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22,20-26; 1테살 1,5ㄴ-10; 마태 22,34-40
+ 오소서, 성령님
지난 한 주간 안녕하셨어요? 예. 우리 교구장님이신 김종수 아우구스티노 주교님께서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으로 선출되셨다는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주교님을 위해 기도 부탁드립니다.
지난 주일, 본당의 날을 맞아 다녀온 천호 성지 순례에 365분의 교우들께서 함께해 주셨습니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 며칠 전부터 걱정하신 분들이 많이 계셨는데요, 감사하게도 모든 행사를 마치고 성당에서 미사를 드릴 때부터 본격적으로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행사가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애써주신 사목회장님을 비롯한 모든 사목위원분들, 특히 기획분과장님과 집행부, 봉사해 주신 구역장님들과 반장님들, 모두가 놀란 풍성한 간식을 준비해 주신 여성분과, 말씀 사탕으로 영적 양식을 나눠주신 수녀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성지와 본당에서 미사를 위해 수고해 주신 보좌 신부님, 전례 봉사자 여러분과 성가대, 커피차에서 알바로 헌신적으로 봉사해 주신 미카엘 분과장님과 파비아노 형제님, 그리고 오히려 비가 적게 와서 감사하다시며, 불편할 수 있는 환경마저 감사로 받아들여 주신 모든 교우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모든 분께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사정상 올해 함께하지 못하신 분들은 내년에는 함께 하실 수 있기를 희망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 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입니다. 그중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묻습니다.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랍비들의 전통에 따르면, 모세오경에는 모두 613개의 계명이 있다고 합니다. 이 중 어느 한 계명이 가장 큰 계명이라고 답을 하시면, ‘다른 계명들을 무시한다’면서 고발할 거리가 생깁니다. 그렇기에 이 질문은 시험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반박할 수 없을 만큼 완벽했습니다. 예수님은 두 가지 계명으로 답하시는데, 두 말씀 모두 모세오경에서 인용하신 것입니다. 첫째 계명은 신명기에서 인용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 계명은 레위기에서 인용하십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즉 구약성경 전체가)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몇 해 전, 제가 신학교에 있었을 때, 제 방에 자주 놀러 오시는 선배 신부님이 계셨습니다. 어느 날 저녁 먹고 산책하는데, 그 신부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 형님, 어디세요?” “어디긴 어디여~, 그대 방 앞이지.”
서둘러 가보니 이미 제 방에 와 계셨습니다. 저를 보시자마자 스마트폰을 들이미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 영상 좀 봐봐.” 가수 혜은이 씨가 부른 ‘당신만을 사랑해’라는 노래 영상이었는데, 자그마치 1977년 흑백 영상이었습니다.
신부님은 제게 물으셨습니다. “끝내주지 않어?” 저는 속으로 ‘아, 이 형님이 어디서 초저녁부터 술을 한잔하고 오셔서 이런 고릿적 영상을 보여주시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우연히도 그 영상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 노래를 듣다가, 울고 말았습니다. 노랫말이, 제가 하느님께 드리는 말씀처럼 다가왔습니다.
“어느 꿈같은 봄날에 처음 그대를 만난 날부터
나는 알게 되었어요. 사랑의 기쁨과 슬픔.
그대 내 곁을 떠나 멀리 있다 하여도
이 마음 깊은 곳에 언제나 살고 있어.
파도 소리 들리는 바닷가에 서서
목 메게 그려보는 다정한 그 얼굴
울며 울며 날으는 갈매기여 내 마음을
수평선 아득한 곳에 계시는 내 님에게 말해줘요.
오 당신만을 사랑해. 당신만을 사랑해.
정말 정말 사랑해.”
하느님과 처음 사랑에 빠진 날이 아마 우리 삶에서 ‘어느 꿈 같은 봄날’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하느님 사랑에 이끌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신학교에 갔습니다. 그렇게 반대하시던 아버지는 뒤늦게 세례를 받으시고는, 제가 드리는 미사에 자주 참례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하지만 제가 오랫동안 신학교에 있었기에 그런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본당에 나오게 되어 아버지를 미사에 자주 모실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제가 우리 본당에 오기 한 달 전, 하느님 품으로 가셨습니다. 요즈음,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을 다니면서, 또 우리 본당의 편찮으신 분들을 뵈면서 제 마음 깊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따지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꿈같은 봄날에 처음 그대를 만난 날부터 나는 알게 되었어요. 사랑의 기쁨과 슬픔.’ 하느님 사랑은 한없는 기쁨이지만, 그 사랑을 위해 인간적 사랑을 내려놓아야 하는 슬픔도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늘 저와 함께 계시지만, 때론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런 저의 솔직한 마음안에서, “당신만을 사랑하려고 노력했던 제 마음을 외면하지 말아 주시라”는 간절함이 튀어나왔던 것 같습니다.
며칠 전 기도를 드리던 중, 그 노랫말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 노래가, 제가 하느님께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제게 하고 계신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느 꿈같은 봄날에 처음 그대를 만난 날부터
나는 알게 되었어요. 사랑의 기쁨과 슬픔.
그대 내 곁을 떠나 멀리 있다 하여도
이 마음 깊은 곳에 언제나 살고 있어.”
때론 하느님께서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졌던 이유는, 하느님께서 저를 떠나셨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제가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당신만을 사랑해. 당신만을 사랑해. 정말 정말 사랑해.”
하느님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시지만, 마치 세상에 나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당신의 모든 것을 다해 사랑하십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왜 그래야 할까요? 하느님께서 먼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힘을 다하여 나를 사랑하시어 사람이 되셨고, 당신 목숨을 다하여 나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주님께서 당신 마음을 다하여 나를 사랑하신 것이 예수성심입니다. 주님께서 온몸으로 나를 사랑하신 것이 주님의 성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체를 영할 때 단순히 그리스도의 몸만을 영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성심을 영하고, 주님의 십자가 죽음을 영하고, 빵이 되시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신 하느님 사랑을 영하는 것입니다.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실행하기 불가능한 무리한 요구가 아니라,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본받으라는 초대입니다. 우리의 행복은 하느님을 닮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느님 사랑을 닮음으로써 가장 하느님을 닮게 됩니다.
그 하느님 사랑은 우리의 시선을 이웃에게로 향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하여 제1독서인 탈출기는 당시 사회적으로 가장 약자였던 이방인, 과부, 고아,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라고 권고합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인들에게 “여러분은 우리와 주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주님을 닮으려는 바오로 사도와 동료들의 노력을 그들이 닮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에서 주님을 닮으라는 초대는 계속됩니다. 그 초대는 무엇보다도 당신의 사랑을 닮으라는 초대입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시는 이 미사 안에서 주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당신만을 사랑해. 당신만을 사랑해.”
우리가 무심히 살아가는 일상에서 문득 걸음을 멈추고 그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때론 아련하게, 때론 또렷이 다가옵니다.
“당신만을 사랑해. 당신만을 사랑해. 정말 정말 사랑해.”
우리 모두는 지금 그 사랑 안에 있습니다.
https://youtu.be/es402oOS7HU?si=3a7mRypcxmWB-KRA
혜은이, 당신만을 사랑해
성찬례를 제정하심, 새미 은총의 동산, 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