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빈 클라인(1942~ ): 고급 의류를 생산하는 캘빈 클라인 회사 창시자. 그는 미국 뉴욕 출신 유태인으로서 그의 회사는 의류뿐만 아니라 향수나 시계도 만든다.
파울 에를리히( 1854~1915 ): 독일의 미생물학자· 면역학자· 화학요법의 창시자이다.
그는 매독 치료제인 살바르산606호를 발명하여 인류에 희망을 주었는데 지금은 효과가 훨씬 항생제가 많이 나와 쓰임새는 없지만, 당시는 획기적인 치료제이었으며 마법의 탄환이라 불렀으며 이름 그대로 전 인류에 퍼진 매독 치료제로서 구세주( 살바르산 )이었다.
지금은 폴란드 땅이지만 당시는 프로이센령인 슐레지엔 출신 유태인.
펠릭스 멘델스존( 1809 ~ 1847 ): 독일의 작곡가, 지휘자, 피아니스트. 함부르크의 부유한 성공한 은행가인 유태인 가문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 대에서 개신교로 개종을 하였기에 그도 역시 개신교이며 유태인이란 의식이 없었다. 다만 할아버지는 유태인으로 자부심이 대단하였고 지식인이었다고 한다.
보통 낭만파 시대의 음악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인생에 별다른 굴곡이 없었기에 그의 음악은 항상 밝은 편이었다.
폴 에어디쉬( 1913 ~ 1996 ): 헝가리 출신 천재 수학자이다. 수학적 업적뿐만 아니라 괴짜로서 커피와 암페타민( 필로폰과 거의 같음 )을 수시로 복용하여 중독이 되었면서도 엄청난 공적을 이루었다. 가장 역사상 수학자로서 논문이 많았던 인물이 “ 오일러 ”라면 에어디쉬는 두 번째라고 한다. 무려 1500편 정도이다.
그렇고 보니 헝가리 출신 유태인은 천재형인 수학자가 많은 것 같다.
테오도르 아도르노( 1903년 ~ 1969 ): 마르크스의 사후에 마르크스의 사상을 이론적으로 좀 더 성숙하게 만든 그룹이 프랑크푸르트 중심으로 태동하였는데 그들을 “ 프랑크푸르트 학파 ”나 혹은 “ 비판 이론 ”이라 부른다. 대표되는 인물이 호르크하이머를 위시하여 아도르노, 마르쿠제, 포름, 그외에 벤야민도 끼워넣기도 한다. 그들은 모두 유태인이며, 프랑크푸르트 학파 사람들은 기존 마르크스 이론만으로 사회를 설명하는데 부족하다고 보고 심리학이나 미학, 현상학 등을 추가하여 설명한다. 즉 마르크스주의를 심층화시킨 것이다.
가장 중심이 아도르노이며 그의 제자가 “ 소통이론 ”으로 유명한 유르겐 하버마스이다. 단 유르겐 하버마스는 유태인이 아니다.
아도르노는 미학, 철학, 사회학, 평론까지 방대한 이론체계를 구축했으며 그 이외에 음악에도 일가견 있었다.
대표작은 《 계몽의 변증법 》 《 부정의 변증법 》 등이다.
폴 크루그먼( 1953~ ): 러시아 출신 유태계로서 미국의 지리경제, 국제경제 분야 경제학자이며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케인즈를 뒤를 잇는 거시 경제학을 주창한다.
미국의 경제학자치고는 진보적인 경향이라 볼 수 있다. 몇 차례 우리나라에 방한한 바가 있다.
프란츠 카프카( 1883~1924 ): 현재 체코에서 태어나 독일어를 쓴 소설가. 부유하지만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났다고 한다. 상당히 병약하고 감수성이 강해서 아버지를 견디기 힘들어 했었다.
실존주의의 선구자로 알배르 카뮈와 함께 20세기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결핵으로 40세로 요절하였고 그의 원고는 불태우라는 유언을 남겼지만 그의 친구에 의해 보존이 된다. 문학을 잘모르는 사람들도 그의 이름은 안다.
《 심판 》 《 성(Das Schloss)》 《 변신 》 등의 작품이 있다.
프리다 칼로( 1907~1954 ): 아슈케나짐인 아버지와 스페인 혈통의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화가.
원래부터 소아마비에다가 나중에 교통사고까지 겪게 되었고 남편의 바람기에 평생 고통에 시달리다가 죽었다. 그의 남편이 역시 천재적인 화가이었던 디에고 리베라. 디에고 리베라의 그림( 80년대 우리 나라에도 운동권에 영향을 주었던 걸개 그림 )은 멕시코의 미술을 세계적으로 알렸지만, 현재는 오히려 남편보다도 더 주목을 받고 있는 형편.
참조로 스탈린의 라이벌인 트로츠키는 만년에 디에고 리베라에 의탁을 하였다가 암살을 당했다. 그러므로 디에고 리베라도 공산주의자이었다.
프리츠 하버(1864~1934 ): 독일의 화학자로서 그의 공적은 이른바 “ 공중질소고정법”으로 인류에 엄청난 혜택을 주었다. 사실 이것은 인류 역사상 굉장한 과학적인 진전에 속한다. 공중에 있는 질소가 아닌 고정 상태로의 질소는 토양의 비옥도를 증가시키고 더불어 폭탄을 만드는데 필수불가결하다. 여태는 동물의 변이나 초석이나 구아노 등으로만 비료와 폭탄을 만들 수 있었지만 하버 덕분에 얼마든지 많이 생산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엄청나게 늘어난 인류를 먹여 살린 공적이 그에게 있다고 볼 수 있다.
공적과 더불어 문제인 것은 인류의 전쟁이 냉병기에서 중화학 병기로 넘어가는 완벽한 계기가 되었으니 대량살상의 시대가 그 때문에 온 것이다. 그의 천재적인 소질은 나쁜 것은 또 하나 1차 대전 때 독가스를 만들기도 한 것이다. 유태인 하버는 독일에 대한 애국심이 넘쳐났지만 아이러니칼하게 나치가 등장하자 버림을 받게 되고 스위스에 도피하여 생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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