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합당한 삶
골로새서 3장 12절-4장 1절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난 존재라면, 당연히 이제 과거가 되어버린 땅의 질서를 따라 살아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롭게 창조된 그리스도인들은 그 하나님을 닮아서 보시기에 심히 좋은 것을 창조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아버지 하나님께 어울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과 하나가 된 ‘작은 예수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골로새 성도들은 다양한 신분과 계층의 사람들로, 부부간, 유대인과 이방인, 노예들과 주인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가는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행하신 것처럼 그들도 서로에게 그렇게 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롭게 창조된 자들은 그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새로운 삶의 옷 입으라(1) : 사랑의 삶(12-14)
성도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택하심을 받아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거룩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변화된 신분인 새로운 사람에 걸맞게 살아가야 합니다. 과거에 구습은 벗어버리고 새로운 삶을 선택받은 우리는 주님처럼 서로 용납하고 피차 용서하면서 겸손 온유 오래 참음으로 새 사람의 성품을 녹여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12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13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12-14)
성도는 하나님의 택하시고 거룩한 사람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제 이전에 입었던 옷을 다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옷을 입어야 합니다. 이 부분의 내용과 의도는 앞부분과의 연관성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⑴ 다섯 개의 덕목(12)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을 향해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이곳에서 그 입어야할 ‘옷’이란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 그리고 ‘오래 참음’이라는 다섯 개의 기독교적 덕목입니다. 이 덕목은 하나님의 성품이며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이러한 아름다운 덕목으로 무장하는 것을 옷 입는 것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옷은 그 사람이 어떤 신분의 사람인지를 드러내는 표시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존재인지는, 그들이 입고 있는 영적인 옷에 의해 드러납니다. 독자들이 옷 입어야 할 다섯 가지 덕목은 모두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성품을 드러내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 창조를 받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았기에, 마땅히 우리는 그리스도의 성품을 가진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먼저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이라고 묘사합니다(1). 이것은 구약에서 언약에 따라 택함을 입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묘사하는 전형적인 표현들입니다. 이제 이방 종교로부터 개종한 독자들에게 이 표현을 적용함으로, 그들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일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11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말한 것에 대한 증거입니다.
여기서 나열하고 있는 다섯 가지 덕목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몸소 실천하고 보여주신 것들입니다. ‘긍휼(σπλαγχνον스플랑크논)’이 고난 중에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 슬퍼하는 것이라면, ‘자비’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인자하심입니다. ‘겸손’은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며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온유함’은 성령의 열매이며 온유함의 전형은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인내’는 부당한 고난에 대해서 즉각적으로 분노하거나 보복하지 않고 온유한 마음으로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⑵ 서로 용납하라(13)
사도 바울은 다음으로 ‘서로 용납하라’고 합니다. 위 12절에서 말한 다섯 덕목에 대해서 포괄적으로 재진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하심은 우리가 서로 용서해야 할 원인이며, 우리가 따라가야 할 모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롭게 창조된 자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가야 합니다.
용서의 사람으로 변화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하지만 용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습니다. ‘용서함을 받았으면 당연히 용서해야 한다’고 말은 쉽지만, 사실 것이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고 하셨겠습니까! 그만큼 용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해야 할 것은 서로에게 있는 불만입니다. 불만은 본질적으로 불의이나 악이라기보다는 서로에 대한 오해에서 생길 수 있는 불평입니다. ‘용납한다’는 것은 형제들의 약점을 감당하고 견디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서로의 약점을 지적하고 비난하기보단 서로를 용납하고 감당해야 합니다. 여기서 ‘용서한다’는 단어는 ‘은혜를 베풀다’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형제의 약점을 용납하고 감당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은혜를 베푸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용서가 온몸으로 느껴질 때가 되면, 자신도 어느새 용서의 사람이 되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⑶ 사랑을 더하라(14)
바울은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고 말합니다. 사랑은 위에서 설명한 여러 가지 기독교의 덕목들을 완전하게 하나로 묶는 띠이기 때문입니다. 즉, 앞에서 설명한 기독교의 덕목이나 용서는 사랑으로 하지 않으면, 그것이 완전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사랑 없이도 불쌍한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동정은 될 수 있어도 그리스도의 긍휼하심과 자비를 본받는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삶의 옷을 입으라(2) : 평강과 감사와 말씀의 삶(15-17)
기준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 그 기준에 따라 자신의 자유가 제한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그 기준이 있어야 안전하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건 하나님의 기준을 얻는 일입니다. 이것은 물에서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구명조끼와 같습니다.
15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16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15-17)
성도는 자유인입니다. 그들은 주체적으로 자신이 누구의 통치를 받아야 할 것인지 정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이제 성도는 그리스도의 평화가 자신을 다스리게 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이 지배하게 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처럼 평화를 만들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창조하고 타인을 살려내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존재입니다.
⑴ 그리스도의 평강(15)
바울은 ‘옷 입으라’고 명령했던 바울은 이제 ‘주장하게 하라’는 명령으로 계속 권면합니다. ‘주장’하는 주체는 그리스도의 평강이며, ‘주장’되어야 할 대상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교회가 평강으로 한 몸이 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평강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속성이지만 사탄은 죄라는 수단을 통하여 다툼과 분쟁을 일으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여기서는 특별히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를 주장하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여기서 ‘주장한다’는 것은 운동경기에서의 심판처럼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⑵ 그리스도의 말씀(16)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하게 거할 때,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사랑의 공동체가 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란 ‘그리스도의 평강’과 병행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평강을 이룰 수 있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하게 거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하게 거하신다면, 우리는 서로 지혜로 가르치고 권면할 수 있게 됩니다. 모든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옵니다.
바울은 앞에서 모든 지혜와 지식은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으므로(골 2:3), 독자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혜와 지식으로 가득하게 되기를 위해 기도했습니다(골 1:9). 여기서 강조하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지혜는 거짓 교사들의 속이는 말과 헛된 가르심과 대조됩니다(골 2:4,18).
⑶ 그리스도의 이름(17)
바울은 ‘그리스도의 평강’과 ‘그리스도의 말씀’에 이어 ‘그리스도의 이름’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한다는 뜻과 ‘그리스도의 마음과 심장으로’ 한다는 뜻입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말에나 행동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행한다면, 그리스도의 이름이 욕되지 않고 영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