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2553 부처님오신날 특집/ 수행의 기쁨2

[가람뫼]

‘수행과 나눔’ 실천하는 완주 위봉사

불기2553 부처님오신날 특집/ 수행의 기쁨2





기나긴 겨울안거를 마치면 비구니 수좌들은 부처님 오신 뜻을 함께 나누는 봉축준비로 산철결제에 든다. 오색찬란한 연잎에 한 마음 한 마음 정성껏 담아 만든 연등에는 겨우내 해탈을 꿈꾸며 성성하게 서린 진여(眞如)의 향이 물씬 풍긴다. 몇해동안 도반들과 애써 빚어온 된장이며 간장을 소박하게 담아낸 그릇에는 진한 장맛이 돈다. 지난 4월5일 완주 추줄산 중턱의 위봉사엔 일요법회 10주년을 맞아 선원의 비구니 수좌스님들이 바자회를 여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위로는 보리도(菩提道)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의 이익을 돕는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을 실천하는 도량, 위봉사를 찾았다.



스님들이 직접 어여쁘게 만든 봉축맞이 연꽃. 위봉사의 대중스님들은 매년 동안거가 해제하면 산철결제에 들어가 모두 한마음으로 이 연꽃을 만든다고 한다.

위로는 깨달음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이익 도와

1990년대 위봉선원 설립…비구니 스님들 용맹정진

일요법회 10주년 맞아 불우이웃 돕기 바자도 열어



◀바자회에 선보인 각종 물품을 구경하는 불자들의 모습.

“꽃 사세요~ 스님들이 직접 만든 연꽃 사세요~ 저기 거사님! 이 꽃 사서 보살님 드리면 감동하실 겁니다. 호호호~” “……” 멋쩍은 듯한 한 남성은 ‘꽃 파는 스님’들의 애달픈 외침에 못이겨 연꽃이 주렁주렁 달린 꽃한다발을 손에 쥐었다. 스님들이 직접 만든 천연자연 성분을 함유한 미용비누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이 비누코너에 있는 비구니 스님들은 좀처럼 ‘장사’를 하지 못했다. 밀짚모자를 쓰고 우두커니 앉아서, 비누에 관해 물으면 그제서야 “참 좋아요. 써보세요”라고 말할 뿐이다. 비누는 황토와 율피 귤껍질과 숯성분 등이 가미된 형형색색으로 만들어졌다. 가판 아래에 적어놓은 문구에는 ‘스님들이 손수 만든 천연비누, 무방부제, 무색소’라고 적혀 있어 왠지 모를 ‘신뢰’가 생긴다.

기미와 여드름에는 율피비누, 촉촉한 피부를 원하면 황토비누, 피부의 독소를 제거하는 숯비누…. 이런 문구들을 보니 괜한 웃음이 나기도 한다. “웃지만 마시고 하나 사세요. 기자님 얼굴 보니까 황토비누 좀 쓰셔야 되겠네요.” 바로 옆 된장 가판에 있는 스님이 비누를 살피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하자, 바자회장은 순간 폭소가 터졌다.

아이들을 위한 ‘미니 단주’도 어린이들에게 단연 인기품목. 스님이 직접 손목에 단주를 끼워주자 해맑게 웃는 유가현(12, 전주 반월초 5)양은 “스님한테 선물받았다고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다”고 했다. 스님들과 구경꾼들 사이에 서서 ‘바람을 잡는’ 신도도 있다. 위봉사 신도회 소속 성순금(52, 법명 법계성)씨는 “스님들이 장사를 잘 못하니까 이렇게 바람을 잡고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위봉사의 바자회는 어려운 지역민들을 돕기 위한 작지만 의미있는 행사다. 20여년간 보이지 않게 지역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 왔던 위봉사는 매년 부처님오신날 연등판매 수익금으로 불우이웃을 돕다, 올해는 일요법회 10주년을 맞아 바자회의 마당을 펼치게 됐다. 이날 법회에는 서울에서 성운스님(삼천사 주지)을 법사로 초청했다. 전북불자들이 대거 한자리에 모여 법회를 열고 바자회에 동참했다. 절 마당 한가운데 탑을 중심으로 둥글게 바자회터를 잡아 대중스님들이 총동원된 바자회에서 스님들은 한결같이 “취재하지 말라”며 카메라를 향해 손사래를 쳤다. 한 스님은 “우리 정말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고 있어요. 상을 내고 언론에 홍보하는 게 거북스러워요”라며 인터뷰를 거부하기도 했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위봉사의 비구니 스님들이 직접 만든 작은 연꽃등 장식물.

 위봉사는 스님들의 밭운력이 만만치 않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한 스님께 넌지시 묻자, “아마 이 산 전체가 다 위봉사 밭일걸요?”라며 농으로 답한다. 넓은 밭에서 풀뽑고 수확하는 등의 울력은 오로지 비구니 스님들 몫이다. 물론 여러 처사들의 도움도 많다. “고추와 시금치 상추 쑥갓…, 아마 없는 채소가 없을 거예요.” 또다른 스님의 귀띔이다. 그러면 그 많은 채소들을 전부 사찰에서 충당할까. 아니다.

위봉사 스님들은 일년내내 정성껏 수확한 각종 채소들을 지역의 복지시설에 나눠준다. 위봉사 바로 아래에 위치한 정신지체요양시설인 ‘정심원’이나 서원노인복지관 전북불교회관 등 지역에서 인연 닿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간다.

 “농사짓는 울력이 어디 쉽겠습니까? 하지만 결실로 맺은 수확물들을 지역 곳곳에 보시할 때는 얼마나 흐뭇한지 모릅니다.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아픔에 허덕이는 중생들에게 우리가 줄 수 있는 소중한 선물 중 하나니까요. 아마 다른 도반스님들도 그런 보람을 갖고 있을 거예요.”

보살과 같은 스님들의 마음과 손길이 닿은 채소는 신선한 맛과 향기가 일품이다. ‘위봉사 절밥’이 맛나기로 유명한 이유이기도 하다.

채소 뿐만아니라 위봉사는 다른 사찰에서 시행하는 불교대학을 지망하는 신도가 있는 경우, 입학금을 전액 지원해준다. 공부를 하겠다고 자청하는 신도들에 대한 최소한의 대우라고 한다. 사찰서 스님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마음을 전해받은 신도들은 ‘열공’하지 않을 수 없을 터. 그래선지 위봉사 신도 출신 포교사들이 매년 좋은 성적으로 배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날 바자회에서 만난 임실 탄약창의 이성강 지도법사는 “위봉사 주지스님덕에 군포교에 탄력을 받는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위봉사는 매년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이맘때면 주지스님으로부터 염주 500개와 떡 한가마니를 받아간다고 했다. 7년간 변함없이 소리없이 도움을 주는 위봉사에 고마움을 표한 그는 “올해 부처님오신날도 스님이 주신 떡을 장병들에게 나눠주며 봉축행사를 치를 예정”이라며 “스님들이 마음을 써주시는 만큼, 위봉사 신도회도 군법당을 정기적으로 찾아와 맛난 음식을 만들어주며 장병들에게 ‘엄마’가 되어준다”고 말했다.

다가가면 할 말 없다며 돌아서곤 했던 주지 법중스님을 어렵사리 만났다. 스님은 “알다시피 우리 전북불교가 참 쓸쓸하다”며 “미력하나마 지역사람들에게 불법을 전파해서 불심을 나누기 위해 이렇게 법석(法席)을 열었다”고 말했다. 위봉사의 끝없는 자비보살행은 한국불교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만하다.

 완주=하정은 기자





 <사진> 스님들이 1급수의 물로 직접 담근 간장과 된장은

이날 바자회 인기품목.

 사진은 아이들에게 단주를 선물하는 위봉사의 한 비구니 스님.

위봉사는…

해방전엔 교구본사 역할

현재는 비구니 수행도량

위봉사(威鳳寺)는 일제강점기 전북 일원의 46개 말사를 관할하는 본사였다. 해방 후 방치됐던 위봉사는 한때 폐사 지경까지 갔다. 현 주지 법중(法中)스님이 부임하면서 위봉사는 전북을 대표하는 비구니 수행도량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주지스님을 비롯한 7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지난 1988년 10월 위봉사를 찾으면서 위봉사는 수행도량으로 거듭났다.

위봉사 스님들에 따르면 20년 전 당시 위봉사는 보광명전(보물 제 608호) 주변에 소똥과 개똥이 지천으로 널려 있고 법당 기둥에 소가 매달려 있는 등 도량이 엉망이었다. 이때부터 스님들은 순번을 정해 도량정비에 온힘을 기울여서 석달만에 깨끗하게 정비했다. 도량정비 과정에서 망실된 사찰토지를 되찾고 1990년대에 위봉선원(圍鳳禪院)을 설립하고 방부를 받기 시작했다.

[바람처럼]

나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행복입니다. 수행과 나눔은 별개가 아닌 것이지요. 천정에 모빌처럼 걸려 있는 작은 꽃등이 참 예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