와 그의 부하들이 불못 지옥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계시록에서는 그 일이 있기 전에 먼저 바벨론의 멸망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바벨론은 마귀가 인간들을 지배하고 지옥에 몰아넣기 위하여 사용한 가장 중요한 도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이 바벨론이 무엇인가, 또는 누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우리가 혹시 그 바벨론에 소속되어 같이 멸망을 당하게 되지나 않는가를 깊이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 아담의 자손으로 태어났기에 본래 마귀 소속이요, 진노의 자식들이 아닙니까? 마지막으로 깨달아야 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소속을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1. 바벨론은 무엇인가요?
1) 홍수 후에 바벨탑을 쌓았던 일에서 그 의미가 나타납니다. 홍수 후에 사람들이 다시 번성하게 되자 사람들은 또 홍수가 날까봐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이를 지켜보시던 하나님은 안 되겠다 싶으셨는지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셔서 공사가 중단되었습니다. 이들의 잘못은 무엇입니까?
① 첫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시는 홍수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무지개를 두고서 약속하셨지만, 그들은 절대로 못 믿겠다고 화답한 것입니다. 약속을 무시하는 것이 얼마나 기분 나쁜 짓입니까? 우리는 주님의 약속을 굳게 믿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② 둘째는 자기들의 이름을 내자는 것입니다.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창 11:4).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자기 이름을 남기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해서 후세에 누가 그들의 이름을 알아주겠으며, 또한 알아준다고 한들 그것이 그 사람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유명해지면 천국에 갈 수 있나요? 김일성 시체 궁전을 만들고 온 백성들이 와서 절을 하도록 강요하고 있지만, 그렇게 하면 지옥에 있는 김일성이 천국에 올라가기라도 하나요? 내 이름을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③ 셋째 잘못은 “온 땅에 흩어져 땅을 정복하라.”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여 우리는 절대로 흩어지지 말자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들끼리 잘 뭉치자고 하는 것이 큰 죄악입니다. 사람들은 먼저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서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악인들은 하나님 없이 자기들끼리 하나가 되자고 합니다. 오늘날 소위 교회연합운동이라는 미명하에 일어나는 일들이 그렇지 않은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WCC운동이라는 세계적인 연합운동도 그렇고,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라고 하여 만든 것도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④ 넷째 잘못은 벽돌 굽는 기술과 역청을 만들게 된 과학기술을 과신한 것입니다. 그때로는 대단한 발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 기술만 있으면 하늘 높은 곳까지 이르는 탑을 쌓아서 그 어떤 홍수에도 끄떡없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입니까? 그런 정도의 기술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적해 보겠다고 하였으니 가소롭지 않습니까? 오늘날에도 과학문명이 발달해갈수록 하나님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도전하는 자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늘에서 저희를 비웃으신다고 했습니다(시 2:4).
2) 바벨론이란 17:5에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고 하였습니다.
① 사람이 부유하고 편해지면 항상 따라오는 현상이 음란입니다. 세상을 더 즐기자는 생각, 곧 쾌락주의에서 나오는 자연적인 현상입니다. 왜 동성애가 성행합니까? 살 만하니까 그렇고, 편안하니까 그런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이런 타락한 문화는 부유한 곳에, 권력자의 주변에, 안일한 자들에게 항상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일입니다.
②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음란함은 함께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날수록 음란해집니다. 또한 음란하면 반드시 하나님을 떠납니다. 오늘날 미국이나 한국에서 동성애자들을 지지하고, 그들의 인권을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떠드는 자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을 극히 미워하는 자들이라는 점입니다.
③ 이 음란죄는 영적 우상숭배입니다. 쾌락의 신을 섬깁니다. 인간을 우상화하여 섬깁니다. 돈을 섬깁니다. 권력을 섬깁니다. 그러다가 멸망합니다.
3) 바벨론이란 본문 2-3절에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들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그의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인하여 치부하였도다.”라고 하였으니, 영적으로 볼 때에 가장 악하고 더러운 곳을 말합니다.
① 귀신의 처소요, 각종 더러운 영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성령이 떠나가시면 그렇게 됩니다. 귀신을 쫓아낸 후에는 성령을 모셔야 하는데, 성령이 안 계시면 쫓겨났던 귀신이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와서 살게 되니까, 그의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훨씬 더 악하게 됩니다.
② 그래서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책망하며 경고하기를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3:1-3)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오늘날 교회에서 성령이 한 번 들어오시면 절대로 떠나시지 않는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성경은 그런 소리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③ 사람도 자기를 환영하지 않는 집에서는 금방 떠납니다. 또한 처음엔 환영하다가도 나중에 푸대접하면 곧 떠납니다. 하물며 거룩하신 하나님이 무엇이 아쉬워서 죄인 안에 거하시겠습니까? 우리는 항상 자기가 믿음 안에 거하고 있는지 잘 살펴야 합니다. 다윗은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 51:11)라고 하였습니다.
2. 바벨론이 받을 심판은 어떤 것입니까?
1) 모든 심판의 대원칙은 심은 대로 거두고, 행한 대로 받는다는 것입니다.
① 6-7절에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주고 그가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어라.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주어라.”라고 했습니다. 당신이 이제껏 무엇을 심었습니까? 앞으로는 무엇을 심을 것입니까? 결단해야 합니다. 복을 받는 길은 바로 당신의 눈앞에 있습니다.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② 선과 의를 심고 정직하게 사는 일은 너무도 어렵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그 열매가 언제 열릴지 아무리 기다려도 도무지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값이 싼 열매는 금방 열려도 값이 비싼 열매는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나쁜 열매는 그냥 두어도 저절로 열리지만, 좋은 열매는 많은 정성과 수고를 들여야만 열립니다. 자녀들을 길러보면 잘 알지 않습니까? 자기들 마음대로 하라고 방임해 두면 그 대다수는 타락합니다. 그러나 훌륭한 인물이 되도록 하는 데에는 부모나 스승의 특별과 애정과 관심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③ 이렇게 좋은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기에 사람들은 쉽게 낙심하거나 포기해 버리고, 자꾸 편법을 찾습니다. 심지 않고도 많이 거두려고 하거나, 남들이 고생하여 수확한 것을 강탈해 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전쟁이 일어납니다. 형제간에도 원수가 됩니다. 이렇게 불법이 성해지면 아무도 일을 하려고 하지 않기에 사회는 더욱 어지러워지고 불행과 멸망이 찾아옵니다.
④ 또는 의인들을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자기의 잘못이 의인들 때문이라고 원망합니다. 가인의 제사를 받아주시지 않으니까 그가 아벨을 미워하여 죽였던 것과 똑같습니다. 그래서 에서도 야곱을 미워하고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의인의 길에는 이런 십자가가 항상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와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노라 하면서도 이런 십자가를 체험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크게 부끄러운 일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영광도 없고, 십자가 없이는 천국도 없습니다.
⑤ 그러므로 우리가 힘써 선을 행해야 합니다. 의를 심어야 합니다. 누가 알든지 모르든지, 누가 보든지 안 보든지 부지런히 의를 심어야 합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내 앞을 가로막는다고 해도 항상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이 새 힘을 주시지 않습니까? 성경의 모든 위인들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기독교 2000년 동안의 모든 성도들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성경은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라고 말씀합니다.
2) 자기가 믿었던 것과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나게 하십니다.
① 악인들도 항상 아름다운 꿈을 꿉니다. 그러면서 그것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악인들의 소원은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다 되는 것 같다가 갑자기 망합니다. 악인들은 처음에는 잘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아주 비참하게 망합니다. 반대로 의인들은 처음에는 망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점점 밝아집니다. 그래서 잠언 4:18에 “의인의 길은 돋는 햇빛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른다.”고 하였습니다. 한편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이 어떻게 다른가를 잠언서가 잘 보여줍니다. 10:24에는 “악인에게는 그가 두려워하는 것이 임하거니와 의인은 그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느니라.”라고 하였고, 11:23에서는 “의인의 소원은 오직 선하나, 악인의 소망은 진노를 이루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김일성이 6.25사변을 일으켰을 때에 금방이라도 적화통일이 이루어질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악인이 절대로 성공하지 못합니다.
② 악인의 길은 반드시 망합니다(시 1:6). 악인의 자손은 끊어집니다(시 37:28). 악인의 집에는 하나님의 저주가 있습니다(잠 3:33). 또한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합니다”(잠 4:19). 하나님이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악인은 망하고 의인은 형통합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믿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진리의 말씀을 마음판에 새기고 그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세요. 반드시 승리합니다.
③ 악인의 소원 자체가 악합니다. 그래서 망합니다. 의인은 의로운 소원을 가집니다. 그러니까 형통합니다. 많은 사람이 교회에는 다녀도 의로운 소원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기도를 따라서 자기의 소원을 고쳐나가야 합니다.
3) 지옥에 던져져서 영원토록 후회해 보나 구원될 길이 없게 됩니다.
① 사람들이 크게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세상 공부를 많이 하고, 이름 있는 좋은 학교를 나오면 다 훌륭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착각일까요? 인생을 끌고 가는 것은 세상의 공부나 학문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이라고 불리는 다윗이 공부를 많이 한 사람입니까? 대관절 어느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까?
② 부모가 유명하면 자녀들도 모두 저절로 훌륭해집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부모가 왕족이나 귀족이면 물론 자녀들이 그런 지위를 물려받겠지요. 그러나 인격과 사상과 능력도 다 물려받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것은 피눈물 나는 노력과 희생을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돈과 권세를 가진 사람들의 자녀들은 오히려 그러한 자기희생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물려받은 부와 권세와 명예가 오히려 그들을 옥죄이고, 파멸로 끌고 들어가게 됩니다.
③ 그러면 성경은 무엇을 말합니까? 의롭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사람이 악을 행하면 그만큼 더 어두운 곳으로 빠지기 때문에 깨달음도 없게 됩니다. 그래서 더 큰 불행에 이르게 됩니다. 빛으로 나아와야 깨달음이 빨라집니다. 우리가 늘 주님께 가까이 나아와 기도에 힘쓰고, 진리의 말씀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누가 복이 있는 사람입니까? 소극적으로는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 사람”이고, 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러면 밝아집니다. 마음이 밝아지고, 말도 밝아지고, 표정도 밝아집니다. 그러니까 그의 생활이 전부 밝아집니다. 이 밝음이 행복이요, 이 밝음이 곧 천국입니다.
④ 문제는 우리가 과연 의롭게 살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자기의 힘이나 노력으로 과연 의로워질 수 있을까요? 이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종교를 자력종교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인간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인간이 노력하면 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엄청난 착각입니다. 인간은 본래 타락하였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을 하고, 아무리 거룩하게 살려고 해도 절대로 거룩해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주제파악이 안 된 사람들은 결국 실패의 쓴맛과 평생 노력한 것의 허무함을 느껴서 그 괴로움과 좌절감 속에서 인생을 마칩니다.
⑤ 기독교는 타력종교입니다. 인간은 본래 죄인이요, 아무 것도 아니며, 따라서 아무리 노력해도 신의 경지는커녕 의인의 경지에도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이 해 주시기만 사모하면서 은혜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그리스도가 되셔서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셨다가 부활하심으로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살려내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그 은혜 안에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을 우리 마음속에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을 믿지 않는다는 말은 그 은혜 안에 들어가기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자기 마음속에 모셔 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말로는 주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주님을 마음에 모심으로 실제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사람은 불신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⑥ 오늘날 교회 안에 겉으로는 신자이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전혀 신자가 아닌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래서 심판이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회개하기에 힘쓰고 조그만 어둠이라도 내 마음에 머물러 있지 못하도록 빛으로 채워야 합니다.
3.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악인들의 종말을 잘 살펴보면서 그들의 악에서 떠나야 합니다.
① 본문 4절에 하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탈출해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고향인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셨습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선민의 역사는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롯의 가족들은 소돔 성에서 탈출해 나와야 했습니다. 급히 나와야 했습니다. 불벼락이 삽시간에 들이닥칠 것입니다. 애급에 들어가서 400년이나 살던 히브리 민족은 모세 때에 이르러 그 땅에서부터 급히 탈출해 나와야 했습니다. 지체하면 안 됩니다. 이 기록을 쓴 책을 우리말로는 ‘출애급기’ 영어로는 Exodus, 곧 ‘탈출(脫出)’이라고 했습니다.
② 악인의 종말의 첫째 특징은 모든 인생의 종말처럼 허무함입니다. 많은 사람이 부와 명예와 향락과 권세의 정상에 올라가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내가 올라가려고 하는 그 정상에는 아무것도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한 나라의 대통령을 했던 사람도 자살로 인생을 끝내지 않습니까? 기쁨과 감격은 잠시뿐입니다. 즉시로 깊은 허무와 타락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③ 둘째 특징은 자기가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쓰라린 아픔을 겪는다는 것입니다. 6.25 사변을 일으킨 것은 김일성입니다. 그런데 그 사변을 일으키도록 부추긴 자가 박헌영입니다. 북에서 밀고 내려가기만 하면 남쪽에 있는 공산당원들이 봉기를 일으켜서 쉽게 남한을 정복하게 된다고요. 김일성이 그 말을 믿고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서울을 점령하고 사흘을 기다려 보았어도 그런 봉기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김일성은 화가 나서 박헌영을 미국의 간첩이라고 누명을 씌워서 죽여 버렸습니다. 박헌영은 이렇게 배신을 당해 죽었습니다. 김일성은 어떻게 죽었습니까? 그의 아들이 죽였다고 하지 않습니까? 월맹이 월남을 점령한 후에 제일 먼저 누구를 처형했습니까? 월남에서 반정부 투쟁을 하던 공산당원들이 아닙니까? 반항적 기질이 있는 자들은 자기들에게도 또 반항할 것이기에 모두 처형해 버렸습니다. 이것이 악인들의 종말입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이런 것을 보고 깨닫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들은 도무지 깨닫지 못합니다.
2)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여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①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이 만일 그 사업이 망할 줄을 알면서도 시작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그런데 우리 인생, 특히 당신의 길이 바로 그렇지 않습니까? 지옥에 가게 될 것이 뻔히 보이지 않습니까? 당신은 틀림없이 천국에 갈 것이라는 감언이설에 속지 마세요. 성경을 깊이 읽어보아야 합니다. 값싼 칭찬에 웃는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옛날 유대인들이 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너무도 엄중합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 7:23).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8:11-12).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 23:33)?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로부터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요 8:44). 이 얼마나 무서운 말씀들입니까? 그런데도 그 길을 계속하여 가시겠습니까?
② 하나님의 심판은 정확합니다. 우리가 인간의 눈은 속일 수 있어도 어찌 하나님의 눈을 속일 수 있겠습니까? 심판 때에 우리 각 사람은 자기 입으로 자기의 행위를 하나님께 직고합니다(롬 14:12; 벧전 4:5). 정직하게 살고 철저히 회개하면서 살면서 마음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③ 기회가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마음에 찔림이 올 때, 깨달음이 올 때에 빨리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는 진심으로 통회하는 것이요, 방향을 돌리는 것입니다. 죄와 멸망을 향하여 달려가던 방향을 돌려 거룩한 길에 들어서야 합니다.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3)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품안에 거해야 합니다.
① 만일 예수님이 오시지 않았다면 어찌 될 뻔했습니까? 여러분들은 정말 예수님이 오신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깨닫습니까? 예수님은 나의 보배 중에 가장 고귀한 보배라고 믿으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는 다녀도 예수님이 누구신지도 알지 못합니다. 주님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현세에서는 하나님이 조롱을 받고 계시지만, 장차 심판의 날에 하나님을 조롱하던 자들은 큰 수치와 멸망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우습게 알아도 될 만큼 보잘것없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전능하신 창조주시요, 당신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시고 이제껏 살아오게 하신 무한한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을 두려워하세요. 그래야 당신에게 지식과 지혜가 생기고 신령한 눈이 열려 인생이 변하고 천국이 보이게 됩니다.
② 주님은 우리를 당신 품에 안아주시려고 하십니다. 이제 그의 품에 안기세요. 박지성 선수가 골을 넣고는 너무 좋아서 히딩크 감독에게 달려가 그의 품에 안겼습니다. 히딩크는 나중에 그를 자기 팀에 넣어주었고, 박지성 선수는 승승장구하였습니다. 축구팀 감독의 품에 안기기만 해도 이런 놀라운 복을 받았다면. 우리가 주님의 품에 안기게 될 때에는 어떤 복을 받겠습니까? 이제 주저하지 말고 우리 모두가 얼른 예수님께 달려가서 주님의 품에 안겨야 하지 않습니까?
③ 주님의 품안에 참된 평안과 행복이 있습니다. 세상은 점점 더 요란해집니다. 예전에는 알지도 못했고, 상상도 하지 못했던 온갖 환난과 재앙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당신은 이런 재앙으로부터 안전하게 될 수 있습니까? 주님의 품안에 거해야만 합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야만 안전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떠나면 온갖 위험에 노출되어 갑자기 오는 재앙을 피할 수 없습니다. (2012년 9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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