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들뢰즈 사건의 존재론, 권대근 작필의 원리론(2)
- <의미의 논리> ‘초험적 사건화’를 중심으로
Ⅱ. 본론
- 지시, 표명, 의미의 세 층위, 그 흔적과 주름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들뢰즈의 <의미의 논리>에서는 명제의 의미를 지시나 표명, 그리고 의미작용으로 이해하는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는 방식으로 다룰 수 있다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들뢰즈는 의미를 사건으로 보는데, 사건은 하나 아닌 사건들이다. 대상의 단일성에 속하지도 않고 화자의 의도나 화자의 해석으로도 귀속되지 않으며, 기표들이 제공하는 단일한 의미에도 갇히지 않는 의미들, 즉 사건으로서 의미는 사실이 아니라 그것들의 계열화에 의해 발생하며, 신체적인 것이 아니라 표면효과인 것이다. 의미를 ‘사건’으로 보기 위해 들뢰즈는 1) 표면효과로서의 사건을 통해 의미를 정의하고, 2) 구조와 이념, 반복: 이념으로서의 전개체적, 비인칭적 특이성을 통해 이념적 사건을 정의하고, 3) 구조의 제약을 넘어서는 초험적 사건화를 통해 사건들의 소통과 발산을 꾀한다. 이는 특이성의 유목적 분배로 열린 비규정성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는 것: 잠재화, 우발점, 아이온의 시간, 일의성을 지향한다. 문제는 양립불가능성을 뛰어넘는 사건들의 보편적 소통에 이를 수 있는가를 아는 것인데, 이 논리를 수필에 대입해보면, 문학은 어불성설이란 말과 상통한다. 객관을 주관화하고, 주관을 객관화하며, 이것을 저것으로 치환하는 등의 문학적 원리는 양립불가능성을 뛰어넘는 사건과의 소통을 의미하는 것이다.
1. 지시의 층위
- “무엇이 일어났는가”
수필의 첫 단계는 사건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일, 곧 ‘지시’의 층위에서 출발한다. 지시는 언어가 외부 세계의 사물이나 사건을 가리키는 기능이다. 들뢰즈에 따르면 언어는 단순한 명명 행위가 아니라, 사건을 가시화하는 장치이다. 즉, 지시란 말이 가리키는 대상이 아니라, 언어가 현실의 한 단면을 표면 위로 불러내는 과정이다. 따라서 수필에서 지시는 ‘무엇을 겪었는가’에 대한 묘사이면서 동시에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좋은 수필가는 사건을 그저 요약하지 않는다. 그는 눈으로 본 것, 귀로 들은 것, 손끝으로 느낀 것을 언어로 옮길 때, 그 감각들이 교차하는 지점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이를테면 “비가 왔다”는 진술은 사실을 전달할 뿐이지만, “비가 오래된 골목의 먼지를 씻어내며 돌계단을 번들거리게 했다”라는 문장은 사건의 감각적 밀도를 언어 속으로 끌어올린다. 이처럼 지시의 층위에서는 사건의 표면을 정밀하게 관찰하는 힘이 중요하다. 경험의 재현이 아니라, 사건이 언어 속에서 새로이 태어나는 물질적 순간을 그려내야 한다.
1.1 창작 원리 ①: 사건의 표면을 세밀히 관찰하라.
세밀한 관찰과 감각적 묘사는 이후 의미의 생성이 일어날 ‘표면’을 마련한다. 사건의 표면을 세밀히 관찰하라는 말은 단순히 ‘자세히 보라’는 훈계가 아니다. 그것은 사건을 이루는 감각적 요소들(빛의 각도, 소리의 질감, 냄새의 농도, 표면의 온도, 사물들 사이의 거리감 등)을 언어로 재현할 때 비로소 의미가 움트는 토대를 마련하라는 구체적 지침이다. 예컨대 같은 ‘비 오는 날’이라도 우산에서 튀는 물방울의 속도, 길가 돌 틈에 고인 물의 색, 행인의 신발 밑창에서 나는 소리, 창문에 맺힌 물방울이 흘러내리는 리듬을 포착하면 그 장면은 독자를 곧바로 감각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런 감각적 디테일은 사건을 단순한 사실진술에서 떼어내어 ‘표면’으로 소환하고, 그 표면 위에서 화자의 태도와 기억이 마찰하여 비물질적 여운 곧 의미를 발생시킨다. 실천적으로는 장면을 묘사할 때 ‘무엇을 보았는가’뿐 아니라 ‘어떻게 보였는가’, ‘어떤 감각들이 동시에 작동했는가’를 문장마다 점검하고, 불필요한 추상어를 구체적 이미지로 바꾸는 습관이 매우 중요하다.
2. 표명의 층위
- “누가, 어떤 태도로 말하는가”
표명은 언어가 말하는 주체의 내면과 태도를 드러내는 층위이다. 즉 대상이 주체의 인식에 의해 의미가 정해진다는 것이다. 들뢰즈에게 표명이란 단순한 자기 표현이 아니라, 사건이 주체를 통과하며 만들어내는 내적 진동이다. 사건은 주체의 바깥에서 일어나지만, 그 사건을 언어로 말하는 순간, 주체의 태도는 미묘하게 달라진다. 즉, 수필이란 ‘나’의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하는 글이 아니라, ‘사건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켰는가’를 탐색하는 과정인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지하철 안에서 낯선 노인을 보았다”는 진술은 지시의 층위에 머문다. 그러나 “그 노인의 눈빛은 피곤했지만, 이상하게도 내 하루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는 문장은 사건을 통해 변화하는 ‘나’를 보여준다. 여기서 ‘나’는 이미 사건의 중심이 아니라, 사건을 통과하며 변형되는 존재다. 따라서 수필의 표명은 자기 고백이 아니라 관계의 재조직이다. 사건, 타인, 그리고 나 사이의 거리 속에서 새로운 인식이 형성된다.
2.1. 창작 원리 ②: 사건이 나를 어떻게 바꾸었는가를 써라.
좋은 수필은 감정을 토로하지 않는다. 수필은 넋두리나 푸념이 아니다. 그 대신 사건을 매개로 하여, 사유의 움직임과 내면의 변화를 보여준다. 사건이 나를 어떻게 바꾸었는가를 써라는 말은, 수필이 단순한 감정의 토로가 아니라 사유의 변형을 기록하는 글쓰기임을 뜻한다. 수필의 중심은 ‘무엇을 느꼈는가’가 아니라 ‘그 느낌이 나를 어떻게 바꾸었는가’에 있다. 들뢰즈의 관점에서 사건은 외부에서 나에게 닥치는 충격이 아니라, 나를 새롭게 구성하는 힘의 흐름이다. 따라서 사건을 경험한 뒤 그 사건이 나의 관점, 가치, 관계의 방식에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를 탐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한 번의 실수’가 부끄러움의 감정으로 끝나지 않고, 그 부끄러움이 타인에 대한 이해나 자신에 대한 성찰로 이어질 때, 비로소 그 사건은 의미로 전환된다. 좋은 수필은 눈물이나 후회의 감정을 직접 말하지 않고, 사건이 사유를 통과하며 형성하는 내면의 운동, 즉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작가는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그 감정이 나를 어떤 방향으로 ‘움직였는가’를 문장 속에서 천천히 따라가야 한다.
3. 의미의 층위
- “사건이 남긴 흔적, 그 여운의 언어”
들뢰즈가 말하는 ‘의미’는 지시와 표명이 교차할 때 생성되는 표면의 효과(effect de surface)이다. 의미는 사물 안에도, 주체 안에도 고정되지 않으며, 그 둘이 만나는 순간 비물질적 여운으로 발생한다. 수필에서 의미의 층위는 바로 이 ‘여운의 언어’를 다루는 자리이다. 의미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결론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건과 언어, 주체의 태도가 교차하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성의 흔적이다. 예를 들어, “돌아보니 그날의 비는 내 마음을 씻어낸 것이 아니라, 오래된 기억을 불러냈던 것이다.” 이 문장은 단순한 감상이나 교훈이 아니라, 사건이 언어 속에서 스스로 빚어낸 의미의 흔적이다. 이처럼 수필의 마지막 문장은 논리적 결론이 아니라, 사건이 남긴 잔향을 독자에게 열어두는 문이 되어야 한다. 의미는 말로 ‘닫히는’ 것이 아니라, 표면 위에서 계속 생성되고 확산되는 운동이라는 차원에서 작필의리는 초험적 사건으로 나아가게 된다.
3.1. 창작 원리 ③: 의미를 말하지 말고, 떠오르게 하라.
수필의 힘은 설명이 아니라 여백에 있다. 사건의 여운이 언어의 표면에 머물며, 독자가 스스로 의미를 ‘느끼게 하는 글쓰기’가 곧 들뢰즈적 수필이다. 의미를 말하지 말고, 떠오르게 하라는, 수필에서 의미를 직접 설명하거나 결론으로 환원하지 말라는 지침이다. 들뢰즈의 관점에서 의미는 사건과 언어, 그리고 화자의 태도가 만나 표면 위에서 생성되는 비물질적 흔적이다. 따라서 의미를 작가가 ‘정리’하려 들면, 사건의 생생한 떨림과 여운이 사라지고, 글은 단순한 교훈문이나 해설문으로 전락한다. 좋은 수필은 사건이 남긴 미묘한 감각, 정서, 분위기를 언어 속에 남기고, 그 여백 속에서 독자가 스스로 의미를 발견하도록 열린 공간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비가 내린 골목’을 묘사하면서 비가 내리는 사실이나 작가의 감정을 직접 결론짓지 않고, 돌계단에 맺힌 물방울, 먼지 냄새, 고요한 발걸음 소리 등을 통해 독자가 사건의 울림과 감각적 의미를 체험하게 하는 것이 바로 들뢰즈적 수필의 핵심이다. 즉, 수필의 힘은 결론이 아니라, 사건과 언어가 교차하며 독자의 사유 속에서 의미가 떠오르는 여운에 있다.
들뢰즈가 제시한 수필창작의 세 층위, 지시(denotation), 표명(manifestation), 의미(signification)는 단순히 순차적으로 나열되는 단계가 아니라, 상호 관통하며 반복적으로 순환하는 구조를 이룬다. 먼저 지시는 사건의 표면을 언어로 구체화하는 층위다. 독자는 이를 통해 사건이 실제로 무엇이며, 어떤 감각적 요소가 있었는지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단순히 “비가 왔다”가 아니라, “골목길 돌계단 위에 튀는 빗방울”처럼 감각과 세부를 포착할 때, 사건은 독자에게 구체적 경험으로 살아난다. 다음으로 표명은 화자 자신의 내면과 태도를 드러내는 층위다. 사건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과정에서, 화자는 사건에 반응하며 자신의 생각, 감정, 판단을 형성한다. 예를 들어, 비 내리는 골목길을 걸으며 느낀 외로움이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삶의 덧없음이나 인간관계에 대한 성찰로 발전할 때, 사건은 화자의 주체적 변화를 만들어낸다. 마지막으로 의미는 지시와 표명이 상호작용하는 순간에 나타난다. 구체적 사건(지시)과 화자의 내면적 반응(표명)이 교차하면서, 언어는 사건 속 여운과 비물질적 효과를 만들어낸다. 의미는 더 이상 사건이나 화자에 단독으로 귀속되지 않고, 언어와 독자의 상상, 맥락 속에서 떠오르는 것이다.
이 세 층위가 순환적 구조를 이룬다는 것은, 수필이 한 방향으로 끝나는 서술이 아니라, 지시 → 표명 → 의미 → 다시 지시로 이어지는 지속적 움직임 속에서 완성된다는 뜻이다. 사건을 관찰하면서 화자가 변하고, 그 변화를 통해 의미가 발생하며, 그 의미는 다시 사건을 새로운 관점으로 읽게 하는 식이다. 이러한 순환은 한 편의 수필을 단순한 체험 기록이 아닌, 언어 자체가 사건을 생성하고 독자가 의미를 체험하는 장으로 만들어준다. 즉 좋은 수필은 사건, 주체, 의미가 끊임없이 서로를 재구성하며, 독자가 글을 읽는 순간에도 새로운 경험과 사유를 불러일으키는 살아 있는 구조를 갖는 것이다.