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사기꾼]
Y는 어느 주일, 불쑥 찾아온 새가족입니다. 당시에 목사님과 교제를 하고 있었는데 이제 결혼을 했으니 사모님이시네요. 결혼하기까지도 참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Y때문에 울고 가슴 아파한 날들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Y에게는 교회와 얽힌 사연이 조금 있습니다. Y는 아주 어릴 때부터 한 교회에서만 신앙생활을 해왔습니다. 반주자이기도 했고, 목사님의 지대한 관심을 받으며 자란 것 같았습니다.
Y가 섬긴 교회는 목사가 신적 존재였습니다. 전형적으로 교인들 위에 군림하는 목사였지요. 예언, 신유와 같은 은사를 가지고 성도의 삶에 개입합니다. 목사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면, 전 교인 앞에 일어나 참회를 해야합니다. 결혼이나 취업 같은 인생의 중대사를 목사가 마음대로 휘두릅니다. Y의 결혼도 이 목사가 오랫동안 막았습니다. ‘기도해보니 니 짝이 아니다’라는 논리입니다. 신유 기도를 한답시고 아프다고 하는 부위가 어디든지 손을 얹습니다. 여집사님들은 물론, 어린아이들에게도 말입니다. 강하게, 불이 들어가야 한다고...
처음 Y가 울면서 이런 이야기를 할 때, 너무 화가 나서 그 목사에게 찾아갈 뻔했습니다. 민망하고 미안했습니다. 성도를 우롱하는 것을 넘어 인생 전부를 망가뜨리고 있는 것을 도저히 참기 어려웠습니다. 무엇보다 자기 사욕을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여기고 있는 것이 가장 분이 났습니다.
종교 사기꾼, 저는 이렇게 부릅니다. 그런데 종교 사기꾼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본인이 하는 짓이 사기라는 것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나마 자기가 하는 짓이 사기임을 아는 자는 다행입니다. 돌이킬 수 있는 여지가 있어요. 그러나 그런 짓을 ‘진심으로’하는 자들이 훨씬 많습니다. 하나님의 대리자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통해 그러한 사역(?)을 하고 있으니까요. 성도를 향한 진심 어린 사랑이기 때문에 어떤 행동도 용납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오늘 날 아직도 이런 목사를 추종하고 따르는 성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 글을 보고 누군가는 저를 아직 뭘 모르는 목사라고 여길지도 모릅니다. 진짜 은사가 있고 진짜 병을 고치고 진짜 하나님을 체험하게 해주시는 우리 목사님을 니가 뭐라고 비판하냐고 할지 모릅니다. 제가 한마디 해드리겠습니다. 당신은 지금 종교사기에 빠지신 것입니다. 지금 당신의 목사를 거의 신적 존재로 떠 받들며 당신 자신과 그 목사를 완전히 망하게 하는 종교 사기에 단단히 빠져들어가신 겁니다.
저는 종교 사기나 이단 전문가는 아닙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이런 현상을 보면서 몇가지 특징을 분석해 보았습니다. 종교 사기의 가장 큰 공통점은 바로 ‘구속력’입니다. 인간의 종교심을 극대화하여 한 사람 또는 집단에게 강력하게 구속 당하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종교 사기의 결정적인 특징입니다. 그래서 교리적으로 큰 문제가 없는 정통 교회라고 할지라도 목사에 대한 일인 추종구조가 형성되거나, 목사의 말 한마디가 상상을 초월하는 영향력을 가지게 되면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기독교 신앙이 복음을 기초로한다고 했을 때, 그 복음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지고 사람을 휘두르는 구속력을 발휘하는 무언가가 교회 안에 있다면 그 교회는 심각하게 병에 든 것입니다. 점검을 해 보면 좋겠습니다.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은 모두 하나님 말씀이다. 목사님께 기도 받으면 사업이 잘될 거야, 병이 나을 거야. 목사님께 잘 하면 복 받는다고 했어. 무언가 중요한 결정은 목사님께 여쭤봐서 결정하자. 그래야 뒤탈이 없지.’
이런 생각을 해보셨다면, 그리고 하고 계시다면 이것은 필시 신앙이 뒤틀려 종교가 되어버린 위험한 경우입니다. 목사를 신적 대리자로 생각한 종교, 목사가 인생을 쥐락펴락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종교입니다. 여기에 강력한 구속력이 작동됩니다. 왠만해서는 그 사고의 틀을 깨기 어렵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렇게 했다가는 왠지모를 저주를 받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말도 안되는 오류지만 명확하게 밝혀보겠습니다.
첫째, 목사는 ‘신적 대리자’가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목사를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구별하고 선택하신 성직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목사나 승려, 신부를 두고 성직자라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만, 종교개혁을 통해 세워진 ‘개신교회’에는 성직자라는 개념은 없습니다. 개신교회에는 목사직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전하도록 권한을 부여한 사람, 교회와 성도를 목양하고 섬기는 것을 자신의 직분으로 가지는 사람이 목사입니다.
둘째, 목사는 복과 저주를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거나 병을 고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은사를 자기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굉장히 큰 교만입니다. 내가 마음먹으면 병을 낫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바로 저주 받은 생각입니다. 목사이기 때문에 효험이 더 있고, 기도 응답이 잘 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셋째, 신자를 구속하는 것은 오직 ‘신자의 양심’뿐입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섬기며 그분께 구속(救贖)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이 외의 어떤 것도 목사가 신자에게 강요하거나,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습니다. 목사는 말씀으로 돕는자일 뿐입니다.
신자는 이런 인식을 탈탈 털어버리고도 얼마든지 목사님과 잘 지낼 수 있습니다. 이제 동 시대를 살아가며 비슷한 고민을 하는 목사님이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아니 무슨 목사는 비가 피해갑니까, 아님 비를 더 옴팡지게 맞습니까. 그런 거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똑같은 죄인이요, 함께 주님을 섬기는 신자들입니다.
Y의 눈물은 여러 가지 회한을 담고 있습니다. 권위와 폭압으로 인생 내내 눈앞을 가로막았던 목사 때문에 허비한 시간들이 가슴 아프게 다가올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허울과 같은 종교의 구속력에 벗어나, 신자의 양심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Y는 강대상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빵을 자르는 목사님을 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목사가 자기와 똑같은 사람이며, 죄인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이제 그 너머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첫댓글 본인이 사기꾼인지조차 모르는 종교사기꾼들이 많으니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