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2일 온고을교회 주일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 모세의 인생 별곡 》
시 90:1~17
〈 우리집에 있대니께유 〉
지난 주간에 영화 ‘호프’를 아내와 함께 관람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저는 영화가 주는 핵심 메시지가 뭔가를 파고듭니다.
경로우대로 7천 원 내고 본 영화지만, 그래도 본전은 생각납니다!
‘호프’는 나홍진 감독이 연출했습니다.
10여 년 전 나홍진이 연출한 ‘곡성’ 기억하시지요?
‘곡성’에는 전 국민적으로 대단한 유행어가 된 명대사가 있었습니다.
“뭣이 중헌디?”
한 두 번 안 써먹어본 사람이 없을 겁니다.
‘호프’에서 명대사는 무엇이 될까, 저는 개인적으로 3마디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인성이 한 말, “해술이 아저씨가 말했다면 그건 진짜예요!”
여자 경찰관이 한 말,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얼간이 캐릭터의 청년 동배의 대사, “저희 집에 있대니께유!”
어떤 대사가 명대사 1순위로 꼽힐지 흥미롭게 지켜보는 중입니다.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모세가 한평생에 남긴 말 중, 명대사는 무엇일까?
궁금해졌습니다. 여러분은 모세의 말 중 기억하는 한 마디가 있습니까?
요즘은 궁금하면? 맞습니다. AI에게 질문하는 길이 첩경입니다.
질문하는 김에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다윗, 솔로몬의 명대사를 질문했습니다.
아브라함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 22:8)
이삭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창 22:7)
야곱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창 28:16)
요셉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창 50:20)
모세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 14:14)
다윗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 17:45)
솔로몬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선악을 분별하게 하소서”(왕상 3:9)
☞ 저는 AI가 뽑아준 성경 속 위인들의 명대사, 대체로 수긍이 갑니다.
〈 모세의 명대사 〉
오늘 설교 본문이 시편 90편입니다.
시편은 모두 150편인데, 이 중에서 모세가 쓴 시는 90편이 유일합니다.
시편 90장에 모세의 삶과 인생 희로애락이 다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 《 모세의 인생 별곡 》입니다.
인공지능이 뽑은 모세의 명대사를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AI는 출애굽기 14장 14절 말씀을 꼽았어요.
애굽 군대에 쫓기는 중,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흐릅니다. 꼼짝없이 죽었습니다.
바로 이때 모세가 한 말입니다. 모세가 말을 마치고 지팡이를 들었을 때 어떻게 됩니까?
홍해가 쫘악 갈라집니다. 바닥이 마른 땅으로 드러납니다. 모세와 백성은 거기를 지났습니다.
추격해 오는 애굽의 왕과 군대는 어찌 되었습니까?
오늘 설교 본문 시편의 한 구절이 대답합니다.
시 90:5a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래서 우리 믿는 이들의 한결같은 고백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내 인생에서 이 모든 것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우리 입에 붙은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 말은, 예수 믿는 이들 모두의 공통된 명대사입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많이 기억하는 모세의 명대사는 이것입니다.
시 90: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
예수 안 믿는 사람들도, 성경을 한 구절도 모른 사람들도 이 한 마디는 기억합니다.
워낙 딱 들어맞는 말이라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백세 인생’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의 이야깁니다.
아직도 세계 모든 사람에게 모세의 이 한 마디가 명대사입니다. 어디 이뿐인가요?
신약 성경 베드로 후서 3장에서 인용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시 90:4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벧후 3:8)
그러고 보니, 시편 90편은 모세의 시이면서 모세의 명대사로 차고 넘칩니다.
당연하지요, 모세가 누굽니까? 90편 제목에서 밝힙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
〈 모세의 인생 〉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가 시편 90편의 제목입니다.
모세는 태어나보니 노예의 아들이었습니다.
더욱이 이때는 히브리 노예가 아들을 낳으면 나일강에 던져야 했던 시기였습니다.
히브리 노예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인들의 출산율이 애굽을 훨씬 앞질렀습니다. 그래서 “사내아이는 강에 던져라!”
그 엄혹한 시기에 태어났는데, 모세를 받은 산파는 다행히 모세를 살려주었습니다.
모세의 부모는 울음소리가 집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키우다가 끝내 나일강에 띄웁니다.
소쿠리를 만들고, 거기에 역청을 발라서 물에 가라앉지 않게 했습니다.
때마침 강가에 목욕을 나왔던 애굽의 공주 눈에 띄었습니다.
공주는 아이를 데려다가 자기의 아들로 삼고, 왕실 교육을 시켰습니다.
애굽 왕자 대우를 받으면서 나이 40이 되었는데, 모세는 자기의 출생 비밀을 알게 됩니다.
모세는 자기의 정체성을 알고 히브리 노예의 편에 섰다가 애굽의 눈 밖에 났습니다.
모세는 결국 쫓겨났습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피신하여 거기서 40년을 살았습니다.
나이 80이 되었을 때,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애굽에 가서 동포를 탈출시켜라!”
몇 번의 거절 끝에 모세는 애굽 왕실로 가서 협상을 시작했습니다.
“우리 동포를 풀어주어라!” 우여곡절 끝에 동족을 이끌고 홍해를 건넜습니다.
이때 20세 이상의 남자의 수가 무려 60만이었습니다.
이들을 이끌고 광야에서 40년 동안 체류합니다. 이 40년 동안 60만이 모두 죽습니다.
갈렙과 여호수아, 이 두 명만 제외하고 60만이 모두 죽습니다.
40년 동안 60만이 죽었다면 매일 평균 40명여 명의 장례를 치러야 합니다.
《 모세의 인생 별곡 》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이런 가운데, 모세는 철저히 “하나님의 사람”으로 삽니다.
그러나 모세도 희로애락을 겪는 사람이었습니다.
동족들의 불신앙으로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므리바의 물’ 사건입니다.
말로써 “물을 내라!”해야 했는데, 모세가 백성들에게 화가 나서 지팡이로 바위를 쳤습니다.
이 사건으로 모세는 120년의 생애 끝에 요단강을 건너지 못하고 느보산에서 죽습니다.
모세도 출애굽 시 20세 이상의 남자 60만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 모세의 생애만큼 파란만장한 삶도 참 드뭅니다. 그래서 《 모세의 인생 별곡 》입니다.
〈 모세의 인생 별곡 〉
시편 90편에서 모세는 자기 인생을 3가지로 말합니다.
첫째, 하나님을 거처로 삼는 인생(1절)
둘째, 하나님의 분노에 소멸하는 인생(7절)
셋째, 하나님의 은총으로 견고한 인생(17절)
하나님을 거처로 삼는 인생(1절)
시 90:1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매우 독특한 시적인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거처입니다. / 하나님이 나의 처소입니다. / 하나님이 나의 주소입니다.
아마도 “하나님이 아니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런 대답입니다.
과연 모세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누가 우리에게 “어디에 사십니까?”라고 물으면, “하나님이 나의 거처입니다!”
이렇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하는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분노에 소멸하는 인생(7절)
시 90:7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시편 90장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분 내심’에 집중합니다.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빛 가운데 두셨습니다.”(8절)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갑니다.”(9절)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고 있습니까?”(11절)
이런 대목만 읽으면 모세는 하나님 앞에 두려움에 떠는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위용이 가장 크게 드러난 때는 출애굽 때입니다.
산천초목이 바들바들 떨었습니다. 어디 이뿐입니까?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따라 출애굽 당시 20세 이상의 남자 60만 명, 어찌 됩니까?
광야에서 순례하던 40년 이내에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하고는 모두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모세 역시 하나님의 진노하심, ‘므리바의 물’ 사건으로 가나안 땅을 바라만 보았습니다.
☞ 모세가 하나님의 분노하심에만 집중하는 것으로 시를 끝맺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 모세의 인생 별곡 》 세 번째가 있습니다.
모세는 이 시의 대단원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구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견고한 인생(17절)
시 90:17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
《 모세의 인생 별곡 》에서 세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거처로 삼는 인생
둘째, 하나님의 분노에 소멸하는 인생
셋째, 하나님의 은총으로 견고한 인생
첫째, 하나님을 거처로 삼는 인생에서는 ‘창조주 하나님’을 뵙게 됩니다.
둘째, 하나님의 분노에 소멸하는 인생에서는 ‘공의의 하나님’을 뵙게 됩니다.
셋째, 하나님의 은총으로 견고한 인생에서는 ‘사랑의 하나님’을 뵙습니다.
시편 150수 중에서 단 한 편인 모세의 시편,
과연 고통스러우면서도 아름답습니다.
〈 대단원 〉
오늘 설교는 영화 ‘호프’의 명대사로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시작하여 요셉, 모세, 다윗의 명대사도 보았습니다.
☞ 하나님의 말씀 중 ‘명대사’를 찾아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물론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가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저마다 가슴 깊이 새기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어떤 말씀을 ‘하나님의 명대사’로 간직하고 계십니까?
모세가 만일 하나님의 명대사를 꼽는다면 어떤 말씀일까요?
☞ 미디안 광야에서 모세는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내가 애굽에 가서 동족들에게 하나님을 누구라고 말해야 할까요?”
이때 하나님이 대답하십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출 3:14)
영어로 “I AM WHO I AM!”
이 대답이야말로 하나님을 가장 잘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사람을 비롯하여 우주 만물 모두, 스스로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원인 없이 결과가 생기지 않습니다. 사람도 부모 없이 태어나지 못합니다.
모세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하나님이 말씀해 주십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모세는 이 말씀에 의지하여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을 겁니다.
그때부터 모세는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고백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이들이 “하나님의 사람”인 줄 믿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지칭되는 인물이 있습니다.
모세, 사무엘, 엘리야, 엘리사, 다윗 그리고 신약에 와서 디모데가 있습니다.
성경은 서기 2세기 경에 완결되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하나님의 사람’ 계보가 끊어진 것입니까? ~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고백하는 ‘하나님의 사람’ 계보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예배하는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람’ 계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